지금은 집이다. 2002년 7월 9일부터 12일까지 포상휴가를 받아서 이렇게 집에 있다. 조금 전에 휴대폰의 달력을 체크해보니 이제 나의 전역이 126일 남았다. 이말은 일할 날이 약 50일정도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 날들은 외박/휴가/공휴일 등으로 넘기고 말이다.

 어제 그리고 그제는 재미있고 활기차게 보냈는데, 지금은 기분이 조금 다운이 되었다.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추측하건데...미래에 대한 걱정? 정도 인것 같다.

 기회비용...이란 용어가 절실히 와닿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부가 가장 우선으로 떠오르고 아르바이트(이건 아마 집으로 부터의 경제적인 독립과 연관되지 않을까 싶다..) 또 여자친구문제 등등..참여해야 할 인간지사는 많은데 시간과 기력이 딸린다고나 할까? 이건 매일같이 하는 넑두리가 아니라 아주 가끔..아주 가끔씩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때 떠오르는 불안감이니까 짜증을 내지는 말아주시길~

 아마도 아주 바빠지겠지? 대학원간 친구나 직장다니는 친구나 모두들 바쁘다. 나도 그들처럼 바빠지겠지? 휴..걱정이 아주 안되는건 아니지만 거정보다는 긴장이 된다. 물론 잘 할꺼란 사실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된다. 휴..

 사실 군대에서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기에 나의 군생활이 후회스러운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는 꽤나 공부했고 나름대로는 꽤나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끝까지 지워지지 않는 안타까움은 카투사생활에 너무나 많은 것을 바란 나의 오기였을까? (난..신병때부터 제대하는 고참들로부터 많이 들은 것이 있었고-공부에 대해서/ 또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어찌보면 다른 군대 전우들은 내가 아주 공부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해왔던 것일수도 있다..)

 이럴땐 진짜 아무나 잡고 마구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조금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러다 지치고 그러면 잠들겠지..휴...

 한가지 희망은 있다. 난 그런 바쁜, 그리고 숨가뿐 상황을 종종 즐겨왔었다는 것이다. 공대전공공부? 군대제대한 사람들의 엠프티 헤드? 훗..까짓것..몸을 날리지 뭐..이런 마음은 충분하다. 그런데 무슨 걱정이냐고?

 아마도 지금의 내 자신을 닥달하기 위한 자기방어기제가 작용한 것 같다..

2002년 9월 27일..

제목: 진짜 마지막 외박!!

오늘 아침 일찍 올라왔다...어제 일등상사의 말대로...새벽 3시30분에 일찍 일어나서 써전 리와 써전 해목..그리고 승팔이/일근/민수와 함께..
밴을 타고 서울에 온 것이다. 왜관에서 신탄진까지 뒤 트렁크에 앉아서 왔지만 8시를 약간 넘어서 서울에 들어서니 기분이 상쾌했다...

사실 공식적으로 말하고 다녔던 마지막 외박은..9월 초의 4박5일짜리 였는데...하참들에게 미안하게도 난 그것 이외에 컴퓨터를 조립한다고 추석 바로 전주에 나왔었고...또 이번에도 패스가 남아돌아서...약간 강제적으로 또 나오게 된것이다..우연히 일찍 출발해서 3박4일이 되는 행운과 함께..

어쨌거나..추석때도 그리고 그 바로 전 주도 그랬듯 컴퓨터 하느라 바쁘게 보냈다...이제 서서히 안정화 되어가는 것이구...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의 하나는 이번에 나와서 연고전을 구경하는 것이다. 내일 축구...등등...

에구..이제 워킹데이(실질적인 일하는 날의 수)도 6일밖에 남지 않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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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01 May 02..병장이 되다!

Posted 2008. 8. 21. 16:34, Filed under: Ex-Homepage/Diary

2002년 5월 1일부로 오승민 상병은 병장이 되었습니다.

수요일이던 그날 오후, Formation이 오후 4시 15분부터 시작되었다.
그 뒤에는 내일(5/2)떠나는 Erin M. Barnhart와 오늘부로 병장진급
을 하는 나의 동기들(채빈/인준/승호)과 PLDC를 다녀와서 한달 먼
저 병장을 다는 영규가 한줄로 섰다. 그리고 중대장의 Post 신호에
맞추어 앞으로 나갔다.

지금까지 봐왔던 Promotion Ceremony를 드디어 내가 하는구나..그
것도 마지막인 병장진급식(사실 난 상병진급식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
던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었다.)

중대장과 일등상사의 축하를 뒤로 하고 드디어 Speech 시간! 이상하
게 우리 동기들은 입을 맞춘듯 Thank you를 연발하며 쉽게 쉽게 그
시간을 끝냈다. 아마 그저께 끝난 Artep이 힘들긴 했나보다.

이제 얼마 안남았음을 실감했다. 후 오병장이라? 새록새록 떠오르는
신병때의 기억이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내
가 봐왔던 모든 것을 다 아는것 같았던 고참들의 모습을 지금 내가 그
대로 따라가고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지금의 내 하참들을 생각하
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남은 기간동안 무사히 잘 지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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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ARTEP의 기억...마지막

Posted 2008. 8. 21. 16:33, Filed under: Ex-Homepage/Diary

  그날밤에 아웃포가 들어왔던 것이다. 아웃포란 일종의 '가상의 적의 습격'을 말하는 것으로 이번에는 우리 Friendly Company인 501 화학중대의 4소대원들이 그것을 맡았고 바로 그날 새벽이 첫 기습이었던 것이다. 난 잠결에 몬가 폭죽소리를 들었는데 너무 피곤해서인지 그냥 잤다.

 다음날 아침 물어보니 오늘 새벽 1시정도에 아웃포 3명이 왔더란다. 그리고 그걸 대비하고 있던 1SG가 텐트에 와서 사람들 다 깨웠고 사람들은 허겁지겁 나가서 총쏘고 정신없이 보냈는데 나와 승호만 둘이 계속 잤던 것이다. 다행히도 인원체크를 하지 않았고 1SG이 그 3중에 한명을 생포함으써 일이 일단락 되어서 2명의 Out of Rank는 소리소문없이 지나갔다.

  휴..정말정말 총안에 장전해 놓은 Blank Ammo를 쏘고 싶었건만..(사실 전날 밤에 Guard를 설때도 규남이와 함께 아웃포오면 꼭 잡자고 Hole도 여러군데 만들고 대비했었었다.)

 그날 하루는 조금 여유로웠다. 적어도 HQ에겐 말이다. 이미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새진영을 다 갖추었고 이제 필요한 것은 Gate Guard 2명뿐이었고 소대 Support도 이미 나갔기에 남은 사람들은 근 3일간 모자랐던 잠을 보충했다. 물론 나는 TOC안에서 Radio하고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첫날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TOC과 PLT들이였기에 차분차분이 일이 진행되었다. 몸은 꽤 피곤했지만 그래도 2시간 정도 잤던 것이(아웃포도 모른채하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중대장이 텐트안에 있으면 좀 피곤하다. 중대장은 꽤나 까다로운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발음은 매우 악센트가 강했고 또 약간 남미계통의 발음도 섞여서 잘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Say Again을 하면 그녀는 하나하나 띄어서 말해주는데 그게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휴..더군다나 Operation을 담당하는 OC들은 항상 낮에 TOC안에 있기에 나름대로 긴장을 해서인지 더 버벅댔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들은 다음에 그것을 요약해서 말해준 사람한테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만약에 틀린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이 고쳐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에 과외할때 애들한테 쓰던 방법을 역이용한 것이다. ^^

  이런 식의 방법을 쓰면 Net 상에서도 정확하게 무전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특히 BN과의 통신에선 계속 Operator가 바뀌었는데 어떤 사람은 친절!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전자는 1LT Hobgood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내가 말한 것이 있으면 I copied..라는 말로 내가 말한 것을 다시 확인해 주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언어장벽으로 인해 생기는 정보혼동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SGT Hatton이나 SGT Dean같은 '놈'들은 흑인 특유의 말투로 열라 빨리 말했다. 거의 Rap을 했다고나 할까? 그럴때 Say Again을 말하면 짜증이나 내고! 진짜 그럴때 한국말로 말하고 싶었다. -_-;

  가끔 Radio를 하다가 소대장을 Call할 일이 있는데 그때 소대장이 HMMWV에 없으면 Driver가 대신 무전을 받는다. 우리 중대에서 주로 소대장 드라이버들이 KATUSA이기 때문에 그들이 무전을 받을때면 반가울때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받아보는 이들을 한국어로 ' 오승민 상병님 아니십니까~^^ '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불싸..내가 여기서 한국말로 말하면 바로 중간에 Cut이 들어온다. 왜냐하면 이 무전기는 정말 많은 곳에서 Monitoring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다시 주섬주섬 영어로 말하면 그제서야 분위기감을 잡은 그 KATUSA는 영어로 대답을 한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상황(한국인 둘이 무전기를 잡은 상황)에서는 한국말로 무전을 해야 훨씬 효율적이지만 현실이 허락을 하지 않는 것이다. 씁쓸했다...

  그날도 그렇게 지나갔다....


05 DEC 03...


 그때 저 일말고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SSG Koopman의 X뻘짓때문에 참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군요..사람이 착하기는 한데(나이도 한? 40대 초반?)이상하게 농땡이를 잘 피고 또 KATUSA를 X먹일 생각을 종종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또....아침에 들어왔던 마지막 아웃포! 이때 사이드에서 Guard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Combat Life Saver~!'..이건 S.O.S.하고 같은 의미죠..그리고 제가 CLS의 한명이었고..(한명은 규남이었는데..저한테 시키더군요..짬도 낮은 놈이..-_-;;)

  그때 어설프게 귀염둥이 꼬맹이 LT Barnhart의 허리를 감싸안아봤다는....흐...복부에 총상상황이어서 허리에 붕대를 둘러야 했거든요...크...기억에 남네요..

  어떤 부대라도 ARTEP이 가장 년단위에서는 큰 훈련이다보니..고생도 많이하고 또 기억도 많이 남는 훈련일 겁니다..(몇몇 슈퍼 땡보들 빼고!) 그래서 최대한 상세하게 적어보려 했습니다....아마 저희 기수때쯤은 ARTEP을 한번만 하고 말았다는..계속 유예되다가~ 보통 2번씩 하거든요...그래서 운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그런데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또한번 해볼래 하면...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P.S. 글중에 나오는 군사용어?들은 ...군기밀이라 설명을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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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ARTEP의 기억...세번째

Posted 2008. 8. 21. 16:32, Filed under: Ex-Homepage/Diary

  난 Shift Change 시간인 7시에 TOC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아마도) 못잔 Wagner가 맛이 약간 간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내가 Night Shift를 해봐서 아는데 그건 정말 고욕이다. 한 새벽 2시정도까지는 해줄만 하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5시까지는 손이 서서히 떨려오면서 TOC 안의 빨간 불빛이 눈안에 스며든다. 잠이 오는 객관적인 상황과 그것을 밀어내는 주관적인 몸부림이 교차하는 그 시간..내가 3월 필드때 그렇게 했듯이 Wagner가 했을리는 없다고 보지만 여하튼 Night 조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당시만 해도 난 밤근무조가 12시간 Off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건 Artep이니까..(결과적으로 그녀는 12시간은 아니더라도 7~8시간 Off를 받았고 그것은 충분히 그녀를 회복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발발히 잘만 돌아다니더군..)

  원래 Day Shift가 빡센 것은 알았지만 Day 2의 TOC 안의 완전히 전쟁터였다.(하긴 이게 모의 전쟁훈련이긴 하지!) 모든 소대가 2~3의 Mission을 뛰었고 군대의 특성상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에 각종 Report가 오고갔다. 어디 그것 뿐인가?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진을 치고 있는 BN과 연결되어 모든 일을 Arrange하는 일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그것을 나와 XO 이렇게 둘이 Charge해서 해야 했다.

  솔직히 너무 바빴다. 여기서 받고 있는 도중에 저기서 연락이 오면 재빨리 그 Net에 'Stand-By'를 외치고 다시 돌아와서 집중해야했다. 그러다 보면 또 그 Net에서 들려오는 제 3자의 Call Sign...Wolverine Base..물론 XO도 도와주긴 했지만 그녀도 자기 맡은 것 중대장/ 소대장들 에게 분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 알텝이 이런거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고..에이 그냥 Wagner한테 Day Shift 시키지 하는 일종의 원망도 들었다. (SFC Lee가 NCO로서 밤근무조에 있어야 하기에 내가 반드시 낮근무조에 있어야 했다)

 그날 저녁 7시에 Shift Change를 하면서 내가 받은 것들을 Log Book에서 체크해보니 거의 200여개에 달했다. 일반적인 훈련시 200개면 거의 3~4일분이었고 특히 더 놀라운 것은 그것들 중에 Radio Check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수능시험이 쉽게 나오다가 갑자기 본고사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Eureka로 돌아왔지만 기다리고 있던 것은 50% Security Duty라는 Guard직이었다. 물론 나만 고생한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서는 것이었다. 역시 난 군인체질?인지는 몰라도 별로 피곤함도 못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드를 섰다. 물론 내가 준비한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말이다.

 그리곤 23시 정도에 텐트로 돌아와 잠을 빠져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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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ARTEP의 기억...두번째

Posted 2008. 8. 21. 16:31, Filed under: Ex-Homepage/Diary

  우리 HQ가 묵었던 곳은 Training Area Charlie였다.(TA-C) 이곳은 나에게 아주 익숙한 장소였다. 바로 작년 7월 잠깐 SSG Warden이 HQ에 몸 담고 있을적 '죽도록' 고생했던 Company FTX때도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때 TOC을 쳤던 무덤 옆에 똑같이 TOC을 쳤고, 그때 Sleeping Tent를 쳤던 곳에 똑같이 Eureka를 쳤다.(Eureka는 일종의 큰~텐트인데 이번 필드때 처음 쳐보는 것이었다. 원래 필드에서 가장 늦게 실행되는 것이 자는 곳을 만드는 것인데..그래서 이 난생처음보는 거대한 놈을 해가 다 진다음에 치게 되었다. 그래서 군인 10여명이 붙었지만 이 텐트 하나 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었다) 하지만 그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내 개인적인 주관이긴 하지만 현재 미군구성과 카투사 구성이 역대 최고였다. 미군들도 어느 하나 모난 하사관이 없었고-나중에 한명이 생기지만- 내가 카투사 중에 짬이 조금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카투사구성도 좋았다.

  나는 267-5의 드라이버였고 그 차 Dispatch에 Second Driver가 SFC Lee였기 때문에 난 낮근무로 Radio Watch를 하게 되었다. 저번 3월 필드때부터 중대훈련의 Radio를 Operation에서 맞게 되었다. 즉 XO(1LT Barnhart) - Ops SGT(SFC Lee) - 나 - Ops Clerk(SPC Wagner) 이렇게 넷이서 둘씩 짝을 맞춰서 12시간제로 돌리는 것이었다.(아마 이런 System은 내가 제대하는 11월 이후에는 또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내가 잘나서 그때가면 다른 대체할 KATUSA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일을 맡으려고 하는 KATUSA가 없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고통은 별로 없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좀 많기에..--;) 그렇다고 낮시간인 내가 밤에 단잠을 잘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Guard Duty가 또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날씨는 굉장히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그래서 바깥에서 Firing Position을 잡고 누워있어도 별로 춥지 않았다. 하지만 약간의 수면을 취한후 아침에 4시 15분부터 시작되는 Daily Stand-To때의 날씨는 좀 많이 추웠다. 이미 땅의 찬기운을 맞고 잔 후였고 또 알다시피 막 Sleeping Bag에서 나온 몸이 견디기에 바깥의 날씨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가지 잡다한 것을 껴입었다. 어차피 이번에는 A/B백 완벽하게 가져왔기에 모자란 TA-50가 없었다. 거기서 내가 선택한 것은 Gortex위아래와 MOPP 2 복장 껴입기! 이렇게 입으니 정말 하나도 안 추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깥의 Hole에 눕기 전에 PT Mat 깔기!~ 어떻게 보면 아늑한 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었다. 어느새 OC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졸지는 않는지 몸은 잘 숨기면서 있는지 Check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적이 흐르는 Stand-To가 한 1시간쯤 지나고 다시 Generator가 돌아가면서 우리의 Day 2는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서서히 피로한 기색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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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ARTEP의 기억...첫번째

Posted 2008. 8. 21. 16:30, Filed under: Ex-Homepage/Diary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때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 중에 ARTEP은 하나의 꿈과 같았다. 그 당시 수많았던 고참들이 들려주던 그것에 관한 무용담들! 그것은 나에게는 약간의 호기심과 불안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한번 연기되었던 Artep을 다녀왔다.

  기간은 4월 22일 월요일부터 4월 29일 월요일까지..그리고 22일, 23일은 Motorpool에 있었고 24일, 수요일 오전에 평택 CP Humphreys 의 옆에 있는 Training Area로 떠났다. 차는 267-4번으로 뒤에는 Water Buffalo를 달고 Driver는 강주호 병장, 옆에 Passenger는 PFC Reeves, 나는 Man-Pack Radio를 담당하는 TC겸 무전병의 자격으로 옆에 탔다.

  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원래 Vehicle에 타면 Kevler를 벗으면 안되지만 우리같은 경우에는 서로 그 고통을 다 알기에 Gate 1 을 나가는 순간 모두 벗었다. 그리고 시작된 일종의 여행....긴 시간이었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Advance Party(선발대)였던 우리는 가장 먼저 그곳에 도착했고 선발대의 임무인 Recon(수색/정찰)작업에 들어갔다. 화학부대답게 Recon은 MOPP4로 진행되었고 나와 현식이는 Gate쪽에서 Prone Position자세로 가드를 보았다. 그때 저 앞에 다가오는 낮선 Bumper Number의 HMMWV한대! 이미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은 현식이와 나는 바짝 긴장했다. 역시 내리는 사람은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른 Kevler를 쓴 3명의 OC들! 현식이는 나에게 다시한번 어떻게 하는지를 물어본뒤 앞으로 나갔다. 나는 물론 뒤에 계속 누운 자세로 Cover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처음 다가온 OC는 현식이 묻는 Challenge에 맞는 Password를 말했다. 그리고 ID카드도 검사를 받은 뒤에 우리의 사이트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약간의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뒤따라오던 두명의 OC들은 Password를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모르는 척 했던 것이다. 그리곤...저 앞에 지나가는 사람도 같은 OC인데 왜 저 사람은 들여보내주고 나는 막느냐는 둥, 내가 너보다 상관인거 모르냐는 둥 일종의 애원/협박을 현식에게 퍼붓었다. 그러나 HQ 최고의 오바맨 현식은 총구를 들이밀며 안된다고 바락바락 우겼다. 아마 현식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내가 말한 장면이 연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XO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 둘은 들어올 수 있었다. 그때 또 한명의 OC까 현식이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그리곤 현식에게 Hero of the Day라고 말해주었다. 우리의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그 OC들은 우리의 어수선할 수도 있었던 '작전초기경계모습'을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이 깔끔했던 267 중대의 Artep은 서서히 첫날밤을 맞아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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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ARTEP 전야

Posted 2008. 8. 21. 16:29, Filed under: Ex-Homepage/Diary

휴..드디어 내일이구나...

군생활 중에 가장 큰 훈련이라는 ARTEP을 이번주 월요일부터

시작했다. 원래 이 훈련의 핵심은 CP Humphreys라는 평택에 있는

또다른 부대에 가서 하는 것인데..우선 월요일/화요일은 그냥 우리

부대에 있으면서 여러가지 평가도 받고 준비도 하고 그랬다...

이 훈련은 다음주 화요일까지 계속 되는데...이제 내일 새벽에 출

발하는 것이다. 뭐 할말은 끝없이 많지만 내일 새벽 3시 30분에 일

어나야 하기에 여기서 마쳐야겠다. 아마도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 그땐 할말이 많이 있겠지..^^?

지금은 그냥...그때를 기념하기 위하여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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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유익한 상병휴가를 마치고 복귀한지 어언 이틀..

 몇몇 사건이 있었다. 그중의 단연 제일은 바로 부상! 때는 어제..
막사 앞 농구코트에서 501중대 사람들하고 농구를 하던 중 수비
의 발에 걸려 좀 심하게 넘어졌다. 다행히 앞으로 넘어졌지만
워낙에 속도가 있었던 지라 좀 찢어지고 삐고 그랬다. 왼쪽은 그냥 몇
군데 찢어지고 손목이 좀 삔것 같은데 오른팔은 좀 많이 까졌다. 그리
고 원래 무감각했던 오른쪽 새끼 손가락이 맛이 좀 갔다.(흠..신체에
대한 언어구사가 너무 적나라했나?-_-;)

  그래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Sickcall에 갔다. 다행히 사람이 있어서
치료(라기 보단 소독)를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찢긴 곳이 좀
덜 쓰라려서 정신을 차리려 하니..이젠 삔 곳이 아파왔다. 어쨌거
나 늦은 저녁이었기에 암것도 못하고 그냥..밤 9시경! 상병휴가 빵
을 쏘러(일종의 관례임...) 사람들과 왜관시내로 나갔다.

  그런데 술은 이미 상병휴가때 과도하게 마셔서 잘 마실 수 없었다.
그리고 몸도 정상이 아니었고..그래서 그냥 적당히 적당히 1시간
정도를 보내다가 돌아왔다. 휴..술고래는 아니지만 회식때 술을
이렇게 잘 못먹다니..그것도 내가 쏘는 자리였는데..ㅠ,ㅠ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역시나 부은 왼쪽 손목은 여전했고 오른쪽 손
새끼 손가락 역시..똑같았다. 그래서 지저분한 몰골로 시내의
OO한의원으로 갔다. 그리곤 1시간 30분에 걸쳐..침맞고..가라앉히고
피뽑고..사혈침 놓고...부황뜨고 물리치료받고 돌아왔다.

 옆에 고참이 와서 더이상 못쓰겠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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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08 Jul 01 마루의 기억...

Posted 2008. 8. 21. 16:28, Filed under: Ex-Homepage/Diary

# 이 글은 일기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2001년 7월 8일 일요일

지금 시각은 밤 10시 28분이다. 약 90분의 오늘을 남겨두고 난 책상에 오로지 스텐드 불빛만을 켜 놓은채 이제 우리 마루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마루가 아프다는 말을 처음 들은 지난 금요일밤, 난 이번 역시 의례히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소식을 전해주신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그리곤 바로 그날 밤 12시가 넘어서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동네 가축병원에서 링겔을 맞고 있었던 마루를 서울대학부속가축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셨다. 새벽 3시가 넘어서 돌아오신 부모님께선 그곳에서도 그렇게 큰 희망을 얻고 오시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약속이 취소된 관계로 거의 하루종일 집에 있었던 토요일, 나는 그 병원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은 형을 통해 여전히 마루의 상태가 나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 처음 '심각하다'란 느낌을 받았었다. 어쨌든 여지껏 내가 아는한 그러한 종류의 불상사가 거의 없었던지라 그냥 마루의 없음을 단기간적인 헤어짐으로 무마시켰었던 날이 바로 어제였다.

오늘 오전(아침) 중에 오고 간 이야기는 더 심각했다. 이미, 아니 그 병 자체는 예방이 최선인 것처럼 말이 나왔고 병원측에서도 매우 불안한 보장만 해 줄 뿐이었다. 암과 같은 그 병은 매우 급속하게 마루를 고통스럽게 했고 그 약조차 너무 강해서 희석시킨 것을 투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의사들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를 입원시키고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가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름대로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작은 고모도 사태의 심각성을 아셨는지 조심스레 안락사 이야기를 꺼내셨다. 왜인지 난 그때 마루의 '눈물'에 관해서 생각을 했었다.

한 오전 10시쯤? 아버지께서는 병원에 가신다고 하셨고 약간 망설이시던 어머니도 따라가셨다. 그때 난 조금 갈등했었다 .사실 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세윤이와 함께 부대로 내려가는 것만 빼면 그리 바쁘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병의 정도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 또 게으름도 있었다. 생명체란 그렇게 쉽게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내 자신의 기도에 대한 자신도 있었다. 결국 모든 생각은 죽음이란 것에 의해서 일단락 되었긴 하지만...

오후 1시경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를 지날때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루가 죽었다고, 그리고 한 3분후 어머니께로부터 같은 내용의 전화가 왔다. 현실이 되어버린 마루의 죽음...

나에게 다가온 충격의 반응은 이러했다. '죽었구나 결국...'이란 무섭도록 침착한 생각과 단지 얼굴의 근육이 마비되는 일의 발생, 그리고 주위의 가뜩이나 침침했던 풍경들이 모두 젤라틴이 되어 버렸다. 마음을 파고드는 회색분자들이 마루와의 여러가지 추억들을 떠올리게, 그러나 그것에 빠지지는 않게 만들었다. 맞은편 좌석에 수시로 바뀌어지는 타인을 보며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이 사실을 그리고 내 심정을 알 수 있을까 하고 어리석은 질문도 상상했다. 그리곤 사당에서 내려 말없이 4호선 플랫폼으로 갔다.

평상시 같았으면 2~3번은 깼었을 지루한 남행 열차에서 난 2시간 30분동안 쉬지않고 잠들었다. 물론 꿈은 꾸지 않았다. 그리고 나선 머리가 아팠다.

여느때와 같이 짐을 다 정리하고 도착 전화를 8시 10분 정도에 했다. 예상대로 어머니께서는 흐느끼셨다. 그 점만은 어머니를 닮은 나였지만 난 흐느낄 수 없었다. 그냥 가슴 속에서 삯이고 있었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아버지 역시 상당한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난 강한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말은 불쌍하게 죽은 마루 이야기, 동네 가축병원에 대한 한탄, 다시는 큰 개를 기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 등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난 무엇보다 어머니 당신의 안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마루의 죽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께서 마루를 부르자 마루는 고개를 돌려 당신들 쪽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로 걸어왔다고 한다. 그리곤 바로..아버지 품안에서 죽은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마지막 걸음이 좋은 징조였다고 하셨지만 난 직감적으로 그것이 매우 고통스러웠을 걸음이었음을 느꼈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께 '토요일날 왔었으면 그때 죽었을 것'이라고 하셨단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마루가 더 불쌍했다. 대다수의 사랑받는 개들이 그렇듯 마루 역시 그 생각의 끝에는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내가 조금 싫어졌다. 스스로 안 가길 잘했다고 위안했지만 그로 인해 마루와의 마지막 대면이 한 달 전이 6월 초로 넘어간 것이다.

작년 이맘때 였을 것이다. 프랑스에 가려고 잠깐 들렸었던 홍콩에서 전해들은 외할머니의 부고가 떠올랐다. 그리고 태구 아버님의 부고 역시. 그건 마치 머리의 한 곳에서 나사가 사라진 느낌이다.

집을 이사했던 97년도, 마루는 태어났고 거의 동시에 우리 집에 왔다. 말 그대로 주먹만해서 집 안에서 기르다가 한 3개월 뒤 바로 마당으로 내놨다. 그만큼 성장이 빨랐던 마루. 어쨌든 그 놈하고는 꽤나 추억이 많았는데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을 나게 함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로지 하나만 제외하고...

집으로 가는 마지막 길 모퉁이를 돌때면 난 휘파람을 불었다. 마치 올빼미가 울듯 말이다. 그것은 마루와 나 사이의 하나의 약속이었다. 내가 지금 가니까 짖지 말고 나와서 나를 반겨줘..하는 그런 신호였다. 지금와서 다시 말하지만 그때 난 매우 기뻤었다. 어두운 밤에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공해 주던 마루. 그놈은 주로 자신의 몸을 가장 많이 뻗으려고 줄이 묶여있는 얼굴 쪽이 아닌 뒷다리 쪽을 나에게 들이밀곤 했다. 그러면 난 왈츠를 추듯 앞 발을 들어서 잡아주는 식으로 응했었다. 모든 것이 어둠처럼 외로워지는 한밤중에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마루는 나에겐 마치 산소같은 존재였었다.

벨기에에서 마루의 끈을 사온 후에도, 바깥에 잘 데리고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그 점도 조금 아쉽다. 하긴 그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지만...따지고 보면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그렇지만 마루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고 그래서 그 놈도 마음이란 것을 가졌다면 그렇게 아쉬워 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국민학교때 쫑이 집을 나갔을땐 불가능한 확신이 있었다. 쫑은 영원히 잘 살거라는 아이들의 믿음, 그런 것 말이다. 그러나 마루는 죽었다. 그리곤 화장되어졌다. 지금 이 순간 쫑과 마루의 현재존재가 궁금해진다. 쫑은 여전히 영원히 살고 있을테고 마루의 영은 우리 집 마당에 앉아서 나의 휘파람 소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그곳에서 다신 휘파람을 불지 않을때 까지는 말이다.

죽은 것이다...

강아지를 길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들은 한 가족이다. 그래서 그 부재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현실적으로 난 이부분도 걱정이다. 어서 어머니께서 상심에서 벗어나셔야 하니까 말이다. 그것이 내가 마루에게 바라는 마지막 부탁이다. 어머니의 기억에서 사라져 주는 것...서서히 잊혀져 달라는 정말 어려운 부탁을 마루에게 하고 싶다.

P.S. 이별에 대한 또 다른 연습이었다. 그런데 왜 '한숨'과 멍한 느낌만 드는지 모르겠다. 난 마루에게..또 '죽음'이란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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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존재의 찬사를 받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 사뮤엘 존슨


♥ 우리들 각자는 날개를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은 천사들이다. 두 영혼이 서로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다. - 루치아노 드 크레센드


♡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렀을때 우리는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받을 것이다. - 알베르 카뮈


♥ 만일 당신이 이 생에서 한 사람에게 충실했다면, 신은 다음 생에 당신과 그 사람이 더 훌륭한 영혼으로 다시 만나게 할 것이다. - 쥬다 할레비


♡ 당신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사랑을 하는 순간, 그 마음은 사라진다. 당신이 사랑을 하는 순간,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는가 아닌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된다.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 우리가 지상에서 가진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고 이해할때, 그리고 우리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때, 우리는 비로소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이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 또한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 루드비히 반 베토벤


♥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때 그 영혼은 죽음을 뛰어넘어 자기 내면의 불멸성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 버니시걸


☞흠..이런 글도 쓰여있네요~^^ 카뮈가 저런 말을 하다니..그 사랑이 과연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랑일까? 개인적으로 쥬다 할레비의 말이 가장 맘에 와닿는군요...13 APR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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