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쓴 춘향전
Posted 2008. 8. 21. 15:32, Filed under: Ex-Homepage/Essay<이 글은! 제가 99년도에 학교교양수업의 숙제로 한 것입니다~ 춘향전..
이구요..좀 깁니다..그리고 조금 더 황당하죠...>
춘향전!
사람들은 가끔 '첫눈에 반했다'란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러한 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때의 그 기분을 느끼지 못할 것이지만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성도령은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러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어쩌다 아버님이 계신 안채에 드나들던 젊은 여인네들을 보았을 때도 이런
감정이지는 않았다. 도무지 저 여자아이는 누구이길래 우리의 성도령을
눈멀게 한 것일까?
"방자형...나 지금 떨고 있지?"
"아이구 도련님...지금 햇살이 이렇게 쨍쨍한데 어째 몸을 그렇게 부르르
거리고 계신가요? 혹시 3달만에 처음 구경하는 바깥인지라 감격해서
그러시오?"
물론 방자가 누구더냐. 동네에선 눈치하난 알아주는 남정네였다. 성도령이
누구를 보고 있는지도 그리고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도 이미 초장부터
알아챘던 방자였지만 여지껏 보아왔던 도령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지금의
말과 행동에 흥미반 재미반으로 성도령을 놀려주려고 했다.
"형..장난하지 말고..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아.."
"흠..저기 옆에 있는 더 이쁘장한 아가씨는 향단이라고 하는데..향단이가
그렇게 맘에 드신단 말씀이세요? 하긴..향단이 정도면 남원에서 알아주는
미인이니.."
"아...아니...그 여인이 아니라..그네를 타고 있는 저...저
아가씨말이에요..."
"아하..춘향아씨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저 아가씨의 이름이 춘향이었구나..흠....방자형! 나 어떻게 춘향씨를
한번 만날 수 없을까? 응?"
사실 향단이 그 아씨와 함께 저기 멀리 그네놀이 하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방자는 어떻게 하면 다가가서 인사를 할지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뭐..정 도령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향단이보고 말을
해볼께요..하지만..하지만.."
"..?"
"춘향아씨를 자꾸 만날 수는 없을 겁니다..아마도..그 어머니라 하는
사람이 만만치 않으니...."
"어머니라 함은..춘향씨의 어머니를 말하는거죠?"
"월매라고 하는데..흠...여태 몇 명의 장정이 월매의 밥주걱에 따귀맞고
쫓겨났는지 원..다!! 저 춘향아씨하고 어떻게 안될까 하고 집적거리다가
그렇게 됐다우"
"흠..그렇다면 먼저 월매아주머니를 만나봐야 겠네요.."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그길로 방자와 성도령은 춘향의 집으로 찾아갔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진 후였다.
"흠...향단아~..향단이 있어?"
우선 도령을 울타리 앞에 세워두고 방자는 뒤쪽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향단이를 찾았다. 자신이 직접 월매에게 말을 하기엔 비록 도령이 같이
있다고 하여도, 방자는 옆집의 하인인 삼돌이로부터 그가 어제 겪었던
월매의 주걱공격이야기 때문에 어지간히 주눅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니~해가 진지가 언제라고 벌써부터 승냥이가 설치고 다닌다지?
승냥이고기 먹어본지도 꽤 된 듯 싶은데 오늘 한번.."
정작 들려오는 목소리는 향단이가 아닌 월매의 목소리였다. 다른때 같았으면
벌써 발에 불이나도록 달아났을 방자였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저기 사립문
옆에 서계신 분이 누구시더냐. 이 고을 성부사의 외아들인 성이성이
아니더냐. 그리하여 당당히 방자는 대꾸를 하였던 것이다.
"흠..흠...월매 아줌마 안녕하셨어요? 이야 그 동안 많이
건강해지셨네요.."
"아....방자구나...이렇게 야심한 시각에 어인일로 여자들 셋이 사는
집에..아차! 그 왜 옆집 삼돌이는 잘 지내고 있다니?"
"저...저는요....향단이한테 볼일이 있어서 온게...아..아니라요..저기
서계신 성부사님 의 외아들 성도령님께서 춘향아씨와 볼일이
있다고...하셔..서요..."
"잉? 아니..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늦은 시각에 여인네들만의
안식처에 불쑥 나타나신다더냐..성도령 성도령해도 아직 예의범절은
완성하지 못했나 보구나..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오시라고 전하거라"
의외로 한방 먹은 방자와 성도령은 그 길로 집에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다음날 성도령은 춘향에게 전할 자신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쓰느라
오전을 정신없이 보냈다. 드디어 해가 하산하기 시작할 무렵, 성도령은
방자와 함께 춘향네 집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누추한 곳을 찾아주시다니 영광이옵니다만..어인일로?"
눈치하면 남원에서 남방자 여월매였다. 하지만, 세상의 단맛 쓴맛 다 아는
월매가 성도령의 마음을 모를 리가 만무했다.
"저....월매아주머니의 외동..."
"아~외동덤(자반 고등어 따위의 배떼기에 덤으로 끼워 놓는 한 마리의 작은
새끼자반)이 먹고 싶다고? 예 향단아~~! 거기 술상에 고기한마리 얹어서
내와라~"
"저...저..그게 아니라요...외동따님이신..춘향아씨를 보고 한번에
반했습니다"
월매의 꾀에 성도령이 속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운명적인
속임수일 것이다. 왜냐, 이미 춘향은 월매의 말대로 옷을 가지런히 차려입고
성도령과 만날 채비를 다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그러셨군요..예 향단아~ 술상은 춘향이보고 들라고 하거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춘향이 그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잠시 월매의 기세에 눌렸던 성도령은 최대한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월매가 누군가? 재빨리 술을 따르며 성도령에게 권했다.
연거푸 잔을 권하길 어느덧 술병이 한두병 비기 시작했으며 적당히 취기가
오른 성도령은 호탕하게도 그 자리에서 춘향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만다.
"저 춘향씨..저번 단오날 그네뛰기 할 때 전 느꼈습니다. 그 느낀 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지만 그 느낌 하나만으로 전 지금
여기에 있는겁니다. 제발 저하고 사귀어 주십시오 춘향씨"
춘향이 역시 당시에 비슷한 느낌을 가졌었던 지라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둘은 약간은 배가 아프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었다.
"도련님~도련님...대감마님께서 부르십니다요~"
그렇게 젊은 두 연인이 아기자기한 시절을 보내던 3달 남짓한 어느 날
아침이었다. 방자가 무슨 일인지 급하게 성도령을 찾는 것이었다.
"이성아~요즘에 글 공부는 잘 되어가느냐?"
"아....네..아버님...자..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흠..네 이놈~! 어찌 아비앞에서 거짓된 말을 하느냐? 내 요즘 동네에 도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바 지금이라도 스스로 뇌우치면 그냥 넘어가려
했건만 어찌...!?!?!?"
"아버님..죄송합니다..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말씀을 드리려고 했.."
"듣기 싫다! 내일 우리는 서울로 올라갈 것이니라. 그렇게 알고 책을 다
정리하도록 하거라~"
"아니..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온지.."
"급히 서울로 올라와 다른 직책을 맡으라는 어명이니라."
"그렇지만 아버님..저는 여기에 머물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하기에도 더
조용하고 또.."
"어허~그래도 정신을 못차리는고? 너는 춘향이란 계집과는 신분이 다른 몸!"
"아버님! 사랑하는데 그 무엇이 방해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물론
정식부인으로 호적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저는 그렇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춘향씨와 헤어지지 않겠습니다."
"네....이놈~!"
"아버님..옆고을의 김씨아저씨를 보십시오. 그 아저씨는 자신의 사랑을 찾아
하늘나라에까지 갔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춘향씨를 잊는다함은 아무리
신분이 높다하여도 그 아주버니에 비하여 나을 바가 모가 있겠습니까?
예부터 사랑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군신간의
사랑이든 가족간의 사랑이든 친구간의 사랑이든지간에 전 그것이 진리라
배웠고 진리란 무릇 실천이 뒤따라야만 참진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처음으로 이성간으로 사랑을 처음 느낀 저에게는 아버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가혹하나이다."
"흠..나 역시 너와 같은 청춘기가 있었느니라.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의 일이니라. 물론 이성이 네가 춘향이와 사귀는 것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은 아니니라. 그러나, 네 자신이 스스로에게 떳떳해지지
않는다면 무슨 면목으로 춘향이을 볼 작정이느냐? 그리고 지금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너의 과거 시험이아니더냐? 그러니, 우선 같이 서울에
올라가서 확실히 매듭을 짓고 다시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또,
너만 남원에 놔두고 올라간다면 네 어머니의 심정은 어떻겠느냐..."
"....."
"내 만일 네가 서울에 같이 올라가서 과거에 급제하면 춘향이와의 만남을
허락해줄 뿐만 아니라 충분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터이니 이번에는 이
아비의 충고를 따르도록 하거라"
듣고 보니 아버지의 말씀도 틀린게 하나 없는지라 성도령은 어쩔 수 없이
남원을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날 춘향은 마지막으로 춘향을 보러 월매댁으로 갔다. 이미 성부사의
상경소식이 마을바닥에 퍼진지라 노심초사하며 성도령을 기다리던 월매였지만
첫마디는 역시 곱게 나오지 않았다.
"아 성도령..마침 잘 왔소~! 그것이 참말이오?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말이.."
"예..아주머니 그래서 이렇게 인사를..."
"아이고~아이고..이게 어쩐 일이다냐! 그렇게 철썩같이 믿었던 성서방이
배신을 해버리다니~아이고..우리 춘향이는 이제 어쩐다냐~"
어느정도 성도령의 성격을 짐작하고 있던 월매였지만 그래도 어서 확실한
답변을 듣고 싶었기에, 이렇게 과장되게 행동을 하는 것이였다. 역시나
"아...아주머니 진정하세요. 작별인사도 할 겸 그리고 춘향이와 나눌
이야기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들린 겁니다. 그리고 춘향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춘.."
"예 춘향아~ 어여 들어오너라~!"
마치 옆에서 이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춘향이 방으로 들어왔다.
잠시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생각같아서는 분위기 상으로 볼 때 월매를
이야기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지만, 월매도 또 나름대로 자신이 제3자의
입장에서 그 둘의 기약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지라 그냥 놔두었다.
"춘향씨..저...오늘 서울로 이사를 갑니다.."
"알고 있어요 이성씨.."
너무나 의연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이 둘이 어떤 주인공인가?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듯이 이별 또한 멋졌다.
"이거...제가 드리는 반지입니다. 항상 간직해 주세요. 그리고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춘향씨..제가 어찌 춘향씨를 잊겠소. 지금은 내가 가야만 하지만 꼭 내가
과거에 급제해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내 마음의 징표로
이 거울을 간직하고 계세요"
이 서로의 교환을 끝으로 잠시 이 둘은 헤어지게 되며, 이제 주인공도 교체가
되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부사는 변가였다. 그는 예전에 있던 고을에서도 모든 일을 잘
다스리기로 유명했다. 인물로 평하자면 키도 훤칠하고 눈매가 부리부리했다.
그렇지만 딱 하나! 그는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으며 특히 예쁜
여자를 보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춘향은 앞에서도 이미
이야기했듯이 월매의 노력으로 인하여 기생의 신분이 공식적으로는
아니였음에도 워낙에 인물이 출중한지라 변부사의 부름을 받고 관아에 가게
되었다.
"에헴..네가 바로 그 유명한 춘향이로구나~"
"...."
"흠....처음 봤을 뿐인데도 너무 맘에 드는구나~춘향이 너는 내 곁에서
수청을 들 생각은 없느냐? 이것도 인연같구나~하하하"
"사또, 우리의 만남이 인연인지 악연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또의 수청을 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흠...그래? 그렇다면 그 이유나 한번 들어보자꾸나~"
"저는 미래를 기약한 낭군이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과거시험을 준비하러
갔지만 얼마 후에 돌아올 겁니다"
"오..역시 얼굴뿐이 아니라 마음씨도 곱구나. 하지만 과연 그가 돌아올까?
우선 과거에 급제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주위에는 수없이 많은 서울의
양반규수들이 줄을 설 것이니라. 만일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다면 그가 무슨
낯으로 너를 다시 보러 오겠단 말이냐? 남자의 자존심이란 그런
것이니라.."
하지만 춘향이 역시 그렇게 만만한 말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사또..감히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만일 서방님께서 과거에
급제하신다면 저와 함께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내려오실 것이며 만일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신다 하여도 저에게 위로를 받고, 또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꼭 내려오실 겁니다."
"흠..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변부사의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 질투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이제 막 시작하는 앞길이 창창한 유능한 관리이고 성도령은
한낱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입시생일 뿐이다. 외모만 해도 그러했다. 자신은
어딜 가도 외모에선 자신있다고 생각하는 약간 왕자병기질이 있는 그였다.
그런데도 지금 춘향은 오로지 성도령만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괘씸죄라고나 할까? 변부사는 그러한 춘향에게 벌컥 화를 내는 것이였다.
"이 고을에서는 내가 왕이거늘 감히 나의 명을 거역한단 말이냐?
성도령인지 상도령인는 나에겐 전혀 상관이 없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여기서 너와 네 애미 월매의 앞길이 결정될 것이니라~! 나의 수청을
들겠느냐?"
성도령에 대한 마음이 확고한 춘향이였지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그의 홀어머니인 월매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정말 있는 정 없는 정 다 주면서 자신을 곱게 길러주신 어머니!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던 춘향과 성도령이 처음부터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월매라는 코치가 옆에 있었기 때문인 점도 있었다.
"어허~왜이리 대답을 못할까? 함흥차사는 함흥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남원에도 있는가 보구나!"
이제 자신이 있는 변부사였다. 왜냐하면 제 어미인 월매까지 언급을 한
마당에 효녀로 소문난 춘향이가 방금 전까지의 태도를 고수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였다. 문밖에서 이 말을 다 듣고 있던
월매가 과감하게 관아의 문을 열고 나선 것이다.
"흠......이보시오 사또양반~나 요기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는 춘향이
애미되는 사람이요!"
"아~ 안그래도 지금 이방을 시켜 부르려던 참이였소. 춘향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으니 어머니되는 월매가 한번 설득해 보시오..."
"그럴참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마치 변부사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월매는 부사와 춘향이, 그리고
아전들이 다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나의 어여쁜 딸 춘향아~지금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여기 이 추운 관아
뜰에 앉아있단 말이냐! 단지 네가 잘못한 거라면 이 어미닮아 그토록 이쁜게
죄라면 죄겠지..쯧쯧..그래 말만한 처녀에게 내 무슨 말을 하리오~네가 하고
싶은 사랑을 하려므나! 나처럼 사랑없는 사랑했다 애비없는 딸년 낳지
말것이며, 제 아무리 공주라도 지 마음에 있으면 바보온달하고 결혼하는게
사람팔자다 팔자..내 객관적으로 봤을 때 변부사 또한 인물에는 뒤떨어짐
없고, 그렇게 앞길이 챙챙하다 하지만 춘향이 네가 그토록 성도령을 잊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그 어떤 말이 필요하리? 그냥 내 걱정일랑 하덜말고 너
하고픈 사랑을 하려므라~!"
너무나 뜻밖에 말에 변부사는 황당함을 넘어서 그 두 모녀에게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이제 변부사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여봐라!! 저 두 모녀를 당장 하옥하여라!"
어머니의 말이 너무나 고마웠던 춘향이 감동을 다 하기도 전에 모녀는 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변부사의 정치적인 역량에 존경을 표했던
남원고을 사람들도 이제 하나둘 색에 눈이 먼 그의 모습을 비웃기 시작했다.
물론 변부사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월매와 춘향을 감옥에 가두기는
했건만, 그건 당시에 자신의 부하들이 보는 앞인지라 난처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그랬던 면이 더 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밤 밤 몰래 변부사는
모녀를 만나려고 감옥에 갔다.
"에헴..."
"아니..이 밤중에 이 무슨 소리냐? 거 말투를 들어대충 짐작하니 우리
모녀를 이렇게 모질게 대하는 그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인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던 동네 강아지가 짖는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도 능청맞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월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관가의 기생으로 한맺히게
자라온 그녀, 그 인간취급도 받지 못하고 진정한 사랑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그 한을 자신의 외동딸 춘향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 그토록 간절히
기르고 기원했건만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변부사요..사실 아까는 미..미안했소..하지만.."
"아이고~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란 말요~! 만약 그런 말을 하고 싶걸랑
우리 모녀 자유롭게 해 준 뒤에나 하소~"
"흠..춘향아~춘향아~어찌 대답이 없느냐?"
"..."
"내 정말 이번만은 진심이니라~물론 성도령을 잊지 못하는 네 마음..나도
충분히 이해는 한다...그러나~나 역시 너에 대한 마음이 성도령 못지
않으니..제발.."
"변부사님.."
"아~! 드디어 말을 했구나 춘향아~그래 무슨 말이든 해보거라"
"물론 변부사님이 저에게 호감을 가져주시는 점..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변부사님 말대로...성도령님께서 벌써 저를 잊으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저는 약속을 했습니다..그리고 믿습니다...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선은 제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건 성도령님과의 약속일 뿐만이 아니라, 제 스스로와도
한 약속입니다. 그러니 제발 저에 대한 마음을 접어주십시오."
"그...그..그렇구나..정 네 맘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좋다..그러면 나도
함께 성도령을 기다릴 것이니라..그리곤 그와 겨룰 것이니라! 남자대 남자로
말이니라~"
그러자, 그 둘의 진지한 대화를 옆에서 듣던 월매가 한마디를 한다.
"아 그럼 우리 모녀를 놓아주시는 건가요?"
"아..아..아니다~! 지금의 마음이 이러하다면 어찌 그대로 놔둘 수
있으리요? 내가 만일 춘향이라면 내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한양으로 가버릴
것이다. 그러니...성도령이 돌아올 때까지 춘향이만 여기에 남고 월매 너는
놔주도록 해주겠다."
이리하여 월매는 다음날 아침 자유의 몸이 되고, 춘향은 그대로 옥에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옥이라 하여 다 같은 옥은 아니었다. 감옥옥인지
구슬옥인지 구분이 안되는 나날이었다. 일단 마음으로 환심을 사지 못한
변부사는 여러 가지 물질적인 것으로 춘향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이다.
지푸라기 이불대신 솜이불을 몰래 넣어주었으며 음식 또한 사또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접하였다. 그렇지만 춘향의 마음은 그다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어느덧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그 둘의 밀고
당기는 싸움이 슬슬 잊혀져 갈 때쯤, 변부사의 임기 또한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이제 얼마 후에 변부사도 다른 고을로 가야만 했고 춘향이와도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쩔수 없이 볼 수 없게 될 처지였다. 그날 밤
변부사의 많은 생각을 했다.
'아~사내 대장부로 태어나서 여지껏 실패를 모르고 자라온 나다.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내가 무엇이 부족하다고 아직껏 소식조차
없는 그런 애송이에게 밀린단 말이냐...그 오랜 기간동안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니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이가...아 고민이로구나..'
"여봐라 거기 아무도 없느냐?"
"예~사또.."
"여기 술상을 좀 가져오너라~"
"예.."
그날 밤..변부사는 홀로 술을 마셨다. 병이 점차 늘어감에 따라 변부사의
눈빛도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변부사는 완전히 술에 취했고,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춘향이가 갇혀 있는 옥으로 향했다.
"춘향아~춘향이 자느냐?"
"아직 안자옵니다. 사또"
"그렇구나..아..내가 오늘 술을 좀 마셨다...그게 다 누구때문인줄
아느냐?"
"저 때문이라고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사또..결국 문제는 제가 아닌 사또에게
있는 것입니다."
"말을 역시 잘한다니까..으..그래 내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느니라..네가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난 너와 영영이별을 해야
할것이니라~"
"저 역시 그 동안 미운정이 더 들기는 했어도 약간 아쉬움이 남을 것
같군요.."
"흑..춘향아..내 이렇게 남자로써 마지막 자존심도 버리고 이렇게 너에게
부탁한다. 내 처음에는 너의 그 예쁜 외모에 반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그리고 너와 가끔 대화를 할수록 내 마음은 더 깊이
너에게로 가는 걸 어쩔 수가 없구나..그래 내 어찌 네 일편단심을 꺾을 수
있겠느냐만은..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다오? 응...기회를...내가 다른 고을로
가기 전에 성도령이 찾아온다면 그때 너에게 선택권을 주겠다.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다오.."
그동안 오로지 성도령만을 생각하고, 자연히 변부사를 멀리만 했던
춘향이였지만 자기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까지 보이면서 애걸하는 변부사가
한편으론 측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중에 변부사와 성도령사이에서 선택을
하라는 그의 말은 어이가 없었다. 춘향은 조용히 거울을 보았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고 다시 시간은 흘러갔다.
"월매아줌마~!!!"
"아..방자아닌가? 왜 이리 호들갑이더냐 아침부터?"
"저...저...우리 도령님이요 글쎄..과거에 급제해서 남원에 내려오고
계시답니다요"
"뭐? 성도령이 급제를 했다고?"
그렇다. 그 동안 서울에서 두문불출하고 공부에 전념했던 성도령이 드디어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남원으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몇몇 사람에겐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으며 또 다른 몇몇에겐 슬픈 일이였다. 그런데 왠일인지
춘향의 마음은 너무나 담담해보였다. 월매가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쏜살같이 달려갔건만 반응이 시큰둥했던 것도 이상했다.
드디어 삼자대면이 이루어졌다. 춘향이를 사이에 두고 변부사와 성도령이
앉았다. 변부사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 들은 성도령은 약간은 어이가
없어했지만 자신이 처음 춘향이에게 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럴수도
있으려니 했다. 결정은 결국 춘향이가 하는 것이고 성도령은 이제 누구에게도
뒤질 것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결정은 춘향씨가 하는 것이지요"
"그..그렇...지요.."
자신이 지나쳐 약간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 성도령의 말투와는 달리 그간의
사정을 잘 아는 변부사의 말은 힘이 없어보였다.
"자~춘향씨.. 그때 받았던 가락지..내 그동안 고이 간직하고 있었지요.."
"...."
너무나 의외였다. 감격의 재회로 눈물바다가 될 줄로만 알았던
성도령이었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춘향은 말조차 별로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드디어 춘향이가 말을 했다.
"변부사님..그동안 저에게 너무나 잘 해주신점에 대해서는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변부사님이 싫지는 않았지만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동안 그토록 쌀쌀맞게 대했던 겁니다. 물론 변부사님도 저에게
호감이상의 감정을 느끼시고 그 감정이 진실된 것이다란 점은 그 동안의
변부사님의 행동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정말 감사드립니다...하지만
저의 마음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물론 처음과 같지도 않습니다..."
그때까지 자신있는 표정이던 성도령이 춘향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잠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춘향이 계속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오로지 변부사님만을 원망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물론 심적인 고통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변부사님께서
아프셨듯이 저역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변부사님에게서라기 보다는
성도령님에 대해서 말이죠. 정말로...그렇게 시간이 없었던 것이였을까
하고 말입니다. 왜 그동안 편지 한장 없었을까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쉬웠습니다. 성도령님께서 주고 가신 거울...그 거울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의 님을 생각했습니다. 거울이 흐려지면 내 눈물로
그것을 닦아가면서까지 성도령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 그 거울을 깨뜨렸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이였습니다. 그렇게 소중했던 거울, 그 거울이 깨지는 것은 순간이
였으니까요..단지 그것을 떨어뜨리기가 어려웠을 뿐이죠. 절대 그 거울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도령님과 나를 연결해 주는 그 고리가
바로 그것 뿐이라고 믿었어요...오죽했으면 처음엔 그 거울에 보이는 것이
성도령님의 얼굴이였으니까요..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거울에 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잘못 보이는 것이지 생각도 해보고 다시 성도령님을
생각해보려 했지만..결국 그 얼굴은 내 얼굴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습니다. 인정을 하고 수용을 하자 마음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동안 내 마음속은 온통 성도 령님에 대한 생각 뿐 이였으니까요.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무엇이 부질없는 것이고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지요. 너무나
어릴 때 우리는 사랑했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고
성도령님은 자신있게 말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전 이제 진정한 사랑을 찾을 겁니다..우선은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에서
빠져나갈 거구요..그 다음에 진정한 사랑이란 의미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겠죠..그 동안 두 분..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춘향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두 남자를 곁에 두고 문을
나섰다. 문밖에는 월매가 걱정스러운듯한 그러나 자랑스러운듯한 눈빛으로
춘향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전 이제.."
"그래..춘향아..그냥 말없이 가거라..난 네 마음을 다 알 것만
같구나..네가 스스로 깨닫고 결정한 일이니 후회가 없도록 끝까지...끝까지
포기해선 안된다.."
"네..어머니.."
"그리고..언제든지 힘들 때는 찾아와..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겠지만..난 네 엄마란 이유하나만으로도 너에게 내 모든 것을 주고
싶거든.."
"..."
언제 쌓는지 월매는 향단이에게 짐을 맡기며 춘향을 잘 돌봐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그 둘은 길을 떠났고, 춘향은 어느 절의 비구니가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Ex-Homepage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품, 차가움 그리고 세모금 (0) | 2008.08.21 |
---|---|
해선 안될 생각 (0) | 2008.08.21 |
비가 내리네요. (0) | 2008.08.21 |
저에게는 정말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0) | 2008.08.21 |
어머니 (0) | 2008.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