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V_한탄강의 기적(시공사)

Posted 2008. 8. 21. 02:14, Filed under: Hobbies/Books



신문에서 WHO의 한국인 최초 사무총장인 이종욱박사의 기사를 본 것이 작년이었던 것 같다. 한창 늦게 시작한 의대입시에 열을 올릴 무렵 신문지상으로 봤던 그의 업적은 정말 부러운 것이었다. 물론 국제기구의 장급이란 명예와 지위가 부러웠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고수하여 성공한 ‘인간승리’의 모습이 더 부러웠다. 무엇보다 그는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의학과 관련된 책들을 찾다가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호왕 박사라는 이름은 처음 봤지만 ‘한탄바이러스‘란 말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어서인지 이 책을 대출했다. 새로운 바이러스나 희귀생물체의 경우 최초발견자의 의견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여기서 한탄바이러스는 휴전선 부근을 흐르는 한탄강으로부터 왔다는, 정말 ’도전 퀴즈가 좋다’에나 나올법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처음부터 아주 재미있게 시작된다. 바로 세균전에 관한 언급인 것이다.

“내가 그 동안 세계의의학 및 미생물학계의 숙제였던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세균전’이라는 섬뜩한 용어가 내 주위에 망령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이 괴질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백신 개발에 몰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세균전의 사례 및 그 가능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망령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중략) 내가 이 책을 통해 단순한 학술적 보고서와 달리 세균전의 진상과 각국의 태도, 그리고 한탄바이러스 연구를 위한 모든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려고 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p.14

내가 군복무를 한 곳도 화학부대였기 때문인지 세균전이란 소재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 눈에 잘 들어왔다. 책의 초반은 거의 유행성출혈열의 정의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세균전 혹은 세균전으로 의심되는 일들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마루타를 통한 인체실험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731부대(이시이부대)에 대한 사료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이 또 이 원숭이를 해부하여 혈액과 간장, 그리고 비장의 부유액을 다른 원숭이에 주사하고 발병한 원숭이의 간장, 비장, 신장의 부유액을 세균여과기에 통과시킨 후 그 여과액을 원숭이에 7회에 걸쳐 주사한 결과 2회는 실패하고 5회는 성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중략) 그렇다면 그의 논문에 사용된 것만 계산해도 36마리가 희생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6.25사변중 미군이 한국에서 유행성출혈열을 연구했을 때 환자 쟤료를 어떠한 종류의 원숭이에 주사해도 병에 걸린 원숭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는 점이다. 미국 학자들은 일본 학자들의 논문을 읽고, 필리핀과 아프리카에서 여러 종류의 원숭이를 한국에 가지고 와 출혈열 환자의 혈액과 각종 장기와 등줄쥐의 혈액과 장기 부유액을 주사했지만, 일본 학자들이 보고한 것과 같이 발병한 원숭이는 한 마리도 증명하지 못했다. (중략) 다시 말해 일본 학자들이 보고한 원숭이 실험성적은 잘못된 것이거나 거짓이었던 것이다. 1995년 일본 작가 츠네이시가 쓴 [731부대]에도 1947년 기타노 일본군 731부대장이 도쿄에서 미군 조사관에게 유행성출혈열의 인체실험으로 희생된 사람은 101명이라고 진술하였다고 한다.” p.49~52  

어쨌든 마루타부대 뿐 아니라 소련에서의 인체 실험, 미육군에 의한 방대한 규모의 실험, 심지어는 한국전에서의 세균전 가능성까지 흥미꺼리의 뒤엔 기초의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저자가 가진 열정과 의욕, 애국심이 잘 드러난다. 사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가 가진 과학자 기질과 더불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각별했음에 있다. 그가 공부했던 70~80년대만 하더라도 박정희를 위시한 군사정권과 비민주적인 국내사정, 그리고 냉전시대가 줄곧 계속되던 험난한 시기였으며 특히 공부를 하고 싶어도 자금이 모자라 쉽사리 시작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였다. 그때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노력으로(저자는 운이 좋았음을 인정하지만) 미국의 자금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했고 또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만 끝까지 서구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국적을 지키며 젊은 독자들에게 애국심을 가르쳐준다.

“...강연 후 깁스 박사는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나에게 미국 국립보건원의 원로연구관으로 초청할 테니 자기 연구실에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내가 그의 연구실에서 출혈열 연구를 계속한다면 모든 지원은 물론이고 최고의 연봉까지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내가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연구를 하게 되면 좋은 시설과 무한한 연구비 지원으로 연구가 급진전될 것은 틀림없으나 한국에서 이룩한 우리 연구업적이 모두 미국의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 동안 한국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이루어낸 연구업적이 하루아침에 미국의 연구업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나의 애국심은 그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약삭빠르고 비겁한 행동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p.135

어쨌든 책 대부분은 그가 연구를 한 모든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그는 집필하기 10여년 전에 이미 여러 가지 내용을 녹음해서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노력파이고 또 집요하게 한 연구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환자 혈청 10개와 정상인 혈청 10개를 혼합하고 아무도 모르게 번호를 붙인 다음 이평우조교에게 주고 환자 혈청을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는지 알아봤다. 그는 정확하게 환자 혈청을 찾아냈다. 이런 방법을 맹검이라 한다. 이런 실험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환자 혈청만을 고를 수 있는 정확한 진단방법을 처음으로 표준화하는 데 성공했다. 나와 이평우는 이런 실험을 3개월간 말없이 반복하였다. 너무나 엄청난 발견이기 때문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한 것이다. 부푼 가슴에 나는 매일 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도 자지 못했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여 잘못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 나의 과학자로서의 생명은 끝나기 때문이었다.” p.111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공평하게 누구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그러나 노력하고 준비한 사람만이 그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들쥐의 폐장은 출혈열을 연구한 모든 과학자들이 조사도 하지 않고 버리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보내준 책을 읽고, 우리가 검사하는 들쥐의 장기 중에서 폐장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처음으로 폐장을 검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연히 날아온 한 권의 책이 나에게 행운의 여신을 만나게 해준 것이다.” p.112

그렇지만 그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상황과 아직 저개발 국가였던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의 자부심과 애국심에게 실망만을 안긴다. 하긴 그 당시가 전두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조금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1977년 봄, 내가 미국 NIH에서 한탄바이러스 발견에 대한 강연을 마쳤을 때 그들은 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줄 테니 미국에서 일하자고 제의했으나 나는 조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제의를 거절했다. 일생을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학자를 체육대회에서 상을 받은 체육인보다 못하게 대우를 하는 우리의 풍토가 너무나 안타깝고 부끄럽다. 연구업적은 역사에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과학자는 그것만으로도 족하지만 학자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려는 풍토는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개선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21세기에도 살아남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44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한탄바이러스를 찾기까지의 과정은 쥐와의 전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심지어 연구소 직원 12명 중 10명이 크고 작은 출혈열에 걸리는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생물 실험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접근하지 말라고 그런 곳은 안가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6장부터는 ‘서울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를 발견한 일화가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을 수 있는 그런 두 번의 기회를 그는 그대로 날려 버린 것이다.

“나는 다림플 박사와 상의한 끝에 이 새로운 바이러스의 이름을 서울 시내의 집쥐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서울바이러스’로 하고 1985년 2월, 미국 아보바이러스 카탈로그에 이 이름을 정식으로 등록했다. 내가 이 바이러스를 서울 바이러스로 명명한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처음 발견한 바이러스의 이름을 ‘한탄바이러스’라고 붙였을 때, 많은 국내외의 학자들과 학생들은 이 바이러스가 한국의 한탄강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바이러스를 대한민국 서울에서 발견하였다는 사실을 첫 눈에 알 수 있게 하려고 한 것이다.” p.199  

그리고 7장부터는 한탄바이러스 백신인 ‘한타박스’개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0년 우리나라 신약개발 1호인 한타박스를 만들기 위해 제약회사와 계약을 맺고 실험을 한 과정 등이 상세하게 나온다. 실제 당시 돈으로 얼마 얼마가 오갔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 정말 기록으로 남겨둠직한 객관적인 자료를 모두 알려준다. 물론 한타박스 역시 크게 성공했다.

“한타박스는 1992년부터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한타박스가 얼마나 우리 국민의 보건 향상에 이바지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방백신이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4년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약 1천2백명 이상의 유행성 출혈열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1995년부터, 다시 말하면 예방백신이 보급된 3년 후부터 출혈열 환자가 현저하게 감소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는 752명, 1996년에는 662명, 1997년에는 3백여명으로 감소했으며 사망자도 크게 줄었다. 특히 매년 1백여명의 환자가 발생하던 한국군에서는 1994년에 처음으로 예방백신을 군인에게 주사하고 그 후 환자가 매년 30명 이하로 떨어지고 사망자도 거의 없어졌다.” p.209~210

그 이후에는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노력한 흔적의 기록이 남아있다. 일본, 유럽, 미국, 이집트, 남미, 동남아, 소련, 중국 등 세계 어느 곳이든 간 그는 거의 모든 내용을 수기형식으로 남겨놓았다. 소설같이 재미있게 읽히는 자서전이었다. 물론 당시 정부에 대해 서운해 하는 심정이나 같은 국내학자에 의해 모함을 받아 황당해 하는 마음 등 좋지 않은 기분 역시 뒷부분에 잠깐 나온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 학자 중에는 아직도 우리보다 남을 더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흔히 외국 학자들의 성적은 무조건 믿으면서 정작 우리나라 학자의 훌륭한 연구결과는 잘 보지도 않고 믿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하루빨리 지양하고 우리나라 학자들을 아끼고 키워야만 우리도 국제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p.366

사실 이 책도 여느 책과 다름없는 그런 ‘의학위인’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더구나 저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서전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더 높은 것이 아닐까? 물론 지금 당장 이 책에 매료된 내가 보는 시각에 내 주관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절대 ‘자기자랑’에만 머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언급을 해서 좀 그렇지만 고승덕변호사가 쓴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이란 없다’란 자서전은 정말 읽다보면 ‘너잘났다!’란 말이 그냥 나온다)

기초과학자의 길을 내가 가보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의 생활신조와 삶에 대한 자세는 정말 본받아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만약 그때 그 역시 시대를 잘 만났다면 지금 황우석박사가 받는 정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다. 역시 노벨의학상도 나올 수 있었고 말이다. 이 책은 나온 지 상당히 오래된 책이지만(99년) 그가 바라보는 과학의 현실과 전망은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날카롭다. 특히 에필로그는 그의 심정을 잘 토로한 결정체인 것 같아 여기 모두 옮겨 타이핑했다. 이번 책은 지난번에 비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에필로그>

전쟁과 유행성출혈열, 그리고 한탄바이러스 연구에 얽힌 인체실험과 동물실 감염 등 과학사에 남겨야 할 사실에 대한 규명과 한타바이러스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매면서 여러 나라 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한 이야기도 이쯤에서 끝내야 할 것 같다. 다 썼다고 생각하니 빠진 일과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이 원고의 3분의 2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녹음해 두었던 것이고, 마지막 3분의 1은 최근에 정리한 것이다. 그 때 나는 현역 교수였기 때문에 연구논문 이외의 글은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지 않았다. 여기에 실린 모든 내용의 증거자료는 모두 잘 보관되어 있다. 그 중에는 공동 연구를 한 외국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곧 이 귀중한 자료들을 원본 그대로 실어 서신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59년 귀국한 이래 모든 연구를 한국 내에서만 했다. 미국에서는 두 번에 걸쳐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나를 유혹했다. 첫 번째는 1977년 초 미국 NIH에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한 연구내용을 발표했을 때 깁스 박사가 최고의 대우를 해줄테니 NIH에 오라고 제의했고, 두 번째는 1981년 여름,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에서 강의를 했을 때 셰러 교수가 미국의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의 주임교수로 오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추천하겠다고 했다. 물론 나는 두 번 다 그 자리에서 그들의 호의를 거절했다. 한국에서 어렵게 성공한 연구업적과 앞으로 노다지 광산에서 쏟아져 나올 연구결과를 미국에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조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6.25때 우리는 네 형제 중 세 형제가 군복을 입고 싸워서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일정 때 나라 없는 슬픔을 체험한 우리 민족이 아닌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지름길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로 만든 우수한 생산품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길이다. 우리 팀이 개발한 한타박스나 혼합백신도 그러한 신약이다. 21세기라는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남의 제품만을 수입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거나 수출하고 있는 제품의 몇 퍼센트가 외국 기술에 의한 것인지, 그리고 수익금의 얼마가 로열티로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는지 안다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한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가 골고루 발전해야겠지만 과학과 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그 직접성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나는 이 책에서 모든 여건이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연구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전달하고자 애썼다. 또한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 우리나라는 과학의 불모지였다. 연구 환경도 열악했고, 수도와 전기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으며 기름도 없어 구공탄을 때면서 연구를 했다. 그런 환경에서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한탄강의 기적’이라는 제목도 그 시절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아무쪼록 모두가 그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과학자와 과학 지망생들을 아끼고 사랑해서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업적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나는 학자들의 국적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민족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지금 같은 국제화 시대에는 그런 것들이 간과되기 쉽기 때문이다. 내가 태국에서 마히돈 왕자상을 받았을 때 내 뒤에는 한국대사가, 미국 수상자 뒤에는 미국 대사가 뒤따랐다. 노벨상 수여식에서도 수상자의 국적에 따라 그 나라의 대사가 수상자의 뒤를 따른다. 최근 한국인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예술가 P씨가 일본에서 상을 받았는데, 수상식에서는 미국 대사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의 국적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인’ P씨가 수상했다고 크게 보도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수상자 기록에는 그가 미국인이고 외국 언론 매체나 일본인도 그를 결코 한국인이라 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국적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외국에 나가 그 나라의 국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우수한 한국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새싹들에게 먼저 투자하고 그들을 빨리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분명히 조국이 있다. 그리고 조국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키워줄 의무가 있다. 21세기의 한국의 운명이 이 땅의 과학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가 과학자와 과학 후속 세대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뜨거운 가슴과 끊임없는 열정으로 과학에 청춘을 바치려는 모든 후배 과학자들에게 격려와 고마운 마음을 함께 전하는 바이다.

★목차

1. 보이지 않는 적
2. 괴질에 도전해 온 세계 각국의 노력과 좌절
3. 불가능에 대한 도전
4. 한탄강의 기적
5. 쥐는 위험함 보균동물
6. 제2의 병원체 : 서울바이러스 발견
7. 세계최초의 예방백신과 새로운 진단법
8. 국경 없는 연구
9. 철과 죽의 장막
10. 과학은 영원하다



P.S.

[3] 한탄 바이러스 명칭의 유래

- 유행성출혈열은 우리나라, 그중에서도 비무장지대와 전방부대에서만 발생하던 특이한 병이다. 모든 병에는 '히스토리'가 있는 법인데 이 몹쓸 병의 히스토리는 1952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즉 6.25 동란 중 중 부전선에서 발생한 것이다. 안전계원으로서 내가 알아야 했던 사실은 이 병이 '유행성'으로 옮겨 다닌다는 점, 그리고 병원체의 숙주는 들쥐 중 등에 줄이 나 있는 등줄쥐라는 사실, 그래서 전방에서는 풀밭에 앉거나 누우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으며, 환자의 발생은 '즉각 보고해야만 되는 사항'이었던 것이다.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몇 해 지난 1976년 어느 날, 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연구실의 이호왕 박사가 한탄강에서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보았다. 그것은 한국의학사상 기념비적 발견이었고 세계 의학계에서도 드문 일로 기록될 쾌거였다. 이박사는 당연히 이 병원체에 이름을 붙일 명명권을 갖고 있었다. 서양의 의학자들은 대개 이런 경우 개인사적 기념으로 작명하곤 한다. 그러나 이호왕 박사는 조용한 한국인이었으며 한탄강의 도도한 흐름 속에 실린 역사의 의미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는 이 병원체에 민족의 한, 분단의 한을 실어 그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서 '한탄(Hantaan) 바이러스'라고 명명하였다.

세월이 흘러 유행성출혈열은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전 국토 농지로 번져 갔고 이것은 농부들에게 위협적인 유행병이 되었다. 그러나 '한탄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이박사 팀은 예방백신을 개발하여 세상에 내놓으니 그것이 요즈음 신문지상 광고에서 자주 보게 되는 '한탄박스'이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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