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초반부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이다. 사소한 일들을 길게 쓰는 법을 잘 아는 작가여서일까? 자서전부분의 이야기도 상당히 세세하다. 그런 기억들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 소설 속에서도 그런 것들을 잘 끌어낼 수 있다. 샤이닝이라는 공포물도 결국 그 시초에는 알콜중독자였던 자신이 있었다는 스티븐 킹의 말은 사람의 경험이 글을 쓴다는 것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또 이 작가의 베스트셀러였던 - 적어도 내 기억속에선 - 미저리의 이야기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1985년 말에서 1986년 초까지 나는 어느 정신이 나간 간호사에게 붙잡혀 고통을 받는 작가에 대한 소설 <미저리>를 썼다.(당시의 내 정신 상태를 잘 말해주는 제목이다). 1986년 봄과 여름에는 <토미노커스>를 썼는데, 코카인 때문에 흐르는 코피를 솜으로 막고 맥박이 분당 130번이나 뛰는 상태에서도 자정까지 일할 때가 많았다.” p.118
실제 글쓰기에 관한 것은 ‘연장들’이란 부분부터 나온다. 거기에는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으라는 말이나 경박한 마음으로 원고지를 대하지 말라는 등의 조언이 나온다. 글을 쓸 수 있는 연장을 골고루 준비해둬야 항상 글을 쓸 때 꺼낼 수 있다는 말이다. 좀더 자세하게 스티븐 킹이 말하는 연장들의 우선순위를 꼽자면,
1. 단어(낱말) : 쉬운 말을 쉽게 써라.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좋다. 또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좋다(지난 번 코엑스몰 서점에 갔었을 때 우연히 2006년 신춘문예 당선 시작들을 모은 책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눈에 확 띄는 특징은 토속어 등을 많이 사용하는 등 28살의 내가 봐도 도통 짐작할 수 없는 단어들이 꽤나 많았다는 것이다. 시는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것인가?).
2. 문법 : 최고의 작가들은 때로는 문법을 무시한다. 그러나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면 차라리 규칙을 따르는 편이 낫다. 또 되도록 능동태를 써라(이건 우리나라 글에서는 해당사항이 별로 없는 듯). 부사도 그렇다. 너무 많이 쓰면 안 된다. 아니 아예 쓰지 마라. 굳이 쓰지 않아도 독자들은 다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3. 문단 나누기 : 문단은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굳이 의식하기 싫다면 그냥 나중에 나눠도 되니까 문단을 꼭 염두해라.
“소설의 목표는 정확한 문법이 아니라 독자를 따뜻이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기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은 글보다 말에 더 가까운 것이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 글쓰기는 유혹이다. 좋은 말솜씨도 역시 유혹의 일부분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그토록 많은 남녀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곧장 침대로 직행하겠는가?” p.163
창작론도 비슷한 부류의 조언이 들어있다.
1. 많이 읽고 많이 써라 : 멋진 글에 매료되기도 하고 또 최악의 글을 역지사지 삼으며 분발해라.
“그러나 여러분이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하기가 귀찮다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p.175
(그러고 보니까 스티븐 킹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거창하게 스토리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2. 상상력을 위해 TV를 치워라 : (맞는 말이다. 지금 방에 인터넷도 안되고 TV도 거의 손을 대지 않으니까 이제야 빌린 책을 읽을 시간이 난다. 물론 새벽 한시가 가까워지곤 있지만.)
3. 글쓰는 자리를 마련해라
4. 진실만을 말해라 : 솔직해져라.
5. 처음에는 문체모방도 좋다.
6. 글에는 서술, 묘사, 대화 뿐 이다. : plot은 너무 인위적이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 소설의 결말은 작가도 쓰는 중에는 몰라야 독자도 정신없이 그 소설에 몰두할 수 있지 않을까? 쓰다 보면 마치 작가가 화석을 발견하는 것처럼 글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plot과 story는 다르다. 스토리는 당연히 기발해야만 한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story에서 시작해서 주제로 나아간다.
7. 묘사는 너무 빈약해도, 또 너무 자질구레하게 지나쳐도 안 된다. : 묘사가 너무 길면 장황하고 지루해질 수 있다. 하나 요령이 있다면 인물 자체에 대한 묘사보다는 장소와 분위기 등을 묘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끝나야 한다.” p.214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소설을 젊은 시절 즐겨 읽었다는 작가의 말을 들으니, 하루키가 생각났다. 그도 그의 문학수첩에서 이런 말을 언급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티븐 킹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자라는 우리 세대의 소설가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도 나중에 이 작가들을 언급하겠지?)
8. 대화문을 잘 이용해라. : 진실해야 한다. 등장인물이 스스로 말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요령이다.
9. 순수한 상상력을 가지고 등장인물이 직접 되어보라. : 그라면 과연 무슨 말을 할까?
10. 연습이 가장중요하다. 물론 연습은 지루하지 않고 즐거워야 한다. 또 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11. 수정작업은 꼭 해야 한다. : 물론 그 횟수가 중요하진 않지만 적어도 상징성을 찾기 위해서, 또 주제를 찾기 위해서도 한 번 쯤은 훑어봐야 한다. 상징성은 option 일수도 있다.
(여기까지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도 이런 내용과 매우 유사했다. 문체도 그랬지만 중요한 건 상징성을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누가? 높은 사람들이 말이다. 그래서 난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지만! 상징성을 잘 못 찾으면 지루하기 십상이다.)
12. 글을 쓸 때는 문을 닫고 써라. 특히 초고 일 때는 타인에게 보여주지 말라. : 그 후에 한 2~3달은 그냥 그대로 놔두고 그 후에 훑어봐라.
13. 모든 소설은 실은 어느 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 가상의 독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14. 배경스토리도 있다.
“배경 스토리에 관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a.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b. 대개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내용은 넣어야겠지만 자기도취에 빠져 따분한 내용까지 마구 포함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남들이 기나긴 인생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곳은 술집이다. 그러나 그것도 술집이 문을 닫기 한 시간쯤 전에만 해당되고, 그나마 여러분이 술값을 내겠다고 말한 경우에만 성립되는 일이다.” p.281
전반적으로 책이 상당히 주관적이면서도(물론 주관적이지 않은 이런 종류의 책이 있을 수 있을까? 작가의 자존심이 걸린 내용이 말이다) 구성이 산만한 감이 있다. 작가는 뒷부분에서 이 책을 쓰다가 당한 사고 때문이라고 말하니까 조금 이해해 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연습문제 풀듯이 문장을 써보는 책은 조금 질린다. 그렇다 쳐도 읽고 나니 조금 남는 게 없긴 하다. 과외를 할 때 누누이 학생들에게 강조하던 사실! 수학 교과서를 아무리 정독하고 원리를 다 이해해도 문제를 풀지 못하면 시험성적은 나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꼭 문제를 풀라고 하던 나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일만 짚고 넘어가겠다.(중략) 그 문제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묻는 질문으로 어떤 이들은 은근하게 묻고 또 어떤 이들은 우악스럽게 묻지만 그 요지는 언제나 똑같다. ‘당신은 돈 때문에 일합니까?’
대답은 ‘아니오’다. 지금도 그렇고 전에도 그랬다. 물론 소설을 써서 꽤 많은 돈을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에 옮겨놓은 낱말은 단 한개도 없었다.(중략)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 p.308
방학 때는 간단한 소설이나 한두 편 쓰고 싶다. 지난 1학기 논문작성과 발표 수업 때 리포트로 썼던 소설, ‘개구리와 나비’도 나름대로 읽어보니 꽤나 좋은 성장소설이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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