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 지구관찰자
Posted 2008. 8. 21. 15:58, Filed under: Ex-Homepage/Essay만약에 지구를 관찰하는 제3의 무언가가 있다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던 상대방이 갑자기 죽어버린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 옆에 앉았던 사람이 졸던 중에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 보신 적은? 항상 육신은 존재하지만 영혼은 사라지는 것, 그것은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것들 보다도 섬뜻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나에게 의미가 있어집니다. 개인의 이기심이 작용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결국 관계 이전까지는 단지 그 자체의 껍데기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의 '꽃' 中
<AM 0427 - 방>
오늘도 어김없이 ㉠에게 아침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그가 물구슬같은 새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아직 등뒤의 땀을 닦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무언가 심상치 않은 꺼리가 다가온다는 인간 본능의 경고 때문이었다. 벌써 열흘째 계속되는 악몽이다.
BOX-I은 난감했다. 메뉴얼에 쓰여져 있는 것처럼 분명히 했는데도 이번판은 클리어(clear)가 되지 않는다. 어서 다음 단계인 Ga-3 II 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Mi-e에서 제자리 걸음이었다. BOX-I가 여지껏 그래왔듯이 행성시-2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그 캐릭터의 아바타를 자신의 보관함에 정리하고 다음 무대로 캐릭터를 이동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어찌도니 영문인지 아바타를 조종하기가 쉽지 않았다. BOX-III와 경쟁 중인 그에게 이런 지체란 달갑지 않을 수 밖에...
" 혹시? 이게 BOX-XI가 말한...?"
그에 따르면, Mi-e에서는 아주 가끔 시스템 에러가 발생한다고 했다. 행성시-47G에 있었던 일명 '스테라크소'란 아바타가 일으켰던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캐릭터 이동의 전권은 분명 우리에게 있었지만 가끔, 아주 가끔씩은 아바타 자신이 스스로의 존재에 의문을 품게 된다거나 하면 게임 프로그램 자체에 오류가 생기게 되고 그 스테라크소때 역시 서버가 다운이 되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었다. 그때는 결국 행성시-1이 지났을 무렵 BOX-XI는 BOX-VI의 아바타의 도움으로 겨우 Mi-e단계를 끝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 제길...쉽지 않겠는걸?"
그 사건 이후로 '체니, 르트르사'와 같은 다른 아바타들의 산발적인 랙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 빈도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TV/폭력/마약 등의 백신 처방으로 거의 대부분은 무난히 Mi-e지역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바이러스는 단순한 종전의 백신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었기에 BOX-I에게는 짜증나는 일이었다.
" 결국 재부팅인가?"
<PM 2311 - 옥상>
㉠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지난 열흘간의 삶은 고통이었을 뿐이다. 머리가 깨질듯 저려온다. 인간은 불완전한 현실로 인해 완전한 다른 상태를 그리워하는 존재이지만 ㉠에게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불분명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있는거지?"
그는 추락중이다. ㉠은 사라져간다.
검증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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