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방학 때 ‘헬로우 블랙잭’이란 만화를 보았다. 일본의 의과대학과 병원실습을 도는 인턴의 생활을 그린 이 만화를 보며 흥미위주이긴 해도 일본 의료시장의 시스템, 의사의 자존심과 일본식 문화의 조합된 모습 등 일본 의료계 특유의 장면을 보기도 했다. 연간 몇 차례씩 열리는 같은 대학 동문끼리의 온천파티나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사무라이들처럼 선후배간의 사적인 관계에서까지도 위계질서를 지키는 모습 등은 내가 ‘먼나라 이웃나라’ 등에서 봐왔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였다.

 올해 초 외국계 병원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Spa(스파)라는 온천을 뜻하는 단어가 병원 이름에 들어간 경우가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흔히 메디컬 스파는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 대체의학의 개념이지만 최근 선보이고 있는 전문 메디컬 스파는 질병의 주원인인 스트레스와 과로를 치료하고 노화를 방지하도록 하는 치료의 한 방법을 의미한다고 한다. 단순한 휴식이나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스파의 차원을 넘어 보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관리를 통해 건강한 신체를 가꾸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 이곳에서의 의사의 역할은 메디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뿐 아니라, 고객의 건강에 대한 전문가적 조언을 줄 수 있는 헬스 플래너의 역할도 함으로써 보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한다. 예를 들어 그랜드 힐튼호텔에 개장한 라끄리닉 드 파리 그랜드 힐튼 센터는 유명한 노화센터 라끄리닉 드 파리의 분점이다. 그곳은 다양한 노화 측정검사 결과를 토대로 데이터에 의한 처방을 시행하며 더불어 물리적인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스파와 함께 건강 치료를 도모한다고 광고한다. 당시에는 그냥 병원에 흔히 있는 물리치료실처럼 스파 역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린 페이어가 쓴 '의학 과학인가 문화인가'를 보니 이미 서유럽과 북유럽쪽을 중심으로 온천요법이 의료 행위의 하나로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침구술이라 하여 아직 주류에 끼지 못하고 대체의학이라 불리는 한의를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의료행위의 한 측면으로 인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재 침술의 과학적인 측면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여러 나라를 볼 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도 '참살이'란 시조에 부합한 새로운 방식의 의료 체계가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런 새로운 방식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거기에는 매우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문화'라는 한 코드가 그러한 곳에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전 TV광고 중에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란 것을 광고하는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배워온 당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서양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도 정당하게 이용요금을 지불했으며 좌석에 대한 권리가 있는데 왜 그것을 굳이 나이가 더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내드려야‘ 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효(孝)의 개념을 설명을 해도 수긍을 잘 못하는 그 미국인을 보며 우리와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결국 그는 그러한 상황을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렇듯 한 개인이 속한 집단의 문화규범은 그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는 최첨단 과학의 선봉에 선 의학 분야에서조차 그것은 명확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1. 프랑스 - 생각하는 의학



 저자는 프랑스의 경우 데카르트식 접근법에 의거한'결과‘보다는'방법'에 더 비중을 둔 의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항생제를 줄 때 유산균을 함께 주는 등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아도 아이디어가 좋고 임상결과만 괜찮으면 처방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p.76 전염병과 교수인 자크 아카르박사는 그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프랑스 의사는 처방을 내릴 때 환자의 사기를 어떻게 하면 북돋울 수 있을지를 항상 고려한다.'(항생제 복용 시 과학적으로 그 효능이 입증된 바 없는 유산균을 같이 처방하는 프랑스의 관례가 예기치 않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1984년 여름, 미국 연구원들은 유산균이 콜레스테롤의 신진대사율을 높여주기 때문에 다량의 요구르트와 치즈를 먹는 프랑스의 식생활이 심장발작률을 낮추는데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메치니코프의 생각이 옳았던 것이다.)



 또 환자들과 관련된 현상으로는 생식력과 아름다움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으로 암으로 인한 자궁절제술이나 불임치료 등의 경우처럼 여성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경우의 사례에서는 최대한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인 것들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배려한다고 한다.(사실 이러한 경향은 이제 전 세계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다원화 사회와 세계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환자들 역시 이제는 다른 나라의 경우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환자들의 욕구 또한 다양해지고 또 높아졌기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병원 24시에 소개된 적이 있는 유방암에 걸려 가슴을 도려내야만 하는 젊은 여성의 경우가 있다. 그녀는 당시 자신의 가슴을 절개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그런 것에 대해 당시에 난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러한 치료 행위가 병의 호전에 도움이 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시술을 해야 정상이라고 느꼈었다. 그러나 '삶의 질'이란 측면, 위험성의 경중이라는 확률의 문제, 그리고 문화적인 틀에서 겪는 환자들의 느낌 등을 종합해 볼 때 이제는 어느 정도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영국과 미국에서는 병에 걸리는 원인으로 외부의 침입에 초점을 두는 반면, 프랑스와 독일 의사들은 신체 내부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즉 무언가 나쁜 요소를 제거하는 것보다는 기질과 면역력을 중시해 병의 치료 개념을'원상태로의 회복'으로 본다는 것이다. 온천욕 같은 수단 역시 건강할 때 그것을 지키는 일종의 의학적 요법으로 인정이 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p.125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기질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동종요법을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다량이 더 낫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소량이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정말로 필요한 때가 아니면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는다. 나는 질병에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부드러운 방법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공격적인 병에는 공격적인 요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공격적인 요법과 부드러운 요법 가운데 어느 편이 환자에게 더 나은 지를 따져본다. 아울러 우리들 대부분에게 기질은 그 자체로도 제 기능을 다하고 있고 이러한 기질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 미국의 의료관행도 개설할 수 있다고 믿는다.




2. 독일 - 조화로운 의학



 독일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의 서유럽의 다른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심장약을 복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필자는 가장 먼저 독일인은 감정이 풍부하며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어떻게 보면 뜬금없는 답변을 한다. 



 p.133 보건의료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이러한 독일인의 경향은 신체를 기계로 보는 미국인의 관점과는 반대로, 신체가 가이스트나 자연에 가까이 근접할 때 건강할 수 있다는 관점을 발전시켜 왔다. 독일 사회에서는 조화를 아주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독일인들이 효과적인 면과 낭만적인 면을 조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독일인은 심장에도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간에 유난히 신경 쓰듯, 그들은 심장에 ‘다걸기’를 하는데 실제 처방과 사용되는 약에서도 그 통계가 잘 드러난다. 독일인들은 심장을 단지 펌프와 같은 기계로 이해하기보다 그것을 감정 등의 여러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맥박이 뛰고, 그 자체로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신체기관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혈액순환 역시 독일에서는 주된 테마의 하나이다. 냉온수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크나이프 요법은 이미 그곳에선 대중화되어 있으며 의사들 역시 많은 경우에 있어 환자들에게 그것을 추천해준다고 한다. (프랑스의 온천요법이나 독일의 크나이프 요법은 모두 우리나라 사우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그것을 그냥 일종의 목욕탕 내 습관으로만 여겨왔었다. 그러나 신체의 자생력과 면역 체계를 신뢰하는 바탕에서부터 유래된 그런 방식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동네 목욕탕뿐만 아니라 병원과 관련된 곳에서도 그러한 장치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p.167 우리가 조화를 중시하는 독일의 관행을 조금만 배운다면 신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치료법을 덜 쓰게 될 것이다. 또한 어떤 식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약효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래서 그 식물을 이용할 수 있다면 유사한 효과를 내는 처방이 더욱 다양해 질 것이다. 항생제를 사용할 때 독일만큼 절제할 수 있다면 우리 몸이 정말 항생제를 필요로 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항생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3. 영국 - 경제적인 의학



 필자는 환자를 더 본다고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기에 '고객유치'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래서 영국에서는 경제적인 진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p.179 대부분의 나라에서 '과다진료'가 문제지만, 보건의료체계에서 주요한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경제성 때문에 영국에서는 '과소진료'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경향이, 의료 관련 종사자들이 적정진료를 원했는데도 국립보건서비스가 과소진료를 강요했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닌 듯하다. 경제성을 중시하는 전통은 이전부터 있었던 제도에서 형성된 것이다.



 또 경험을 이론보다 중시하는 철학적 전통이 있어 임상의 횟수를 실제적으로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논문을 작성할 때도 반드시 이런 임상통계는 중요한 요소를 이루며 실제 인턴으로 들어가는 의사들도 우선적으로 더 많은 케이스를 접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했다. 한편 신경안정제의 경우처럼 어떤 경우에는 특히 많이 처방되는 약이 있는데 이것 역시 엄숙함과 신사도를 신성시하는 영국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p.193 '특히 이 환자들은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행동양태나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상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어서, 약을 끊으면 그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어요. 만약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여러 특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이러한 특성으로는 정상, 자제, 평정, 자기통제, 인내, 관대함, 잘 견딤, 양육, 사교성, 친근함, 불평 없음, 자신감, 대중성, 개인적/사회적 책임에 대처할 수 있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병의 원인을 내적인 것보다는 신체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프랑스의 온천이나 독일의 크나이프 요법 같은 것을 영국에서 보기는 어렵다. 반면 항생제 처방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다.



 p.199 프랑스 인이나 독일인에 비해 영국인은 병의 원인을 기질보다는 신체 외부에서 찾는 것을 더 선호하고, 그렇게 하는데 실패했을 때는 내부와 외부의 타협점으로 장을 거론하는 것 같다. 영국 의사는 프랑스 의사와는 달리 저항력을 길러준다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비타민, 강장제, 온천치료 등의 처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항생제는 영국에서는 아주 중대한 역할을 한다. 독일에서는 가장 많이 이용하는 약 20종 가운데 항생제가 하나도 포함되지 않는 반면, 영국에서는 세 종류나 포함되었다.



 또 영국은 노인성 질환과 관련된 분야가 발달해 있고 최초로 호스피스제도가 시작되었을 만큼'실버의료'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 역시 병원의 개념을 무언가를 치료하는 역할과 더불어 삶의 질적 수준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에도 비중을 두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그것 역시 저자는 영국인의 전통과 연관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4. 미국 - 공격적인 의학



 미국의 경우는 '공격적'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그들이 말하는 개척자 정신은 의료분야에서 역시 유효한데 질병을'정복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 미국 의료의 발전은 상당부분이 전 세계에 주둔하는 미군 내의 군병원 및 군 연구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또 미국의 응급실을 다룬 드라마 ER에서 나오는 모습처럼 미국의사들은 겉으로 보기에도 매우 열정적이고 무언가 많은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그냥 좀 쉬라고 할 정도의 피로감에도 정맥주사를 처방하고 또 알약제재를 주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는 흔한 일이었다.(물론 그것은 의사만의 일이 아니라 환자와 병원시스템 모두에 관련된 사항이긴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모습에서 나타나는 미국의료체계의 장단점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 환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느낌과 많은 노력을 한 연구와 그로 인해 이미 몇몇 불치병을 몰아냈다는 점, 또 새로운 의학기기를 발명하는 등 의료 분야를 개선하는 일 등은 미국인의 특성과 조화를 이뤄 좋은 성과를 일구어 냈다. 그러나 실제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과정에서 소외되어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공격적 치료로 인한 부작용은 실제 걸렸던 병보다도 치명적일 수 있으며 환자에게 과도한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223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는 물론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 미국은 많은 선진국에서 실패한 홍역을 미국 땅에서 완전히 퇴치했다. 의학연구에 큰 비중을 두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발견을 끊임없이 해낸 결과 노벨상 수상자도 여러 명 배출했다.



 p.224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미국의학의 관행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할 의사도 없는 환자들이다



 한편 병의 원인을 보는 입장에서도 미국은 주로 바이러스 같은 외부물질을 지목한다고 한다. 이것은 병의 치료 과정에 있어 의사 등 치료자 측에 편의를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자칫 환자를 치료대상으로'만' 전락시킬 위험성도 내포한다. 사람이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자동차처럼 일관적인 특성을 지니지도 않으며 또 그렇게 정확한 과정을 통해 유지되는 객체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대우는 매우 비인간적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미국의 의료 관행을 따르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잦은 항생제 처방 같은 것의 경우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악명 높은'항생제 내성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2005년 9월 28일 KBS 뉴스: 항생제는 감기치료엔 직접적인 효과가 없습니다. 감기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바이러스가 원인이기 때문에 인후두염 등 이차적 감염이 생겼을 때만 항생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병의원들이 감기환자에 대해 여전히 많은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항생제를 많이 쓰는 동네 의원의 경우 항생제 처방률이 무려 97%나 됐고 종합병원도 7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항생제 남용의 피해는 단순한 약물 부작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은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병원 내 항생제 내성균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항생제 내성은 세계 OECD 국가에서 거의 1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균에서 항생제 내성률이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거의 모든 항생제에 듣지 않는 수퍼 박테리아의 출현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마련이 더욱 시급합니다.






5. 대한민국?



 글을 읽으면서 계속'왜 나라마다 의학 처방이 조금씩 다를까?'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의 의료체계가 거의 같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서유럽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Are you an American?"이라는 문화적 편견을 담은 말이란 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실제 유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근사한 네 나라의 문화적 단면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도 '의학'이라는 자연과학 중에서도 가장 객관성이 보장되는 학문인데 말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 역시 우리 나름의 문화라는 큰 틀에 얽매여 살고 있다. 좁게는 한의사, 약사, 정부와의 관계에서부터 크게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의료계의 변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특히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의 흐름에 동참했고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과학, 의학 분야에 있어서도 그들의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역시 그들 나름의 가치와 철학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그 단점보다는 장점에 더 큰 점수를 준다. 그러나 항생제 남용에 따른 내성의 증가,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인간소외현상 및 각종 의료사고 문제 발생 등 만만치 않은 부작용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또 유사의료행위라 불리는 침, 뜸, 물리요법 등의 경우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그러한 것을 의료행위로 영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처럼 그것을 치료과정의 일부로 보는 것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시술자의 역량이나 자격 문제 등도 고려해 봐야 하겠지만, 현재 소단위 규모로 운영되는 그러한 시스템을 좀더 적극적으로 주류의학에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점차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앞으로 필요한 의료체계는 '삶의 질'을 더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이 주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읽으며 어느 한 나라의 모습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잡지는 못했다. 각 체계가 나름의 장단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과 우리가 살아온 것이 다르듯 그러한 문화적 경계를 한꺼번에 허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그들을 쫓아가는 우리의 입장을 고려해 본다면, 그런 장점을 통합하여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단점을 최소화하면 우리 의료사회의 미래 역시 밝을 것이란 사실이다. 의료 관행은 흔히 바꾸기 힘들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을 다루는 학문의 특성상 오류의 최소화를 위해 어떤 정해진 규율을 획기적인 전환점 없이는 바꾸기 힘들다란 점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 수용과 창조의 과정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서구 선진 의료 사회가 먼저 밟은 시행착오를 타산지석 삼아 우리 문화와 접목시킨 최적화된 의료시스템을 구성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를 굳건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환자란 의사에게 어떤 존재일까?



 사람은 문화적 인간이며 의사와 환자 역시 그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병을 알아간다는 것에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그리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최첨단을 가는 현대의학이라지만 아직도 미지의 분야가 많다는 점은 앞으로 의사가 될 예비 의료인인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 우리가 맞이할 환자가 아프다면 무작정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처방을 할지 교과서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과 사고 방식, 병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및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접근을 통해 그 환자의 '모든 것'을 고려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 환자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환자에게 ‘최대 선’이 되어줄 수 있는 치료 그것이 바로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의료체계 형성의 필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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