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도서관에서 읽어봄직한 책을 고르다 두권의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이미 한권은 '괴짜경제학'이란 책을 빌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한권만을 선택해야했고 고심끝에 '역사를 바꾼 놀라운 질병들'을 대출했다. 그러나 최종예선에서 탈락한 것이 못내 아쉬워서 그냥 점심을 건너 뛰고 그 자리에서 2시간정도에 쭉 읽은 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뉴턴은 어쩌다 미쳐버렸나?'라는 희한한 제목의 책이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어떤 분야의 책인지 잘 추측이 되지 않지만 이 책은 여러가지 의학적인 사건들을 쓴 것들이다.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있었던 것이 아닌 저자들의 나라인 호주와 영국의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나름대로 빠르게 훑어보면서 봐서인지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미팅에서 분위기 쇄신을 위해 말한만한 껀덕지는 별로 없어 보였다.

유명한 영국작가 찰스디킨스가 그의 소설에서 의사를 종종 등장시키고 그가 의료사회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앞으로 좀 찾아서 읽어봐야할듯 싶다~(크리스마스캐롤, 피크위크의 기록 등의 소설) 또, 엽기적인 살인마인 소니빈의 이야기도 나오고 - 물론 지금생각해보면 그다지 엽기적이지도 않다. 인육을 먹은 정도? - 전쟁의 와중에서도 투철한 정신으로 환자들을 구하고 독일재판장에서 진실만을 말해 장렬히 '전사'한 간호사 이디스 캐벌의 이야기, 여성을 위한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판매했던 리디아핑크햄의 일화 등 흥미위주의 이야기가 내용의 대부분이다. 물론 지역적인 한계에서인지 그러한 일화들이 그냥 읽기에는 좀 시시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나열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나라에서만 유명한 사람인듯 싶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학의 역사를 잘 알고 싶다면 거창하게 동서양을 분리해서 시작하는 그런 류의 책이 더 나을 뻔 했다. 허준이나 백인제선생의 이야기를 서양사람들에게 백번 말해봐야 그냥 '그렇구나'하는 반응이 나올 뿐이듯 말이다. 존헌터의 과학적 수술법과 자연치유력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등은 예과때 한번정도 들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별건 아니지만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은 이것이다.

"너는 사냥이나 하찮은 일들 외에는 관심이 없구나. 장차 네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손상시킬 녀석이다." - 아버지가 젊은 찰스 다윈을 꾸짖으며 한말








<목차>

1. 의학과 기술
2. 살인, 미스터리, 신체 상해
3. 유행병과 질병
4. 유명한 환자들
5. 돌팔이 의사들
6. 치료와 발견
7. 왕과 왕비들
8. 의사와 의료활동
9. 전쟁과 혁명
10. 완전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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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현대의학론 수업 시간에 '박재영'선생님이 오신 적이 있었다. 청년의사라는 미디어를 만든 사람중 한명이며 현재 그곳의 주간으로 있는 그는 몇몇 의대생들에게는 일종의 역할모델을 해주는 그런 존재였었기 때문에 실제 수업에 그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서홍관'선생님으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를 만든 공동창시자 중 한명이다. 여름방학때 그 모임에 대해 약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으며 지금도 종종 사이트(http://humanmed.org/ )에 가서 얼쩡거린다. 하지만 그곳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없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역시 현대의학론 수업시간의 느낌과 비슷한 느낌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이 책도 여름방학때의 리스트에 있었던 책이고.



우선 이 책은 부제인 '시인의사 서홍관의 인생 처방전'에서 알수 있듯 감성적인 측면이 많다. Chapter가 바뀔 때마다 저자가 직접 쓴 시들이 몇편씩 실려있다. 또 커버를 봐도 저자의 사진이 아홉칸에 걸쳐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는데 순간 우리 학교의 S교수님이 생각났다. 그분보다 더 왕성한 저작활동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을 때는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 아직까지 의대생이란 생각보다는 일반인이란 생각이 더 커서일 수도 있다. 또 책의 내용 자체가 저자가 환자들을 볼때 보고듣고 느낀 바를 서술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것은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을 절대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약이나 주사치료는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니까 환자가 그냥 운동이나 좀 지켜봐도 되는 경우에는 그냥 보내드린다는 것이 그의 철학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절실히 원하는 환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고 한다. 뭐 지금처럼 의약분업이 있는 경우에는 약간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이 책이 나올 당시(1995년)의 입장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인 것 같다.



대학시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청계천에서 야학을 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군복무 대신 선유도와 전북 완주에서 무의촌 근무를 한 그의 이력에서 알수 있듯 그는 자신을 '운동권 의사'라고 자칭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그의 프라이드 속에서 운동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약간 다른 것이다.


"...따라서 운동권의사라고 하면 마치 이들과 한편인, 성분 나쁜 의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내 나름대로 운동권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운동권이 되려면 사회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사회의 모습을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그대로 믿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은 운동권이 될 수 없다.(중략) 둘째는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해결의 주체로 생각해야만 한다. 의사들끼리 얘기해 보면 많은 의사들이 의료계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참으로 비판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상 해결책을 물어보면 '내가 무슨 정치가도 아닌데 무슨..' 하면서 다음 단계에 대한 의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해서는 그 의견이 반영될 기회가 영영 없는 셈이 되고, 따라서 탁상공론이 되고 만다. 만약에 그 비판적인 내용들이 옳다면 그것을 여론화하여 올바른 의료제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중략) 나는 후배들에게 가끔 '잘못된 점을 알고 고치려고 나선다면 지도자가 되겠지만, 잘못된 점을 알고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불평분자가 되고 말뿐'이라고 얘기한다. 운동권이란 바로 이렇게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치려고 나서는 사람들이다.(중략) 나는 운동권 의사가 아니다. 단지 운동권 의사가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나는 스스로 게으르고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운동권 의사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민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씩씩하고 지혜롭고 책임감 있는 운동권 의사들을 갈망하고 있다." p.52~54





개인적으로는 제1부 병을 고치는 의사, 인간을 고치는 의사...편이 의대생들에게 필요한 항목 같다. 특히 자신의 이모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그곳의 시스템과 의사들에게 느꼈던 아쉬운 점을 저자에게 말하는 부분에서는 내 스스로도 벌써 '의사가 되어 반성하는' 기분이었다.

"이모부는 내가 의사가 되고 대학병원의 과장이 되어 인사를 온 것이 매우 든든하고 대견하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병원에서 투병할 때 괴로웠던 일이 생각나신 듯 당시의 병원생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나로서도 이모부의 병원생활에 대해 듣기는 처음이었다. 이모부는 간절하게 당시를 회상하셨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아침마다 일어나면 오늘 경과는 어떤지 몹시 궁금했다. 의사 선생님 오시기만 기다리는데....오셔서 별 이야기도 하지 않고,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를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면서 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럴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손이라도 한 번 만져 주면 마음이 놓이겠는데....등이라도 두드려 주면 위로가 되겠는데....끝내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고 지나가 버리면 하루를 그냥 허송세월 보낸 것 같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회진이 끝난 뒤에 하루 종일 온갖 방정맞은 생각에 시달렸다. 혹시 내 병이 드디어 죽을 병이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의사가 나를 피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내가 의사 선생님에게 건방지게 보인 것은 아닐까. 기분 상하게 한 적은 없었을까. 맞다. 저 옆 침대에 누운 환자는 의사 선생님에게 무슨 선물을 하는 것 같았는데, 오늘 회진할 때도 저 환자에게는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무슨 선물을 하지. 나는 돈도 없는데. 지금도 가장이랍시고 돈도 못 벌어 오는 주제에 입원비나 까먹고 있는 것만 해도 집안살림이 휘청대는데, 선물이나 촌지를 주는 것은 생각이나 하겠는가. 아, 나는 왜 이럴까, 바보같이...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의사가 아는 사람이라서 특별히 잘 봐주는 것 같은데, 나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병도 안 낫고 죽을 수 밖에 없단 말인가?'

말씀하신 내용 모두가 구구절절마다 얼마나 안타깝게 말씀하시는지, 그 아픔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졌다.(중략) 이후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모부를 생각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환자의 손을 잡아 주게 되었다." p.29~31



저자는 노먼베쑨의 전기를 읽고 그의 '운동권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동경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여름방학때 노먼베쑨의 전기를 읽었지만 '흠..내가 저 상황의 노먼이었다면 저럴 수 있을까?...'라며 약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달랐다. (노먼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스페인과 중국에서 의료활동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부인을 포함한 가족생활은 파탄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하긴 폴파머도 가족생활이 원만하지는 않았다.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난...지금도 그정도까지의 희생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그들처럼 한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의과대학생들이 의학교과서 이외에 꼭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노먼 베쑨의 전기를 추천할 것이다. 1991년 우리 나라에 그의 생애가 한 권의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 나는 무척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의 헌신적인 생애는 가히 나의 왜소함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노먼 베쑨의 전기를 읽을 것을 권하게 되었다." p.55



흥미있게도 의사라는 직업군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적용되는 이유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의료인들의 도덕성이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우선 이론적으로 몇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첫째로 본래 천성이 사악하고 이기적인 학생들만 의과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별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성적에 따라 순식간에 자신들의 장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특별한 선별이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본래의 천성은 비슷했으나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과정을 거치는 동안 유별나게 부도독한 인간들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다. 우선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의료윤리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대학이 소수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중략) 하지만 이런 교육과정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윤리에 관한 학점을 안 딴다고 해서 그 집단이 쉽게 비윤리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믿기 어렵기 때문에.

셋째로 소문은 이렇게 나쁘게 났지만 실은 다른 직업 집단과 비교할 때 윤리 수준은 비슷한 정도일 가능성이다. 다만 유독 눈에 띄는 집단이고 또 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후략)" p.70~



대학생때의 해부학수업 모습(p.98)이나 동양철학에서 바라본 의사의 사회적 의무(p.109) 등 이 책의 전반부에는 예비의대생이나 의대지망생이 읽어봄직한 꺼리가 다양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꼭 옳다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자의 사상은 매우 진보적(의미가 모호하지만, 긍정적인 진보!)이기 때문에 의사라는 테두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소수의 입장이 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의사'가 읽는다면 조금 배아플 수도 있는 내용이 많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실제 그렇게 하면 여러모로 손해볼만한 사항이 있으니까.



책 중반에는 한의학에 대하여 '강한 불신'을 표시하면서도 한의학의 가치는 인정하고 또 그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 이후에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린, 일반적인 의문들(예를 들어 AIDS나 암에 대한 일반인들의 걱정, 만성피로감, 빈혈, 심장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책이 나올 당시 유행했던 '죽염'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나 '우황청심환'에 대한 양방적 견해 등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별 거부감이 없는 내용들이 쭉 이어진다.

그러나 인의협이란 곳이 의사의 사회에서는 마이너리티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감동을 받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의사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되고 또 난 인의협과 같은 곳의 성향을 가진 '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한 의사는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의 상황은 저자의 말처럼 더 나아지겠지만. (최근에 인의협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참여한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장에 대한 의료계의 조사를 주장했다는 신문기사는 그런 면에서 반가웠다. 아마 대중매체에 드러난 인의협의 활동으로는 거의 처음 접한 것인듯!)  

옛날부터 '심장이 조금 이상하네?..'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고 또 부대에서 운동을 하다가 눈두덩이 심하게 부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나의 걱정꺼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있었다.(p.206, 218) 나말고도 그런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조금 안도가 되었다. 그런 증상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그 다음으로 책의 후반부는 저자의 개인적인 소사에 대해서 나온 것이다.





현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은 의사(인의협)이며 많은 저작활동을 하는 의사(여름방학때 읽었던 멜빈코너의 책도 그가 번역했다)로 어찌보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의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생각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그가 하는 일 역시 예비의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며 누군가는 앞서서 가이드를 해줘야만 하는 일들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면모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어쨌든 누가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쉽게 쓰여진 책이며 의대생, 특히 예과때 읽어두면 좋을 만한 책이다. 아쉽게도 책이 절판되어 살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대여해 봐야할듯...

"둘째, 좋은 의사(명의)가 되기 위해서는 바른 의학지식과 기술이 절대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환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태도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은 환자가 되어 본 경험이 있거나 의료일선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누구나 알게 되는 점이다. 왜냐하면 같은 의학적 지식도 그것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환자와 그 가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p.76



★목차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인터넷 서점에서 찾을 수 없어 책의 내용에서 조금 발췌를 해봤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주로 병동에서 의사로서 겪었던 잊을 수 없는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의과대학생들에게 전해 주는 이야기들이고, 2부는 한의학이나 전통요법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으며, 3부는 흔한 질병들을 중심으로 건강상식들을 증상이나 질병별로 밝혔으며, 4부는 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체험들을 묶었다." 머리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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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으로 긴 제목과 겉표지에서 드러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이 책을 처음 알게된것은 올해 초, 그러니까 거의 일년 전쯤 신문지상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여름방학때 읽을 책의 리스트에 이름을 넣었었다. 그러나 역시 당시 인기물이였던지 항상 '대출중'이었고 드디어 약 2주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이 책이 반납되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지만 송파도서관의 이 책이 있어야만 하는 서가에 책은 보이지 않았고 사서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 누가 잘못 꽂아놓았나보다'라는 말만 들었었던 것이 지난 여름방학의 막바지였다. 그리고 겨울방학의 시작과 함께 방문했던 그곳에 이 책은 한물간 인기물답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난 의기양양하게 다른 책과 더불어 대출을 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는 이유는, 그러한 기대감과 달리 내용은 썩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제목이 거창했던 것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고 기다리는 동안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부풀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CSI스타일에서 허구를 약간 제한 정도를 기대했던 나의 생각과 달리 이 책은 너무 '객관적'인 것 같았다.

  "방에 들어서서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였다면 방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 간에 무언가를 주고받음으로써 서로를 변화시킨다. 아주 간단한 법칙이다. 어떤 사물이든 '접촉하는 두 개체는 서로의 흔적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로카르의 교환법칙'이라고 하는데 범죄과학의 기초이다. 무엇이 남겨졌고 무엇이 옮겨졌으며 또 무엇이 교환되었는가. 이것을 찾아냄으로써   범죄를 해결할 수도 있다." p.25


물론 추리소설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중간에 아나스타샤나 포카혼타스에 관한 일화, 다이애나 비의 죽음에 관한 일화, OJ 심슨사건에 관한 일화 등이 조금씩 소개된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의 법원시스템인 배심원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나 우리가 잘 모르는 미국에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을 한 것 등은 적어도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책의 구성은 중반까지는 혈액학교, 벌레학교 등 법의학을 하는데 있어서 조금 특이한(?) 분야의 'school'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이 나오는데 서술의 초점은 그러한 모습의 스쿨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들이나 인물묘사에 포인트가 가다보니 정작 흥미로울 수 있는 것들은 제외된 느낌이었다. (저자인 마이클 베이든이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들인 혈액학교, 벌레학교 교장들을 사적으로 칭찬하는 느낌의 에피소드식으로 다루어졌다는 의미)

후반부에도 비슷하게 진행되고 중간 중간에 자신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등을 표현하고 또 자신이 생각하는 그 분야의 뛰어난 사람(헨리 리)과 형편없는 사람(프레드 자인)에 대한 생각도 말한다. 사체재발굴과 그에 따른 뒤바뀐 판결들 등..은 막상 이런 요약된 말만 들으면 마치 본문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책에는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중 하나인 '법의학자는 무슨 일을 하는거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도 제시되어 있었다.

  "법의병리학자가 다루는 문제는 죽음을 야기한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누가 그렇게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결정하는 일은 나의 임무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과 검찰의 일이고 궁극적으로는 배심원이 가려낼 문제이다. 내가 판단하는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하는 것이지 '누가 하였는가' 하는 것은 아니다." p.78

또 저자가 생각하는 법의학자가 검시에 앞서 가질 마음자세도 나와있다.

  "매번 검시때마다 나는 사람마다 각자 서로 다른 삶을 반영한 듯 장기도 다르다는 것과 내가 지금 영혼의 거소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엄청나게 의식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칠 때마다 나는 항상 이 사람에게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는 검시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누구든 유일무이한 삶을 살아가고 검시결과는 이러한 유일무이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법의 병리학자로서 나는 졸지에 이 사람의 몸을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살펴보고 검사할 허락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 된 것이다.(중략) 오늘 검시대에 올라온 이 사람도 어쨌거나 이러한 처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누군가 그를 살해했기 때문에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p.136~137




개인적으로 이 책을 너무 기대했었던지 읽는 내내 실망을 했다. 법의학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만 하겠지만 TV를 보거나 추리소설 등을 읽고서 그것이 궁금해진 사람이 읽기에는 '흥미'도가 많이 떨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책의 제목이나 목차에 있는 말들 자체가 너무 자극적(토크쇼, 실존하는 '셜록 홈스', 쓰레기 과학...)이어서 내가 그것들에 혹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CSI의 그 흑인 법의학자가 TV 카메라를 치우고 자신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아마 이 책의 내용처럼 말해주지는 않을까 싶다. 사실 법의학은 살인범죄와 관련된 매우 무거운 내용이다. 생각해보니 그러한 법의학을 가볍게 다룬다면 그것 역시 읽는 내내 부담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저자 역시 다음같은 말로 예비 법의학자들에게 조용히 충고한다.


  "동기야 어쨌든 나쁜 법과학이 행해지면 정의는 상처를 입는다. 누군가는 죄(아마도 살인)를 저지르고도 빠져나가는가 하면 무고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저지른 죄값을 치르기도 한다." p.315






<목차>

서문 - 공개되지 않은 장소로의 초대

1. 죽은자와 대화를 나누는 법
2. 피의 흔적을 찾아서
3. 감정증언
4. 죽은자의 내부를 들여다보다
5. 실존하는 '셜록 홈스' 헨리 리
6. O.J. 심슨 사건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
7. 살인사건 속의 벌레들
8. 진실은 무덤 속에 있다
9. 인간의 머리, 그 불가사의
10. 쓰레기 과학이 남긴 것
11. 리노에서 만난 사람들

추천사 - 법과 의학을 잇는 과학의 다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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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V_예과 1학년생 겨울방학을 맞다

Posted 2008. 8. 21. 02:19, Filed under: Hobbies/Books

 

1. 영어공부 - 회화+토익+단어
2. 동아리 활동
3. 순수공부 - 중국어와 수화
4. 독서
5. 사랑♡
6. 운동
7. 체계화와 정리

믿음.


Book List

1. 의학사의 이단자들
2. 성산 장기려
3. 역사를 바꾼 3명의 별난 환자들
4.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5. 생명의 신비 호르몬
6. 브레인 스토리

비판적 시각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회란 언제나 발전 중인, 즉 계속 나아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둘러보는 이 사회는 결코 파라다이스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란 것은 '인간'과 '우주' 못지 않게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까 존재하며 각각의 이기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 비판적으로 사태, 관계, 그리고 내 자신을 둘러볼 필요가 잇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발설할 이유는 없다. 정말 그래야 하는 이유가 적어도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지만 희노애락의 순간에도 항상 마음 한구석에 사태를 냉철하게 볼수 있는 중도의 마음을 견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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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때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 초빙강사로 오셨던 분께서 학생들에게 물으셨다.

“물론 의사로서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만약에 ‘머리’와 ‘가슴’중에서 꼭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고르겠습니까?”

나뿐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쉽게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니 의사로서 알아야 할 지식이 부족하다면 그 의사는 자격미달이며, 어떤 면에서 환자에게 매우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 구체적으로 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은 의사로서의 지식을 다 쌓은 후에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에 난 가슴보다는 머리가 더 우선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는 자신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해봤었는데 지금 개인적인 소신으론 인간애가 조금 더 중요한 것 같다고 하셨다.



굳이 예과 때의 수업시간 뿐이 아니라 의사의 사회적 의무에 관한 내용은 종종 매스컴의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의사의 지위와 권리는 사회지도층이란 범주에 속해 있으며, 상대적으로 언론과 대중은 의사의 ‘의무’에 관심이 더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흔히 말하는 ‘의사의 의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먼저 의사 본연의 일인 의료행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의사가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면, 의료행위 역시 다양한 직업군 중에 속하는 하나의 기술에 불과할 것이다. 즉 의사에게는 그와 더불어 부과되는 사회적 책무가 있는데 간단히 말해 ‘인술’을 펼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의료행위와 인술의 차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의료행위에 있어서의 그것이 인술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그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봐야한다. 예를 들어 현대 의학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 유수의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고통을 받고 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전염병에 시달리고 힘겹게 살고 있는 것은 국가나 사회의 정치나 제도와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고 국력에 의해 좌우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만큼 공공의료 분야란 어느 한 단면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란 것이다. 그렇지만 책의 주인공인 파머는 이런 생각에 직격탄을 날린다.

“나는 구매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돈을 대가로 내 의술을 팔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든지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모순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 모순을 느껴야 합니다, 콤마.” p.47

“희생, 양심의 가책, 동정심에 대해서 난 할 말이 많아요. 사람에게 이런 마음이 없으면 바퀴벌레와 다를 게 뭐겠습니까?” p.75


 
파머는 1959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외향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아버지와 조용하지만 엄격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파머는 어릴 적부터 가난한 생활을 하며 인간적인 사상을 기른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했던 그는 대학에서 결정적으로 인간의 차별과 평등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기르게 되고, 의학과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더 적극적인 ‘사회적 의사’로 성장해 간다. 특히 대학시절부터 아프리카의 기아와 질병에 관심이 많아 자원봉사 활동 및 기금모음 활동 등을 활발히 하던 파머는 아이티와 인연을 맺게 되는데 특히 레오가네에서 본 임신한 말라리아 환자의 최후는 그에게는 공중 보건에 대한 사고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 밤 한 젊은 여인이 병원에 찾아왔다. 임신 중이었고 말라리아 증세가 심했다. 파머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중략) 수혈이 필요했습니다. 병원에는 혈액이 없었기 때문에 보호자인 언니에게 포르토프랭스로 가서 혈액을 구해오라고 했어요.(중략) ‘이건 너무해요. 가난하면 수혈도 받을 수 없다니. 우리 모두 인간인데...’ 그녀가 울부짖으면서 내뱉은 뚜 문 세 문이라는 말은 그가 그날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졌다. 미국인이라는 것만으로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인가?” p.139

결국 파머는 공식적으로 PIH(Partners in Health)라는 단체를 만들어 더 적극적인 의료봉사 활동 및 기금모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아이티 뿐 아니라 페루, 러시아 등 더 많은 곳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물론 파머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의료행위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 그처럼 구체적으로, 또 광범위하게 그런 문제에 뛰어드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WHO를 포함한 국제기구가 있었지만 실제 제3세계가 받는 혜택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던 시절이었다. 또 외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군부 쿠데타로 인해 아이티 입국이 금지된 90년 초부터 3년간 파머는 사회운동가로서 아이티와 아프리카 제3세계의 질병과 기아에 대해 많은 연설을 한다. 군부독재 아래 무너진 아이티의 국민보건을 위해 필요한 것이 꼭 직접적인 의료행위만이 아니란 것을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다행히 파머에겐 하고자하는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으며 필연적으로 많은 동료나 스폰서 등 조력자들이 나타난다. 아이티의 캉주에서 처음으로 학교를 세운 라퐁탕 신부와 마미토 여사, 하버드의대의 하이어트교수, 스폰서가 되어준 사업가 와이어트, 아이티의 대통령까지 올라간 사회지도자 아리스티드 신부까지 많은 사람들이 파머의 활동에 많은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파머에게 그러한 일들이 모두 우연하게 일어난 것은 아니란 점이다. 그가 그렇게 하기까지 한 헌신적인 노력과 실천이 모두 그러한 일들의 시발점이란 사실은 명확하다.

“이듬해 초에 하버드 의과대학 출판사는 파머의 글 ‘내 안의 인류학자’를 자체 출판물에 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빵 나누기 프로젝트의 대표가 파머에게 연락해왔다. 익명을 요구하던 기부자가 파머의 글을 읽고,”이 녀석 좀 만나보고 싶은데. 멋진 놈 같아.“ 했다는 것이었다.” p.158



사실 지금까지 노먼 베쑨이나 슈바이처박사 등의 자서전 등을 읽어봤지만 파머처럼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실제 질병, 특히 전염병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실제적인 활동이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 굼뜬 성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파머의 접근법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목을 끌기에는 더욱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 일군 가치도 매우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이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폴 파머의 업적을 더 빛나게 해주는 같다.

우리나라도 빈부 격차와 그에 따른 부수적인 갈등이 많으며 제3세계의 나라들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의료서비스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의료행위는 여러 가지 서비스 중에서도 고비용의 서비스에 포함되며 항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미국처럼 기부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욱더 스폰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가 ‘낮은’ 곳에서 봉사를 하고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병을 다룰 때는 더욱 비용문제가 절실해 진다. 카라바이요에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자 환자들의 약에 대한 내성이 크게 올라가 후속 조치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높은’곳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파머가 WHO나 기타 여러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아이티를 비롯한 제3세계의 보건환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이끌어 낸 것은, 후에 많은 기부자가 나타나고 여러 가지 대처방안이 수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보건복지부나 국회위원 등 정치권이나 공무원에 의사출신 인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청신호 위원회를 만들어 경우에 따라 약값을 유동적으로 하려했던 노력 또한 필요하다.    

또한 문화적인 관점에서 환자를 대할 때도 고려할 점은 많다. 물론 자신의 모국과 많이 다른 곳을 찾은 파머의 경우처럼 큰 문화적 차이가 있지는 않겠지만, 실제 병원에 자발적으로 찾아온 환자와 병원에 올 여력이 못되는 환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것이 환자를 대하는 의사로서의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환자에게나 치료와 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만 후속적인 관리에 있어서 여러 가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부분 역시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공적 부조 같은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 돌아가는 혜택이나 그 대상에 있어서 허점이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제도권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며, 보건 의료와 관련해서도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비의료인 의대생도 그 범주에 포함됨은 당연하다.



매스컴에서 본 의사의 단면 중 하나는 그들이 현실적 지위와 권리만을 생각하며 사회적 의무를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그와 관련하여 나는 의사가 되기 위해선 앞에서 언급한 머리 뿐 아니라 가슴까지 가져야 하며, 의대생이 되었다면 기본적으로 그런 마음을 의무적이나마 조금이라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대한 환원의식과 봉사정신은 사람마다 가진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무엇이 정답이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미래에 우리의 직업이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가 봐야할 것은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지 비용을 지불 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아니란 점이다.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개인의 삶을 포기하기까지 한 것처럼 보이는 파머처럼 의사로서의 삶을 살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자칫 파머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라고 믿게 될까 걱정하는 의미였고, 실제로 짐이 우려했던 오류에 빠진 자원봉사자가 많았다. 그러나 짐은 PIH의 일을 함으로써 개선하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빈민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파머 자신도 ”개인의 효용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게다가 파머의 삶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폴 파머라는 인물로부터 얻어야 할 것은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도 반드시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산 증거이지 내 인생을 바르게 살기 위한 지침이 아니다.” p.392

냉전 시대가 종식된 후 이념경쟁에서 승리한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사회복지 사상이 조금 희석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에서 체제이념의 우월성으로 주장하던 ‘온 국민의 평등’이란 곧 누군가는 더 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제 그러한 주장을 펴는 나라는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개념이 약해지며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공동체, 즉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에 있다. 예부터 내려온 지역 모임에 대한 소속감이나 이웃 간의 화목함은 사라지고 있다. 각박한 현실과 경제의 행정시스템에 묻혀 우리는 단지 소비하고 있을 뿐이지 누군가 언젠간 치러야할 번영의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GDP는 늘어나면서도 사회건강지수는 오히려 감소하고 아동학대와 청년실업은 증가하는 부작용은 사회의 부조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다행히 최근에는 북유럽 쪽을 중심으로 사회복지 제도를 강화한 나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기본적인 자본주의 제도아래 사회로부터 좀 더 많은 이익을 얻은 사람에게 그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양도 더 요구한다는 것이 그들 나라들의 취지이다.

방법론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많지만 그것이 항상 용이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비용이 들며 의료행위의 경우처럼 상대적으로 고비용이 들어가는 분야도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사회적 봉사란 강요에 의해서 누군가에게 부과될 수는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그것에 대한 제도적 관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머가 주장하듯 사회란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공동체이며,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만을 가지거나 회의 상에서 공염불만 외친다고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바뀔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부문화가 잘 발달되지 못했는데 그런 것 역시 차츰 바꿔나가야만 한다. 기부란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란 측면에서 볼 수도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입장에선 의사가 된다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가지고 있는 의료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현장에서 직접 봉사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자신이 사회로부터 얻은 소득의 일부를 기부 등의 형식으로 그곳에 다시 돌려줄 수도 있다. 물론 둘 다 모두 가치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방식이 의사로서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재정적인 기부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지만 의료행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어떤 대단한 방법으로의 사회적 봉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개인의 가치관에 달린 문제이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대에 다니는 지금부터라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많은 가치들, 예를 들면 사회적 지위나 명예, 부 등을 획득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했을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공중보건에 관련한 문제들이 단순히 감정에만 호소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사회적인 제도의 보완과 의무 부과라는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가진 생각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고 있는 폴 파머란 인물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나와 정말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구나.’란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 역시 파머처럼 살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파머를 마음속에 새겨두고 내가 나중에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실천방안에 대하여 고민하며 사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다.



“아뇨, 아뇨, 불평하는 게 아니에요. 아시겠지만 우리와 같은 배경에서 온 사람들은요- 선생님처럼, 대부분의 PIH 일꾼들처럼 그리고 저처럼요- 우리는 승자의 팀에 속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PIH에서 하려고 하는 일은 바로 패배자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거죠. 우리 모두는 이기는 편에 서고 싶어 해요. 하지만 패배하는 이들에게 등을 돌려야만 이길 수 있다면 그런 승리는 쟁취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나긴 패배와 싸우는 겁니다.” p.462




<목차>

옮긴이의 말 -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줄 현대의 슈바이처

1. 폴 선생님
2. 캉주의 양철지붕
3. 모험을 즐기는 의사들
4. 한 달 동안의 가벼운 여행
5.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선택

뒷이야기
도와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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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들어온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나에게는 여느 해와 다름없는 그냥 현실을 즐기고 또 주어진 역할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새로운 날들이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나를 인식하는 모습에 있어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의 진로에 관한 이야기가 구체화되어 무슨 과를 전공하고 싶으냐는 앞서 나가는 질문에서부터 시체를 진짜 보았느냐는 사촌 꼬마동생들의 말까지 다양한 질문이 단지 내가 ‘의과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추가되었다. 그 중 최근 결혼을 한 친척 형에게서 들은 농담이 가장 기억이 난다.

“우리 부장님께서 그러시는데 나중에 큰 문제가 있거나 그러면 꼭 의사랑 상담하란다. 의사들은 똑똑하고 판단이 정확해서 그러면 적어도 손해볼일은 없다고..”

새롭게 맺은 인간관계 역시 낯설지만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치대와 함께 하는 고등학교 동문회나, 다른 의대 농구동아리와의 정기시합 등 의대 내의 활동에는 어떤 특정한 선이 그어져 있고 그 위에서 제반 행동이 이뤄지고 있다. 단지 의대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수능시험에서 악착같이 그 선을 넘어섰다는 결과만으로 많은 보상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많은 고민들과 콤플렉스 등은 오히려 이 사회에 소속된 순간부터 더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예과생이라 학업적인 면에서의 부담은 없지만, 그 외에 인간관계나 주위 환경에 대한 고민들이 있다. 내가 의대생이기 더욱 명확해지는 그런 몇몇 사항들과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 이번에 읽은 책에 소개되어 있었다.



1. 의대생이라는 사회적 인식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모두 미국의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우리처럼 의대란 특별한 곳임에는 다름이 없었다.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의대란 곳은 주위 사람들의 인식을 180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대생이 되는 순간부터 주위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입학승인이 떨어졌다. 그리고 막상 메디컬스쿨에 들어가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 같은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적어도 서로에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외부에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만이 메디컬스쿨의 학생이 되고 미래의 의사자격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비범한 과학적 자질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 고향 사람들은 어떻게 메디컬스쿨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매우 궁금해 했다.” p.105

한 ‘가문의 영광’이란 법조계와 의료계에 한명정도씩 친척을 두는 것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사회 지도층의 핵심부에 위치하기 때문일까 의사란 직업은 추앙받는 전문직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 의사가 되기까지 섭렵하는 전문 지식의 양과 사회와 소통하는 병원이라는 창구가 일반인들에게 ‘의사’에 대한 존경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렇지만 마냥 만족해 할 수 만은 없다. 그만큼 대중이 바라는 의사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언행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의사 역시 준 공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의대생의 입장에서 이런 견지를 갖기란 쉽지 않다. 의대생이란 의사와 의사 아닌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의대생은 일반인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와 같다. 본문에는 학부과정에서 배웠던 사회적 가치와 너무 상이한 ‘의학’이란 학문과 ‘의대에서의 삶’에서 그 안에 파묻히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 고민하는 학생들도 등장한다.

“의학계에 투신하는 사람들은 뭔가 이산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나는 여기에 쉽게 소속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 것을 사회적 소외감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의학이 제공하는 것에 내가 충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현재 의학도의 길을 걷고 있다. 검은 반점, 구불구불한 핵, 기타 빌어먹을 해부학 지식을 주입하는 것 이외에 나를 애초에 메디컬스쿨에 지원하게 만든 읽고, 쓰고, 토론하는 학구적인 동기들은 과연 충족될 수 없는 것일까?” p. 125

하물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의대에 온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주입식 교육에서 국영수 위주의 공부를 해온 학생들에게 대학 신입생의 1~2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사회가 바라는 의사상과 내가 가진 모습에 아직 큰 차이가 있음을 느끼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학문의 양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에 내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의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어떤 의사가 될 것이냐에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들처럼 점차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 봐야만 할 것이다.




2. 문화적 다양성과 대체의학

예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인도의 한 사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인도 외곽의 유명한 사원은 ‘치유사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그 안에서는 명상과 식이요법을 통해서 병을 고친다고 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부제는 ‘대체의학’이었었다. 대체(alternative)란 중심에 비해 부수적이고 부속적인 것을 의미한다. 서양의학이 의료의 주류인 상황에서 기타 ‘비서구’적인 것들은 대체의학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한의학이나 침구술, 카이로프락틱, 선, 향기요법 등이 있으며 그들 중 몇몇은 어떤 경우에 실제 효능이 있다고 여겨진다. 인도 출신의 한 저자 역시 고국의 전통요법을 매우 신뢰하며 그가 배우고 있는 서양의학과의 조화를 꾀한다.

“나는 대증요법 중심의 서양의학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으며, 서양의학으로 모든 환자를 다 치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나는 대체의학, 특히 아유르베다에 흥미를 느껴왔다. 관련서적과 워크샵을 통해 지식을 쌓아 갈수록 대증요법인 서양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서 아유르베다가 많은 효용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p.183

나는 대체 의학이 서양의학보다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꼭 효과가 없다고 보지도 않는다. 특히 내가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대체의학은 침구술인데, 나 역시 발목이나 손목을 삐면 종종 침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그것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서양의학 쪽에서 그 작용 기전을 밝혀 의료 기술의 한 부분으로 체계화 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몇 년 전부터 미국 의료계를 중심으로 서구사회에서도 침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란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치료 과정이 어떤 문화에 속한 것이라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과정이 모두 치유의 과정에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 의료 방식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서구 의학이 가진 한계나 잘못된 대응 방식이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더 크게는 그런 전통적인 방식과의 조화에서 환자에게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차 나는 아유르베다와 서양의학을 통합해서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아유르베다와 서양의학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인간의 건강 증진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가지 의학 시스템으로 쉽게 치료되지 않는 병이 놀랍게도 다른 의학치료로는 쉽게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보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접근법은 강력한 조합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 두 의학 시스템에서 좋은 요소를 골라내 잘 조합시킨다면 치료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통합적인 접근은 인도계 미국인이란 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서로 다르지만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 두 가지 측면을 잘 조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p.193




3. 의대 내에서의 개인적인 삶

의대란 곳에 와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은 참 다양했다. 출신지, 가족사항, 취미, 외모, 집안내력 등 그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양했지만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친해질수록 그 안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과의 특성상 오랜 기간 동안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본문에서는 개인적 콤플렉스(알콜 중독, 게이, 레즈비언, 비만, 강박장애 등)나 사회적 차별(인종, 여성, 종교 등)이란 부제로 차별당하는 많은 의대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수업 중에 교수님이 미국 인구의 약 2%가 강박장애OCD를 겪고 있다고 말씀하시자 교실은 금세 술렁거렸다. 학생들은 저마다 그러한 통계치의 의미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학생이 나에게 몸을 기울이며 이렇게 속삭였다. ”2%나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돼! 2%라면 우리 학급에서만도 4명이 그렇다는 뜻이잖아? 분명 잘못된 수치일 거야.“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4명 중 하나라는 사실을 그 친구가 알고 있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p.85

“지금껏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 나를 따라다니는 난민이란 이미지와 낙인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난민이란 말은 내가 동료들과 다르다는 점을 각인시켰고 내가 진짜 ‘미국인’이 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는 듯했다. 미국의 주류 문화에서 배척당하고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을 들게 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결점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굵은 매직으로 사진 설명 중의 ‘난민’이란 단어를 덧칠해서 지워버렸다. 나는 겹겹이 잉크 칠이라도 해서 비미국인이란 나의 정체성을 숨기고 싶었다.” p.39

"하지만 영어를 읽고 배운다고 해서 내 자신이 완전하게 백인들과 동화될 수는 없었다. 나는 미국 사회에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스페인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미국 사회 주류의 일원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이민자들을 놀리는 백인 아이들과 같은 편에 서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어떻게 발음 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마샤’라고 대답했고 내 형제들도 모두 비슷하게 행동했다. 우리들은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항상 영어로만 이야기했고 모두 백인 아이들처럼 옷을 입었으며 라틴계 출신임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p.72




사실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우리나라의 의대에서는 흔하지 않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인종차별 등)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어떤 의대생도 자기가 속한 이곳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 가진 정체성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 개인이 살아온 환경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든 것이며, 의대란 사회는 그러한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그냥 포기하거나 바꾸는 것이 아닌 조화롭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자기의 주체성과 개성을 상실한 오직 ‘병’에만 유능한 기술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긴 학업의 과정 중에서 비교적 시간에 여유가 있는 예과생 때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바로 이점이라 생각한다. 의사가 가진 이상적인 위상에 부합하려면 실력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의 인격 수양 및 가치관 확립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기본 테마는 미국 사회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후기에 나온 미국 의과대학의 커리큘럼 변화에 대한 조언처럼 이 책은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말은 곧 현실적으로 상황이 많이 다른 우리나라 의대생이 읽기에는 쉽사리 공감이 안가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의 저자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의대 입학의 기회조차 차단해 버리는 모습이 많다. 아마 수험생이던 작년에 이 책을 읽었었다면 더욱 공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의대에 다니고 있다. 그랬더니 이 책의 내용은 그 동안 내가 회피하고 있었던 고민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고민들을 여과 없이 보여 주었다.

“..나는 메디컬스쿨에 와서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변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디컬스쿨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하고 생각의 차이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메디컬스쿨에 다니면서 그토록 외롭고 고독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진정 내가 좋아하는 길일까? 나는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가? 과연 내가 원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애초에 의학계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이러한 질문들은 더욱더 다원화되어 있으며 주변의 권위주의적인 환경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 신세대 의학도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p.102

그러한 많은 내용을 통해 내가 받을 차별과 내가 가진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환자를 대할 때는 의사로서의 실력 못지않게 인간적인 배려와 뜨거운 가슴 또한 가져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떳떳하게 밝히며 의대생으로서 그들이 겪은 애로사항과 대처 방안을 담담히 서술한 저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번 독서는 의대생이자 예비 의료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목차>

1. Life and Family Histories 나의 가족, 그리고 의사의 길
의사는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흑인 미혼모 멜라니의 이야기
의학 안에서 나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 베트남 보트피플 에디의 이야기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비록 동성애일지라도... / 게이 청년 닉의 메디컬스쿨 도전기
나의 치료가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 홀로코스트의 가족사를 가진 폴의 고백
소수를 외면하지 않는 진정한 의사이기를 / 불법 이민자, 멕시코인 마르시아의 이야기
당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의사 / 강박장애를 앓는 헤더의 이야기

2. Shifting Identities 정체성이 변한다
의사도 평범한 사람이다 / 의사로 변신한 시골 아줌마 트레사의 이야기
내면의 가운, 히잡 / 이슬람인 누쉰의 이야기
의료계를 향한 버릴 수 없는 희망 / 항상 문제의식을 갖는 카렌의 이야기
내 삶의 비밀 / 알코올 중독자였던 어느 학생의 이야기
하나를 위한 수천 가지 선택의 포기 / 현모양처의 꿈을 키워온 한국 여성 유미의 이야기
메디컬스쿨! 포기할지, 말지... / 고단한 메디컬스쿨 생활을 하는 케빈의 이야기
가끔씩은 그저 웃을 수 밖에 / 레즈비언 레이니의 재미있는 이야기
어느 의대생의 기도 / 소심한 기독교인 애니타의 이야기
의학, 새로운 시각으로 보다 / 아유르베다를 경험한 아킬레쉬의 이야기

3. Confronted 현실에 맞서다!
호카 헤이 / 인디언 로버트의 고백
삶의 여정에서 만난 '의사'라는 이름 / 여러 가지 장애를 앓고 있는 데이비드의 이야기
어느 여학생의 케이스 프리젠테이션 / 성적 차별을 경험하는 실습생 티샤의 이야기
비뇨기과 블루스 / 인종적 차별을 경험하는 흑인 우고의 이야기
뚱뚱한 사람은 열등하다는 편견을 버려! / 비만 때문에 조롱당하는 케이의 이야기
그런 몸으로 감히 의사를? / 선천적 장애를 앓고 있는 시몬의 이야기
따뜻한 가슴과 상이하는 의사가 되기를 / 어느 여대생의 졸업사

AFTERWORD 메디컬스쿨의 변화를 위한 제안
번역을 마치며 마법의 지팡이도 도깨비 방망이도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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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방학 때 ‘헬로우 블랙잭’이란 만화를 보았다. 일본의 의과대학과 병원실습을 도는 인턴의 생활을 그린 이 만화를 보며 흥미위주이긴 해도 일본 의료시장의 시스템, 의사의 자존심과 일본식 문화의 조합된 모습 등 일본 의료계 특유의 장면을 보기도 했다. 연간 몇 차례씩 열리는 같은 대학 동문끼리의 온천파티나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사무라이들처럼 선후배간의 사적인 관계에서까지도 위계질서를 지키는 모습 등은 내가 ‘먼나라 이웃나라’ 등에서 봐왔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였다.


올해 초 외국계 병원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Spa(스파)라는 온천을 뜻하는 단어가 병원 이름에 들어간 경우가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흔히 메디컬 스파는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 대체의학의 개념이지만 최근 선보이고 있는 전문 메디컬 스파는 질병의 주원인인 스트레스와 과로를 치료하고 노화를 방지하도록 하는 치료의 한 방법을 의미한다고 한다. 단순한 휴식이나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스파의 차원을 넘어 보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관리를 통해 건강한 신체를 가꾸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 이곳에서의 의사의 역할은 메디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뿐 아니라, 고객의 건강에 대한 전문가적 조언을 줄 수 있는 헬스 플래너의 역할도 함으로써 보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한다. 예를 들어 그랜드 힐튼호텔에 개장한 라끄리닉 드 파리 그랜드 힐튼 센터는 유명한 노화센터 라끄리닉 드 파리의 분점이다. 그곳은 다양한 노화 측정검사 결과를 토대로 데이터에 의한 처방을 시행하며 더불어 물리적인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스파와 함께 건강 치료를 도모한다고 광고한다. 당시에는 그냥 병원에 흔히 있는 물리치료실처럼 스파 역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린 페이어가 쓴 '의학 과학인가 문화인가'를 보니 이미 서유럽과 북유럽쪽을 중심으로 온천요법이 의료 행위의 하나로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침구술이라 하여 아직 주류에 끼지 못하고 대체의학이라 불리는 한의를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의료행위의 한 측면으로 인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재 침술의 과학적인 측면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여러 나라를 볼 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도 '참살이'란 시조에 부합한 새로운 방식의 의료 체계가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런 새로운 방식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거기에는 매우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문화'라는 한 코드가 그러한 곳에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전 TV광고 중에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란 것을 광고하는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배워온 당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서양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도 정당하게 이용요금을 지불했으며 좌석에 대한 권리가 있는데 왜 그것을 굳이 나이가 더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내드려야‘ 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효(孝)의 개념을 설명을 해도 수긍을 잘 못하는 그 미국인을 보며 우리와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결국 그는 그러한 상황을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렇듯 한 개인이 속한 집단의 문화규범은 그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는 최첨단 과학의 선봉에 선 의학 분야에서조차 그것은 명확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1. 프랑스 - 생각하는 의학

저자는 프랑스의 경우 데카르트식 접근법에 의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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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V_한탄강의 기적(시공사)

Posted 2008. 8. 21. 02:14, Filed under: Hobbies/Books



신문에서 WHO의 한국인 최초 사무총장인 이종욱박사의 기사를 본 것이 작년이었던 것 같다. 한창 늦게 시작한 의대입시에 열을 올릴 무렵 신문지상으로 봤던 그의 업적은 정말 부러운 것이었다. 물론 국제기구의 장급이란 명예와 지위가 부러웠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고수하여 성공한 ‘인간승리’의 모습이 더 부러웠다. 무엇보다 그는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의학과 관련된 책들을 찾다가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호왕 박사라는 이름은 처음 봤지만 ‘한탄바이러스‘란 말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어서인지 이 책을 대출했다. 새로운 바이러스나 희귀생물체의 경우 최초발견자의 의견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여기서 한탄바이러스는 휴전선 부근을 흐르는 한탄강으로부터 왔다는, 정말 ’도전 퀴즈가 좋다’에나 나올법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처음부터 아주 재미있게 시작된다. 바로 세균전에 관한 언급인 것이다.

“내가 그 동안 세계의의학 및 미생물학계의 숙제였던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세균전’이라는 섬뜩한 용어가 내 주위에 망령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이 괴질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백신 개발에 몰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세균전의 사례 및 그 가능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망령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중략) 내가 이 책을 통해 단순한 학술적 보고서와 달리 세균전의 진상과 각국의 태도, 그리고 한탄바이러스 연구를 위한 모든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려고 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p.14

내가 군복무를 한 곳도 화학부대였기 때문인지 세균전이란 소재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 눈에 잘 들어왔다. 책의 초반은 거의 유행성출혈열의 정의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세균전 혹은 세균전으로 의심되는 일들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마루타를 통한 인체실험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731부대(이시이부대)에 대한 사료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이 또 이 원숭이를 해부하여 혈액과 간장, 그리고 비장의 부유액을 다른 원숭이에 주사하고 발병한 원숭이의 간장, 비장, 신장의 부유액을 세균여과기에 통과시킨 후 그 여과액을 원숭이에 7회에 걸쳐 주사한 결과 2회는 실패하고 5회는 성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중략) 그렇다면 그의 논문에 사용된 것만 계산해도 36마리가 희생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6.25사변중 미군이 한국에서 유행성출혈열을 연구했을 때 환자 쟤료를 어떠한 종류의 원숭이에 주사해도 병에 걸린 원숭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는 점이다. 미국 학자들은 일본 학자들의 논문을 읽고, 필리핀과 아프리카에서 여러 종류의 원숭이를 한국에 가지고 와 출혈열 환자의 혈액과 각종 장기와 등줄쥐의 혈액과 장기 부유액을 주사했지만, 일본 학자들이 보고한 것과 같이 발병한 원숭이는 한 마리도 증명하지 못했다. (중략) 다시 말해 일본 학자들이 보고한 원숭이 실험성적은 잘못된 것이거나 거짓이었던 것이다. 1995년 일본 작가 츠네이시가 쓴 [731부대]에도 1947년 기타노 일본군 731부대장이 도쿄에서 미군 조사관에게 유행성출혈열의 인체실험으로 희생된 사람은 101명이라고 진술하였다고 한다.” p.49~52  

어쨌든 마루타부대 뿐 아니라 소련에서의 인체 실험, 미육군에 의한 방대한 규모의 실험, 심지어는 한국전에서의 세균전 가능성까지 흥미꺼리의 뒤엔 기초의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저자가 가진 열정과 의욕, 애국심이 잘 드러난다. 사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가 가진 과학자 기질과 더불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각별했음에 있다. 그가 공부했던 70~80년대만 하더라도 박정희를 위시한 군사정권과 비민주적인 국내사정, 그리고 냉전시대가 줄곧 계속되던 험난한 시기였으며 특히 공부를 하고 싶어도 자금이 모자라 쉽사리 시작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였다. 그때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노력으로(저자는 운이 좋았음을 인정하지만) 미국의 자금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했고 또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만 끝까지 서구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국적을 지키며 젊은 독자들에게 애국심을 가르쳐준다.

“...강연 후 깁스 박사는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나에게 미국 국립보건원의 원로연구관으로 초청할 테니 자기 연구실에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내가 그의 연구실에서 출혈열 연구를 계속한다면 모든 지원은 물론이고 최고의 연봉까지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내가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연구를 하게 되면 좋은 시설과 무한한 연구비 지원으로 연구가 급진전될 것은 틀림없으나 한국에서 이룩한 우리 연구업적이 모두 미국의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 동안 한국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이루어낸 연구업적이 하루아침에 미국의 연구업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나의 애국심은 그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약삭빠르고 비겁한 행동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p.135

어쨌든 책 대부분은 그가 연구를 한 모든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그는 집필하기 10여년 전에 이미 여러 가지 내용을 녹음해서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노력파이고 또 집요하게 한 연구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환자 혈청 10개와 정상인 혈청 10개를 혼합하고 아무도 모르게 번호를 붙인 다음 이평우조교에게 주고 환자 혈청을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는지 알아봤다. 그는 정확하게 환자 혈청을 찾아냈다. 이런 방법을 맹검이라 한다. 이런 실험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환자 혈청만을 고를 수 있는 정확한 진단방법을 처음으로 표준화하는 데 성공했다. 나와 이평우는 이런 실험을 3개월간 말없이 반복하였다. 너무나 엄청난 발견이기 때문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한 것이다. 부푼 가슴에 나는 매일 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도 자지 못했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여 잘못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 나의 과학자로서의 생명은 끝나기 때문이었다.” p.111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공평하게 누구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그러나 노력하고 준비한 사람만이 그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들쥐의 폐장은 출혈열을 연구한 모든 과학자들이 조사도 하지 않고 버리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보내준 책을 읽고, 우리가 검사하는 들쥐의 장기 중에서 폐장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처음으로 폐장을 검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연히 날아온 한 권의 책이 나에게 행운의 여신을 만나게 해준 것이다.” p.112

그렇지만 그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상황과 아직 저개발 국가였던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의 자부심과 애국심에게 실망만을 안긴다. 하긴 그 당시가 전두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조금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1977년 봄, 내가 미국 NIH에서 한탄바이러스 발견에 대한 강연을 마쳤을 때 그들은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줄 테니 미국에서 일하자고 제의했으나 나는 조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제의를 거절했다. 일생을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학자를 체육대회에서 상을 받은 체육인보다 못하게 대우를 하는 우리의 풍토가 너무나 안타깝고 부끄럽다. 연구업적은 역사에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과학자는 그것만으로도 족하지만 학자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려는 풍토는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개선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21세기에도 살아남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44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한탄바이러스를 찾기까지의 과정은 쥐와의 전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심지어 연구소 직원 12명 중 10명이 크고 작은 출혈열에 걸리는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생물 실험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접근하지 말라고 그런 곳은 안가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6장부터는 ‘서울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를 발견한 일화가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을 수 있는 그런 두 번의 기회를 그는 그대로 날려 버린 것이다.

“나는 다림플 박사와 상의한 끝에 이 새로운 바이러스의 이름을 서울 시내의 집쥐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서울바이러스’로 하고 1985년 2월, 미국 아보바이러스 카탈로그에 이 이름을 정식으로 등록했다. 내가 이 바이러스를 서울 바이러스로 명명한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처음 발견한 바이러스의 이름을 ‘한탄바이러스’라고 붙였을 때, 많은 국내외의 학자들과 학생들은 이 바이러스가 한국의 한탄강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바이러스를 대한민국 서울에서 발견하였다는 사실을 첫 눈에 알 수 있게 하려고 한 것이다.” p.199  

그리고 7장부터는 한탄바이러스 백신인 ‘한타박스’개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0년 우리나라 신약개발 1호인 한타박스를 만들기 위해 제약회사와 계약을 맺고 실험을 한 과정 등이 상세하게 나온다. 실제 당시 돈으로 얼마 얼마가 오갔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 정말 기록으로 남겨둠직한 객관적인 자료를 모두 알려준다. 물론 한타박스 역시 크게 성공했다.

“한타박스는 1992년부터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한타박스가 얼마나 우리 국민의 보건 향상에 이바지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방백신이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4년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약 1천2백명 이상의 유행성 출혈열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1995년부터, 다시 말하면 예방백신이 보급된 3년 후부터 출혈열 환자가 현저하게 감소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는 752명, 1996년에는 662명, 1997년에는 3백여명으로 감소했으며 사망자도 크게 줄었다. 특히 매년 1백여명의 환자가 발생하던 한국군에서는 1994년에 처음으로 예방백신을 군인에게 주사하고 그 후 환자가 매년 30명 이하로 떨어지고 사망자도 거의 없어졌다.” p.209~210

그 이후에는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노력한 흔적의 기록이 남아있다. 일본, 유럽, 미국, 이집트, 남미, 동남아, 소련, 중국 등 세계 어느 곳이든 간 그는 거의 모든 내용을 수기형식으로 남겨놓았다. 소설같이 재미있게 읽히는 자서전이었다. 물론 당시 정부에 대해 서운해 하는 심정이나 같은 국내학자에 의해 모함을 받아 황당해 하는 마음 등 좋지 않은 기분 역시 뒷부분에 잠깐 나온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 학자 중에는 아직도 우리보다 남을 더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흔히 외국 학자들의 성적은 무조건 믿으면서 정작 우리나라 학자의 훌륭한 연구결과는 잘 보지도 않고 믿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하루빨리 지양하고 우리나라 학자들을 아끼고 키워야만 우리도 국제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p.366

사실 이 책도 여느 책과 다름없는 그런 ‘의학위인’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더구나 저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서전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더 높은 것이 아닐까? 물론 지금 당장 이 책에 매료된 내가 보는 시각에 내 주관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절대 ‘자기자랑’에만 머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언급을 해서 좀 그렇지만 고승덕변호사가 쓴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이란 없다’란 자서전은 정말 읽다보면 ‘너잘났다!’란 말이 그냥 나온다)

기초과학자의 길을 내가 가보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의 생활신조와 삶에 대한 자세는 정말 본받아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만약 그때 그 역시 시대를 잘 만났다면 지금 황우석박사가 받는 정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다. 역시 노벨의학상도 나올 수 있었고 말이다. 이 책은 나온 지 상당히 오래된 책이지만(99년) 그가 바라보는 과학의 현실과 전망은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날카롭다. 특히 에필로그는 그의 심정을 잘 토로한 결정체인 것 같아 여기 모두 옮겨 타이핑했다. 이번 책은 지난번에 비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에필로그>

전쟁과 유행성출혈열, 그리고 한탄바이러스 연구에 얽힌 인체실험과 동물실 감염 등 과학사에 남겨야 할 사실에 대한 규명과 한타바이러스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매면서 여러 나라 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한 이야기도 이쯤에서 끝내야 할 것 같다. 다 썼다고 생각하니 빠진 일과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이 원고의 3분의 2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녹음해 두었던 것이고, 마지막 3분의 1은 최근에 정리한 것이다. 그 때 나는 현역 교수였기 때문에 연구논문 이외의 글은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지 않았다. 여기에 실린 모든 내용의 증거자료는 모두 잘 보관되어 있다. 그 중에는 공동 연구를 한 외국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곧 이 귀중한 자료들을 원본 그대로 실어 서신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59년 귀국한 이래 모든 연구를 한국 내에서만 했다. 미국에서는 두 번에 걸쳐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나를 유혹했다. 첫 번째는 1977년 초 미국 NIH에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한 연구내용을 발표했을 때 깁스 박사가 최고의 대우를 해줄테니 NIH에 오라고 제의했고, 두 번째는 1981년 여름,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에서 강의를 했을 때 셰러 교수가 미국의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의 주임교수로 오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추천하겠다고 했다. 물론 나는 두 번 다 그 자리에서 그들의 호의를 거절했다. 한국에서 어렵게 성공한 연구업적과 앞으로 노다지 광산에서 쏟아져 나올 연구결과를 미국에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조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6.25때 우리는 네 형제 중 세 형제가 군복을 입고 싸워서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일정 때 나라 없는 슬픔을 체험한 우리 민족이 아닌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지름길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로 만든 우수한 생산품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길이다. 우리 팀이 개발한 한타박스나 혼합백신도 그러한 신약이다. 21세기라는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남의 제품만을 수입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거나 수출하고 있는 제품의 몇 퍼센트가 외국 기술에 의한 것인지, 그리고 수익금의 얼마가 로열티로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는지 안다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한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가 골고루 발전해야겠지만 과학과 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그 직접성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나는 이 책에서 모든 여건이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연구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전달하고자 애썼다. 또한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 우리나라는 과학의 불모지였다. 연구 환경도 열악했고, 수도와 전기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으며 기름도 없어 구공탄을 때면서 연구를 했다. 그런 환경에서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한탄강의 기적’이라는 제목도 그 시절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아무쪼록 모두가 그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과학자와 과학 지망생들을 아끼고 사랑해서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업적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나는 학자들의 국적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민족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지금 같은 국제화 시대에는 그런 것들이 간과되기 쉽기 때문이다. 내가 태국에서 마히돈 왕자상을 받았을 때 내 뒤에는 한국대사가, 미국 수상자 뒤에는 미국 대사가 뒤따랐다. 노벨상 수여식에서도 수상자의 국적에 따라 그 나라의 대사가 수상자의 뒤를 따른다. 최근 한국인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예술가 P씨가 일본에서 상을 받았는데, 수상식에서는 미국 대사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의 국적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인’ P씨가 수상했다고 크게 보도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수상자 기록에는 그가 미국인이고 외국 언론 매체나 일본인도 그를 결코 한국인이라 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국적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외국에 나가 그 나라의 국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우수한 한국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새싹들에게 먼저 투자하고 그들을 빨리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분명히 조국이 있다. 그리고 조국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키워줄 의무가 있다. 21세기의 한국의 운명이 이 땅의 과학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가 과학자와 과학 후속 세대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뜨거운 가슴과 끊임없는 열정으로 과학에 청춘을 바치려는 모든 후배 과학자들에게 격려와 고마운 마음을 함께 전하는 바이다.

★목차

1. 보이지 않는 적
2. 괴질에 도전해 온 세계 각국의 노력과 좌절
3. 불가능에 대한 도전
4. 한탄강의 기적
5. 쥐는 위험함 보균동물
6. 제2의 병원체 : 서울바이러스 발견
7. 세계최초의 예방백신과 새로운 진단법
8. 국경 없는 연구
9. 철과 죽의 장막
10. 과학은 영원하다



P.S.

[3] 한탄 바이러스 명칭의 유래

- 유행성출혈열은 우리나라, 그중에서도 비무장지대와 전방부대에서만 발생하던 특이한 병이다. 모든 병에는 '히스토리'가 있는 법인데 이 몹쓸 병의 히스토리는 1952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즉 6.25 동란 중 중 부전선에서 발생한 것이다. 안전계원으로서 내가 알아야 했던 사실은 이 병이 '유행성'으로 옮겨 다닌다는 점, 그리고 병원체의 숙주는 들쥐 중 등에 줄이 나 있는 등줄쥐라는 사실, 그래서 전방에서는 풀밭에 앉거나 누우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으며, 환자의 발생은 '즉각 보고해야만 되는 사항'이었던 것이다.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몇 해 지난 1976년 어느 날, 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연구실의 이호왕 박사가 한탄강에서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보았다. 그것은 한국의학사상 기념비적 발견이었고 세계 의학계에서도 드문 일로 기록될 쾌거였다. 이박사는 당연히 이 병원체에 이름을 붙일 명명권을 갖고 있었다. 서양의 의학자들은 대개 이런 경우 개인사적 기념으로 작명하곤 한다. 그러나 이호왕 박사는 조용한 한국인이었으며 한탄강의 도도한 흐름 속에 실린 역사의 의미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는 이 병원체에 민족의 한, 분단의 한을 실어 그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서 '한탄(Hantaan) 바이러스'라고 명명하였다.

세월이 흘러 유행성출혈열은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전 국토 농지로 번져 갔고 이것은 농부들에게 위협적인 유행병이 되었다. 그러나 '한탄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이박사 팀은 예방백신을 개발하여 세상에 내놓으니 그것이 요즈음 신문지상 광고에서 자주 보게 되는 '한탄박스'이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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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V_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궁리)

Posted 2008. 8. 21. 02:14, Filed under: Hobbies/Books



[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란 제목의 ‘사다’란 과연 live를 뜻하는 것일까? buy를 뜻하는 것일까?

도서관에서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live가 맞는 것 같은데 뭐 제목의 파격을 떠나 이 책은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은 그래도 나름대로 양도 많았고 내용 자체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아니면 의학 위인에 관련된 이야기였지만 이 책은 저자가 일본 의학 월간지에 2년간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다듬은 것이었고 그 내용이 자신이 돌봤던 환자들(특히 일본에서 유명했던 사람들 위주로)의 임종에 관한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부모님이나 자식, 애인 등 자신과 절친했던 사람이 죽었을 때 그들에게 쓰는 편지를 수기형식으로 엮어서 출판을 한 적이 있는데 아마 그때 그 기분을 느껴서였는지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환자들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들이 좀 더 편하게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했던 뱃사공이었다..(중략)..이런 스승들과 죽음을 앞에 두고 진실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의사로서 누릴 수 있는 고마운 특권이자,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이제 의사, 간호사, 의대생들, 그리고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이 진실의 기록을 바쳐 함께 나누고자 한다." p.9

서문에 나와 있는 이 말처럼 이 글은 일반인이 그냥 읽기엔 감흥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또 언급된 위치의 사람들이 읽어도 마찬가지로 밋밋할 수 있다. 지금 내 느낌이 그러하다. 사실 이 책은 이미 20여년 전에 출간된 책을 다시 다듬어서(?) 재출간 한 것인데 그래서인지 상당히 지루했다. 병으로 죽던가 아니면 연로하여 죽던가 결국 저자가 이야기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도덕책에서 항상 봐왔던 말들로만 쓰여 있다. 내가 너무 자극적인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건가? 예를 들어 죽기 직전의 병상일지를 간략하게 정리한 부분이 눈에 종종 들어오는데 그 현실성은 ‘병원24’보다 훨씬 약하다.

"병을 고치는 일은 이따금 하는 일이다. 아픔을 누그러뜨리는 일은 좀 더 자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병이 난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은 의사도 간호사도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환자를 편하게 해주고 있는가? 환자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시간을 내고 있는가? 시간을 내고 있다면 어떻게 환자를 위로하고 있는가." p.25

"신앙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살아가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리고 마음의 지지목도 된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는 어떤 병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죽음의 자리에 있어도 희망과 구원의 문이 열려 있다." p.51

현직 의사인 저자가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수백 명에 이르지만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 책으로 엮었는데, 사실 일본에서는 얼마나 유명한 사람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다지 특이해 보이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일본의 무형문화재, 전장관의 부인 등.. 하긴 사람이 죽는 방식에 특이함이 있다면 얼마나 특이할 것인가? 어차피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젊은 자식이 어린 나이에 먼저 죽어버린 살아남은 부모의 심정, 죽을 운명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있어서 종교의 의미 등을 잔잔하게 알려주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냥 내용으로 보나 양으로 보나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직접 그 의사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본다면 글 한자 한자를 쓸때마다 눈물을 떨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독자의 입자에서만 이 책을 읽는다면?!....)

"..지상의 생활은 대수방정식과 같다. 계수도 있고 부호도 있다. 그러나 그 깊은 곳에 있는 '근'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주의 창조주가 계획하신 길을 인간이 마음대로 변화시켜서는 안된다. 다차원의 세계는 복잡하게 보여도 하느님의 근으로 환원하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p.114

★목차

저자의 말

의사로서 처음으로 경험한 죽음
남들보다 세 배를 더 열심히 살다 갑니다
다른 가족 대신 제가 아파서 다행입니다
이제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해
무대에 오르면 향기가 피어난다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마지막 무대에 오르다
노래는 인간과 함께 자라나 인간과 함께 죽는다네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지금'에 전력투구하다
삶은 방정식과도 같은 것
이제 하늘과 더욱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머리를 기른 스님처럼 살다 가다
은혜를 아는 것은 어렵고, 은혜를 갚는 것은 더 어렵다
늙는 것도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시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최고의 쉼터인 가족의 품에서 잠들다
신부에게 진실을 맡긴 채...
제발 저에게 암선고를 내려주세요
자연스러운 죽음의 모습
남아 있는 그대들이 내가 시작한 일을 이루어주길
죽음을 예감한 어머니
마음의 고향에서 편히 잠든 아버지
평정심으로 살고 의사로 죽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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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바드 의대를 졸업한 한 글 재주가 있는 사람이 쓴 것이며, 책으로까지 인쇄된 것을 보니 내용은 불굴의 투지와 고귀한 사명감을 가지고 뛰어든 의학의 길을 졸업한 소견 정도겠구나?...로 약간은 시니컬 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런 추측은 빗나갔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맨 처음 떠올랐던 그 순간부터 이 책이 미국 의학교육과 근대 의학을 비판하리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나는 두려워졌다. 내가 대단히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p.10

저자인 멜빈 코너는 인류학자출신으로 서문에서부터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인문학을 배운 나이든 의대생의 신분에서 그가 겪었던 의대교육의 실상을 ‘까발리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역자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의학을 배우는 단계에 있는 학생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의사들을 현실 세계에서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이 책을 통하여 ‘훌륭한 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라도 임상교육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인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미래의 의사들이 이 책을 통해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과학과 진료실에서 이루어지는 의술이 왜 의학의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된다면, 그들이 보건의료사에서 새로운 지평선을 보여줄 가능성은 커지게 될 것이다...” p.16

이 책은 역자에 따르면 멜빈 코너 본인이 한국의 역자들이 번역료를 받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한국어판 저작권을 무료로 허락해줬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현재 내가 읽은 버전은 절판되었고 시중에는 같은 책을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이 나와 있다.(저 위의 겉표지는 지금 나와 있는 책이다. 두 판 모두 의사가 번역을 했기 때문에 차이가 그렇게 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어쨌든 내가 읽은 책의 목차는 이렇다.



서문
역자 서문
1. 대상성 휴지기
2. 첫번째 만남들-기초임상 수기
3. 응급수술 병동
4. 잠재우는 도사들-마취과학
5.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6. 영혼의 병변-신경외과와 신경과
7. 정신과 신체-정신과
8. 어린이들을 경험하다-소아과
9. 산과
10. 생명을 창조하는 기계-부인과
11. 병리학
12. 심부전-내과 (1)
13. 임종 지켜보기-내과 (2)
14. 치유와 희망-내과 (3)
15. 잊을 수 없는 사건과 사람들-본과 4학년
16. 의사라는 직업
역자 소개



저자가 인류학 교수라는 직업에서 하바드의대에 늦깍이로 들어온 후 2년의 공부를 거친 후 겪기 시작한 임상의 현장에서 그는 각 과별로 자신의 느낌을 서술하고 있다. 요즘 ER이란 미국드라마를 보고 있어서 인지 책의 내용에 나오는 사람의 지위(?)-어텐딩, 치프, 인턴, 의대생 등-를 하나씩 떠올리며 읽으니 더 재미있었다. 한편 이 책도 다른 책들처럼 읽으면서 하나하나의 감상을 적어갔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지쳤다. 책의 양도 방대하긴 하지만(510페이지) 너무 개인의 주관에 엮인 부분이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웠던 점은 각 과에 대한 이야기가 임상을 기준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각 과에 대하여 무슨 일을 하는지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산부인과는 산과와 부인과이고 산과는 애를 낳는 것을 주로 하고, 부인과는 유방암 같은 부인질병을 주로 한다는 정보 등이다.

“...마취과 의사는 인간의 의식을 다루는 화학자이고, 통증의 정도를 조정하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또한 이들은 환자들과 함께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게 된다. 마취과 의사들의 조심스러운 눈빛 아래 환자들은 혈관과 뇌를 통하여 스며드는 약물의 힘으로 망각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p.116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어떤 수술에서 최악의 위험은 전신마취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마취와 관련되어 환자가 죽는 경우가 일년에 만이천 건 정도 발생한다. 때문에 마취과가 완전히 독립된 전문과로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수술에서 마취과 의사가 없이 수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되고 있다. 또한 전공의가 당직 다음날까지 계속해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임상 전문과이기도 하다.” p.133

또 의대생이 아니면 그냥 쭉 넘어갔을 몇몇 의학용어들도 관심을 가지고 봤다. 마치 ER을 보기 전에 매니아사이트에서 관련 용어와 속어를 프린트해서 봤듯이 말이다. 사실 전문적인 의학적 증례는 실제 본과 때 배운다. 그러므로 지금 읽고 있는 이런 종류-흥미위주-의 책이 예과생인 지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너무 쫄지 않게 해주며 또 너무 낭만에 빠지지도 않게 해주니 말이다. <대상성 휴지기 파트에서 나온 [수련의 4원칙]은 조크인데 새겨들을 만 했다. 첫째: 그 치 료법이 잘 듣는다면 계속하라! 둘째: 그 치료법이 잘 듣지 않는다면 중단하다! 셋째: 만약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때는 아무 것도 하지마라! 넷째: 그리고 (환자가 수술을 간절히 원하지 않는 이상)외과의사를 부르지 마라~! 였다. > 그러나 L.O.L in N.A.D(little old lady in no acute distress, 특별한 급성 질환이 없는 노인)처럼 별 증세도 없으면서 근심스런 마음에 공짜로 치료받고 가는 노인들이 꽤나 있다거나, 유아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어도 의사들이 관찰하다 보면 숨겨졌던 병이 드러나기도 한다는 소아과적인 예방의학을 언급할 때는 마치 ER의 수간호사인 캐롤이 의대생인 카터에게 유용한 임상 팁을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모든 부분에 걸쳐 저자는 의사도 사람이고, 또 환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뛰어난 의학 기술을 통한 치료 외에 환자와의 교감을 강조한다. 환자들은 거의 언제나 의사나 의대생(PK도는)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즉 환자의 의견은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라기 보다는 존중되어야 한단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아주 크게 본다면 두 가지 정도로 저자의 의견을 정리할 수 있다. 우선 현재 의대의 교육 시스템이 잘못 되어있다는 점과 현직 의사들이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후자의 이유를 비정상적인 의대교육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주된 부분인 각 과별 실습 때 만난 레지던트와 의사 이야기에서 그들에 대한 칭찬은 거의 찾기 힘들다. 물론 대놓고 욕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또 빠질 수 없는 전문화에 따른 인간 소외도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는 의대생도 잘 알아먹기 힘든 그들만의 약어와 은어의 남용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만들어낸 역설적인 무지 역시 그가 지적하는 문제점의 하나이다. 안락사, 불치병에 있어서의 고지관련문제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런 많은 것들 역시 조금씩 언급이 되어있다. 그렇지만 말했던 것처럼 책의 내용 대부분이 자신이 겪었던 임상실습에서의 인간관계-선배와 환자들-에 치중해 있던 만큼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가 원래 전공한 학문이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에 관한 것 이였기 때문인지 그는 연세대학교 시절 미국문화의 이해란 교양을 가르쳐 주신 K교수님을 생각나게 했다.(그 선생님은 멜빈 코너와 반대되는 길을 가시는 분이시다. 연대 의대 재학시절 흥미를 잃고 다시 인문학을 전공한 후 현재는 인류학을 공부하고 계신다.) 그때 수업에서 난 과목의 이름과는 약간 다르게 미국과 미국문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법을 배웠는데, 당시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부분은 결국 '인간성의 회복'과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일반인이 본 의료계의 아쉬운 점을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책을 쓴 것과도 유사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제 의대생이자 예비의료인인 내가 보고 배울 점은 무엇일까?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한 두가지 조건, 뛰어난 기술과 따뜻한 마음! 이것을 함께 이루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내가 되길 원했던 그런 의사란 모두 저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던 많은 지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내 마음을 형성한 것이라면 앞으로 몇 년간은 평생의 내 직업인 ‘의술’을 위해 투자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선 수준 높은 지식과 방대한 양에 치여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기 쉬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난 내 우상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을 이번 방학을 통해 다짐해 본다.

기억에 남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게인스 선생은 의사가 반드시 알고 전달해야 될 ‘퇴원시 주의사항’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요약한 기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때로는 생명을 구하는 응급 구조 활동보다 더 필요한 일이 될 수 있음을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터득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p.371

"...그들의 말대로 어머니날에 죽기를 희망했던 또 다른 어머니인 틸리 해믈린은 81세 할머니로 어찌할 도리가 없이 진행된 유방암 환자였다. 기본적으로는 건전한 사고를 갖고 있는 이 평범한 중류층의 여성은 한쪽 유방 전체와 흉벽의 상당부분이 징그럽고 바위같이 단단한 노란 오렌지색을 띤 종양에 먹혀들어 갈 때까지 의사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반사적으로 환자를 비난하지만 나는 항상 부분적으로 의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여성은 어디선가 어떤 특별한 의사라기보다는 의료인 전체를 대상으로 의료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했던 암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신뢰를 얻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p.387

나의 요구를 보세요.
내 말 듣는데 시간을 할애해 주세요.
제발 내가 아직 여기에 있는 걸 알아주세요.
겉으로 나는 약하고 아프고 초췌할 뿐이지만,
속으로 나의 가슴은 두려움을 안답니다.
나는 너무 할 말이 많아요.
너무 못한 일도 많구요.
나는 차가운 기계로 가득찬 세상을 바라지 않아요.
나는 단지 당신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은 열을 재고 맥박을 측정하지요.
그리고는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버립니다.
오, 제발 앉아서 제 손을 잡아주세요.
단 몇 분만이라도 머물 수 없나요?
나의 목욕을 건너뛰어 주세요. 침대보를 갈지 마세요.
대신 이 시간을 사용하세요.
내가 알고 있는 두려움을 같이 나누어요.
제발 내 침대 곁에 앉으세요.
속으로 전 갈구해요. 그러나 애원할 수는 없어요.
당신의 시간은 당신만이 줄 수 있어요.
당신의 도움과 보살핌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살아갈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에겐....
내가 가진 시간을 다 써버렸어요.
나는 지금 그날을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신이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제발 여기에 머물 사람을 보내주세요.


p.s. 멜빈 코너는 현재 에모리대학의 인류학과 및 정신과 교수로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16. 의사라는 직업'에 나온 말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만 읽어도 아마 책의 내용을 대충 유추하기엔 충분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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