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 화려한 시절

Posted 2008. 8. 21. 15:58,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이것은 2003년 겨울..'시계밖의 시간'이라는 조금은 황당한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예전에 모모를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정말 말그대로 심/심/해/서 써본 소설입니다....재미도 별로 없고
구성이 약간은 조잡하지만 교훈적인(!)내용입니다. 하하하...

  바쁘게 살았었는데 잠깐 휴식중이군요(2003년 말부터 지금인
04년 1월중순까지...) 나도 멋진 글을 쓰고 싶은데..가장 시급한
문제는 맘에 드는 문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독서와 수양이 필요한듯~

  이상 내공이 부족한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가장 모르는 것에 대한 믿음보다 더 확고한 것은 없다.] - 몽테뉴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이 혹독한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오래 전에도 우리의 조상들 역시 바랐던 것이며, 승리하지 못한 이 싸움으로부터 여러분들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 자유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것을 마음 깊숙하게 느끼며 그로 인해 흥분하기를 바랍니다. 이 메시지는 곧 있을 그리니치 습격에 앞서 우리의 유언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았던 우리의 선조 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실패할 것이지만 그로 인해 지금의 이 사태가 조금이라도 지연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서기 2999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999년, 그리고 1999년처럼 올 한해 동안에도 세상은 온통 종말에 대한 두려움과 3000년부터 시작될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감에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12월이 되자 세계의 각 도시를 중심으로 새해맞이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고 한쪽에서는 신년 기도회와 같은 차분하고 뜨거운 대비가 이루어졌다.
 
 A와 그의 소대원들에게도 이번 12월은 의미가 컸다.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든 곧 있을 그들의 행동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오늘' 역시 '어제'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시간임에도 '특별한 시간'으로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라 불리는 오늘을 위해 오랫동안 연습을 해왔고 그때마다 실전처럼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실제 상황에 한 발씩 다가간다.

 '분명 우리들의 생각, 아니 주장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세계 각국의 방송매체를 통해 인류에게 전달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감동적인 장면을 볼 수 없을 테지만...'


[오직 각 종의 선에 의해서 그리고 선을 위해서  자연의 선택은 작동하기 때문에 모든 신체적, 정신적인 천부적 자질은 완성을 지향하며 진보해 나갈 것이다.] - 찰스 다윈
 
 그들의 목표인 그리니치 사무소는 '시간'을 팔아 그 이윤을 먹고사는 회사이다. 사실 먹고산다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특이하게도 그 회사에는 구성원이란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시간을 지배하고 그렇게 함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오메가'라는 무형의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A에게도 무형의 적이란 어쩌면 애초부터 상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메가로 인하여 나의 가족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당하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간과할 수만은 없었던 시민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A는 남들처럼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그는 TLL(Time Liberty Line, 시간해방전선)에 입단했다.

 사실 오메가의 인류파괴 음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풍요롭고 점점 더 편리해지기만 한 것 같은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진보한다고 말해왔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차이가 있었다. 단지 기술적 발전으로 인한 발달만이 있을 뿐, 인간에게 진정한 진보란 유토피아와 같은 개념이었다. 오메가의 시간지배는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법을 알게 되었고 결국 속도전쟁으로 치달으며 하루하루 그 한계점에 도달해갔다. 심지어는 인간의 언어 역시 정보교환의 수단으로 전락해가면서 차차 단어화/기호화되어갔다. 대뇌의 신경과 직접 연결되어있는 발성장치는 사람이 단어 하나를 떠올리는 순간 스스로 관련된 언어 형식을 확률적으로 창출해 내어 표현했다.(사실 이 메커니즘은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에는 과학의 놀라운 유용성과 인간의 지적 성과의 결과라는 찬사를 받았었다. 말을 줄이는 것과 생각의 단위가 문장에서 단어로 작아진다는 사실은 속도 경쟁의 시대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우월한 입장에 선다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문제가 터졌다. 말의 뉘앙스가 사라지고 대화의 묘미는 사라졌다. 물론 이웃과의 대화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눔을 통한 웃음과 울음의 공유정신은 증발했다. 대신 좀더 자극적이고 빠른, 그래야 만이 불안을 느낄 시간조차 줄일 수 있어서 외롭지 않고 행복(사실은 덜 불행한 것이지만)할 수 있는 정신적으로 황폐한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인류가 살 터전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문제점에 대처해 왔다고는 하나 그것은 마치 최고 높이를 향해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그것이 정점에 다다르기까지는 조금씩 속력이 줄어들지만 결국에는 운명처럼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소모적인 대체 문명의 발달경쟁 속에서 지구는 그 끝을 향해 황폐해져 갔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역시 인간의 탐욕과 그것을 지배하는 '시간의 괴물'인 오메가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1년이 생기고 1달이 생겼다. 그리고 '하루'라는 말로 한 달은 30등분되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점차 세분화되어 인간의 지각능력으로는 그 정도를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고, 그것은 곧 시간이 인간을 지배해 나감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며 살아갔다. 시간은 그들에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뛰어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사람들 역시 언론과 사상, 그리고 관습이란 탈을 쓴 오메가의 유혹과 협박에 길들어져 왔다. 공원에서 맡는 꽃의 향기와 촉감보다는 거기서 찍어온 사진 속의 꽃이 더 꽃답다고 불리는 상황은 분명 정상적이 못했다.

 비밀 조직의 형태로 결성된 단체인 TLL은 그러한 오메가의 음모에 대항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의 목표는 '시계 없는 사회의 도래'에 있었다. 그들은 인류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도 태양과 달은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의 자연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시간이 그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으며 지금은 아예 지구를 파멸의 길로 유도한다고 여겼다. A가 리더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화려한 시절'이란 것이 있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자 TLL이 이루고자하는 최종 목표입니다."

"하지만 저는 집이나 학교에서 그러한 곳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이미 세계의 기득권 층은 오메가에게 물들어버렸습니다. 이제 이
 '과거체험 마스크'를 쓰고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확실히 무엇이 진실
 인지가 밝혀질 것입니다."

 A도 마스크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과거체험마스크란 일종의 개인영상정보 전달장치였다. 마스크를 쓰면 자신의 새로운 아바타가 화면에 등장하여 본인이 원하는 단계로 시공간을 이동하게 해주는 도구였다. TLL에서는 항상 신입 대원들에게 기존의 고정관념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아이모자'라는 아이템을 아바타에 입력한 후에 편견이 사라진 눈으로 인류의 과거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또 왜 그러한 신념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조직원들이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했다.

 오늘 A는 본인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 TLL에 들어왔지만 아직까지도 무엇이 바른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없었다. 그가 자라왔던 모든 환경은 아직까지도 TLL을 위험하고 극단적인 테러단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님세대도, 또 할아버지의 세대도 각 시대마다 정해진 제도와 규범을 잘 지키며 살다간 '모범부류'였었고 적어도 어린 A의 생각에 그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일종의 불안감과 회의감을 뒤로한 채 A는 마스크를 작동시켰다.

 '나의 아바타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은 약간은 투명해 보이는 마네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리더가 말한 아이모자라고 여겨지는 작은 모자를 하나 쓰고 있는 것을 제외하곤 다른 옷이라든가 액세서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무슨 숲 속의 길 같은데 처음 와본 곳이다. 확실한 것은 저 인형 같은 놈이 나의 생각대로 움직인다는 점뿐이다. 나의 뇌가 저 사이보그 같은 놈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아바타는 어디론가 움직였다. 아마 입력된 코스로 가는 것이리라. 반갑게도 얼마 가지 않아 작은 건물이 보였다.'

 {TLL 과거 회복실 - A군을 환영합니다!}

 조그만 문 위에는 다음처럼 쓰여있었다. A는 리더가 일러준 대로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모든 면이 하얀 벽면으로 칠해져있고 방 한가운데에 있는 원형 띠처럼 생긴 캡슐들만 없었더라면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방처럼 느껴졌다. 캡슐로 가까이 가보니 모든 통마다 자신의 이름과 해당 연도가 적혀있었다.

 'A-2987은 2987년도의 내가 있다는 말인가..?'

 그는 자연스레 올해의 연도인 2999년이 쓰여진 캡슐을 열었다. A는 스포츠카의 좌석같이 생긴 구조로 된 의자에 앉아 캡슐의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주위는 어두워졌다. 그리곤 원통형 화면에 영화처럼 들판이 보이는 듯 싶더니 A의 주위가 온통 스크린으로 변해버렸다. 더욱 황당하건 A의 아바타가 그 장면 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맙소사.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건가? 그런데 여긴 어디지?"

 "안녕하십니까."

누군가의 목소리에 A는 뒤를 봤다.

 "저는 여기서 당신을 기다려온 Wait-Er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저는 당신이 안전하게 이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시중을 들것입니다."

 "누구의 부탁이죠?"

 "저 역시 TLL소속의 대원이며 제 역할은 신입대원들에게 우리의 이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이제 당신도 우리의 일원이 되었지만 아직은 지금까지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고 혼란스러워 하기 때문에, 저는 지금부터 당신을 도와 우리가 원하는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현재(2999년)의 캡슐을 탄 A는 자유롭게 원형의 캡슐들을 따라 가고자 하는 연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해를 떠올리기만 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먼저 언제로 가야합니까?"

 "그건 당신의 주관에 달려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보다 나빴던 상황은 과거 어느 시대에도 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18C를 추천해 드립니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조금 있으면 적응이 될 겁니다."
 
'역사시간에 배웠던 18C는 'P(Paradise)'라고 불리는 시기였다. 그림 속에서만 보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이거 위험하지는 않겠지요? 당신도 함께 갑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은 A의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바타의 여행에 불과하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해서 안전하기만 한 것 역시 아닙니다. 단 한가지만 명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아바타는 그 시대를 이동하면서 살수 있지만 당신의 머리 속에 든 생각 그 자체는 2999년의 그것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한 명의 관람객으로서 그 시기를 느껴야지 당신의 관념이 그 시기의 주체가 되려고 한다면 프로그램이 다운될 수 있습니다. 이점만 유의한다면 당신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함께 가지 않습니다. 저의 역할은 단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인도할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나오는 문 옆에 대기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내 생각에 훌륭한 삶이란 것은 행복한 삶이다.] - 버틀란드 러셀

 A가 처음 도착한 곳은 한 인디언들이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어떤 부락이었다. A가 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처음 그의 걱정과는 달리 A의 아바타는 벌써 인디언의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언어와 생활방식도 벌써 아바타에게 입력이 되어있는 듯 했다. 그의 아바타는 마치 인디언들과 오랜 생활을 함께 한 듯 쉽게 사회에 적응했다. 그들에게는 TV나 자동차는 물론 기계적인 시계도 없었다. 그러나 A의 생각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불편해 하지 않았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풍요롭게 생활하는 그네들의 모습을 보자 어느덧 A도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낮과 밤이 확연히 존재했다. A가 살던 때에는 밤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과 그것을 본 따서 만든 발전기로 24시간은 온통 대낮처럼 밝았다. 그들에게 어둠이란 영화관처럼 특수한 상황에 따라 형성되는 임의적인 것일 뿐이었다. 인디언 마을은 달랐다. 장작불을 피우는 마을 입구의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온통 어둠이 깔리고 정적이 맴돌 뿐이다. 물론 그 고요함은 A가 지냈던 곳의 적막과는 거리가 있었다. 기계, 자동차 소리와 네온불빛에 찌들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이 온몸을 감쌌던 것이다.

 해가 뜨는 것이 아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인 A에게, 닭의 울음소리와 새의 지저귐 또한 아침의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시계의 숫자가 가리키는 정도에 따라 하루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눴던 그의 사회였다. 아니 그것은 자연을 효율성이란 명목으로 죽인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A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됐던 경쟁과 분란은 찾아볼 수 없었기 또 한번 놀랐다. 대신 서로에 대한 인정과 공유하는 마음이 일반적인 인디언들의 모습에 배어있었다. 그들에게도 똑같이 열정과 욕망이 있고,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전체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누구하나 제몫 때문에 이기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여러 생활방식이나 음식물 등이 불편했지만 편견을 사라지게 만드는 아이모자 덕분인지 예전의 편안했던 기억은 쉽게 잊혀졌다. 

'그렇군. 내가 편했던 것은 모두 상대적이었어. 이들은 너무나 행복하지 않은가!'

 심지어 인디언들은 A시대의 사람들처럼 영원한 삶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근본부터 다른 믿음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영원이란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고 소멸이란 곧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믿고 있었다. A가 항상 들어왔던 것은 인간의 불멸에 대한 꿈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그 문화적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A는 인디언 마을에서 1년여를 지내며 그가 그토록 찾던 화려한 날들이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즉, 이곳에 온 이래로 처음 A는 TLL의 목표가 '왜' 정당한지에 대해서도 확실히 인정하게 된 것이다. 외부의 빨라짐이 그들 내면의 평화를 파괴했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이제 다시 현재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생각과 함께 배경은 바뀌었다. 

 "잘 확인하셨나요?"

Wait-Er는 A가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서있었다.

 "내가 얼마동안 여행을 한거죠?"
 
 "당신이 그곳에서 있었던 시간의 총량은 2999년 기준으로 3분 23.41초가 흐른 것입니다."

 "그렇군요. 꽤나 많은 일을 하다가 온 줄 알았는데..."
 
 "그 당시는 아날로그 단위였지만 지금은 모두 디지털화 하여 시간의 양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어쨌든 다른 때도 확인을 해보시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라. 그러면 그대의 믿음이 그것이 사실이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 윌리엄 제임스

 A는 그때부터 조직에서 많은 훈련을 받으며 단련했다. 오메가는 세계의 곳곳에 퍼져있었기 때문에 모든 지점을 동시에 공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TLL에서는 분점마다 우선 순위를 매겨 두었고 오늘 바로 A의 팀이 '그리니치 사무소'를 습격하는 날이 온 것이다.

  '그래 이건 상징적인 저항일 뿐이야. 하지만 조금은, 조금은 인류의 파멸이 늦춰지겠지.'

 다짐을 되새기며 A는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경비원들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에 근처 술집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간혹 보이는 경비들도 A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실장님, 메리크리스마습니다! 올해도 잘 보내시고 언제 술이나 한번 하시죠?"

  A는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애써 자신의 속내를 감추려고 했다. 오메가에게 매수된 놈들이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쌍한 친구들이여. 내가 오늘 자네들을, 아니 온 인류의 삶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하겠네'

 제한구역의 CC-TV에 A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경비복 차림의 A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례 있어 왔던 자정순찰을 할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A는 곧 세계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시계가 보관되어 있는 방 앞까지 접근했다. 그곳은 순찰도 허용되지 않는 통제구역이었지만 이미 지문카드와 망막복사렌즈를 준비해 두었기에 순식간에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 저 친구 저기서 모하는 거지?"

동료들과 카드놀이를 하던 경비원 김씨는 무심결에 본 폐쇄회로 화면에서 A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자기 시계 맞추는 거 아냐? 거참 사람하곤 빨리 카드를 내기나 하게."

 "가만있어봐. 뭘 꺼내는데? 모지? 럭비공인가?"
 
 "어? 저 구역 마이크 좀 연결해봐."

꽝...

 A의 기억은 희미해져간다. 모든 것이 한번에 돌아올 수는 없지만 이것으로 화려한 시절이의 도래가 조금은 앞당겨 질 것이다. 부모님의 얼굴, 애인의 얼굴, 그리고 TLL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까지 모든 장면이 한순간에 쏟아져 내렸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뉴스속보를 알려드립니다. 오늘 23시 59분 57.12초에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폭발사고가 있었습니다. 비상 근무 중이던 경비병들에 따르면 그곳에서 10년간 근무해 왔던 경비원 A실장이 접근 금지 지역에 무단으로 들어간 뒤에 가슴에서 폭탄을 꺼내 터뜨리고 자신도 그곳에서 숨졌다고 합니다. 한편 경찰은 입수된 폐쇄회로 화면을 분석하여 내일 09시 00분 00.00초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번 그리니치 천문대의 폭발 사고는 1999년에 한번 있은 후에 1000년만에 다시 발생한 일로 테러의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점으로 보아 수사당국은 우선 개인적인 정신 이상자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TLL본부...

 "또 실패군요."
 
 "역시 한번에 소탕하지 못하면 인간은 계속 당할 겁니다."

 "설사 우리가 그렇게 해준다고 해도 인간들에게 그러한 혼돈을 견딜만한 능력이 있을까요?"

 "그건 그렇지만..."
 
 역시 A의 시도도 실패했고 오늘 TLL의 미팅 역시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멈출 수 없었다. 얼마 후면 그들이 대항조차 못할 정도로 오메가의 세력이 커져버리는 날이 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게 그냥 애초에 준대로 살면 될 것을...쯧쯧"
 
 "그런데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나서야 하는 겁니까?"
 
 "우리가 만들었으니 책임은 져야겠지요."

 그들은 새로운 전사를 찾아 나섰다.


[미래가 어떤 것을 가져다 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데모스데네스


'Ex-Homepage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4HUP 1탄; 인정에 관하여  (0) 2008.08.21
자작소설 : 지구관찰자  (0) 2008.08.21
미미의 기억  (0) 2008.08.21
초등학교 때 일기  (0) 2008.08.21
일본 음악의 이해  (1) 2008.08.21
Response : ,


Tag cloud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Calendar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Bookmarks

  1. Ted Ideas
  2. My Facebook

Site Stats

TOTAL HIT
TODAY HIT
YESTERDAY 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