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만과 윤동주시인의 죽음과 이데올로기
Posted 2008. 8. 22. 01:53, Filed under: Ex-Homepage/Essay이데올로기란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뒷받침하는 관념체계”이다. 우리 일반 사람들은 그것에 파묻혀 살아가며 평소에는 그것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며 지낸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가치관처럼 어려서부터 형성되다가 궁극적으로는 공기와 같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나 민족처럼 대규모 집단에서의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90년대 초에 종식된 냉전시대 때처럼 국가들 간에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에 저항했던 윤동주 시인과 군부 독재시절 울분을 토해냈던 박정만 시인 역시 당시 암울했던 분위기 속에서도 의연하게 민족의 자유와 권리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있어 시란 자신의 주장을 강렬히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대한민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다. 개인적으로 그의 시에 드러나는 자신의 심리묘사가 너무 사실적이란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가 집필을 하던 시대상황에서의 ‘시’란 지금의 감상의 초점과는 약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서시’나 ‘참회록’,‘쉽게 씌어진 시’ 등 그의 대표작에는 내적으로 침잠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부끄럽게 했던 것일까? 윤동주 시인이 살던 세계는 일제 강점기로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아래 고통을 받던 불행한 시대였다. 그런 모습아래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시인이자 지식인으로서 윤동주 시인은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함에 슬퍼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진 확고한 의지와 신념의 표상을 시라는 무기로 적어 내려갔다. 물론 그의 시들은 일본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상반된 아주 무서운 것이었기에 윤동주 시인은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된다.
그와 비교하여 박정만 시인은 80년대 국내의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하였다. 사실 본문에서는 박정만 시인의 전반적인 시 경향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의 사회저항 이데올로기가 무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고 그 이후 전두환 정권의 문화적 탄압에 대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 점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행보였다.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덕목인 자유와 평등, 민권에 대한 열망은 군부독재 시절 그림의 떡에 불과했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반독재 민주 항쟁조차도 어용 언론매체에 의하여 호도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노해 시인이나 가수 안치환처럼 물밑에서부터 자유를 갈망하는 대중의 지도자들이 있었으며 박정만 시인 역시 그들 중 한명이었다.
두 시인 모두 개인적인 면에서는 비참한 말로를 보였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의 차가운 감옥에서 또 박정만 시인은 간경화로 화장실에서 죽고 만다. 그러나 시대의 잘못된 강요와 억압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들의 주장을 펼쳤던 많은 시들은 멕시코 저항운동가 마르코스의 말처럼 ‘무기’였던 것이며 당시 많은 민중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즉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들의 죽음은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는 운동을 가속시키는데 있어 기름의 역할을 했으며, 두 시인이 남기고자 했던 많은 가르침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들의 가슴속에 깊게 새겨놓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사회의 패러다임인 이데올로기를 한 개인이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힘이 약한 대중을 지배하며 억압한다. 그러나 많은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발전시키려는 운동이 있는 한 결국 이데올로기는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시’역시 그런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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