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생각할 수 있나?
Posted 2008. 8. 22. 01:55, Filed under: Ex-Homepage/Essay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가 만든 메신저서비스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프로그램 상에서 가상의 인물을 친구로 등록하면 그 사람(!)과 채팅을 할 때 특정한 단어를 입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답변을 하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예를 들어 ‘나 오늘 너무 힘들다.’라고 글을 쓰면 컴퓨터 서버의 그 친구가 ‘저런, 무슨 일 있었나요? 힘내세요!’라고 답하는 식이다. 이것은 사전에 많은 경우를 조사해서 컴퓨터상의 가상의 응답기를 만든 것으로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모방한 간단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오랜 숙원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아이로봇’, ‘A. I.' 등의 영화에서 그렸던 사이보그의 모습은 과연 미래에는 정말 저런 일들이 현실화 될까라는 기대와 우려를 잘 보여준다. 실제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자동화에서부터 인간의 감정표현 단어나 물리적인 터치에 반응하는 애완용 로봇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점차 구체화 되어간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그러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대처할 수 있을까?
21세기 들어 과학 기술의 주축을 이루는 IT, BT, NT 산업의 발달은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 같다. IT 기술의 발달은 뉴로 컴퓨팅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뇌나 신경망과 유사한 시스템의 개발을 가능케 하였다. 그리고 그에 적합한 프로그래밍의 개발로 마치 컴퓨터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BT를 통한 생체 유사조직의 개발 및 NT를 통한 기계의 소형화, 정밀화는 마치 인간의 외형을 지닌 ‘로보캅’이나 ‘터미네이터’같은 사이보그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로보캅의 뇌는 원래 사고를 당한 경찰관의 뇌인 것처럼 대부분 사이보그의 머리는 실제 인간의 뇌이다. 즉 대중에게는 사람과 유사한 모형을 만들 수는 있다 해도 최후의 보루인 뇌만은 그럴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개발은 대용량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특정 상황에 대한 'case-by-case' 체계를 완성한 정도이다. 이런 복잡한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인공신경망의 개발로 가능해졌다. 그러면 그것이 과연 생각하는 기계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의 정의에 꼭 필요한 단어가 ‘자율’이라면 인공지능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극에 스스로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인공 접촉기 역시 아직 많은 난관 때문에 개발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생각의 기계’는 요원한 것이다.
점차 자동화, 기계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일자리는 줄어간다는 우려가 많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으며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동은행기계’는 창구의 직원을 내쫓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직업군이 있다. 우선 전문적인 일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기계는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불량률이 미세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의료산업의 특정부분 등에서는 기계보다는 아직 인간을 선호하는 분야가 존재한다. 한편 돌발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쓴다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일에는 인간의 창조성이 필수적이며, 동일한 패턴만 반복하는 기계의 두뇌로는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 즉 수열처럼 정해진 일이 아닌, 급박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판단을 결정하는 통합적인 사고는 인간에게 유일하며 아직 기계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일 그러한 수준의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계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면 그 다음단계인 ‘감정’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기계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또 감정을 가진다면 인간과의 차이는 거의 없을 것이며 영화에서처럼 인류의 편의를 위해 제작되어졌던 초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인간은 기계를 창조한 신의 역할이 되어 기계를 지배하고 부리길 원했지만 역으로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인간 소외 현상이 발생한 일은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 중에 하나이다. 즉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은 얼핏 보면 유토피아처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내표된 문제의 가능성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 과학 기술의 능력으로 아직까지 생각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없다. 화룡정점의 마지막 붓질이라 할 수 있는 ‘사고와 감정의 자율성’을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그러한 기술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점들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개발 단계에서부터 사회 각층의 심도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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