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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http://humanmed.org/)출신의 의대생, 의사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인의협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적어도 한가지 사실은 알게된다.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의사들이 파업을 선언했을때 자신들은 참가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협회가 바로 인의협이다. 이런 분위기가 책의 전반에 깔려있다고 본다.

(이 말의 의미는 이 책의 제목처럼 '의사'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의사'일 뿐이지 의사의 모든것을 말해주진 않는다는 점이다. 하긴 그 누가 그걸 다 말해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인의협의 정신이 내겐 매력적으로 보이고 나의 신조와도 비슷한 면이 있기에 재미있게 읽었다. 역시 세상은 넓었으며, 의사의 사회란 생각보다 다양한곳, 그래서 앞으로 알아갈 수록 더 재미있을 것 같다란 느낌이 들었다.

책의 목차는 이렇다.



서문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어떤 이미지일까?

1장 의대 생활 맛보기
01 기초 의학 수련 과정 - 늦깎이 의대생이 띄우는 편지 | 김선
02 임상 의학 수련 과정 - 의대생, 병원에서 길을 잃다 | 황석민

2장 초보 의사의 좌충우돌 진료 일지
01 수련의(인턴) - 인턴 일기, 나를 시험에 들게 하소서 | 전경훈
02 공중보건의 - 경쟁의 대열에서 잠시 벗어나 | 오경현

3장 의사 24시
01 내과 - 동네 의원에 '환자'는 없다 | 송관욱
02 소아과 - 인생의 동반자이자 스승인 아이들 | 김현숙
03 산부인과 - 21세기 '삼신할미'를 꿈꾸며 | 윤지성
04 외과 - 백성의 아픈 곳을 없이 할 수 있겠는가? | 박인근
05 가정의학과 - 내 이웃들의 첫 번째 주치의 | 김주연
06 정형외과 - 걷고 뛰게 한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 | 하정구
07 마취통증의학과 -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을 죽였다 살리며 | 백남순
08 신경과 - '신경'과 '정신'은 다르다 | 김진국
09 안과 - 심 봉사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니! | 곽일훈
10 응급의학과 - 밤을 지키는 '초치기' 야전사령관 | 김승열
11 비뇨기과 - 어디에도 말 못하는 고통을 어루만지며 | 이종우
12 정신과 - Brain meets Mind | 배경렬

4장 더 넓은 의사의 세계
01 일반의사 - 나는 영원한 애송이 의사 | 박태훈
02 의료 전문 기자 - 병원 아닌 현장에서 메스 아닌 펜으로 | 김양중

5장 의사 정보 업그레이드
01 의사 생활 엿보기 - 한 외과 의사의 일상 | 이동호
02 의사 지망생 궁금증 31문 31답 - 사소한 어려움에 굴하지 마라! | 인의협 편집홍보국

부록 전국 의과대학 일람표



..차례에서 볼수 있듯 이 책은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있는 사람과 현직의사로 있는 사람, 의대를 졸업하고 임상의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순서에 맞게 배열했다. 이 점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나처럼 현재 예과에 있는 의대생이 정말 궁금해하는 '본과1~2학년'때의 엄청난 공부량에 대해서도 첫장에서부터 언급을 해준다. 첫장이 본과 2학년인 의대생이 쓴 글이기 때문이다.

인턴과 공중보건의로 근무중인 두 사람의 챕터가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제 3장으로 각 과별로 에세이가 등장한다. 여기도 상당히 유용한 부분인다.

의대에 합격했을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너 나중에 무슨과할껀데?"였는데 막상 아직 겪어보지도 못한 의대생활 속에서 그런 질문은 난감했기 때문이다. 각 분야에서 활동중인 의사들이 자기의 전공에 대해 소개하고 장점을 위주로 이야기 하지만 간혹 단점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등 다른 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분은 자기의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로 일관하거나 자신의 소신만을 적어서 과에 대한 내용은 일종의 감상에 지나지 않는 글도 몇개 보였다.

4장에서 다루고 있는 GM(General Doctor)이나 의료전문기자도 '다른 길' 치고는 너무 정석적인 길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렇다고 의사의 직업을 그만두고 요리사를 택한 사람이나, 의대를 그만두고 문과를 전공해서 대학 교수가 된 사람을 섭외할 수는 없겠지만..임상의가 아닌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연구직, 공직이나 해외에 나가있는 사람들 등 더 다양한 방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나머지 뒷부분은 거의 부록처럼 딸려있는 부분인데 아마 요즘처럼 '의대광풍'이 몰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의 독자가 거의 수험생이 되지 않을까 해서 만든 출판사의 간곡한 사정이었단 생각은 조금 오버일까? 어쨌거나 상당히 일반적인 궁금증, 예를 들자면..

'어떻게 의사가 되죠?' , ' 피가 무서운데 의사가 될수 있나요?', '의사의 수입은 얼마죠?'...

..등의 질의응답이 있다. 뭐 그것도 유용한 정보이긴 하다.


이 책에서는 의사의 일상적인 소소함까지 알려주려고 한다. 그것은 역시 책의 서문에 있듯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어느정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고, '의사들 또한 똑같은 사람이다란 항변'일 수도 있다. 내가 만약 의대생이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접했다면 의사에 대한 이미지가 더 좋아졌을 법한 참 '개념'이 철저한 의사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각 과에 대한 설명이나 의대생의 애로사항 등에 대해선 예비의사인 의대생들이 보기에 적합한 부분이다.)

또 서두에 언급한 듯 이 책은 단순히 '의사사회란 이러이러하게 좋고 편하고 뛰어나고 잘나서 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낙원이다..'란 책이 절대 아니다. 의사 사회에 대한 비판도 조심스럽게나마 존재한다. 무분별한 개원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부터..

"지금 1차 의료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고도의 세련된 전문성이 아니라 사람을 전인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1차 의료 기관의 포괄적 기능이다.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고 또 의사들의 높은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한 이유를 깊이 헤아리지 못한다면 의료계의 앞날이 결코 맑을 수 없다는 사실은 내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개원 의사로 살아오면서 얻었던 교훈이다." p.158

의사라는 것보단 앞선 여자의사라는 장벽...

"지난달까지 돌았던 정형외과는 모든 레지던트가 남자였다. 그래서 관리자 명단을 뽑기 위해 아침 일찍 의국에 들어가면 옷 갈아입던 선생님들이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심지어 넌지시 아침 명단은 남자 인턴 선생님이 갖다 놓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뭐 크게 기분 나쁠 일은 아니지만, 그냥 좀 씁쓸하다. 왜 이런 사소한 일에서까지 나는 비주류로 구분되어야 하나?.......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의국원들이 맘에 드는 과요, 여자 의국원이 편하게 돌 수 있는 과요, 내가 남자와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과요..." p.42

GM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까지..(부제 자체가 '나는 영원한 애송이 의사'인 이 부분을 읽다보면, 의대생들이 가진 GM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 조차 불안감속에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턴시기에 겪은 단순한 의료사고에 대한 예와 그 뒤에 나오는 굳은 다짐 등 정석적인 의사이야기도 많이 있다. 아니 사실 그런 내용이 이 책의 메인이라고 해야한다. 그러나 이 책은 동경과 현실이란 부분에서 현실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고 본다. 의대에 진학할때 누구나 가질 그러한 고민과 기대, 그리고 인턴과 레지던트에 지원할때 겪는 그런 고민과 기대, 이런 것들을 의사 선배들을 통해 상세히 소개해 준 참 인상적인 책이다.

사실 현재의 의대생의 생활과는 약간 괴리가 있을 수도 있다. 저자중에 80년대 학번이 좀 있어서인지 '운동권'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체게바라, 노먼베쑨, 전태일평전 등에 대한 언급도 사실 시대적인 배경이 없다면 잘 나오지 않을 그런 문구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에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사람은 사회란 틀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 당시 그런 저항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조금 뒤쳐져 있을 수 밖에는 없지 않았을까? 의사란 직업을 가진다면, 또는 의대생이 된다면 아래를 바라보고 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이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것이라면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좁은 시야를 가진 것이라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직접 맞이할 환자란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다음 문구가 늦게 의대란 곳에 들어온 내게 기억에 남는다.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또 일을 즐긴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듯 하다 보면 '명예'나 '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이는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만약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의사를 택하기 보다는 사업가를 택하는 것이 백배 낫다. 명예와 권위를 추구하는 의사로 산다면 환자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어떻게 보면 '올바른 의사'가 되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다. 왜 환자들이 의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겠는가? 도덕적으로도 실력에서도 완벽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권위를 부여받는 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p.192

"4. 좋은 의사가 되려면 어떤 성품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까?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황소처럼 우직하고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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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5년 1학기, 예과1학년때 불타는 사명감(?)에 구해서 읽은 책이다. 대략 시기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쯤이었던것 같다. 헬로우 블랙잭은 아직도 완결이 되지 않은 책이긴 하지만...

        

1. 들어가며...

2005년 3월, 늦깎이로 의대생이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정 내가 하고 싶었던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아직은 예과생일 뿐이지만)는 만족감과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설렘이 교차했다. 물론 소문으로만 듣던 의대공부를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조금 들긴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엔 너무 이른단 생각과 앞서 언급했던 긍정적인 마인드  만으로도 충분히 내 예과생활은 뒤덮일 수 있다는 행복감에 그런 걱정을 잠시 잊고 또다시 대학교 신입생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내가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그러하듯 하얀 가운과 환자를 돌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동경이 가장 컸다. 그것이 의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거창하게 인류애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내게 늦은 선택을 하게 할 만큼 그 이유는 명확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예과생이 되어보니 듣던 것처럼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선배들은 그 시간에 3가지를 할 것을 추천했다. 공부, 연애, 동아리 이 세 가지 중에 본과에 올라가서 하나라도 잘 했다고 여길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한 예과생활이라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초점을 맞춘 것은 상대적으로 공부라고 할 수 있는데 예과에서 할 수 있는 공부란 결국 ‘독서’에 비중을 둬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선배들에 따르면 본과에서 배울 내용을 먼저 공부한다는 것은 그 내용과 양에 있어서 비효율적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독서가 됐든 아니면 내가 앞으로 나아갈 진로환경에 관련된 독서가 됐든 우선은 많은 책을 접하자고 마음먹었다. 마침 수업 시간에 기말리포트 또한 영화나 독서 감상문이 되었기에 지난겨울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두 가지 종류의 책을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다.

예전에 읽었던 의학 관련 책은 거의 없지만 굳이 연관을 시키자면 소설 동의보감이나 닥터K, 닥터노구치 등 무슨 병이든 완벽하게 고칠 수 있으며, 박애주의‘만’으로 가득한 의사들에 과한 책이거나, 로빈쿡의 의학소설처럼 한 가지 주제에 대해 파고들며 의학에 관련된 것은 부수적으로 가미한 픽션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말하고자 하는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도서출판 소소)’과 ‘헬로우 블랙잭(서울문화사)’은 앞서 언급한 책들과는 약간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2. 의사란 완벽한가?

아툴 가완디라는 레지던트가 쓴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이란 책을 처음 봤던 것은 아직 의대생이 아니었던 작년 동아일보의 주말섹션에서였다. 모든 책의 프리뷰가 그러하듯 그 당시도 역시 이 책에 대한 화려한 수식어구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책의 부제처럼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외과의사의 노트’란 표현이다. 불완전이란 표현을 이쪽 세계에서 쓴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 불확실한 정보,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이다. 아는 것과 목표로 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존재한다. 의사란 참 기이하고 또 여러 면에서 겁나는 직업이다. 위험 부담이 높은데도 엄청난 재량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의사도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저자는 위와 같은 말로 한계를 표현한다. 특히 학문적인 배움을 일차적으로 끝내고 실제 의료현장에 뛰어든 레지던트 1년차 때 겪은 에피소드에서부터 책은 시작된다. 중심정맥관을 삽입해야 했던 그는 난관에 부딪친다. 분명 그는 이론적으로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환자에게 시술을 할 때는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3~4번의 실패 끝에 치프선생님이 하는 걸 직접 다시 보면서 몸에 익힐 수밖에 없었던 저자는 그 이유를 초년병의 긴장에 따른 것, 연습 부족에 따른 실수, 외과 의사로서의 직감 부족에 돌린다. 후반부로 갈수록 계속 언급되지만 그중에서 세 번째 이유가 가장 미묘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다. 결국 외과에서의 기술과 자신감은 경험을 통해서 더듬더듬, 자존심을 상해가며 얻어지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저자에게 대학병원은 일종의 딜레마적 성격을 지닌 곳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근본적인 목적과 신출내기 의사들의 경험을 쌓는 곳이라는 학문적인 목적은 어느 면에서는 입장을 달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헬로우 블랙잭’에서도 잘 들어난다. 일본 최고의 의과대학인 에이로쿠 대학 출신인 인턴 사이토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대학병원에 들어간다. 그런데 대학병원의 의료진들은 (조금 과장이 섞인 듯해도) 실제 임상경험 횟수가 별로 없는 듯이 비춰진다. 물론 그들은 대학병원의 목적을 교육과 연구, 그리고 진료라는 3가지 부분으로 나누며 일반 병원의 의사가 그가 맡은 환자 개개인을 살린다면 자신들은 더 넓게, 즉 세계적으로 환자들을 구한다고 표현하기도 하며 나름대로의 이유를 대기도 한다. 이 만화는 실제 의료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의사인 사이토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기 때문에 위의 예도 그 중에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PK를 도는 의대생(물론 그들은 그저 참관인일 뿐이라도)과 수련의들이 많은 대학병원이 가진 진료시스템 상의 한계를 두 책은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문제는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 개개인에게 달린 문제란 것 역시 빠뜨리지 않는다. 사이토는 박봉인 인턴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대부분의 인턴들이 그러하듯 세이도병원이란 지역의 중견병원에서 당직 아르바이트를 서게 된다. 그러나 실제 임상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새내기 인턴에게 밤새 몰려오는 응급환자들을 치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론만 아는 인턴의 부족한 대처능력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던 것이다. 결국 교통사고로 온몸이 망신창이가된 응급환자를 앞에 두고 사이토는 도망을 치고 만다. 그리고 급하게 병원에 와 수술을 마치고 당직실로 사이토를 찾아온 원장선생님에게 그는 절규한다. 인턴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또 자신은 아직 그 환자를 수술할만한 능력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런 사이토에게 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버려 둬도 죽어. 어차피 죽을 바엔 배를 열어.”

그렇다. 정말 내가 저런 상황의 사이토가 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만화에서처럼 운 좋게 원장선생님, 또는 다른 의사분이 와서 환자를 수술해서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랄 것인가? 만약 나만이 저 상황에서 남아 있다면? 그리고 나 역시 인턴으로서의 내 의학적인, 임상적인 능력에 의구심을 지니고 있다면?

이런 면에서 의사는 불완전하다. 이것은 비단 인턴이나 레지던트일 때의 일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의학적 사실은 계속 발견되고, 새로운 의학적 기술은 빠르게 발전된다. 사회의 모든 첨단 분야에서 그렇듯 의사는 경험을 쌓지만 기술에 도태되기도 하는 것이다. 새로운 수술기계에 대한 매뉴얼을 익히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 전원이 2주간 그 기계를 만든 외국의 회사로 연수를 떠났는데 돌아와 보니 그 기계의 새로운 버전이 나와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것에는 전수과정 상에서의 비효율적인 면에도 이유는 있다. 최첨단의 과학적인 것을 배우지만 그것에 대한 전수과정은 지극히 도제식인 곳이 바로 의료계라고 가완디는 지적한다.

그가 언급한 한 예로, 스웨덴의 한스 오린 박사는 심전도 그래프를 해석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그런 그가 공개적으로 컴퓨터 심전도 해석 프로그램과 대결을 벌인다. 결과는 정확성이나 빠르기 면에서 컴퓨터가 앞섰음이 증명된다. 저자에 따르면 심전도 그래프를 보고 의사가 수동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그것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통계적으로 최적화시켜서 자동적으로 맡기면 결과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통계에 의존한 해석 및 정확성(오류가능성)의 측면에서도 몇몇 분야는 컴퓨터가 더 낫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왜 컴퓨터가 더 나을 수 있을까? 왜냐하면 인간은 컴퓨터에 비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제안, 사물을 보는 순서, 최근의 경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 그리고 정보의 구성방식 등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 또 인간은 다수의 인자들을 고려하는데 기계만큼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변수의 비중은 너무 크게 보고 다른 변수는 너무 가볍게 보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일관되며 각 요인에 적절한 비중을 기계적으로 부과한다. 이것은 마치 슈퍼마켓에 바코드가 도입된 상황과 아주 유사해 보인다.

가완디는 이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다. 왜냐하면 어차피 좀 더 정확한 진단장비나 수술 장비가 나온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의 혜택을 보는 것은 의사와 환자 양쪽 모두이기 때문이다. 즉 의사가 효율적인 진료를 하는데 있어서 환자를 소외시키지 않게 주의만 한다면 그러한 기계적인 발전이 인간으로서의 의사의 한계를 적절히 커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수술을 할 때는 기계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의료현장에서 대부분의 케이스에는 자동화된 해결법이 있다는 것이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의학을 습득하고, 수련과정을 거쳤다면 이제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마치 로봇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시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추세도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단을 이루어 큰 병원을 차리는 곳이 많은 것 같다. 우리 동네에도 한솔병원이라고 항문외과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있는데 소문에 의하면 전국에서 그 병원으로 환자가 몰려온다고 한다. 실제로 그 병원에는 그 분야의 전문의만도 상당히 많다고 하는데 가완디 역시 그의 책에서 숄다이스 병원의 예를 들면서 의료집중화 현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 분야의 수술에만 집중하는 숄다이스 병원은 많은 횟수의 수술경험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그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적인 집단을 이루게 된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은 언제나 발생한다. 의료의 대상이 다름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항상 낮은 가능성이나마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기대와 걱정을 만드는 것 같다. 로또에 걸릴 확률이 작지만 기대를 하게하고, 불치병에 걸릴 확률도 작지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모든 일은 가능성의 문제이지만 의료계에서의 가능성은 그 결과가 직접적으로 본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더 크게 비춰지는 것 같다. 수술 성공률이 99%라는 것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매우 높은 수치임에도 100명중 1명은 실패를 하며 그것이 꼭 자신이 아니란 법은 없다는 무서운 진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3. 의료과실

모든 의사들은 끔찍한 과실을 범한다. 특히 저자가 몸담고 있는 외과의 경우에는 그 빈도가 더 흔한데 대부분의 외과의들은 의사 생활 중에 적어도 한번은 소송을 당한다고 한다.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병원에서 ‘당한’ 부당한 치료방식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들을 많이 보게 된다. 대부분 ‘이 글을 인터넷에 많이 퍼뜨려 주세요!’라는 하소연으로 끝을 맺는 그런 류의 글을 읽어보면 거의가 결과적인 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그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담당의의 과실만이, 그리고 병원 측의 무성의함만이 그러한 의료사고를 낸 것일까 하고 말이다. 물론 의료과실이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의사의 책임이 제일 큰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 의사도 인간이기에, 또 환자 역시 카오스적인 인간이기에 분명 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이런 불가피한 과실에 대해 쉬쉬했던 과거와 달리 가완디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사고라면 그것을 최대한 줄이고 또 그것으로부터 배우자는 타산지석을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다. M&M컨퍼런스(Morbidity and Mortality Conference, 유병 및 사망사례 회의)란 비공개 사후회의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완벽할 수 없다면 차라리 과실을 인정하고 불의의 사고 및 사망사례를 검토, 비평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며 다음 개선책을 찾는 것이 더 좋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는 그것을 비극적인 사건이라 부르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논문에 옮겨놓으면 그것은 과학적인 통계자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의료현장에서의 과실이란 참 결과가 무서울 수 있다. 모든 법은 결국 인간의 신체와 재산, 자유와 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한 개인을 보호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그런데 의료과실은 그 개인을 직접적으로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의료과실을 행한 의사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결과에 대한 부인과 자기 회의라고 한다. 자신이 배운 지식을 최대한 이용했다는 확신과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자부심에서부터 나오는 부인은 의사에겐 매우 치명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환자를 보내고 나면 자신의 일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진다고 한다. 의사로서의 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최선의 가치관, 즉 환자를 돌보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반되게 자신의 과실로 인해 그를 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블랙잭에서도 경험 많은 심장수술의 대가로 나오는 기타사부로의 경우는 후자의 경우였다. 직접적으로는 자신의 과실이 아님에도 자신이 맡은 환자가 죽게 되자 자신의 능력과 일에 회의를 느낀 사부로는 후배에게 병원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래서 자신에게 수술을 부탁하러 온 사이토에게 그 후배를 소개시켜주며 자신은 이제 메스를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10000분의 1의 사망률, 즉 0.01%란 수치는 상당히 작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의료현장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왜냐하면 이 수치는 곧 3천 5백만 명의 환자 중에서 3500명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의료현장은 두 가지 케이스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사고가 발생하는 빈도로 따지면 군인사회와 비슷해 보였다. 군대에서도 다양한 사고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고의 중요도를 따져보면 그것은 항공기 사고와 비슷하다는데 있다. 일단 발생하면 정상적인 귀환은 어렵다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의료과실이 오로지 의사 개인만의 문제였다면 그때는 그 의사를 돌보면 된다. 의사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무기력 해졌을 땐 정신과를 찾거나 종교, 휴양지등을 이용해 쉬어야 한다. 그것은 의사 본인에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환자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누군가는 언젠가 할 수 밖에 없는 과실이라면 의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완벽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일 것이다.

삼고초려 끝에 사이토의  부탁을 승낙하여 또다시 환자의 심장수술을 마친 키타 사부로는 바닷가에서 사이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제방의 끝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끝에 도달하면 그냥 다시 돌아오면 되는 것을...”


4. 불가사의

어렸을 적에 불치병에 걸렸다는 말을 드라마 같은 곳에서 가끔 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 백혈병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엔 모두 죽으면서 끝이 나고 했다.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 고칠 수 있는 병보다 많다고 한다. 사실 쉽게 고칠 수 있거나 아니면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은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이며, 여전히 변종되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종 병은 계속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남아있는 병들 중에서 불치병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가완디는 우선 만성적인 통증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모든 객관적인 증거자료(CT나 MRI사진 등)로는 정상으로 나오는데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엔 진통제를 처방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어쩔 도리가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통증에 대한 많은 부분이 미궁의 상태에 놓여있다고 한다. 임산부의 구역질(임신오조, hyperemesis of pregnancy)이나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 식탐 등도 저자가 말하는 미스터리의 영역에 포함이 된다.

사실 불치‘병’이라고 하기엔 조금 보편적인 범주에 속하는 저 현상들은 현재 의료계에서 뿐만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통계학적인 분야에서도 활발히 연구가 진행 중인데 저자는 이런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정말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무작정 회피하지 말고 그냥 같이 살아가는 것은 어떠냐고 말이다. 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개념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것이 최종 목표라면 목표인 것을 어찌 의사가 병과 공존함을 추천한다는 말인가? 블랙잭의 암병동편도 항암제와 관련하여 그런 의문을 던진다.

인턴인 사이토가 들른 암병동에서 그는 항암제연구의 대가인 지도의 쇼지를 만난다. 쇼지는 아직 일본에서 사용승인이 나지 않은 미승인 항암제를 가지고 치험을 하며, 귀납적으로 그 약의 효용을 검토하고 연구하는 의사이다. 일반적으로 200여개의 암은 모두 그 성질이 다르며 따라서 약의 효용도 역시 가지각색인데, 모든 사람은 암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약의 효과 역시 개인별로 달라진다고 한다. 쇼지는 그러한 것을 고려해 최대한 많은 임상데이터를 가지고 더 성능이 좋은 항암제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쇼지의 대학동기인 우사미는 반대로 암 말기환자에게 항암제를 쓰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은 의사이다. 그는 쇼지의 방식을 ‘인체실험’이라고 비난하며 생명을 구하는 것만이 의사가 할 일이냐고 반문한다. 항암제란 암세포만이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공격한다. 즉 대부분의 항암제를 써도 말기 암 환자들은 몇 달밖엔 ‘연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약이 거의 무의미한 말기 암 환자들에게 항암제를 투여함으로써 고통스러운 삶을 연장시키는 것보다는 인간적인 삶을 살다가 죽게 놔두는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지 않느냐는 논리이다. 그래서 우사미는 불치병 환자들과 노인환자들에 대한 호스피스 제도를 강력히 주장한다. 이런 쇼지와 우사미의 견해차는 고지에 대한 의무에서 드러난다. 항암제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고 그러므로 암이란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야만 한다. 아직 희망이 있다면 진실을 말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항암제에 의존한 치료뿐인 암이라면 ‘암에 대한 고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고지를 한다는 것은 종종 환자의 인생에 의사가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쇼지와 우사미가 의대생이던 시절 노리코라는 췌장암 말기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에 쇼지는 일본에 새롭게 사용허가가 난 항암제를 이용하여 그녀를 치료하고 싶어 했으며 ‘고지’를 통해 그녀에게 희망을 품게 해준다. 물론 우사미 역시 그러한 쇼지의 생각에 동의하고 함께 그녀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에게 항암제란 연명효과 밖에는 기대할 수 없기에 노리코는 서서히 쇠약해지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다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긴다.

“암이 작아진다는 건 뭐죠? 암세포는 작아질 순 있어도 완전히 고칠 수는 없다는 건가요? 연명은 할 수 있어도 결국은 죽는단 거예요? 몰랐으면 좋았을걸...이럴 줄 알았으면 고지 같은 건 해주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쇼지와 우사미의 일화를 들은 사이토는 혼란스러워 한다. 본문에 나오는 사이토의 환자인 요시에 아줌마처럼 정말 성실하게 나쁜 짓도 하지 않고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췌장암 말기였다면,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과연 그녀에게 그녀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이토는 쇼지처럼 아직 일본 내에선 췌장암에 사용허가가 내려지지 않은 새로운 항암제를 사용하여 그녀에게 치험을 한다. 물론 결국 요시에는 죽고 말았지만 그 기간 동안에 그녀는 가족과의 생활도 정리를 할 수 있었으며, 개인의 삶 역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고지를 한 이후에 그녀가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삶을 마감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사미와 사이토를 비롯한 많은 의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결국 쇼지와 우사미가 에이로쿠대학 병원에 호스피스 병동 창설의 핵심인물로 돌아오면서 항암제치료와 호스피스제도의 절충으로 블랙잭 암병동 편은 끝을 맺지만, 불치병에 대한 두 가지 딜레마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선 환자 개인에게 있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안락사에 관한 논의에서도 나오는 이러한 질문은 그러한 행위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국가의 재정적인 면에서도 큰 손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는 개인의 존엄성에도 위배되지 않느냐는 논리를 가져온다. 하지만 진보의 측면에선 연명치료를 통한 약의 효능검증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 볼 수도 있다.

의학이란 자연스러움에 위배되는 학문이다. 예전 같으면 죽었어야만 했을 여러 케이스에서 의료의 발달로 많은 생명이 구해진다. 그러나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것이 사고이든 노환이든, 불치병이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끔은 해봐야만 한다. 특히 그러한 환자들과 대면하는 의사들은 더욱 그러하다. 의학은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죽음과 직면하느냐를 생각하는 학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낫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죽음과의 대면방식은 어떤 면에서 의사들에겐 슬픈 일이기도 하다. 의학의 최종 목적과 상반되는 결과를 의사 스스로가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사미의 마지막 말은 그런 면에서 일종의 비상구를 만들어 준다.

“죽음은 패배인가!?”  


5. 불확실성

의사들이 애를 먹는 부분 중에 가장 큰 부분은 어떤 현상을 보는데 있어서 확실한 것은 거의 없다는데 있다고 한다. 역설적인지는 몰라도 아무리 방대한 해부학적, 임상적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환자를 대할 때는 크고 작은 예외가 발생한다. 이유는 오직 하나, 의사도 환자도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부검의 필요성이 증대된다. 왜냐하면 부검을 통해서 정확한 사인을 확인(알츠하이머병처럼)하고 또 그 병에 대해 심도 있게 조사하여 연구 자료로 남겨 놓으면 적어도 그 다음번에는 그와 유사한 사례에 있어 치료의 경과가 좋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완디는 부검의 딜레마에 대해 성토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사망환자의 10% 미만에 대해서만 부검이 행해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병원에선 아예 부검을 하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는 그 이유가 의사들에게 주로 있다고 여긴다. 부검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서 경비 절감을 위해 부검을 회피하기도 하며 의사들이 의료과실의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검을 하지 않는다는 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완디는 21세기 의학의 넘치는 자신감이 부검을 하지 않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데 주목한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의학의 발전이 이룩해 놓은 수많은 사례들과 정확한 진단, 시술 방법에 따르면 십중팔구 사망자의 사인은 자신의 소견과 일치할 것이며 따라서 굳이 부검을 할 필요까지도 없다고 믿는 것이 부검률이 하락한 제일 큰 원인이란 말이다.

그러나 부검은 결과적으로 그러한 인간의 오만함 및 통계에 대한 믿음을 종종 뒤집기도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속담도 이럴 때는 말 그대로 통용이 되는 듯싶다. 모든 상황을 다 지켜봤다고 확신을 했음에도 실제로 부검을 해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사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998년과 1999년에 행해진 세 연구에 따르면 부검으로 사인에 대한 중대한 오진이 드러나는 경우는 약 40%에 달한다고 한다. 또 부검 연구를 광범위하게 검토한 결과, 오진된 사례 중 약 3분의 1은 적절한 처치를 했더라면 환자가 살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검의 의의를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두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검사법과 영상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지시하고 리드하는 능력 있는 의사가 없이는 여전히 과실은 존재할 것이며 그것을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부검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부검에 대한 것이 사후의 처리과정에 속한다면 ‘의료결정’에 대한 문제는 중간과정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의료결정 과정은 포괄적으로 의사와 환자간의 모든 절차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중대한 결정(위험부담이 큰 수술 따위의 동의)에 있어서의 자주권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런 결정권에 있어서 과거에는 거의 의사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의사는 전문가이며 그 병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도 역시 의사뿐이란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이 카츠는 ‘의사와 환자의 침묵의 세계’란 책에서 그러한 전통적인 의학상의 결정방식을 비판한다. 환자들은 충분히 치료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치료결정은 당사자인 환자들이 내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얼마 전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전신마취를 하고 치아의 충치치료와 신경치료를 받을 예정이던 아이가 도중에 이상고열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한 케이스는 매우 드문 희귀케이스임에도 문제가 된 것은 병원에서 아이에게 전신마취를 하면서도 그 부모에게 그것의 위험성에 대한 고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한 사전 설명을 들었더라면 전신마취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이 부모 측의 입장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치과병원이나 협회 측에서는 유아의 충치 치료시 전신마취는 의례 행해지는 절차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결국 전신마취의 위험성에 대한 사전 설명을 누락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중대한 의료과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일상적인 절차의 치료행위였고 또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될 사항들이 이렇게 예외적인 상황에선 환자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치우치게 된다.

그럼에도 가완디는 그나마 이상적인 선택권자는 의사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의사가 그 병에 대해 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만일 의사와 환자가 모두 오류에 빠지기 쉽다면 나는 누구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줄 것인가? 그러나 분명 의사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환자들이 의사들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의 자결권 그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의사들에게 실력과 친절함을 원한다. 여기서 친절이란 환자의 자결권을 존중해 주고 그것이 환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때는 그것을 대리해서 해줄 수 있는 그러한 일을 의미한다. 또 의사는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에 비해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수술 전에는 당사자나 대리인의 수술동의서를 받아야만 하는데 그것은 비단 일반인들이 막연히 생각할 수 있는 병원 측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도피처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은 적지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합병증이나 부작용에 대해서,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높은 가능성으로 그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환자 자신이 그러한 수술을 해볼 의향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경우에 있어서 실제 상황이 닥치면 환자의 입장에선 당황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도 있다. 단순히 배를 가르고 이상부위를 조금 잘라내면 끝나는 성공률이 아주 높은 간단한 수술임에도 절차상의 고지에서는 수술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수술 후 마비나 심지어는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침대에 누워 그 말을 듣는다고 가정해 본다면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사망’이란 단어에 주눅이 들 수밖에는 없다. 한 연구결과를 보면, 일반인들의 경우 64%가 암에 걸렸을 때 치료법을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한다고 답했으나, 실제로 최근에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12%만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평화로울 때는 다들 전쟁 발발 시에 총을 들고 전장에 뛰어들 듯이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이 터지면 정말 갈지 안 갈지는 미지수인 것처럼 말이다.

심장에 이상이 있어서 에이로쿠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한 미야무라씨는 사이토의 권유에 따라 좀 더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가 있는 미나미 린칸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런데 수술을 하기로 날짜를 잡자 그는 매우 불안해한다. 왜냐하면 심장수술 자체의 위험도 큰대다가 전신마취에 대한 위험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환자였던 미야무라씨를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려는 사이토의 노력에 고마워하며 편하게 마취에 들어간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수술 성공률이 실패율보다는 높다고 하지만 자칫 실수 하나로 죽을 수도 있는 큰 수술을 앞에 두고 떨지 않는 환자가 있을 수 있을까? 신문에서 읽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무덤덤해 하지만, 실제 내 가족이 또는 친구가 그 대상이었더라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더욱 전문가인 의사의 역할이 중요시되는 것 같다. 분명 내가 맡은 환자도 언젠가 부터는 죽을 것이다. 그것이 살인은 아니지만 내가 죽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난 그것에서 무엇을 느끼며, 또 어느 정도 슬퍼할 수 있을까? 두 책에선 공통적으로 언급한다. 환자에게 사심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그를 위해 흘릴 눈물마저 없는 의사라면 과연 그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가장 먼저 실력을 길러야 한다. 그 다음이 뜨거운 가슴이다. 혹자가 말하길 실력과 양심은 공존하기 힘들다고도 하지만 그것이 꼭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진 않는다. 실제로 매스컴을 통해서나 아는 사람들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의사 상을 가진 분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여러 선택의 순간에도 그런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 가완디는 그러한 불확실성으로 둘러싸인 결정의 순간에 ‘의사로서의 직감’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엘리노어 브래튼이란 그의 예전 환자의 사례를 통해 이것을 설명한다. 그녀는 봉와직염처럼 보이는 상처를 가지고 입원한 환자였다. 그렇지만 외과의로서 환부를 살피던 저자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다른 병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병을 진단하는 방법에는 크게 눈에 보이는 현상과 환자의 말에 의존해 통합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방법과 병리학적으로 피나 체액, 조직의 일부를 자세히 조사하여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 가완디가 의심했던 병은 괴사성 근막염으로 미국에선 매년 1000여건이 발생하는 희귀한 질병이자 대부분의 환자는 노인이나 만성질환자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서는 더더욱 보기 힘든 병이었다. 미국에서 매년 300만 건 이상 발생하는 단순한 피부질환인 봉와직염과는 상대도 안 되게 무서운 괴사성 근막염을 확인할 길은 오로지 피부를 절개해서 관찰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어쨌든 단순한 직감적인 의심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추론은 결과적으로 그 병이 맞음으로 증명이 되어 의사에게는 희극이자 환자에게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이것은 가능성으로 볼 때 매우 드문 일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가완디는 그러한 의사의 직감이 단순히 운만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무의식적인 패턴의 파악이거나 경험에 따른 통합적 사고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일 엘리노어에게 그냥 봉와직염에 대한 처방만 내렸다면 분명 그녀는 다리를 절단하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기에 더욱 직감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의 보완도 중요하다. 많은 전문의 동료들의 소견도 들어보고 또 통계적인 연구도 필요할 것이며, 여러 가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환자에게 가장 최선인 것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의료현장에는 불확실한 인자가 언제나 존재하며, 어찌 보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의사들은 신이 아님에도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모순된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6. 마치며...

내가 가지고 있던 의사에 대한 이미지가 이번 독서를 계기로 조금 바뀌었다. 의사가 처한 환자와의 관계 역시 예비의료인으로서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의학의 발전으로 좀 더 많은 질병으로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되었지만 그러한 일의 최전선에 서있는 의료인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와 해낼 역할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가졌었던 ‘만능의사’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그들 역시 인간이며 과학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완치가 가능한 병도 더 많아지지만 역으로 새로운 병도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많은 과학자와 의료인들이 그것에 도전을 한다. 즉 질병이 항상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한다. 그리고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의사가 가진 지식의 불완전성 때문일 수도 또는 단지 인간이 범할 있는 과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의료계처럼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현장에서는 그것이 결과주의적으로만 비춰진다는 데 있다. 물론 의사의 과실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들이 실제 현장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분명 사후처리과정에 있어서 처벌보다는 예방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신입생인 된 지금의 입장에선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기 때문에 기대와 더불어 약간의 긴장도 된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의사 상과 조금 더 비슷해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러한 기본지식을 알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불완전한 의료현장에서 최선의 컨디션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환자를 위한 뜨거운 가슴을 가져야 함을 느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력이 우선시 되어야 하겠지만 그러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그 의사는 불완전하고 위험한 의사일 수밖에 없다. 이번 독서는 그런 의미에서 의예과 학생의 초심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본격적으로 의학공부에 들어가는 예과 2학년 2학기가 되기 전에 내게 더 많은 경험과 사색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목차

1부 오류가능성
칼 쓰기 연습과 도둑 학습
닥터 컴퓨터와 미스터 머신
의사들이 과실을 범할 때
구천 명의 외과의사들
좋은 의사가 나쁜 의사가 될 때

2부 불가사의
13일의 금요일의 보름밤
통증
구역증
안면홍조
식탐

3부 불확실성
시신에게 묻다
유아 사망 미스테리
의료결정, 누가 할 것인가?
모든 의사에게는 그만의 엘리노어가 있다
Response : ,

1. 하버드대학병원의 의사가 되기까지(멜빈코너, 명경)
2. 춤추는 뇌(김종성, 싸이언스북)
3. 아프리카 내사랑( 미셀 아르스노, 들녘)
4. 한탄강의 기적(이호왕, 시공사)
5. 큰의사 노먼 베쑨(이원준, 이룸)
6. 이 세상에 의사로 태어나(서홍관)
7. 나는 외과외사다(강구정, 사이언스북스)
8. 죽음을 어떻게 살것인가?(히노하라시케아키)
9. 칼짐머의 기생충 제국
10. 죽은자들은 토크쇼....


이번 방학은 예과 1학년의 첫방학이다.

이미 대학생의 방학에 대한 기대나 낭만은 접은 지 오래이기 때문에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가장'이란 말을 붙일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중간 결론을 내보니..

예1의 첫 방학이자 공식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25%의 기간에는 의사로서의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냉철한 시선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마 2학기 방학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즉 1학년때는 전공공부가 아닌 의사가 되기 위한 기본 소양을 기르기 위해 읽고 싶었던 책과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보며 感을 어느정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2학년때는 마지막 방학이라 더 놀자...이런 식이 아닌 본과에서의 공부를 위한 워밍업 단계로 하고 싶다. 내가 정말 원해서 온길이라면 그 길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휴식과 여유를 가지자.

선배들의 말처럼 예과때 가지지 못하면 당분간 가지지 못할 자유이다. 그렇지만 항상 깨어있자. 그러면 분명 무언가 남기고 갈 수 있는 그런 방학이 될 것이다.
Response : ,

2005년 여름방학이 기억나네요.
별다른 걱정없이, 그러나 본연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채로
예과 1학년 여름을 맞이했습니다.

독서 자체보다는 큰 대형서점에서 이것저것
'윈도우 쇼핑'하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한가지 계획을 세웠고,
또 그 안에서 더 구체적인 레벨이 나왔습니다.

[홈페이지 재생] - [만물상 코너] - [방학 독후감]

당시 나모웹에디터로 기본 틀을 만들고,
유료계정을 산 뒤에 제로보드로 게시판을 꾸몄습니다.
아마 05년도 여름이 가장 실천력이 컸던 때였겠네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
바빠진채로 계속 가다가
결정적으로 홈페이지의 '정문' 역할을 해주던
무료 웹계정이 사라지면서 저의 3번째 홈페이지도 그렇게 잊혀져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텍스트 위주의, 그러나 부가기능이 많아진
블로그형태의 홈페이지로 4번째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나모 1] - [미니홈피] - [나모 2] - [티스토리]

우선은 지난번 제로보드에 있던 글들 중 몇개를
여기로 옮기려고 합니다.
제목은 그때 그 제목을 그대로 쓰려고 하구요

081V = 2008년도 첫번째 방학

그리고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다음주 월요일이 개강이라는 ㅠ)

Respons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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