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현대의학론 수업 시간에 '박재영'선생님이 오신 적이 있었다. 청년의사라는 미디어를 만든 사람중 한명이며 현재 그곳의 주간으로 있는 그는 몇몇 의대생들에게는 일종의 역할모델을 해주는 그런 존재였었기 때문에 실제 수업에 그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서홍관'선생님으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를 만든 공동창시자 중 한명이다. 여름방학때 그 모임에 대해 약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으며 지금도 종종 사이트(http://humanmed.org/ )에 가서 얼쩡거린다. 하지만 그곳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없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역시 현대의학론 수업시간의 느낌과 비슷한 느낌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이 책도 여름방학때의 리스트에 있었던 책이고.



우선 이 책은 부제인 '시인의사 서홍관의 인생 처방전'에서 알수 있듯 감성적인 측면이 많다. Chapter가 바뀔 때마다 저자가 직접 쓴 시들이 몇편씩 실려있다. 또 커버를 봐도 저자의 사진이 아홉칸에 걸쳐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는데 순간 우리 학교의 S교수님이 생각났다. 그분보다 더 왕성한 저작활동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을 때는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 아직까지 의대생이란 생각보다는 일반인이란 생각이 더 커서일 수도 있다. 또 책의 내용 자체가 저자가 환자들을 볼때 보고듣고 느낀 바를 서술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것은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을 절대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약이나 주사치료는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니까 환자가 그냥 운동이나 좀 지켜봐도 되는 경우에는 그냥 보내드린다는 것이 그의 철학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절실히 원하는 환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고 한다. 뭐 지금처럼 의약분업이 있는 경우에는 약간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이 책이 나올 당시(1995년)의 입장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인 것 같다.



대학시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청계천에서 야학을 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군복무 대신 선유도와 전북 완주에서 무의촌 근무를 한 그의 이력에서 알수 있듯 그는 자신을 '운동권 의사'라고 자칭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그의 프라이드 속에서 운동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약간 다른 것이다.


"...따라서 운동권의사라고 하면 마치 이들과 한편인, 성분 나쁜 의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내 나름대로 운동권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운동권이 되려면 사회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사회의 모습을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그대로 믿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은 운동권이 될 수 없다.(중략) 둘째는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해결의 주체로 생각해야만 한다. 의사들끼리 얘기해 보면 많은 의사들이 의료계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참으로 비판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상 해결책을 물어보면 '내가 무슨 정치가도 아닌데 무슨..' 하면서 다음 단계에 대한 의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해서는 그 의견이 반영될 기회가 영영 없는 셈이 되고, 따라서 탁상공론이 되고 만다. 만약에 그 비판적인 내용들이 옳다면 그것을 여론화하여 올바른 의료제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중략) 나는 후배들에게 가끔 '잘못된 점을 알고 고치려고 나선다면 지도자가 되겠지만, 잘못된 점을 알고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불평분자가 되고 말뿐'이라고 얘기한다. 운동권이란 바로 이렇게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치려고 나서는 사람들이다.(중략) 나는 운동권 의사가 아니다. 단지 운동권 의사가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나는 스스로 게으르고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운동권 의사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민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씩씩하고 지혜롭고 책임감 있는 운동권 의사들을 갈망하고 있다." p.52~54





개인적으로는 제1부 병을 고치는 의사, 인간을 고치는 의사...편이 의대생들에게 필요한 항목 같다. 특히 자신의 이모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그곳의 시스템과 의사들에게 느꼈던 아쉬운 점을 저자에게 말하는 부분에서는 내 스스로도 벌써 '의사가 되어 반성하는' 기분이었다.

"이모부는 내가 의사가 되고 대학병원의 과장이 되어 인사를 온 것이 매우 든든하고 대견하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병원에서 투병할 때 괴로웠던 일이 생각나신 듯 당시의 병원생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나로서도 이모부의 병원생활에 대해 듣기는 처음이었다. 이모부는 간절하게 당시를 회상하셨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아침마다 일어나면 오늘 경과는 어떤지 몹시 궁금했다. 의사 선생님 오시기만 기다리는데....오셔서 별 이야기도 하지 않고,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를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면서 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럴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손이라도 한 번 만져 주면 마음이 놓이겠는데....등이라도 두드려 주면 위로가 되겠는데....끝내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고 지나가 버리면 하루를 그냥 허송세월 보낸 것 같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회진이 끝난 뒤에 하루 종일 온갖 방정맞은 생각에 시달렸다. 혹시 내 병이 드디어 죽을 병이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의사가 나를 피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내가 의사 선생님에게 건방지게 보인 것은 아닐까. 기분 상하게 한 적은 없었을까. 맞다. 저 옆 침대에 누운 환자는 의사 선생님에게 무슨 선물을 하는 것 같았는데, 오늘 회진할 때도 저 환자에게는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무슨 선물을 하지. 나는 돈도 없는데. 지금도 가장이랍시고 돈도 못 벌어 오는 주제에 입원비나 까먹고 있는 것만 해도 집안살림이 휘청대는데, 선물이나 촌지를 주는 것은 생각이나 하겠는가. 아, 나는 왜 이럴까, 바보같이...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의사가 아는 사람이라서 특별히 잘 봐주는 것 같은데, 나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병도 안 낫고 죽을 수 밖에 없단 말인가?'

말씀하신 내용 모두가 구구절절마다 얼마나 안타깝게 말씀하시는지, 그 아픔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졌다.(중략) 이후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모부를 생각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환자의 손을 잡아 주게 되었다." p.29~31



저자는 노먼베쑨의 전기를 읽고 그의 '운동권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동경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여름방학때 노먼베쑨의 전기를 읽었지만 '흠..내가 저 상황의 노먼이었다면 저럴 수 있을까?...'라며 약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달랐다. (노먼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스페인과 중국에서 의료활동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부인을 포함한 가족생활은 파탄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하긴 폴파머도 가족생활이 원만하지는 않았다.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난...지금도 그정도까지의 희생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그들처럼 한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의과대학생들이 의학교과서 이외에 꼭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노먼 베쑨의 전기를 추천할 것이다. 1991년 우리 나라에 그의 생애가 한 권의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 나는 무척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의 헌신적인 생애는 가히 나의 왜소함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노먼 베쑨의 전기를 읽을 것을 권하게 되었다." p.55



흥미있게도 의사라는 직업군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적용되는 이유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의료인들의 도덕성이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우선 이론적으로 몇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첫째로 본래 천성이 사악하고 이기적인 학생들만 의과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별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성적에 따라 순식간에 자신들의 장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특별한 선별이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본래의 천성은 비슷했으나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과정을 거치는 동안 유별나게 부도독한 인간들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다. 우선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의료윤리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대학이 소수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중략) 하지만 이런 교육과정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윤리에 관한 학점을 안 딴다고 해서 그 집단이 쉽게 비윤리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믿기 어렵기 때문에.

셋째로 소문은 이렇게 나쁘게 났지만 실은 다른 직업 집단과 비교할 때 윤리 수준은 비슷한 정도일 가능성이다. 다만 유독 눈에 띄는 집단이고 또 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후략)" p.70~



대학생때의 해부학수업 모습(p.98)이나 동양철학에서 바라본 의사의 사회적 의무(p.109) 등 이 책의 전반부에는 예비의대생이나 의대지망생이 읽어봄직한 꺼리가 다양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꼭 옳다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자의 사상은 매우 진보적(의미가 모호하지만, 긍정적인 진보!)이기 때문에 의사라는 테두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소수의 입장이 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의사'가 읽는다면 조금 배아플 수도 있는 내용이 많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실제 그렇게 하면 여러모로 손해볼만한 사항이 있으니까.



책 중반에는 한의학에 대하여 '강한 불신'을 표시하면서도 한의학의 가치는 인정하고 또 그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 이후에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린, 일반적인 의문들(예를 들어 AIDS나 암에 대한 일반인들의 걱정, 만성피로감, 빈혈, 심장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책이 나올 당시 유행했던 '죽염'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나 '우황청심환'에 대한 양방적 견해 등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별 거부감이 없는 내용들이 쭉 이어진다.

그러나 인의협이란 곳이 의사의 사회에서는 마이너리티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감동을 받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의사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되고 또 난 인의협과 같은 곳의 성향을 가진 '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한 의사는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의 상황은 저자의 말처럼 더 나아지겠지만. (최근에 인의협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참여한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장에 대한 의료계의 조사를 주장했다는 신문기사는 그런 면에서 반가웠다. 아마 대중매체에 드러난 인의협의 활동으로는 거의 처음 접한 것인듯!)  

옛날부터 '심장이 조금 이상하네?..'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고 또 부대에서 운동을 하다가 눈두덩이 심하게 부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나의 걱정꺼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있었다.(p.206, 218) 나말고도 그런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조금 안도가 되었다. 그런 증상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그 다음으로 책의 후반부는 저자의 개인적인 소사에 대해서 나온 것이다.





현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은 의사(인의협)이며 많은 저작활동을 하는 의사(여름방학때 읽었던 멜빈코너의 책도 그가 번역했다)로 어찌보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의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생각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그가 하는 일 역시 예비의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며 누군가는 앞서서 가이드를 해줘야만 하는 일들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면모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어쨌든 누가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쉽게 쓰여진 책이며 의대생, 특히 예과때 읽어두면 좋을 만한 책이다. 아쉽게도 책이 절판되어 살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대여해 봐야할듯...

"둘째, 좋은 의사(명의)가 되기 위해서는 바른 의학지식과 기술이 절대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환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태도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은 환자가 되어 본 경험이 있거나 의료일선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누구나 알게 되는 점이다. 왜냐하면 같은 의학적 지식도 그것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환자와 그 가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p.76



★목차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인터넷 서점에서 찾을 수 없어 책의 내용에서 조금 발췌를 해봤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주로 병동에서 의사로서 겪었던 잊을 수 없는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의과대학생들에게 전해 주는 이야기들이고, 2부는 한의학이나 전통요법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으며, 3부는 흔한 질병들을 중심으로 건강상식들을 증상이나 질병별로 밝혔으며, 4부는 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체험들을 묶었다." 머리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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