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이 책은 서구의학의 발달 과정을 조금씩 집어준 책이다. (원제가 the alarming history of medicine인데 저렇게 해석을 한 것은 어떻게 보면 약간 농간이 섞이듯 하기도 하다. '의학'의 역사라고 한다면 독자층이 매우 좁아질테니..) BC 3000년경의 이집트 파라오 조서의 재상 이모텝이 피라미드를 건설한 건축가이자 의사였다는 사실부터 고대 그리스인들이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등 4가지 체액의 균형상태로부터 건강상태를 판단 했다는 것과 당시 최고의 의사였던 갈레노스가 그후 1500년간 의학을 지배했다는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전반부가 진행된다.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등 수학시간, 철학시간에 종종 등장했던 인물들이 의사였다는 사실도 나온다.
히포크라테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가 '발견'한 사항들이 현재에도 맞는 케이스가 많은 것을 이유로 역시 그가 대단한 의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예과생인 아직은 그가 남긴 많은 명언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인생은 짧고, 의술(기술,예술)은 길다/ 기회는 어느덧 지나가고, 경험은 믿을 수 없고, 판단은 어렵다/ 절망적인 경우에는 독한 약이 필요하다..등" p.19
그후 중세의 종교가 의학의 발달을 억압한 사실(해부 등에 대한 혐오, 병은 신이 준 것이고 낫는 것 역시 신의 주관일 뿐이라는 주장 등) 등과 르네쌍스의 대두, 바셀리우스와 유스타키우스, 팔로디우스, 윌리엄 하비 등 근대의학에 관여한 사람들과 레벤후크, 다윈 등 간접적으로 의학발달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점차 의학에서는 종교와 멀어지면서 사람이란 '생체적 기계'라는 설이 대두된다.
"우울하지만 과학적으로 말해, 우리 인간은 어느날 전원이 나가면 멈출 수 밖에 없는 전하를 띤 화학물질이 든 방수 가방일 뿐이다. 우리가 기르는 개, 정원의 새, 동물원의 코끼리, 부엌의 생쥐, 금붕어, 장미의 진딧물, 우리에게 이질을 일으키는 단세포 아메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그러하다. 이것들과 다르게, 심지어 '진화의 나무'에서 우리 바로 아랫가지에 있는 원숭이와 다르게 우리는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p.30
그후 1683년 뢰벤후크의 '현미경' 발명을 시작으로 미생물에 대한 연구와 바이러스, 세균등의 이야기가 나오며 파스퇴르, 코흐 등 현대의학론 수업시간에 이름을 조금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폴 파머가 존경해 마지않는 '피르호'의 이야기도 나온다.
"1848년 베를린의 차리테병원의 루돌프 피르호는 프로이센 사람들을 위해 실레지아 상부의 직조공들 사이에 발생한 발진티푸스 전염병을 조사하였다. 그의 보고서는 그곳의 삶과 위생조건을 정확히 비판하였고, 풍부한 국고보조금이 유일한 치료약이라는 사실을 지적했기 때문에 프로이센 정부는 그를 해고하였다. 그는 그뒤 독일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비스마르크를 반대했고, 보불전쟁 때는 구급차 부대를 조직했으며, 베를린의 하수도 배치망을 잘 설치해 전 유럽의 부러움을 사게 했다" p.55
파스퇴르와 제너, 리스터, 홉킨스, 에이크만, 젬멜바이스 등 그 시절의 의사들이 어떻게 연구와 임상을 했고 또 위대한 업적을 쌓았는지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그 시대는 모든 질병은 신이 몹시 분노하여 주신 것이고 신은 자비롭게도 그것을 치료할 약초를 심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연히 또는 전통과학적으로 전해져오던 방식들에서 영감을 얻은 연구성과들에 대한 이야기나 그것들에 대한 비화들 - 다윈이 같은 내용의 연구를 한 월러스가 더 먼저 발표를 할까봐 금방 '진화론'에 대한 주장을 한일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 페니실린을 생산한 사람인가? 플로리와 플레밍이 그것의 정자와 난자 사이일까? 에드워드 왕 시대의 고관의사인 윌리엄 오슬러 경이 말했던, "과학에서는 세계를 확신시키는 사람에게 명성이 돌아가는 것이지, 그 생각을 처음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를 누가 기억할까? 그리고 곰팡이가 핀 빵조각을 상처를 싸맴으로써 애써 그들의 일상적인 벤 상처와 멍든 근육이 곪게 되는 것을 막았던 글로스터셔의 우유짜는 여인네들과 슈롭셔의 젊은이들을 누가 기억이나 해줄까?" p.109
부대에 있을때 Sick_Call이라 불리던 병원에 가면 'pain'에 대한 단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벽에 붙어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고통은 정말 병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사실 지금도 많은 이유모를 '고통'이 존재한다. 특히 병을 치료할 순간에의 '고통pain'역시 만만치 않으며 예전에는 그러한 통증으로 많은 환자들이 희생되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4장에 나온 마취방법의 발명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에테르마취의 발견자인 두명의 치과의사와 그 중 한명인 모튼의 이기적인 행보와 말로 등은 소설처럼 보이기도 했다.(그렇다고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님!)
나이팅게일에 대한 진실과 허구 등도 나오는데 (나이팅게일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백의의 천사이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력이 강한 여성이라는 내용이 주된 것임) 그것 역시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흑사병같은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과 여성의 의사진출에 대한 당시 사회의 센세이션 등 가쉽꺼리 이야기들도 나오며, 초기의 이발사들이 외과의사를 동시에 하면서 그들이 따로 조합을 만들어 독립을 한 이야기 등이 나온다. 또 존 헌터나 앙브로와즈 빠레 등 뛰어난 외과의사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그 이후에는 성형의학에 대한 이야기 콘돔과 임신에 관한 이야기로 전개가 진행된다.
책의 뒷부분은 예전에는 성행했지만 지금은 시들하거나 아예 사라진 시술들이나, 여러가지 미신적인 의술행위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심지어 대체의학에 대해서는 '공상 과학물'이라며 심하게 비판한다.
"대체의학은 전체적 시야로 진상을 바르게 보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대체의학을 철저히 밝혀보면 아무런 실체도 없이 그것은 수평선 아래로 사라져 버린다. 대체alternative란 말은 의미없는 말을 의미있게 만드는 유행하는 단어이다. 그것은 고대의 신비주의, 약초의사들의 허튼 소리, 암시, 무지와 명백한 사기들을 미화한다" p.278
마지막으로 프로이트에 대해 언급하고, 정치와 관련된 의학의 소재들, 예를 들면 공중보건과 국민건강보험 제도 등의 이야기가 간단히 서술된다. 프로이트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였다. 사실 프로이트의 이론이 현대에는 '과학적 근거'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종의 '주장'에 불과하며 그 이후 융이나 애들러같은 보완된 설명이 많이 나오고 있는 입장이라 그런지 의사로서의 프로이트를 그렇게 잘 쳐주지는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책을 너무 더디게 읽어서 였을까? 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읽는데 지쳤다. 조금 재미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 처음의 앞선 의욕과 기대가 너무 컸던 것도 그 이유였다. 어지간히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조금 읽다가 책을 덮을 것 같지만 나름대로 유명한 저자가 쓴 책이고 또 '의학사'란 과목과도 매치가 되기 때문에 남는 것은 있을 것 같다. 또 예전에 박일환 교수님의 말처럼 영국이란 나라는 참 대단하다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영국의 의사인만큼 그 나라의 인물들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근대의 의학을 이야기 하니 '서구 근대의학의 발달과정'이 거의 그 안에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역자가 조금 맘에 안드는 점은 조금 허술하게 번역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번역에서의 주어와 서술어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보였고,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그러한 부분에서의 어색함이 책을 읽는데 눈에 종종 거슬렸다. 어쨌든 내년 1학기때 배울 분야에 대한 간단한 요기꺼리는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였던 앙브로와즈 빠레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증상들이 치명적인 상태를 나타내더라도, 항상 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라./ 돈을 위해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p.177
★ <목차>
01 히포크라테스와 그 후예들 02 인간, 미생물의 역사 03 암흑에서의 발견들 04 통증의 정복 05 황금머리의 지팡이 06 악령에 사로잡힌 이발사 07 섹스와 성의 뜻하지 않은 장애물 08 막힌 끝 09 이상한 치료들 10 프로이트, 영어 여성 가정교사와 푸딩 타는 냄새 11 학자들, 게으름뱅이 그리고 선생님 마음에 든 학생 12 정치적 통일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