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일기] 08 Jul 01 마루의 기억...

Posted 2008. 8. 21. 16:28, Filed under: Ex-Homepage/Diary

# 이 글은 일기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2001년 7월 8일 일요일

지금 시각은 밤 10시 28분이다. 약 90분의 오늘을 남겨두고 난 책상에 오로지 스텐드 불빛만을 켜 놓은채 이제 우리 마루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마루가 아프다는 말을 처음 들은 지난 금요일밤, 난 이번 역시 의례히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소식을 전해주신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그리곤 바로 그날 밤 12시가 넘어서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동네 가축병원에서 링겔을 맞고 있었던 마루를 서울대학부속가축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셨다. 새벽 3시가 넘어서 돌아오신 부모님께선 그곳에서도 그렇게 큰 희망을 얻고 오시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약속이 취소된 관계로 거의 하루종일 집에 있었던 토요일, 나는 그 병원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은 형을 통해 여전히 마루의 상태가 나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 처음 '심각하다'란 느낌을 받았었다. 어쨌든 여지껏 내가 아는한 그러한 종류의 불상사가 거의 없었던지라 그냥 마루의 없음을 단기간적인 헤어짐으로 무마시켰었던 날이 바로 어제였다.

오늘 오전(아침) 중에 오고 간 이야기는 더 심각했다. 이미, 아니 그 병 자체는 예방이 최선인 것처럼 말이 나왔고 병원측에서도 매우 불안한 보장만 해 줄 뿐이었다. 암과 같은 그 병은 매우 급속하게 마루를 고통스럽게 했고 그 약조차 너무 강해서 희석시킨 것을 투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의사들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를 입원시키고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가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름대로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작은 고모도 사태의 심각성을 아셨는지 조심스레 안락사 이야기를 꺼내셨다. 왜인지 난 그때 마루의 '눈물'에 관해서 생각을 했었다.

한 오전 10시쯤? 아버지께서는 병원에 가신다고 하셨고 약간 망설이시던 어머니도 따라가셨다. 그때 난 조금 갈등했었다 .사실 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세윤이와 함께 부대로 내려가는 것만 빼면 그리 바쁘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병의 정도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 또 게으름도 있었다. 생명체란 그렇게 쉽게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내 자신의 기도에 대한 자신도 있었다. 결국 모든 생각은 죽음이란 것에 의해서 일단락 되었긴 하지만...

오후 1시경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를 지날때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루가 죽었다고, 그리고 한 3분후 어머니께로부터 같은 내용의 전화가 왔다. 현실이 되어버린 마루의 죽음...

나에게 다가온 충격의 반응은 이러했다. '죽었구나 결국...'이란 무섭도록 침착한 생각과 단지 얼굴의 근육이 마비되는 일의 발생, 그리고 주위의 가뜩이나 침침했던 풍경들이 모두 젤라틴이 되어 버렸다. 마음을 파고드는 회색분자들이 마루와의 여러가지 추억들을 떠올리게, 그러나 그것에 빠지지는 않게 만들었다. 맞은편 좌석에 수시로 바뀌어지는 타인을 보며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이 사실을 그리고 내 심정을 알 수 있을까 하고 어리석은 질문도 상상했다. 그리곤 사당에서 내려 말없이 4호선 플랫폼으로 갔다.

평상시 같았으면 2~3번은 깼었을 지루한 남행 열차에서 난 2시간 30분동안 쉬지않고 잠들었다. 물론 꿈은 꾸지 않았다. 그리고 나선 머리가 아팠다.

여느때와 같이 짐을 다 정리하고 도착 전화를 8시 10분 정도에 했다. 예상대로 어머니께서는 흐느끼셨다. 그 점만은 어머니를 닮은 나였지만 난 흐느낄 수 없었다. 그냥 가슴 속에서 삯이고 있었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아버지 역시 상당한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난 강한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말은 불쌍하게 죽은 마루 이야기, 동네 가축병원에 대한 한탄, 다시는 큰 개를 기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 등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난 무엇보다 어머니 당신의 안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마루의 죽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께서 마루를 부르자 마루는 고개를 돌려 당신들 쪽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로 걸어왔다고 한다. 그리곤 바로..아버지 품안에서 죽은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마지막 걸음이 좋은 징조였다고 하셨지만 난 직감적으로 그것이 매우 고통스러웠을 걸음이었음을 느꼈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께 '토요일날 왔었으면 그때 죽었을 것'이라고 하셨단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마루가 더 불쌍했다. 대다수의 사랑받는 개들이 그렇듯 마루 역시 그 생각의 끝에는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내가 조금 싫어졌다. 스스로 안 가길 잘했다고 위안했지만 그로 인해 마루와의 마지막 대면이 한 달 전이 6월 초로 넘어간 것이다.

작년 이맘때 였을 것이다. 프랑스에 가려고 잠깐 들렸었던 홍콩에서 전해들은 외할머니의 부고가 떠올랐다. 그리고 태구 아버님의 부고 역시. 그건 마치 머리의 한 곳에서 나사가 사라진 느낌이다.

집을 이사했던 97년도, 마루는 태어났고 거의 동시에 우리 집에 왔다. 말 그대로 주먹만해서 집 안에서 기르다가 한 3개월 뒤 바로 마당으로 내놨다. 그만큼 성장이 빨랐던 마루. 어쨌든 그 놈하고는 꽤나 추억이 많았는데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을 나게 함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로지 하나만 제외하고...

집으로 가는 마지막 길 모퉁이를 돌때면 난 휘파람을 불었다. 마치 올빼미가 울듯 말이다. 그것은 마루와 나 사이의 하나의 약속이었다. 내가 지금 가니까 짖지 말고 나와서 나를 반겨줘..하는 그런 신호였다. 지금와서 다시 말하지만 그때 난 매우 기뻤었다. 어두운 밤에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공해 주던 마루. 그놈은 주로 자신의 몸을 가장 많이 뻗으려고 줄이 묶여있는 얼굴 쪽이 아닌 뒷다리 쪽을 나에게 들이밀곤 했다. 그러면 난 왈츠를 추듯 앞 발을 들어서 잡아주는 식으로 응했었다. 모든 것이 어둠처럼 외로워지는 한밤중에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마루는 나에겐 마치 산소같은 존재였었다.

벨기에에서 마루의 끈을 사온 후에도, 바깥에 잘 데리고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그 점도 조금 아쉽다. 하긴 그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지만...따지고 보면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그렇지만 마루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고 그래서 그 놈도 마음이란 것을 가졌다면 그렇게 아쉬워 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국민학교때 쫑이 집을 나갔을땐 불가능한 확신이 있었다. 쫑은 영원히 잘 살거라는 아이들의 믿음, 그런 것 말이다. 그러나 마루는 죽었다. 그리곤 화장되어졌다. 지금 이 순간 쫑과 마루의 현재존재가 궁금해진다. 쫑은 여전히 영원히 살고 있을테고 마루의 영은 우리 집 마당에 앉아서 나의 휘파람 소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그곳에서 다신 휘파람을 불지 않을때 까지는 말이다.

죽은 것이다...

강아지를 길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들은 한 가족이다. 그래서 그 부재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현실적으로 난 이부분도 걱정이다. 어서 어머니께서 상심에서 벗어나셔야 하니까 말이다. 그것이 내가 마루에게 바라는 마지막 부탁이다. 어머니의 기억에서 사라져 주는 것...서서히 잊혀져 달라는 정말 어려운 부탁을 마루에게 하고 싶다.

P.S. 이별에 대한 또 다른 연습이었다. 그런데 왜 '한숨'과 멍한 느낌만 드는지 모르겠다. 난 마루에게..또 '죽음'이란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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