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때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 초빙강사로 오셨던 분께서 학생들에게 물으셨다.

“물론 의사로서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만약에 ‘머리’와 ‘가슴’중에서 꼭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고르겠습니까?”

나뿐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쉽게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니 의사로서 알아야 할 지식이 부족하다면 그 의사는 자격미달이며, 어떤 면에서 환자에게 매우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 구체적으로 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은 의사로서의 지식을 다 쌓은 후에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에 난 가슴보다는 머리가 더 우선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는 자신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해봤었는데 지금 개인적인 소신으론 인간애가 조금 더 중요한 것 같다고 하셨다.



굳이 예과 때의 수업시간 뿐이 아니라 의사의 사회적 의무에 관한 내용은 종종 매스컴의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의사의 지위와 권리는 사회지도층이란 범주에 속해 있으며, 상대적으로 언론과 대중은 의사의 ‘의무’에 관심이 더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흔히 말하는 ‘의사의 의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먼저 의사 본연의 일인 의료행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의사가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면, 의료행위 역시 다양한 직업군 중에 속하는 하나의 기술에 불과할 것이다. 즉 의사에게는 그와 더불어 부과되는 사회적 책무가 있는데 간단히 말해 ‘인술’을 펼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의료행위와 인술의 차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의료행위에 있어서의 그것이 인술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그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봐야한다. 예를 들어 현대 의학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 유수의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고통을 받고 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전염병에 시달리고 힘겹게 살고 있는 것은 국가나 사회의 정치나 제도와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고 국력에 의해 좌우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만큼 공공의료 분야란 어느 한 단면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란 것이다. 그렇지만 책의 주인공인 파머는 이런 생각에 직격탄을 날린다.

“나는 구매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돈을 대가로 내 의술을 팔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든지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모순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 모순을 느껴야 합니다, 콤마.” p.47

“희생, 양심의 가책, 동정심에 대해서 난 할 말이 많아요. 사람에게 이런 마음이 없으면 바퀴벌레와 다를 게 뭐겠습니까?” p.75


 
파머는 1959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외향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아버지와 조용하지만 엄격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파머는 어릴 적부터 가난한 생활을 하며 인간적인 사상을 기른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했던 그는 대학에서 결정적으로 인간의 차별과 평등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기르게 되고, 의학과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더 적극적인 ‘사회적 의사’로 성장해 간다. 특히 대학시절부터 아프리카의 기아와 질병에 관심이 많아 자원봉사 활동 및 기금모음 활동 등을 활발히 하던 파머는 아이티와 인연을 맺게 되는데 특히 레오가네에서 본 임신한 말라리아 환자의 최후는 그에게는 공중 보건에 대한 사고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 밤 한 젊은 여인이 병원에 찾아왔다. 임신 중이었고 말라리아 증세가 심했다. 파머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중략) 수혈이 필요했습니다. 병원에는 혈액이 없었기 때문에 보호자인 언니에게 포르토프랭스로 가서 혈액을 구해오라고 했어요.(중략) ‘이건 너무해요. 가난하면 수혈도 받을 수 없다니. 우리 모두 인간인데...’ 그녀가 울부짖으면서 내뱉은 뚜 문 세 문이라는 말은 그가 그날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졌다. 미국인이라는 것만으로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인가?” p.139

결국 파머는 공식적으로 PIH(Partners in Health)라는 단체를 만들어 더 적극적인 의료봉사 활동 및 기금모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아이티 뿐 아니라 페루, 러시아 등 더 많은 곳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물론 파머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의료행위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 그처럼 구체적으로, 또 광범위하게 그런 문제에 뛰어드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WHO를 포함한 국제기구가 있었지만 실제 제3세계가 받는 혜택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던 시절이었다. 또 외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군부 쿠데타로 인해 아이티 입국이 금지된 90년 초부터 3년간 파머는 사회운동가로서 아이티와 아프리카 제3세계의 질병과 기아에 대해 많은 연설을 한다. 군부독재 아래 무너진 아이티의 국민보건을 위해 필요한 것이 꼭 직접적인 의료행위만이 아니란 것을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다행히 파머에겐 하고자하는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으며 필연적으로 많은 동료나 스폰서 등 조력자들이 나타난다. 아이티의 캉주에서 처음으로 학교를 세운 라퐁탕 신부와 마미토 여사, 하버드의대의 하이어트교수, 스폰서가 되어준 사업가 와이어트, 아이티의 대통령까지 올라간 사회지도자 아리스티드 신부까지 많은 사람들이 파머의 활동에 많은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파머에게 그러한 일들이 모두 우연하게 일어난 것은 아니란 점이다. 그가 그렇게 하기까지 한 헌신적인 노력과 실천이 모두 그러한 일들의 시발점이란 사실은 명확하다.

“이듬해 초에 하버드 의과대학 출판사는 파머의 글 ‘내 안의 인류학자’를 자체 출판물에 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빵 나누기 프로젝트의 대표가 파머에게 연락해왔다. 익명을 요구하던 기부자가 파머의 글을 읽고,”이 녀석 좀 만나보고 싶은데. 멋진 놈 같아.“ 했다는 것이었다.” p.158



사실 지금까지 노먼 베쑨이나 슈바이처박사 등의 자서전 등을 읽어봤지만 파머처럼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실제 질병, 특히 전염병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실제적인 활동이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 굼뜬 성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파머의 접근법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목을 끌기에는 더욱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 일군 가치도 매우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이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폴 파머의 업적을 더 빛나게 해주는 같다.

우리나라도 빈부 격차와 그에 따른 부수적인 갈등이 많으며 제3세계의 나라들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의료서비스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의료행위는 여러 가지 서비스 중에서도 고비용의 서비스에 포함되며 항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미국처럼 기부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욱더 스폰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가 ‘낮은’ 곳에서 봉사를 하고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병을 다룰 때는 더욱 비용문제가 절실해 진다. 카라바이요에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자 환자들의 약에 대한 내성이 크게 올라가 후속 조치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높은’곳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파머가 WHO나 기타 여러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아이티를 비롯한 제3세계의 보건환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이끌어 낸 것은, 후에 많은 기부자가 나타나고 여러 가지 대처방안이 수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보건복지부나 국회위원 등 정치권이나 공무원에 의사출신 인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청신호 위원회를 만들어 경우에 따라 약값을 유동적으로 하려했던 노력 또한 필요하다.    

또한 문화적인 관점에서 환자를 대할 때도 고려할 점은 많다. 물론 자신의 모국과 많이 다른 곳을 찾은 파머의 경우처럼 큰 문화적 차이가 있지는 않겠지만, 실제 병원에 자발적으로 찾아온 환자와 병원에 올 여력이 못되는 환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것이 환자를 대하는 의사로서의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환자에게나 치료와 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만 후속적인 관리에 있어서 여러 가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부분 역시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공적 부조 같은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 돌아가는 혜택이나 그 대상에 있어서 허점이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제도권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며, 보건 의료와 관련해서도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비의료인 의대생도 그 범주에 포함됨은 당연하다.



매스컴에서 본 의사의 단면 중 하나는 그들이 현실적 지위와 권리만을 생각하며 사회적 의무를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그와 관련하여 나는 의사가 되기 위해선 앞에서 언급한 머리 뿐 아니라 가슴까지 가져야 하며, 의대생이 되었다면 기본적으로 그런 마음을 의무적이나마 조금이라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대한 환원의식과 봉사정신은 사람마다 가진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무엇이 정답이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미래에 우리의 직업이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가 봐야할 것은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지 비용을 지불 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아니란 점이다.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개인의 삶을 포기하기까지 한 것처럼 보이는 파머처럼 의사로서의 삶을 살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자칫 파머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라고 믿게 될까 걱정하는 의미였고, 실제로 짐이 우려했던 오류에 빠진 자원봉사자가 많았다. 그러나 짐은 PIH의 일을 함으로써 개선하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빈민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파머 자신도 ”개인의 효용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게다가 파머의 삶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폴 파머라는 인물로부터 얻어야 할 것은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도 반드시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산 증거이지 내 인생을 바르게 살기 위한 지침이 아니다.” p.392

냉전 시대가 종식된 후 이념경쟁에서 승리한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사회복지 사상이 조금 희석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에서 체제이념의 우월성으로 주장하던 ‘온 국민의 평등’이란 곧 누군가는 더 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제 그러한 주장을 펴는 나라는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개념이 약해지며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공동체, 즉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에 있다. 예부터 내려온 지역 모임에 대한 소속감이나 이웃 간의 화목함은 사라지고 있다. 각박한 현실과 경제의 행정시스템에 묻혀 우리는 단지 소비하고 있을 뿐이지 누군가 언젠간 치러야할 번영의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GDP는 늘어나면서도 사회건강지수는 오히려 감소하고 아동학대와 청년실업은 증가하는 부작용은 사회의 부조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다행히 최근에는 북유럽 쪽을 중심으로 사회복지 제도를 강화한 나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기본적인 자본주의 제도아래 사회로부터 좀 더 많은 이익을 얻은 사람에게 그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양도 더 요구한다는 것이 그들 나라들의 취지이다.

방법론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많지만 그것이 항상 용이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비용이 들며 의료행위의 경우처럼 상대적으로 고비용이 들어가는 분야도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사회적 봉사란 강요에 의해서 누군가에게 부과될 수는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그것에 대한 제도적 관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머가 주장하듯 사회란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공동체이며,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만을 가지거나 회의 상에서 공염불만 외친다고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바뀔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부문화가 잘 발달되지 못했는데 그런 것 역시 차츰 바꿔나가야만 한다. 기부란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란 측면에서 볼 수도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입장에선 의사가 된다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가지고 있는 의료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현장에서 직접 봉사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자신이 사회로부터 얻은 소득의 일부를 기부 등의 형식으로 그곳에 다시 돌려줄 수도 있다. 물론 둘 다 모두 가치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방식이 의사로서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재정적인 기부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지만 의료행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어떤 대단한 방법으로의 사회적 봉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개인의 가치관에 달린 문제이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대에 다니는 지금부터라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많은 가치들, 예를 들면 사회적 지위나 명예, 부 등을 획득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했을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공중보건에 관련한 문제들이 단순히 감정에만 호소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사회적인 제도의 보완과 의무 부과라는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가진 생각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고 있는 폴 파머란 인물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나와 정말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구나.’란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 역시 파머처럼 살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파머를 마음속에 새겨두고 내가 나중에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실천방안에 대하여 고민하며 사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다.



“아뇨, 아뇨, 불평하는 게 아니에요. 아시겠지만 우리와 같은 배경에서 온 사람들은요- 선생님처럼, 대부분의 PIH 일꾼들처럼 그리고 저처럼요- 우리는 승자의 팀에 속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PIH에서 하려고 하는 일은 바로 패배자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거죠. 우리 모두는 이기는 편에 서고 싶어 해요. 하지만 패배하는 이들에게 등을 돌려야만 이길 수 있다면 그런 승리는 쟁취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나긴 패배와 싸우는 겁니다.” p.462




<목차>

옮긴이의 말 -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줄 현대의 슈바이처

1. 폴 선생님
2. 캉주의 양철지붕
3. 모험을 즐기는 의사들
4. 한 달 동안의 가벼운 여행
5.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선택

뒷이야기
도와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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