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을 마무리할 무렵 한 인터넷 서점에서 봤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 책이 있었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교양 3대천왕" 중 하나였던 인행심(인간 행동의 심리적 이해)이란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흥미롭게 봤었던 몇몇 실험이 이 책의 내용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별 부담이 없이 이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게 되었다.

이 책은 심리학적으로 유명한 10가지 실험을 에피소드별로 분류하여 서술한다. 스키너, 밀그램, 해리할로 등 이쪽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만한 심리학자들과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실험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렇지만 그런 실험 내용만이 단순하게 나열된 것이라면 지금 도서관에 있는 많은 일반심리학 서적과 차이점이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흥미로운 서술방식(에피소드 앞에 일화로 시작을 하여 딱딱하지 않게 출발하고 끝부분에선 항상 자신의 일상적인 감상으로 마무리를 하는)과 더불어 직접 심리학자를 만나본다든가 아니면 당시 실험에 참가한 피실험자를 만나본다든가, 심리학자의 가족을 만나본다든지, 마약의 중독성에 관한 파트에선 직접 자신이 마약을 체험해 보는 등 여러가지 방식의 흥미로움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에 읽는 도중 지치지 않았다.



책의 제목에 나올 정도로 스키너는 위대한 심리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렇지만 인기인은 항상 안티가 있듯이 스키너역시 많은 반대론자들이 있다. 특히 실험 자체보다는 실험 도중에 행한 윤리적인 문제(스키너는 그녀의 딸조차 실험대상으로 삼았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한다)로 많은 안티가 존재하는데, 저자는 그런 사항의 원인이 된 스키너의 딸을 직접 인터뷰한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께서 한가지 실수를 하셨다면 사용하신 어휘가 문제였어요. 사람들은 '통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파시스트를 생각하죠. 만일 아버지께서 인간이 환경에 의해 '터득된다'거나 '고무된다'고 말씀 하셨다면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거예요. 실제로 아버지는 평화주의자셨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보호하셨죠. 아버지는 '어떠한'처벌도 믿지 않으셨습니다. 처벌을 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동물을 통해 먼저 아셨죠. 캘리포니아 주에서 체벌 금지 법안이 통과된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아요. 아무도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앙되고 있었다." p.41

그렇지만 스키너의 심리 실험의 내용에 관한 설명은 잘 되어있지않다. 즉 나처럼 이미 그 실험을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그것을 잘 몰라도 그냥 호기심이 있는 독자라면 상관없겠지만, 좀더 나은 이해를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일반심리학' 서적을 잠깐 보고도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책은 심리학자들의 일상적인 생활도 많이 엿볼수 있게 해준다. 그들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난 삶을 산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수많은 학자들 중의 정수인 사람들이니 비범한 사람이라 가정한다면, 역시 세상은 천재를 그냥 놔두지는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삶을 사는 당사자들의 생각은 달랐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밀그램은 유머감각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과학자들보다 예술과 실험, 유머와 무자비함, 일과 놀이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좁은가를 잘 보여주었다. 그의 아내 밀그램 여사는 남편이 자신의 일을 무척 사랑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밀그램 교수는 자신이 쓴 편지를 뉴욕의 보도블록 위에 떨어뜨리고는 누가, 왜, 어떤 답장을 쓰는지 관찰하곤 했다. 어떤 때는 사람들의 눈에 안 띄는 곳에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길게 늘어선 줄사이로 새치기해 들어간 다음, 자신이 끼어든 뒷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 살펴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날씨가 맑고 푸르면 밖으로 나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군중들이 얼마의 시간동아 모여드는가를 측정하기도 했다. 모두들 서서 빈 하늘만 쳐다보면서 말이다. 그는 영리하고 파괴적이고 부조리했다. 하지만 그가 사르트르나 베케트와 달랐던 점은 부조리를 측정했다는 점이다." p.65

밀그램의 대표적인 실험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가 행한 것의 방법적 측면이 얼마나 인간에게 잔인한 것인지를 알수 있다. 그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수를 지급하여 그들이 얼마나 불합리한 명령에 복종하는지를 실험했는데, 정해진 명령에 따라 전기충격기의 볼트를 높이는 것이었다.(사실 그 기계는 가짜였으며 고문을 당하는 사람도 배우였다) 그때 얼마나 사람들이 어느정도까지 그러한 명령에 잘 따르는가가 밀그램의 실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자가 찾아간 당시 피실험자 두명의 경우 - 한명은 복종적이었고 한명은 반대로 잘 따르지 않았던 - 그들의 현재까지의 삶이 당시 실험결과와는 전혀 무관했다는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 반항을 했냐 안했냐 여부와 평소 삶의 신조의 관계에는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심리실험을 하는 이유와 그것으로 인간의 특성의 한부분을 관찰하는 이유가 우리의 앞으로의 행동을 예상하기 위함에 있다면 밀그램의 실험이 의미하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이 밀그램 실험의 결과였던 것일까?



1960년대 뉴욕에서 벌어진 제노비스사건 또한 내가 예전에 흥미롭게 공부했던 한 파트였으며 역시 이 책에 자세히 나왔다. 이른 새벽 발생한 살인사건과 그녀의 긴 절규속에서 많은 사람들, 우리의 이웃들이 그 비명소리를 듣고도 아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이 사건은 당시 미국사회의 도덕적 의무에 관한 경종을 울렸다고 한다. 달리와 라타네라는 두명의 심리학자는 이 사건에 모티브를 얻어 심리실험을 행한다. 그리고 그후 다른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에 따라 남을 돕는 행위는 다음의 다섯단계로 구분된다고 한다.

" 1. 사건의 목격단계. 도움을 줄 사람은 사건을 목격해야 한다.
  2. 도움의 인식단계. 도움을 줄 사람은 그 사건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석해야 한다.
  3. 책임 인식단계. 도움을 줄 사람은 개인적인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4. 행동 결정단계. 도움을 줄 사람은 취해야 할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5. 행동단계. 도움을 줄 사람은 이제 행동을 취해야 한다." p.116

다행히 우리나라는 서양의 많은 나라들보다는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든다. 그렇지만 예전 학교의 은행에서 있었던 간질환자사건에서 내가 많은 망설임 끝에 다른 학생이 간호사를 불러올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일이 떠오른다. 문제는 나조차 실제 그런 상황에선 당황하고 또 자기합리화를 종종 하는데 나한테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누가 조치를 취해줄지 어떻게 알수 있단 말인가? 나부터 잘해야 한다.



해리할로의 가짜 원숭이 실험은 정말 유명한 실험이다. 유아기때의 원숭이는 단지 우유만을 제공해 주는 금속재질의 철사 원숭이 보다는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따뜻한 감촉을 제공해주는 가짜 원숭이를 더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이 할로의 실험내용이다. 실제 예전 심리학 수업시간에 이 실험에 관한 사진과 동영상 클립을 조금 본 적이 있는데 이미 50년도 전에 수행된 실험임에도 많은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실제 책을 읽어보면 할로의 실험 내용은 동물학대의 측면과 관련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또 그보다 먼저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을 했던 심리학자들이 있었음에도 그는 그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학자적 측면의 비판도 받고 있었다. 실제 언급한 결과를 도출하기 까지의 많은 실험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인 것을 알수 있다.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암컷원숭이는 생식에 대한 욕구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강제로 임신을 시켜야만 했는데 그래서 할로가 만든 것이 "강간침대"라는 도구였다.

"마침내 그는 강간침대라고 이름 붙인 장치를 고안하여 암컷을 묶어놓고는 수컷들로 하여금 그 위에 올라타게 했다. 장치는 성공적이었다. 어미 없이 자란 암컷 원숭이 스무마리가 임신을 하여 새끼를 출산한 것이다. 1966년에 그는 '유아기 시절, 어미와 또래 친구 없이 자란 붉은털원숭이의 짝짓기 행동'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강간 침대에서 임신을 당한 어미의 일부는 새끼들을 죽였고, 일부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 정상적'으로 행동한 어미는 단지 몇마리 뿐이었다." p.138

난 개인적으로 그가 행한 동물실험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도 세계의 많은 동물애호가들은 그의 실험을 비판하고 때론 비난한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실험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할로의 실험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동물 실험에 대한 명확한 프로시저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을 통한 실험은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그 장치의 이름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동물을 이용하여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으니까 말이다. 동물 권리 운동은 부분적으로 할로의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매년 동물 해방 단체들은 매디슨 대학의 유인원 연구센터 앞에서 대형 할인마트에서 파는 수천 개의 원숭이 인형을 놓고 애도의 장례식을 치르며 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는 모두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원숭이 인형을 위한 장례라니. 오히려 그것은 전혀 우습지 않은 것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또 다른 의문점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심리학자들의 동물 사용 권리는 어쩌란 말인가. 할로는 동물 과학의 들끓는 표면 위로 이러한 의문점을 곧장 끌어올린 장본인이었다." p.139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종교에 빠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궁금하다면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이론편을 보면 좋을 것이다. 미국의 종말론자들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시작되는 이번 에피소드는 나에게도 많은 반성을 하게 해주었다. 난 얼마나 많은 일에 있어서 내 자신과 타협하고 합리화 시키며 살아가고 있었나. 사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스키너의 주장과는 상반된 견해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인지 부조화 이론에서는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에 관여한 보상으로 사소한 것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믿음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중략)자신이 꾸며낸 거짓말을 돌이킬 수 없다면 아예 자신의 믿음을 바꾸어 더 이상 부조화를 겪지 않아도 되고, 바보 얼간이가 된 것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p.156

"페스팅거와 그의 지도 학생들은 인지부조화를 다양한 형식으로 찾아냈다. 그들은 이교도 집단 안에서 발견한 것을 '믿음/불일치 패러다임Belief/Disconfirmation Paradigm'이라고 불렀으며, 돈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불충분한 보상 패러다임Insufficient Rewards Paradigm'이라고 칭했다.

그와는 또 다른 '유도된 순종 패러다임Induced Compliance Paradigm'은 대학 신입생들이 친목을 돈독히 하려는 의도에서 심하거나 미약한 체벌 의식을 강요하는 실험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체벌을 심하게 당한 학생일수록 그러지 못한 집단보다 굳건한 충성심을 맹세했다. 페스팅거는 이러한 단순한 실험을 통해 심리학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키너를 혼란스럽게 했다. 보상이 행동을 강화하고 처벌은 소멸시킨다는 것이 스키너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스팅거는 실험을 통해 행동주의가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었다.스키너가 우리에게 그저 유심론을 철저히 배격하며 기계적인 조건화 반응만을 남겨주었다면, 심술궂고 과격한 레온 페스팅거는 우리의 복잡한 두뇌를 다시 돌려주며 이야기 했다. 우리는 스스로의 위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단히 놀라운 정신적 활동을 한다고" p.156~157

아마 인지 부조화이론을 알게 된다면 길을 가다가 만나는 '도인'을 봐도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심리학은 많은 부분에서 생물학과 관련지어 '과학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예전에 가르쳤던 강사분도 이 '심리학=과학'이란 말을 매우 즐겨 썼으며, 이 책의 내용도 그런 말이 많다. 하지만 실제 의학에서는 심리학을 단순하게 판단하며 참조용으로만 여기는 추세라 한다. 특히나 정신의학에서 다루는 심리학은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실제 정신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진단의 타당성을 밝히기 위해 마치 정신병자인것처럼 꾸며서 정신병동에 잠입한 데이비드 로젠한의 실험은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란 영화와 헬로 블랙잭의 "정신병동편"을 연상시켰다. 당연히 이 영화와 만화의 소재는 로젠한의 실험에서 따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실험결과에 대해 많은 정신의학자들이 반대의 의견을 냈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알고 있다.

"만일 내가 피를 한통 들이마신 후 그 사실을 숨기고 피를 토하며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다면 응급실 직원들은 당연히 내가 소화성 궤양을 앓는다고 판단하고 그에 맞게 치료를 해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학이 진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고 설득력 있게 논쟁할 수 있을까?" p.190

사실 정신과적인 치료방법이 프로이트식의 방법(대화와 일종의 최면을 통한?)에서 약물치료와 전기자극요법으로 바뀐 것도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점차 나은 방법이 발견되고 있으며 뇌과학이 의학에서 뜨고(!)있는 학문분야이긴 하지만 당시 그러한 맹점을 꼬집은 로젠한의 실험은 심리학적인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약물중독에 관한 에피소드 역시 재미있었다. 쥐 공원(쥐에겐 낙원인...)과 갇힌 우리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의 쥐의 생활과 중독에 관한 연구를 한 알렉산더 환경적인 요인을 중독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알렉산더 박사의 연구는 마약 중독이 실은 자유 의지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쥐든 인간이든 쇠파이프를 들어올렸다가 그것을 다시 내려놓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파이프를 다시 내려놓지 않고 파괴적인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파이프 안에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어떤 본질적인 본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처럼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 외에 더 나
은 대안을 찾지 못한 환경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p.217

황당하게도 저자는 이 실험을 직접 체험해 본다. 뭐 그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시시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서 저자는 알렉산더 박사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뭐 중독이나 금단증상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어떻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접근을 하는데, 이 부분을 읽고 나면 담배를 끊어야지라고 말만하며 끊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넌 의지 박약이다"라고 말해줘도 틀리지 않게 된다.

"...그것이 알렉산더 박사의 가장 큰 방법론적 결함일 것이다. 그는 천국을 창조하고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지구의 어디에 천국이 있는가? 쥐 공원이 현실 생활, 가능한 생활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지금 존재하지 않고, 과거에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못할 순전한 신화의 세계 속에서만 중독을 피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줄 따름인가?" p.229




흔히 도로변에 보이는 '사고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그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 광경을 봤다면 과연 나는 지금 그 상황을 모두 객관적으로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누가 먼저 끼어들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차치하고 과연 무슨 종류의 차종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날까? 이러한 인간의 기억의 불완전성과 자기 합리화에 관한 내용이 바로 여덟번째 에피소드에 나와있다.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란 부제의 심리실험이 바로 그것인데 그 심리학적 의미는 이렇다.

"실험 심리학자이자 위싱턴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얇은 막 하나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교수는 우리의 기억이 포착하기 힘든 미묘한 힌트에 의해 어떻게 오염될 수 있는가를 실험을 통해 훌륭히 입증하였다." p.235

실제 로프터스 교수는 미국의 재판정에서 피고들의 무죄주장을 보조역할해주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의 법정시스템은 배심원제이기 때문에 목격자의 증언 하나하나가 재판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많은 반대론자들(특히 정신의학자)이 있다.

"정신의학자 주디스 허먼은 이렇게 말한다.

  "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는 깜찍한 실험이었어요. 그것은 로프터스 교수가 우리에게 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을 이야기해주는 실험이었죠. 로프터스 교수는 사람들이 기억이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데이터를 보세요. 실험자의 75%가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았잖아요. 기억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전문 치료사인 정신 의학자 베셀 반데르 콜크는 훨씬 더 부정적이다.

  "저는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를 혐오합니다. 그 이름을 듣는 것조차 참을 수 없어요"

" p.244

그렇지만 정작 로프터스 교수는 담담하게 반응한다.

" " 저는 그 25%가 대단히 중요한 소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 실험은 기억 조작률이 50% 이상으로 나타난 또 다른 가짜 실험의 도약대가 되었어요" " p.245

어쨌든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중인 그녀는 대중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서, 또는 이미 한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난 내가 앞으로 할 직업에 있어서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한다고 깨달았다. 팩트에 대한 솔직함이 있어야만 한다. 실타래란 원래 꼬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거짓기억은 주관적인 판단으로 이어지고 의사가 되려면 절대 그렇게 처신해서는 안된다.



에릭 칸델이란 천재 두뇌생물학자는 기억력에 관한 의약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사람들의 꿈(나의 개인적인 꿈이기도 한..)인 기억력이 좋아지는 약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그렇나 시도는 생명공학적인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시판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까지에 있어서 이 칸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서술되어 있다.

" "학습의 기본 형태가 진화된 신경계를 가진 모든 동물에게 동일하다면 단순한 무척추동물 안에서도 효과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세포와 분자 차원에서의 보존된 학습 메커니즘 특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칸델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실험에 적합한 동물을 찾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민달팽이, 특히 대형 바다 달팽이인 군소에서 멈추었다.(중략) 그는 마음의 문제에 접근할 때 과감한 환원주의적 방식이 필요했다고 이야기 했다. 따라서 그는 손바닥 위를 지날 때마다 축축하고 엷은 흔적을 남기는 끈적거리는 자줏빛 생명체인 바다 달팽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하였다." p.280

해마,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cAMP와 칼시뉴린효소 등 앞으로 들을 또는 이미 몇번은 본적이 있는 기억과 관련된 내용들이 쭉 나와있다. 하지만 저자도 언급하듯 기억이란 항상 완벽하게 보존이 되어야만 인간이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역으로 기억을 지우는 약또한 개발이 되어야만 한다고 나온다. 그러면 그런 약의 위험한 측면은 없을까? 물론 상상할 수 있는 부작용은 많다. 망각이란 진화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것도 그런 면에서 이해가 되었다.

"기억력 강화제에는 수백만 가지의 문제점들이 잠재되어 있다. 크렙을 높이면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장악하는 우리의 능력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과거가 거꾸로 쏟아져내리지는 않더라도 현재에 벌어지는 모든 일 하나하나가 다 기억되어 머릿속이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 p.290

나중에 이 약을 먹고 기회가 되어 MIT 대학의 칸델광장에 갈 일이 생긴다면, 그때 2006년 1월 16일 오전에 천안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입석인 상태로 이 부분을 읽은 일이 기억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심리학적인 것인지 아니면 의학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드릴로 사람의 뇌를 열어서 물리적인 수술을 하는 것에 대해서 나와있다. 아직까지 뇌 속의 기능에 대한 명확한 지도가 그려져있지 않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의학적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모니즈의 angiography 시도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 및 뇌엽절개술, 대상속절개술 등에 대한 이야기와 일화가 나온다. 그렇지만 원숭이실험을 한 할로가 직면했듯 모니즈 역시 사람을 실험적인 수술에 이용했다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지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런 무조건적 비난이 옳은 것이었을까?(물론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하듯 그러한 실험이 없었다면 우리 누군가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면서 아무런 손을 쓸수 없는 입장이 되어 있을수도 있을 것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많은 생각이 필요한 문제이다.)

"모니즈는 M여사를 수술한 이후에도 많은 환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환자에게 내려진 진단 결과가 아니라 시술이 가능한가를 중심으로 환자들을 골랐으며, 그것을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는 인간을 실험용 쥐처럼 이용했고, 이중맹검법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실험을 했다.(중략) 환자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이 실험용 쥐처럼 이용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중 수많은 환자들
의 상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그들이 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비용 대 이익 측면에서 보면 수술을 받는 것이 더 유리했다." p.312

"하지만 오늘날의 프로작을 생각해보라. 이 우울증 치료제는 그것이 가진 전문성 때문에 환호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약을 매우 좋아한다. 약을 복용하면서 우리 스스로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칼을 들고 무식하게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조준이 잘 된 미사일을 우리의 마음속에 제대로 겨누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은 프로작이 두뇌의 어느 부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프로작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p.320

미국 내에서의 정신과 수술을 받기란 허가를 받는 것 조차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저자는 뇌수술을 받을 예정인 찰리와 그의 부인과 함께 지내면서 수술 전후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정작 뇌수술을 받기 원하는 당사자들의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지금의 '실험적 수술'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

"색하임은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 사이에 칼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만들며 이야기한다. 우리의 병은 우리가 가진 용기만큼 낫는 것이 분명하다." p.333

이 책은 기대한만큼 충분히 재미있었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아마 내가 심리학에 대해서 평소에도 조금 관심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내용 자체가 흥미롭기 때문인 이유가 더 크다. 철사로 만든 원숭이와 천조각으로 원숭이로부터 인간의 애착에 관한 내용을 알아본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어쨌든 뒤에 나온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 수 있다. 근래 보기드물게 책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후기같았다.



인간의 기억과 관련된 내용에 있어서 책에 나온 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서 믿음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좋은 추억만 있으면 된다

                                                        - 도스토예프스키]




<목차>

머리말

1. 인간은 주무르는 대로 만들어진다

2. 사람은 왜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가?

3. 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4. 사랑의 본질에 관한 실험

5. 마음 잠재우는 법

6. 제정신으로 정신 병원 들어가기

7. 약물 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8.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은 진짜 기억인가?

9. 기억력 주식회사

10. 드릴로 뇌를 뚫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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