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은하계를 읽고
Posted 2008. 8. 22. 01:51, Filed under: Ex-Homepage/Essay미디어(media): 매체(媒體). 매개체. 수단. 특히, 전달의 수단이 되는 문자나 영상 따위
캐나다 출신의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은 금세기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로서 추앙받고 있다. 그는 1962년 구텐베르크의 은하계(부제:Typographic Man), 1964년 미디어의 이해(부제: Extension of Man) 라는 두 권의 저서의 출간을 통해,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의 사후인 1990년대부터는 '사이버 스페이스의 예언자' 로서 재평가 되고 있다.
이 책에서 맥루한은 세 가지 종류의 기술 혁신이 인류의 문명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고 주장한다. 그 첫번째는 알파벳 문자의 발명, 두번째는 구텐베르크에 의한 활판 인쇄술의 발명, 세번째는 1844년 이탈리아의 마르코니에 의해 전신이 발명된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인류사에 있어서의 기술 혁신에 의해 세상을 인식하는 선형적인 감각의 균형이 깨어지며, 인간의 문화 공간, 심지어는 정치, 경제 등의 분야를 포함한 사회전반까지 그런 미디어가 확장되어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맥루한은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의 서술에 있어서 '모자이크적인 서술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을 채택하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고대시대 인간들이 사용하던 구어는 인간의 5감 전체를 사용하여 종합적인 감각(그는 이를 통감 또는 촉각이라 표현하였다)의 필요를 통해 의미를 인지해 들어가는 방식이지만, 문자는 종합적 감각의 일부인 시각에 막대한 권력을 부여하고 중점적으로 의지시킴에 따라 5감의 균형적인 사태가 파괴되고, 최면상태를 필연으로 야기시킴으로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인식을 제한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제한은 사물과 세계의 분절을 야기하고, 표준화시켜 균질성, 획일성, 선형성이라는 개념의 지배 아래 인식의 틀을 고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맥루한은 문자가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분리성을 막고 복합적이고 감각적인 인식의 방법을 찾기 위하여 모자이크적인 서술방식을 채택하였다고 밝혔다.
한편 맥루한은 이러한 미디어를 그 '미디어 자체의 정세도'와 '수용자의 참여도'에 따라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로 분류하였다. 핫미디어는 정세도가 매우 높은 미디어로서, 메시지의 재구성을 위한 상상력이 투입될 틈이 매우 적기 때문에 수용자의 참여도가 작다. 이는 미디어의 정보와 그 방식이 매우 정교하고, 다분히 조작되어 있기 때문에 수용자의 특별한 노력 없이도 인간의 감각기관이 스스로 반응하게 된다. 맥루한은 이러한 핫미디어의 대표적인 예로서 서적과 영화를 언급하였다. 반면에 쿨미디어는 핫미디어의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정세도가 낮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수용자가 메시지를 재구성 할 수 있는 여유가 많아진다. 이에 따라 수용자는 의미의 구성을 위해 상상력을 적극 활용하여 생각하고, 분별하며, 비판, 수긍하는 일련의 피드백 과정을 가지게 된다. 맥루한은 이러한 쿨미디어의 대표적인 사례로 텔레비전을 지칭하였는데, 그것은 텔레비전이 원시시대에 행하여 졌던 청각과 촉각에 의지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다시 만들어 내며, 음성언어와 인쇄술이 만들어놓은 불완전한 인간(그는 이를 ‘조각난 인간’이라 표현하였다)을 다시 '전인the Whole Man'으로 복귀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텔레비전을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미디어로서 칭송하였던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에서 맥루한은 기술발전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미디어의 변천사와 그를 통한 인간의 인지 방식의 변화, 그 결과 발생하게 되는 사회, 문화적 모습을 고찰하여 지금까지의 세상을 3개의 시대상으로 분류하였다. 그의 책은 다양한 주제에 관해 다양한 논점을 제기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가 나눈 시대적 흐름을 언급하면서 그의 주장을 고찰하고자 한다.
1_1.원시부족시대
원시부족시대는 글자란 것이 없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구두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였으며, 인간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의 오감을 동시에 사용하는 공감각적형 인간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을 함에 있어서 인간의 모든 감각이 총동원되어 대상을 종합적으로 감각하게 되어 완전한 이해가 가능한 시대였다. 맥루한에게 있어 이는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오감의 조화로운 균형이 발현된 이상적인 사회였다. 그 결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대상 그대로를 왜곡없이 인식하게 되고, 맥루한은 이를 '고결한 원시인' 이라 칭송 하였다. 맥루한은 고대 그리스의 호머 등을 예로 들어 청각적 감각이 시각적 감각에 의해 우선되는(맥루한은 청각이 시각보다 우선하는 감각이라 주장하였다) 고대의 이상적인 사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 시기는 구어문화시대로서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언술에의 의존도가 컸고 시각과 청각을 함께 사용함으로서 감각의 균형을 이룬 시기였다.
1_2. 과도기 (로마중세): 표음문자의 태동
고대 희랍시대에 음성언어가 생겨나면서 그 동안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던 귀는 눈에게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지배적 역할을 내어주게 되고, 감각의 균형은 비교적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눈의 세계로 서서히 옮겨가게 된다. 음성언어는 읽고 쓰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감 중 청각에 집중되어 있던 위상은 시각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음성언어의 등장과 함께 시각과 청각의 분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권력이 시각에 서서히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인지에 있어서 오감의 균형적인 상태가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아직 강한 구어적 전통이 존재하였으므로, 어느 정도 감각의 균형유지가 가능하였다. 또한 음성언어로 쓰여진 글은 글줄을 따라 내용을 수용자가 주체적으로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통시적이고 동시적인 사유를 가능케 하였다
2. 구텐베르크 시대(이성적자율적중심화되고 안정적인 개인)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자 구어문화는 매우 빠르게 몰락하기 시작하였고, 문자문화가 폭발적으로 팽창되었다. 문자의 발달과 더불어 인쇄술의 발명은 근대사회를 태동케 한 것이다. 이 시기는 음성언어의 사용과 더불어 시각공간의 형성이 인쇄문화의 등장에 따라 더욱 극단적인 형태인 선형공간으로 바뀐 시기이다. 선형공간은 질서, 분절성 등의 개념에 의존하며,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형식의 변화는 인간집단을 탈부족화 시켰다. 맥루한은 이 시기에 표음알파벳, 인쇄술 등이 모두 시각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감각은 거의 퇴보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파괴현상은 활판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가속화되었으며, 사람들은 책을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고, 묵독이 성행하고, 혼자 생각하게 되어 개인주의가 필연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정치적으로 볼 때, 개개인의 '관점' 형성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 결과 이데올로기의 탄생까지 가능하게 하였다.
맥루한은 인쇄의 특징을 분석적, 단계적, 순차적인 공정을 통한 무한정의 반복성으로 규정하고, 이는 결국 기계화의 원리로서 경제에 있어서 분업 및 전문화, 대량생산과 생산라인 형성을 가능케 함으로써 산업사회를 도래케 한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시각적 인식을 중요시하는 미디어(활판인쇄)가 발전함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인간은 내성적이고 이성적, 개인적인 인간으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음성언어를 통한 대화보다 글 읽기가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대체되는 가운데, 부족사회가 와해되고 탈부족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인간들은 소외되고, 더불어 정서적, 감각적인 생활은 점점 소멸되어 갔다.
반면에 인쇄술의 발달에 따라 보다 쉽게 글을 읽을 기회를 접하게 되고, 그에 따라 지식이 증가하게 되어 이성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문명이 자리 잡게 되는 결과도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인쇄기술의 발전은 지방어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모국어로 승격시키고, 이 모국어는 사람들을 결속하는 획일적 미디어의 역할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내셔널리즘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맥루한은 이러한 인쇄문화시대의 인간은 시각에만 편향되어 있는 조각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조각난 인간은 선형적 순차, 일률적 단위를 통한 재해석, 재배열된 이성의 지시에 따라서만 사유한다. 이에 따라 모든 것이 분리되고, 전문화 되며, 예술과 과학, 시와 음악, 사고와 행동이 분리 되는 심리적 파편화를 필연적으로 발생시켰다. 이러한 논리들에 의해 맥루한은 이 시기에 태동한 자본주의, 산업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세속주의 등은 모두 구텐베르크 은하계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며 이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인쇄술의 등장과 그 결과 파생된 읽기 문화는 합리적, 이성적으로 특징지어지는 서구적 삶의 방식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믿고 수용케 하였다. 맥루한은 이를 문자로 대표되는 시각 의존형 미디어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시각적 공간'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공의 결과물이라 지적하고, '무의미한 추상체로서 문자발명과 함께 시각은 다른 감각들로부터 분리되었고 이는 시각적 공간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의미 한다'고 주장한다.
3.전기 전자시대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마르코니가 전신을 발명하면서 맥루한은 '마르코니의 전신이 구텐베르크의 은하계를 침식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하며, 서구 사회는 내부폭발을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형식이 인쇄형식에서 전자 형식으로 변천하게 되면서,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절대적 형태인 선형공간의 세계는 공명 공간 또는 음향공간으로 변화하게 된다. 전파미디어의 발달은 기존의 인쇄문화에서의 일방통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탈피하여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고 대면교차와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케 해 인간의 중추신경을 지구의 전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문자시대의 단절되고 분리된 단편적인 파편들을 시공을 초월하여 통합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세계는 지구촌락으로서 사람들은 누구나가 서로서로 관련을 맺게 되었으며, 결국 인간 확장에 있어서의 최종국면까지 이르게 하였다.
서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맥루한은 인간의 5감을 촉각>미각>후각>청각>시각으로 서열화 하였다. 그는 이러한 전자전기시대는 촉각(공감각에 의해 경험이 교환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전체를 인식할 수 있는 감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이 좁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전자미디어는 내부 확산적 효과를 일으키는 매체이다. 이는 수용적 미디어로서 조각난 사람들을 퇴행시키고, 단편적인 것 들을 한 군데로 통합시킴으로써 인간을 재부족화게 된다. 맥루한은 전기전자시대의 대표적인 미디어로서 TV를 꼽았다.
텔레비전의 등장은 시각이나 청각 등의 단 하나의 감각에 의존케 하는 단일감각 커뮤니케이션에 종지부를 찍게 하고 인간의 세상을 인식하는 틀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고 그는 주장한다.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전자미디어는 오감의 사용방법과 반응 방법체계를 전체적으로 변화시켜 결과적으로 인간 전체의 삶, 그리고 전체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그 결과 구텐베르크 은하계 시절 이전의 고대의 잊혀진 청각과 촉각 문화를 되살려 내게 되고 세계를 누구나 서로 관련 맺게 하는 '지구촌'으로 만드는 주역이 된다고 주장한다.
맥루한이 조금 늦게 태어났더라면...
맥루한의 미디어(매체)론은 한마디로 감각비율에 따른 미디어 결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가 인간의 사회, 경제, 정치 등의 문화와 맺고 있는 관계를 테크놀로지에 따른 인간감각의 변화라는 측면과 이로 인한 사회의 변화라는 측면으로 설명한다. 오늘날 미디어는 의미의 중립적 전달자의 역할을 추월하여 그 자체가 인간의 의식, 그리고 사고를 형성하는 의미생성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환언하면, 미디어는 인간정신의 구체적 표현인 동시에, 그 자체가 의미 분석의 핵심적 텍스트인 것이다. 미디어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그 기능을 한다. 맥루한은 미디어가 의사소통 과정에 있어서 단순한 중립자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미디어가 달라지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그 결과 수용자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바로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의 내용이다.
맥루한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왜곡시킨 미디어로서 인쇄기를,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미디어로는 텔레비전을 예로 들었다. 텔레비전은 낮은 정세도로 인해 시청자의 참여와 보완의 정도가 높은 쿨미디어라고 주장한다. 그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청자의, 정보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보완은 인쇄시대에 갇혀버린 나머지 감각을 부활시킨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많은 부분,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선형적 추론 및 인과관계가 중심적인 요소로 작용하지만 맥루한은 인간의 문화라는 더욱 포괄적인 측면에서의 ‘선형성’은 인간을 기술에 종속시키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맥루한의 주장은 그 찬반이 극명하게 양분되어 있다. '금세기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라는 찬사에서 '바보상자의 도사' 라는 평가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이 책은 사실상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모자이크식 설명은 가뜩이나 난해한 내용을 더욱 이해하기 힘들게 했다. 아마도 본인이 구텐베르크 시절의 선형적 사고방식에 물든 눈으로 하는 독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맥루한의 주장은 논리적 설명이 부족하고 직관과 통찰력에 의존함으로써 매우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러한 주장들을 수긍하거나 반발할 만큼 본인이 교양인은 못되는 것 같아서 아쉽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위 말하는 정보화 사회(인터넷 제국)의 도래로 인하여 전사적이고 전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공간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점점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언급한 ‘전자 매체’란 것이 현재 인터넷이라는 새롭고도 강력한 미디어로 존재하고 있으며 나란 개인은 이미 그 속에 파묻혀 자란 문화적 소시민의 한명이다. 그러므로 산업화와 문예부흥시기를 거치며, 진리인양 선형화된 서구의 가치관 자체가 상대주의적 가치관의 만연과 더불어 본질을 위협 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맥루한이 주장한 내용은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예언적 주장이나 많은 예언의 실현들은 미래를 연구함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자료들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래서 냉철한 시각으로 앞으로 다가올 우리 세대가 겪을 미래사회의 모습을 더 심도있게 집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번 독서는 매스미디어라는 거대한 공룡에 잠식되지 않고 그것을 외부에 서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Ex-Homepage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만과 윤동주시인의 죽음과 이데올로기 (0) | 2008.08.22 |
---|---|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0) | 2008.08.22 |
광우병은 위험한가, 아닌가? - 한 카페에서의 반론글 (2) | 2008.08.22 |
2005년 1학기, 수화를 배우다. (0) | 2008.08.21 |
맥도널드화와 어플루엔자 (0) | 2008.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