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화와 예술 수업의 쪽글 모음

Posted 2008. 8. 21. 16:20, Filed under: Ex-Homepage/Essay

*2004년도 1학기에 들은 미국문화와 예술 수업시간에 적은 쪽글들입니다.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비판적인 글쓰기(!)가 쪽글의 주된 방향

이었습니다...미국문화와 예술이란 과목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수업은 아니

었지만 꽤나 괜찮았답니다. 쪽글은 일종의 간단한 리포트와 비슷한 형식이

었구요....아마도 쪽글모음을 읽어보시면 이 수업이 어떻게 진행이 되었구나

란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도 듣고, 관련영화도 보고, 학교

뒷산도 올라가보고....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은 굳이 연애를 할 때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이 ‘미국 문화와 예술’이란 수업을 들으려 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얼핏 강의의 타이틀을 보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류의 수업이 아님을 처음 강의 시간 때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는 희소식이었을 뿐이다. 일반인으로서의 보편적인 미국인의 모습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들의 단편적인 모습과 문화의 현상보다는 오히려 좀더 구체적으로 미국 문화의 시작과 연원,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음으로 인하여 그것을 나를 포함한 우리의 문화에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사실은 내가 이 수업에 대해 바라던 바와 유사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어떠한 운동에도 직접 참여하지도 않는 방관자적 입장에 있으면서도, 현재의 내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현실 상황에 대해서는 항상 불만에 차있는 이중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그때부터 항상 마음 한구석에 내 주변의 삶, 친구,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접근은 실패했었다. 그것은 당연히 그때 그때의 내 자신의 역량이 부족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현상을 관찰할 때는 기본적으로 그것에 대한 자기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인 이상 무언가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자신을 버리고 중립적인 마음가짐으로 그 사물을 바라 봐야 만이 진정한 깨침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나라는 존재는 이 넓은 세계에서 어느 위치에 어떤 비중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러운 그 국명 앞에서도 알게 모르게 약소국의 한 국민으로서의 자괴감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괴감이란 것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비교란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을 굳이 가늠해 보려고 할 때 은근히 나타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은 2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스스로가 제도권의 교육과정과 그 안에서의 여러 체험을 통해 주입해온 그러한 것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 A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여대에 다니는 학생이며 나보다는 4살이 어리다. 그러나 그가 행해온 여러 가지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난 항상 ‘부끄러워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어떠한 주제, 그것이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나 인권, 미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저항 등에 대한 그녀와 그녀의 소속 집단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무관심하게 바라봤었다. 한편 그런 와중에 내가 이 수업을 들으면서 집요하게 내 자신에 대해 물어본 사항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너는...지금까지 네 자신에 대한 탐구만 끈덕지게 해온 네가 이 여러 가지 문화적 사항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도 비판적인 눈을 견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렇다. 아직까지 몇 년에 걸쳐서 나름대로 행해오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탐구가 계속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과연 나란 사람이 어떤 다른 주제에 관해 수용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지금껏 제도화된 사회에서 살아오며 심하게 억눌려온 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한 학기 동안 그러한 것들을 타파하고 적어도 이 수업이 끝날 때 즈음하여 좀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 강좌를 수강한 보람이 있을 것 같다고 여긴다.


 구체적으로 내가 미국 문화란 것에 대해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KATUSA라는 군 생활을 통해서였다. 입대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 소문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또 나름대로는 군 생활을 통해서 좋은 경험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가 아는 미국문화, 나아가 공식적으로도 세계를 이끌어 간다는 거대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내 생활의 일부로써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수용’의 개념이 아닌 일종의 ‘주입’이었다 고나 할까? 더구나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그들간의  인종과 계급의 장벽은 미국이 기회의 나라일 수도 있지만 차별의 나라일 수도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나의 군 생활은 운이 좋게도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가지고 있던 미국문화에 대한 선입견에 새로운 내용들을 추가해 주었다. 흔히들 미군문화는 미국 사회의 최하위층 문화의 일부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미군에 자원한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고, 그들과의 생활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그들이 정말 풍문처럼 ‘쓰레기’들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언어란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그것과 관련된 수많은 속담과 격언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란 존재가 얼마나 그것에 휘둘려 왔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참담할 뿐이다.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을 느낄 때 난 무엇으로부터 그것을 느껴 왔었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상들과 감정들, 그리고 얄팍한 지식들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온 것인가? 바로 말이다. 그것이 수단이 되어서 의도하지 않으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을 지배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교과서와 참고서로부터 읽은 내용, 그리고 인터넷과 소문으로 들은 내용들로 인해 은연중에 세계문화와 그 핵심을 차지한 미국문화에 대해 세뇌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의문이 든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맥도널드의 햄버거를 먹으며 잡다한 그들의 슬랭을 지껄이는 내 자신을 보면 부끄러울 때가 있다.


 문화란 것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음악, 문학 등의 어떤 분류에 의해서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그곳에 뛰어 들어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봐야 만이 진정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곳은 공과대학이란 곳이지만 나 역시 그들의 문화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신입생도 아니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조금 쑥스럽기는 하지만 대학이란 곳이 자신의 전공만 공부하고 학점만 잘 받아서 취직을 잘 하기 위한 전초기지만은 아닌 것이다. 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며 살았었던가...그리고 얼마나 그것에 무관심하며 살았었던가 지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번 강좌에 기대를 하며 다짐을 해본다. 내가 가진 생각들로부터 얼마나 벗어날 수 있으며 또 그것을 나의 발전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대학에 와서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까? 단순히 컴퓨터의 작동원리와 작업을 배우고 싶었다면 좀더 저렴한 학원에 등록을 했을 것이다. 공과대학에 다니면서도 교양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종합대학인 연세대에 지원을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실용 그 이외의 것에 대한 갈구에도 그 까닭이 있었다. 난 그것을 위해 이번 강좌를 수강한 것이며 내 스스로도 그것, 즉 내 자신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적용한 세계의 이해를 위해 고민해 볼 것이다. 지금껏 몇 년 동안 그래왔지만 이번 한 학기에는 좀더 집요하게 그것을 탐구해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본다. 그리고, 내가 알아가는 것은 무엇인지도 또한 궁금하다. 나는 왜 사는 것일까? ‘행복해지고 싶어서’란 대답이 그 질문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답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나의 생활에 대해 행복하냐고 다시 물어본다.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 ‘나도 잘 모르겠다’란 어정쩡한 변명이 조심스럽게 나와 부끄럽다.

 나는 너무 모른다. 나는 부끄럽게도 친구 A가 왜 사회단체운동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B형이 왜 조교를 하다 학교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난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내게도 몇 번의 기회, 즉 내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이 있었다.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과 관련해 그 대상에 명확한 우선 순위를 매기는 것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나를 파악하려고 했던 첫 번째 시기는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해진 틀에서만 활동해오던 나에게 당시의 반장선거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의지와 그에 따른 행동들은 매우 딱딱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쉽게 부러지고 난 아팠다. 무언가 다른 방식의 가치관이 절실했었고 어느 정도는 개선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도 잠시 뿐이었고, 난 다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되었다. 입시에 대한 생각은 그 근본이 너무 강해서 어느 누구도, 또 어느 시기에도 그 위압적인 면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나름대로는 그 안에서의 문화랍시고 간간이 밴드활동이나 농구동아리 같은 소극적인 일탈행동들도 일으켰었지만 역시 ‘대학입시’는 자성이 매우 강한 자석과도 같았기에 난 나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 이곳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편 내 스스로에 대한 두 번째 고뇌는 고3 말에 찾아왔다. 이상과 현실의 자괴감, 그리고 이미 현실화된 사실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작아져버린 내 마음 등이 문제가 되어 98년부터 2년여를 내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참 고마운 것은 그때 난 나름대로 많은 기준을 세울 수 있었고 그것에 맞춰서 쉽게 좌절하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윤리시간에 배운 추상적인 선악의 ‘구별’이 아닌 개인적인 가치관의 ‘선호’가 많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또 그 와중에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군대에 갔다.

 군에 가기 전에 2가지 목표를 잡았다. 첫째는 나란 놈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자는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던 목표였고, 하나는 나중에 무엇을 업으로 삼을 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두 가지는 백미터 달리기처럼 딱 부러지게 끊어지지는 않는 것이란 걸 잘 몰랐던 탓일까? 예비역이 된 지금도 저 두 물음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2004년이 시작되던 날, 매년 초에는 늘 그러하듯 ‘올해의 목표’를 잡았다. 이번에는 ‘내 자신에 대한 탐구’를 뺐다. 대신에 HUP라는 고심 끝에 나온 프로젝트명 아래 야심에 찬 계획을 하나 세웠다. 그냥 나를 알아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HUP의 지향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과거행적을 알아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자아탐구가 완전히 배재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이 수업도 그 계획의 여러 분야들 가운데 나의 군 생활과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폭, 새로운 문화에 대한 나의 입장과 반응 등에 관련한 파트에 대해 하나의 지침서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수강신청을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이 강의가 좀더 많은 부분을 포괄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A에게는 그의 입장에서 본 나의 겉모습이 너무나 안일해 보였었나 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남자란 성별을 가지고 태어나(그는 여자이다), 연세대‘씩’이나 다니며 왠지 경제적으로는 별로 쪼들리지 않게 살아온 것 같고, 그 편하다는 카투사로 군대를 다녀왔겠다..무엇하나 남부럽지 않은 편한 삶만을 살아왔다고 오해했던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과 그 속모습의 일치란 가치의 문제는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지만 난 이점 하나만은 인정한다. 나는 너무 정해진 길로만 다녔었다. 바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시선을 돌려 주위를 바라보며 들판의 꽃들과 넓은 하늘, 때로는 죽은 고양이 시체 따위도 바라볼 수 있는 그 여유에 대한 의지가 내게는 거의 없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므로 올 한해, 특히 이번 한 학기동안에는 집중적으로 나를 공격할 것이다. 몽롱해진 머리 한 구석의 환각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286 컴퓨터를 가지고서 했던 오락 중에 ‘남북전쟁’이란 것이 있었다. 일종의 전략시물레이션 게임의 원조격인 오락인데 화면의 조잡함에도 당시에는 마땅히 할만한 게임도 없었고, 컴퓨터의 사양도 따라가지 못해 한동안 그것에 빠져 지냈던 기억이 난다. 게임의 진행법은 단순했다. 나와 상대방이 각각 남군, 북군의 진영을 차지하고 미국 지도모양의 게임 판에서 몇몇 기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땅을 늘려 가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미 상대가 가지고 있는 땅(지도에는 그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 병력의 규모 따위가 ‘귀여운’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었다)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군사를 이용해 상대방과 전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게임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그 정도가 어린 시절에 내가 처음으로 접한 남북전쟁의 전부라 할 만큼, 난 그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 후로도 영화나 소설 등의 간접경험을 통해 북쪽의 사람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남부지방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준 것이 남북전쟁이라는 이미지 또한 어렴풋이 가질 뿐이었지 그 싸움의 본질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남북의 경제 주체사이의 이익 충돌이 깔려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남북전쟁은 그나마 조금 관심이 있던 것이었고, 서부개척하면 존 웨인의 이름도 모르는 영화의 장면들과 미국의 제국주의는 고등학교 국사시간때 배운 제너럴셔먼호 사건 밖에는 생각해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역사에는 무관심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급변하면서 겪은,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부작용들이 비단 미국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구적 팽창 과정의 전형적인 모델일 수도 있는 ‘내적 개발과 과식, 그에 따른 외부로의 팽창 및 제국주의적 만행’에서 미국이 다르게 접근한 부분은 딱 한가지이다. 이번에 읽은 글에서는 그것을 ‘평화주의로 접근하여 간섭을 확대해가는 경찰력의 행사’라고 밝혔다. 사실이 그렇다. 조금 다른 방법을 썼다고 해서 제국주의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자칭하는 ‘후진국의 개발’이란 가면 뒤로 수많은 현지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이 억압되고 묵살되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경찰이 이미 존재해 있는 엄연한 한 나라에서 새로운 경찰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이라크에서 경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상대적으로 온건파에 속했던 시아파에서도 요 며칠 사이에 들고 일어선 것을 보면 미국은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제국주의의 블랙홀에서 그나마 일찍 비껴갈 수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인의 ‘전통적인 패배자에 대한 동정심과 내부적으로는 물적 풍요로움으로 인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한다. 매우 역설적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미국의 이미지를 만드는데도 그때의 여러 사건들이 한몫을 거둔 것은 맞는 말 같다. (한편으로는 ‘영토에 대한 적응도’의 차이도 미국식 제국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산업발달로 인한 경제적 부의 증가는 여느 나라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미국이 가진 ‘개척된 새땅’에 대한 관념과 ‘제2의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싶어 혈안이 된 영국의 영토 개념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한발 앞서 제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자유와 평등의 나라가 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부적인 인종, 계급, 성별 등의 차별문제에 있어서는 은연중에 지배 세력이 굳어지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세계경찰’을 자임하고 있다. 마틴 루터킹 목사 사건과 LA 폭동, 그리고 ‘하이어 러닝’과 같은 몇몇 영화에서 비춰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20세기 후반부에 있었다는 사실은 미국이 그들이 표방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 가치를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있었던 일들을 사실위주로 그대로 보는 것과 현시대인의 주관이 개입되어 ‘해석된 사건’을 보는 것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로 후자를 보고 배웠다. 세계사를 제도권 교육을 통해 피상적으로 접했다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상 다큐멘터리 보다는 드라마를 더 흥미 있어하는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영화, 음악, 문학 등의 대중문화로 포장되어 다가오는 ‘아름다운 나라’이야기는 의식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미국이라는 나라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문화의 수요자로만 머물었던 나에게 이번에 읽은 글은 그들의 피에 물든 초기 발달 모습을 알게 해주었으며, 미국의 본질과 미국인의 마음 한 구석에 깔려있는 속내를 조금 더 볼 수 있게 해준 좋은 기회가 되었다. 물론 그때의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강대국인 것은 사실이며 비판받아야 할 점들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더 많은 것도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부터 한 세기를 거쳐 오면서 미국도 내외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금의 미국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또 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나라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가지고 미국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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