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연인
Posted 2008. 8. 21. 15:50, Filed under: Ex-Homepage/Essay몰랐으면 하는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의 기분이 드는군요...
사람의 상상력은 매우 위험한 것 같군요...
특히 집요한 사람의 것은 더욱더...
지금은 박스가 되어...창고에 차곡 차곡 쌓여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아주 조용히 말입니다...
마음의 상처는...치유될 수는 있지만 완쾌는 될 수 없다고 하더
군요...그런 격이네요...아직까지 입원중인 거라고 봅니다...
언제 밝게 퇴원을 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학교에 있는 동산에 가면...기다란 의자가 몇 개...둥그런 의자가
두개...그리고 돌로된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어제는 긴 의자, 오늘
은 돌로된 의자에 앉았습니다...
툭...툭...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인가 봅니다...
하나 줏어보니...참 단단하게 생겼더군요...그리고 그 안도...
도토리가 떨어진다는 것은...나무로부터 독립을 하는겁니다...
우선 떨어지는 것은, 도토리가 아닌...정확히는 도토리를 감싸고 있는
뚜껑부분입니다...그 뚜껑이 덮어진 채 도토리는 낙하하는 것입니다...
때맞춰 아래에 있는 많은 자갈들에 의해서...그 뚜껑은 분리가 됩니다..
제가 본 8개의 '추락도토리'에 의하면...대부분이 뚜껑과 도토리는 정 반
대 방향으로 튀더군요...일년여 동안 꼭 붙어서 지내온 그 둘이 왜 정반
대로 가야하는지...알 수는 없지만 알고 싶지 않습니다...
하필 제 앞에 하나가 굴러왔습니다...이미 3~4명의 자갈과 인사를 나누었는
지...깨끗한 겉이 많이 다쳐있더군요...
혹시 그것 아시나요? 도토리 머리는 대머리인거...
하얀 대머리이죠...하얀...
볼펜을 꺼내서 그 위에 숫자를 적었습니다...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더불어 날짜도 적었습니다...
"너에게 이 선물을 주기로 마음먹은 날이 바로 오늘 이란다..."
...운이 좋게도...한번에 쓰여지더군요...
오로지 하나만 생각했다가...다른 것도 주웠습니다...마구..순차적으로...
줍는 즉시 번호를 매겼습니다...옆에서 비닐봉
지를 들고 도토리를 주으시던...파마머리 아주머니께서 인상을 쓰셨습니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다 이겁니다...무서웠습니다...그래서 안경을 썼습니
다...바로 아주머니 옆에 있던 한놈을 잽싸게 집었습니다...승리의 미소...
"넌 다행인줄 알아라...묵대신 선물이 될 것이야..."
...그 날 저녁...어머니께 들은 바에 의하면...저의 의도와 달리 도토리는
경제적인 가치는 없다고 하더군요...거의 대부분...믹서기로 갈아서...묵을
만드다고 하셨습니다...
7까지 쓰자...번호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8이란 숫자가 있다는
사실은 물론 압니다...하지만 8번째 도토리는 싫었습니다...이유는 없습니다
...7이 행운의 숫자라고 믿었었던 무의식이 작용을 했는지도 모르지만요...
그 날의 하이라이트는...
머리가 있는 도토리였습니다...추락의 아픔에도 꿋꿋하게 헤어지지 않았던
그 하나의 도토리...처음 본 순간 생각나는 것은 제가 과외를 하는 학생의
머리였습니다...물론 그 학생이 그러한 머리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했다간...
정학감이지만요...사실 그 학생의 머리가 도토리 비슷하거든요...
앞으로 한번 만날 것이라 예상되는 그 학생에게 마지막으로 별명을...
맨발대신 도토리도 붙여주고 싶습니다...
"여기에 눈을 그리면...선물로 제격이겠어..."
잠시 눈이 확 뜨이더군요...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이 둘..이 천생연분인
이 둘을 어떻게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갈 것인지가요...
최종 도토리가드는 주머니를 제치고...필통이 되었습니다...그 날밤...
저는 도토리가 들어있는 필통을 잠시 잊고...도토리 연인을 빼주지 않았습니
다...다음날 아침...무지 흔들리는 필통속에서...그 연인은 눈물의 이별을
했습니다...저의 잘못입니다...제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그래서 차마
뚜껑...아니 머리카락 부분을 버리지 못했습니다...헤어지자 전혀 다른 뚜껑
과 다른 바 없던 그것을...저는 주머니에 계속 가지고 다녔습니다..오늘 하
루 종일 말입니다...계속 울더군요...가루가 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한번 정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어느 뚜껑을 찾더라도...그리고 어떠한
도토리에 그것을 끼워 맞추더라도...잘 맞습니다...아니...그 둘은 서로 관
심조차 없을지도..혹은 서로 예전에 원수 지간이었다 해도..우리의 인식으론
알 수가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천생연분이었다고 믿어지는 그 하나가 있을 수 있습니다...겉으론
다른 것들과 다를 바 없지만...겉이 아닌 것으로 느끼는 그 뭔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마치 인간처럼...
가방 앞의 작은 보조 주머니..속에는 이름 없는 도토리가 몇개 있습니다...
그리고 1부터 7까지 숫자가 적힌 도토리가 있습니다...그리고 주머니엔...
헤어진 연인이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얼마 정도까진 그 싱그러움을 그대로 간직할 것만 같은 도토
리 가족들...(나의 마음이 들어간 그 순간부터 제 가족입니다...)
저는 이것을 누군가에게 선물할 예정입니다...갯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
에...조금씩 조금씩 해야겠지요...이미 번호없던 하나는...선물이 되었습니
다...그 도토리 소년에게 주었지요...다음주 월요일부터 중간고사를 본다고
그래서요...제가 물었습니다...
"부적을 믿니?"
"네"
...이거 부적이야...
제가 머리 부분에 도토리 군의 이름을 썼습니다...그리곤 지우개로 지웠습니
다...물론 도토리 신이 도토리 군을 도와주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그러
기엔 도토리 신의 파워가 너무 약하거든요...
도토리의 신선함도 한계가 있습니다...회귀...
언젠가 헤어질때를 알아야 하는거...할 수 없지만 해야하는거...그것이 이별
이라고 봅니다...마치 사람처럼...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
착하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아름다운 어리석음이라 생각합니다...
도토리의 차가운 매력 또한...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도토리를 다음에 받을 주자는 강아지입니다...대가 없는 사랑...그리고 바보
사랑을 주는 나의 강아지...나도 한마리 강아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도 오
늘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잠시 생각했습니다...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나 보네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난 할꺼야라고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잠시 그 말을
잊고 살지만...다시 생각이 나면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일은 진행중이라고 생각합니다...왜햐나면...습작이란 것
이 있기때문이지요...
혹시 도토리 나무 아래에 있는...여러 가지 잡다한 것을 보셨는지...
제가 오늘 본 바에 의하면...고운 모래에 약간은 거칠은 황토흙...거기에
더해져 있는 인위적으로 떨어졌을 것만 같은 변색된 나뭇잎 몇개...또 그 위
를 힘차게 걸어가는 개미들...아...나뭇가지 몇조각을 빼먹을 뻔 했군요...
그러한 것들을 보자 갑자기 보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디지털 카
메라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하지만 지금 몇줄의 글로
인해 다시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군요...그렇군요..오히려 이것이 더 나을런
지도 모르겠네요...다시는 볼 수 없는 그 모습을 영원히 그 한순간의 기억필
름으로 새겨두는 것이...그것을 잊기 바로 직전까지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거리란 반드시 필요한...슬프게도 필요한...아쉽게도 필요한 것이겠지요...
아직 그 거리를 만들기엔 제가 너무나 연약하다고 느껴집니다...그래서 강아
지가 부럽고...도토리 연인이 부러웠던 겁니다...
..........1999/10/01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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