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Posted 2008. 8. 22. 01:52,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사람들은 힘들 때마다 신을 찾곤 한다. 심지어 무신론자의 경우에도 어떤 경우에는 ‘신’을 찾는다. 시나 소설, 대중가요의 가사에서도 신은 소재로 자주 등장하며 각 나라의 전통문화나 종교 속에서도 신은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브루스 올마이티’란 영화에서는 그러한 신의 모습을 희화화 하고 있는데 그 영화에서 우리는 인간이 신에게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짐캐리가 분한 신의 역할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소원 이메일을 받고 그에 대해 판단하며 성취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꼬마들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에 관한 이메일을 받거나, 너무 많은 이메일 때문에 귀찮아서 자동응답으로 하려고 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 등은 아주 재미있는 영화소재였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정말로 신이 있다면 그는 그런 종류의 일을 담당할 것 같다고 느꼈다. 조금 덧붙이자면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있어서도 업무가 더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정말 신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흔히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며 신께 기도하던 사람도 낙첨이 되었다고 신을 원망하지는 않으며 설사 당첨이 되어도 신보다는 자신이 타고난 행운, 복에 흥겨워 할 뿐이다. 그만큼 신은 인간 개개인의 희노애락에 있어서는 가변적이기도 한 것이다.

 이 세상을 만든 자는 신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것을 보통 디자인 논증이라고 한다. 디자인 논증이란 세상은 복잡하지만 매우 조화롭게 잘 돌아가는 곳이며 그렇다면 분명 이런 세상을 만든 디자이너가 있을 테고, 그것은 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결과로부터 원인을 유비추론을 통해 도출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유비추론의 과정에 있어서의 오류이다. 유비추론이란 두 개체간의 유사성이 전제되어야만 하는데, 시계나 자동차 같은 일반적인 물품들과 비교하기에 ‘세상’이란 너무 거대하여 상호간에 비슷한 점을 쉽게 끄집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근거로 신의 존재, 적어도 디자이너로서의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는 지구와 생명체의 탄생은 오랜 시절동안 개체의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 원칙의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유신론자들은 최근 ‘지적설계론’이란 새로운 가설을 신의 존재에 대한 근거로 삼고 있다. 지적설계론이란 일종의 ‘과학적 창조론’으로 생명체의 진화를 인정하면서도, 결국 진화의 근원에는 신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 1원인으로 신이 존재한다는 말이며 그래서 제1원인 논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며 그러한 사실에 대한 원인의 시작이 바로 신이라는 논리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반론은 있다. 신이 그러한 인과의 과정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분명 그 신에 대한 원인 또한 있어야만 한다. 무신론자들은 왜 하필 그러한 절차상에서 ‘신’이란 존재가 마지노선을 이루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렇듯 논리적인 측면에서만 신의 존재를 묻는다면 분명 유신론의 입장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오히려 신이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당위의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신이 없다거나 혹은 신은 불완전하다는 가설에 근거를 제공한다. 신이 세상을 디자인했든 아니면 세상의 원인이든, 왜 전지전능한 신이 있음에도 우리는 테러나 범죄, 전쟁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악의 존재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신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경우에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나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것은 절대자의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매우 나약한 개인이며, 때로는 신이 있어야지만 인간은 나름대로 존재의 목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이나 천국과 지옥, 윤회사상 등 여러 종교에서 강조하는 사후세계의 삶은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처럼 우리의 소망에 대한 간절함이나 나와 가족의 무사안위를 비는 그러한 행동들은 그것에 응답해 줄 수 있는 절대자의 존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기에 신이란 그것이 우주 속이든, 아니면 우리의 마음 속이든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다. 신의 존재는 인간의 사고와 언행에 적절한 규범을 제공하기도 한다. 교회나 성당, 절, 사원 등에서 어린이 교육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종교가 제공하는 것 중에는 한 개인이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라날 때 필요한 가치체계와 개인적인 성장에 필요한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종교에서는 언제나 절대자의 존재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인간이 모여 살면서 그로부터 파생된 여러 사회문제들이나, 개인이 겪는 육체적, 심적 고통에 대한 마지막 비상구 역시 절대자인 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고대사회에서부터 내려온 절대자의 위상이 과학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많이 쇠락할 수밖에 없었고, 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의 존재가 우리의 일상에서 농담의 소재가 될 정도로 그 신성성이 보편화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설정한 근본적인 신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며 따라서 신은 존재한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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