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남은 2011년을 마무리하며

Posted 2011. 12. 29. 13:29, Filed under: Ex-Homepage/Diary2014

1월 초에 국가고시를 보고
의사가 된 후에 기쁨과 설렘,
그리고 바로 모교병원에서의 인턴.

이후의 삶은
재미있고 흥분되고
가끔은 갈등도 있었고
아픈 사람들을 보며 슬프기도 했고
또 거기서 내 자신을 채찍질 하기도 했었다.

사실 무난히 내가 원하는 과에 들어가서
2012년에는 열심히 그 과의 일을 배우고 싶었는데
12월의 시험과 면접, 그리고 떨어짐(=떨턴)
평소에 다른 대안을 생각을 하지 않아서일까?
며칠간은 그 사실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젠 다 인정하고 있으니까! 하하하.

중간에 가끔씩 시간을 내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
부모님과 형,형수, 그리고 유나와 함께 즐거웠고
그래도
내가 아는 많은 분들께 연락 잘 못드려 죄송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참 의사되기 잘 한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를 내가 판단할 때
무척이나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것이 적당한(within normal limit) 의사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일지라도
그것은 큰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내년도 참 바쁘고 흥분된 한해가 될 것 같은데
잘 해나가도록 열심히 살것이다.

남들 편하다는 천안의료원도 4월이라 혼자 돌면서 full로 당직섰고
가정/정신과를 돌던 6월도 한달 내내 DM foot 하루 3번씩 드레싱하며
검진도 peak에 달했었다. CS도 시작하는 1일이 토요일이었음에도
응급수술 2개로 바로 시작했고, 턴체인지인 끝날까지도 대박수술 하나했고.
뭐 인턴 개개인 입장에선 자기가 제일 힘들었겠지만
그러고보면 내가 '환타'의 기질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10년, 20년 후의 좋은 추억이 되겠지?

2005년에 의대에 들어온 후 바쁘게 7년을 보냈는데,
막상 1년동안(물론 GP로 활동은 하겠지만) 원치않던 휴식을 갖게 되니

...

흥분된다!
어찌보면 앞으로 내 남은 인생에서 이런 1년의 시간은 다시는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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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MD가 되었습니다.

Posted 2011. 3. 1. 11:20, Filed under: Ex-Homepage/Diary2014

지금의 큰 기쁨과 설렘으로 약간의 두려움과 부담을 이겨내는 인턴생활을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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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싸이월드 사진첩에 있습니다.

2011. 1. 29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히 세면을 하고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시내버스가 다닌다는 것을 어제 밤 인터넷을 통해 확인했었기에 캐리어와 백팩을 미리 다 챙겨놨었던 것이 아침 시간을 단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의식주 중에서 '주'가 해결되었기에 이번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항가는 리무진 버스는 4시 조금 넘어서부터 있다고 했다. 잠실역 5번출구 쪽에서 버스를 타고 잠깐 눈을 붙였는데 일어나보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새벽)에는 길이 안막혀서인지 잠실에서 인천까지 1시간 10분정도만에 도착했다. 일찍 일찍 다니니 수속도 빠르게 할 수 있었는데, 대한항공 수속 시작시간에 맞춰서 줄을 서서 짐을 부쳤다. 오프닝 시간에 다 같이 수속화물대 앞에 나와 배꼽인사를 하더니 일을 시작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침에 이렇게 일찍 오면 이런 장면도 볼 수 있구나...

 그후 배가 고파 근처의 한식당에서 만원이나 하는 설렁탕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면세점을 가기 위해 터미널 내로 들어갔다. 작년 가을 미국에 들어갈 때에 비해 훨씬 수월한 검색이었다. 그리고 7시에 면세점의 철제 셔터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개점'을 했고 거기에 맞춰 구경을 했다. 탑승 시간에 비해 100분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그냥 저냥 면세점을 돌아다녔다. 세계적으로도 대형규모를 자랑한다는 인천면세점을 특정 브랜드나 품목에 상관없이 30대 남자가 돌아다니니 이건 시간이 너무 남았다. 그래서 'ㅠ'자 모양의 면세점을 다 돌아다닌 후에 잠깐 고민을 하다가, 동환이 와이프 선물로 키엘선물세트와 립밤을 구매했다. 생각보다 비용이 들었지만 4박5일동안 동환이 집에서 신세를 질 것이기에 그래도 과감하게 구매했다. 이미 동환이 선물과 동환이 아들인 태훈이 선물은 서울에서 준비를 했기에 면세점에서 그닥 구매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오늘 잘하면 양양네 부부도 만날 것 같았다. 양양은 2005년 여름 백두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 알게 된 착한 중국인 친구이다. 한국을 들락날락하는 동환이네 내외와 달리 양양은 한국에 거의 올 일이 없었기에 되도록이면 전통적인 선물을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전통음식 비슷한 것을 파는 곳에 가 점원에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선물을 물어봤다. 한과과 김치, 그리고 즉석요리용 삼계탕이 있는데 점원 말로는 앞에 2개는 중국에도 많기 때문에 크게 티가 안날 것 같아 자신은 삼계탕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래서 삼계탕을 2인분을 샀다. 

 그리고 비행기를 탔다. 비행시간 자체는 1시간 30분을 조금 넘었는데 그래서인지 비행기 내에서 '타운'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끊겼다.-_-; 어쨌든 한국에서 설을 보내면 2월 7일부터 바로 병원으로 투입이다. 즉 앞으로 적어도 2년간은 이런 자유여행의 기회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앞으로의 5일이 기대가 되었다.

 + @베이징 공항

 공항에서 동환이 내외를 만났다. 베이징 공항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나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항공을 타고 왔는데 밖으로 나가는 수속용 라인이 외국인용은 2개고 내국인용이 5개였다. 물론 내국인이 거의 다 빠져나가니 2개정도를 더 열여주긴 했지만 그렇게 배려있어보이진 않았다. 어쨌든 반갑게 만난 우리는 '헤이처'라는 특수영업(?)용 차를 타고 베이징 시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하이디라우'라는 중국 샤브샤브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엄청난 친절로 무장한 점원들이 인상적인 이 식당은 손님이 매우 많았다. 주말에는 예약번호가 50번이 넘어간다고 하니 뭐...이 식당은 논현동의 '훠궈'의 샤브샤브와 비슷했는데 오히려 더 중국적인 맛이었고, 동환이 말에 의하면 육수맛이 거기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충분히 배를 채운 후 우선 동환이 집에 짐을 풀고서 우리는 북경의 대표명소인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바로 빡/시/게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 @천안문광장과 자금성

  CNN 등에서 자주 보이던 모택동의 초상화가 자금성의 입구이자 천안문 광장에 붙어 있었다. 사람도 많았고 공안도 많았는데 원래 거기는 그렇지만 지금은 최대 명절인 설이 다가오기에 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모든 것이 사이즈가 컸고 나는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역시 여러 잡상인들도 조금 보였는데 물리적으로 큰 장소라 그런지 그렇게 분주한 느낌이 나지는 않았다.

 경복궁같은 건물 여러개가 길게 연결된 모습을 한 자금성은 생각보다 볼것이 많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건물 안에 보면 황제가 옷을 입던 곳, 장원급제한 사람에 뭔가를 주던 곳 등 예전의 모습을 설명하는 글이 하나정도 씩만 있었기 때문에 순간순간 사진을 찍고 바쁘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2시정도에 들어가서 슥슥 훑어보니 4시30분 정도에 끝부분에 도달을 했고, 게다가 곧 문을 닫는다고 나가라고 할 정도로 야박(!)했기 때문에 첫날 바쁜 일정에도 자금성을 다 볼 수 있었다. 자금성의 끄트머리에는 작은 숲들이 있는데 바로 바깥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 @왕푸징 거리

 그곳에 나와 우리는 택시를 타고 북경의 명동거리라 불리는(적어도 인터넷 블로그 상에서는) 왕푸징 거리에 갔다. 첫 느낌부터 우리나라의 명동과 닮았는데, 대형건물들도 많고 군데군데 우리나라의 기업광고도 보였다. 오늘 많이 걸었기에 일단 우리는 근처의 맥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조금 녹였다. 그리고 이미 왕푸징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양양과 그의 남편을 기다렸다.

 한시간정도 지난 후, 오랜만에 옛 친구인 양양네 부부를 만났다. 결혼한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신혼부부였다. 양양은 북경에서 국책은행에 취직을 했고 거기서 만난 회사커플과 결혼을 했는데 한국과는 그닥 연관이 없는 회사라 요즘엔 한국말도 많이 까먹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간단한 회화는 자연히 했지만. 시간이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어 근처 쇼핑몰에 있는 유명한 중국음식점에 갔다. 거기서 사천성음식을 여러가지 시켰는데, 베이징덕 등 특이한 음식을 시켜주었고 거기에 메기요리, 탕수육, 버섯, 해파리, 볶음밥 등 다른 전통음식도 몇가지 더해 거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 어린 비둘기를 통으로 구운 요리도 있었는데 사진이 너무 적나라하게 메뉴판에 나와 있어서 차마 시키지는 못하고 사진만 찍었다. 역시 중국은 손님에게 식사를 풍성하게 대접한다더니만 정말 엄청 많이 먹고도 남길 정도의 음식이 나왔다. 베이징덕은 나름 신기했는데 특히 슬라이스로 잘라만든 껍질부분이 맛있었다(?). 전반적인 음식이 평소 한국에서의 입맛과는 잘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여행지니까 충분히 즐기며 먹을 수 있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다섯명이서 400원이 넘게 먹었으니 양도 양이지만 상당히 고급음식이었다는 것을 알수있었다.

 + @올림픽 경기장 주변 구경

 식사 후 양양 내외의 초대로 올림픽 경기장 근처로 갔다. 그곳에 신혼집을 마련했기에 간 것인데 2주밖에 안된 곳이라 해도 집이 정리가 거의 안되어 있었다. 그래도 전혀 부담없이 집안까지 초대하는 모습을 보니 약간의 컬처럴 디퍼런스를 느꼈다고나 할까? 사실 구경이라 할 것도 없이 잠깐 있다가 나와서 양양 남편의 차를 타고 근처를 드라이브했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딴 수영장의 모습이 겉보기에 물고기 비늘 형상을 띄고 있는데 직접 보니 그곳에 들어간 엄청난 전기세가 상상이 되었다. 주경기장도 역시나 멋있었고 미디어 센터 등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미 밤이었고 차량을 이동하면서 봤기에 사진을 잘 찍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올림픽 경기장 주변의 여러 큰 건물들도 화려했고 동환이 말로는 근처가 땅값이 비싸다고 했다. 그렇게 잠깐 구경을 하다 다시 그 차를 타고 동환이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오늘 베이징에 왔는데 참 많은 것을 겪었던 것 같다. 그래 이왕 온 김에 빡시게 북경을 다 누비고 다니리라~

2011. 1. 30
 

 아침 9시정도에 일어났다. 동환이 장모님께서 해주신 아침을 먹고 동환이와 둘이 '이화원'으로 향했다. 동환이 부인은 어제 너무 고생한 것도 있고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기에 월요일에 출근도 해야해서 그냥 우리 둘만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는데, 왕진역은 최근에 지어서인지 상당히 깨끗했다. 한국과 다른 점은 공안도 좀 보였지만 그 공항에 있는 Xray 검색대가 있는데 공안들이 조금 큰 가방이나 몇몇 사람들을 랜덤하게 골라 가방을 검색대에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짐이 없었기에 아무 상관없었지만. 지하철을 3번 갈아탄 끝에 이화원이 있는 '북경문역'에 도착했다. 

 + @이화원

 이화원은 서태후의 여름별장이라고 했다. 예전 교양중국어를 배울 때 중국 여행에 관련된 chapter가 있었는데 그때 자주 나왔던 것이 '고궁'과 '이화원'이었다. 여기서 고궁은 자금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오늘 온 이화원이 그 흔히 나오는 여행지인 것이다. 이화원은 쉽게 말해 올림픽공원같은 산보공원인데 여러 황실과 관련된 장소와 큰 호수가 있는 휴양지이다. 

 50원의 자유이용권을 끊어서 들어간 이화원의 첫 느낌은 '한산'이었다. 오늘은 일요일임에도 날씨가 추워서일까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거의 없었다. 뭐 우리가 일찍 온 것일수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행진했다. 그런데  어라? 직선 코스의 초반부에 있는 건물을 보수공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회해서 돌아가라고 쓰여있었고 내가 뽑아간 한국어판 이화원지도도 사실 부정확했다(심지어 중간에 답답해서 지나가던 중국청년에게 몇번 이곳이 어디인지 물어봤는데, 고심끝에 그들도 모른다고 하더라는). 그래서 동환이와 상의끝에 그냥...그냥 걸었다. 어딘가 가보면 길이 나오겠지 하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화원의 자랑이던 큰 호수도 이미 꽁꽁 얼었고 그 위로 사람들이 대담하게 마구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못느껴 우리 둘은 안전하게 걸어다녔지만...그래도 자유이용권 가장자리를 보니 뭔가 5개의 아이템이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씩 보면서 punching을 뚫는 재미를 느끼며 동심으로 돌아갔다(그런데 '소주거리'는 결국 찾기도 귀찮고 어려워 가지 못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이화원 가운데 서있던 탑이었다. 인터넷이나 엽서 등에서 종종 봤던 높은 곳에 있는 사원인 '즈후웨하이(불향각)'였다. 인터넷 검색에 '이화원'을 치면 나오는 사진 중 산 정상에 있는 사원모습을 한 곳인데 그 안에는 큰 불상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유적지들도 이리저리 보면서 지나쳤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아무리 동환이 있어도 전문 가이드가 아닌 이상 내가 좀더 이런 유적지에 대해서 공부해 갔다면 더 인상적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점이다.

 각 시대별 및 소재별로 작품을 구분해 놓은 여러 갤러리도 있었고(그렇게 재미있진 않았지만), 공연을 하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이렇게 이화원 구경을 마치고 지친 다리를 이끌고 나온 우리는 택시를 타고 칭화대 근처로 갔다.

 + @칭화대와 북경대

 동환이가 작년까지 칭화대에 몸담은(?)적이 있기에, 이곳 근처의 지리를 잘 안다고 해서 먼저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일단 맥도널드에 가서 빅맥세트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 근처에도 '오다쿠'라는 한인밀집지역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한글로 된 간판도 간혹 눈에 띄었다.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스타벅스 등이 아닌 그냥 지역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오후의 계획을 짰다. 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는 것이 그냥 칭화대와 북경댁다 유명하다기에 스윽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 계획의 다였다. 칭화대는 이과로, 북경대는 문과로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확실히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그런 나이가 되어성일까 그렇게 감흥이 남다르지는 않았다. 물론 호기심은 여전히 있었지만!(참고로 칭화대에는 의대가 없지만 북경대에는 있다. 이것때문에 북경대에서 참 고생했다는;)

 일단 칭화대 입구에서 사진을 한장 찍고, 교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학교는 컸다. 그리고 장소가 큰 데다 건물까지 띄엄띄엄 크게 건물을 지어놓으니(마치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같은 건물이 하나의 단과대학교 건물이었다) 더욱 웅장해 보였다. 일요일에다 곧 명절이라서, 아니 결정적으로 방학이라서 학교 안에 학생의 모습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계속 둘이 걸으면서 구경을 했는데 건물들 모습을 사진에 찍는 것 말고는 한 것이 거의 없었다. 입구의 정 반대쪽인 기숙사촌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려다 그냥 동문으로 나와서 택시를 타고 북경대로 향했다. 거리상으로 매우 가까웠다.

 북경대는 오히려 연세대학교의 고풍스런 건물분위기가 많이 났다. 물론 낡았지만 그래도 건물은 컸고 또 최근에 지은 몇몇 연구소 등은 최신식 건물로 보였다. 북경대는 동환이가 잘 모르는데다 캠퍼스에 지도는 많은데 너무  모식도로 나타냈고 결정적으로 'You are here'라는 글자가 없는 맹 지도뿐이라 도무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건지 구분이 잘 안갔다. 그런데 정말 캠퍼스지도는 많았다. 교차로에 딱 서서 보면 한 3~4군데는 동일한 지도가 보이더라는;;

 택시를 타고 칭화대를 갈 때 북경대 근처를 지나쳤는데, 분명 Beijing university hospital(?)이라는 금장 간판이 달린 건물이 북경대학교 지하철역 옆에 있는 것을 보았고 그곳이 '북경대 의대 부속병원'이란 생각을 가지고 이따 들러야지 했는데 이상하게 정작 북경대에 오니 찾기가 무지 어려웠다. 상식적으로 그럼 북경대학교 지하철역으로 가서 그 옆건물을 찾으면 되겠지만 이미 칭화대 및 북경대, 아니 이화원까지 계속 걷기 행진을 계속한 우리는 더이상 병원찾아 삼만리를 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목적없이 북경대 안을 돌아다녔다. 신기하게 북경대 안에 호수가 있는데 그곳이 얼으니 체대에서 주최하여 스케이트장 및 썰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비용이야 얼마 안하겠지만 그런 것을 학교측에서 허락을 하다니 참 신기했다. 북경대에는 칭화대에 비해 가방을 맨 대학생이 몇몇 보였는데, 서양인도 조금 볼 수 있어서인지 한국에서의 대학교와 비슷하단 느낌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다. 드디어 긴 산보를 마치고 다시 택시를 타고 동환이 집으로 컴백하였다.

 + @저녁식사

 태훈이, 동환이 부인과 함께 넷이서 근처의 유명한 레스토랑에 갔다. 오늘 간 곳은 왕진에 있는 중국레스토랑인데 동환이네도 종종 오는 것 같았다. 여기서도 흔히 보기 어려운 음식을 시키라고 하여 난 '오리 간'요리를 시켰다. 그리고 탕수육 및 전통 중식을 시켰다. 오리간 요리는 예상했던 것 처럼 순대의 간과 비슷한 맛이 났는데 약간 더 비린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택시를 타자는 동환이의 절규를 무시하고 10분정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바쁜 하루였다. 비록 하루 종일 걷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관심 많았던 장소를 가봤다는 것에 만족했다.


2011. 1. 31

 천쉐이는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그런데 어제 빵을 사놔줘서 난 그것을 먹었다. 동환이는 원래 아침을 잘 안먹는다며 먹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만리장성을 갔다. 아침 일찍 헤이쳐아저씨를 불러 차를 탔다. 아저씨는 기본 속도 100Km/h로 달리며 종종 레이싱을 펼쳤고 그러다보니 1시간 남짓 걸려 어느새 만리장성 입구에 도달했다.

 + @만리장성

 입구에는 오색의 기가 날리고 있었고 추운 날씨를 걱정해주는 삐끼들이 비니모자를 팔고 있었다. 난 미리 비니를 하나 가져왔는데 오는 도중에 차안이 너무 더워 이거 괜히 짐만 되는거 아니야 했는데, 만리장성에 올라가보니 그 생각이 오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단 매표소에서 케이블카 왕복 및 만리장성 입장권을 끊어서 올라갔다. 케이블카는 스키장의 케이블카와 비슷했는데 뭐 길이나 높이가 그런 곳보다는 훨씬 높으니 차원이 다르긴 했다. 도중에 흔들거림과 옆에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찬바람과 강풍소리가 빡세긴 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입장을 했는데, 바로 앞에 있는 표지판에 Hero slope라는 눈길이 가는 명칭이 쓰여있었다. 오른쪽으로 가보라고? 그래서 그쪽으로 가보니 저기 언덕너머로 영웅들만이 오른다는(!) 높아만 보이는 만리장성 코스가 보였다. 우리 둘은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각도가 높았고 계단도 가파랐지만 더 문제는 계단이 없이 그냥 돌로 이뤄진 곳도 각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거기서 자칫 발 미끄러지면 살짝 정신을 잃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높이도 높았기에 주변의 강풍소리가 생생하게 들렸고 옆을 보니 고소공포증을 조금 유발할 정도로 빡신 코스였다. 그러나 푸른빛 서양인도 그리고 코흘리개 중국꼬맹이들도 잘만 오르기에 나도 그냥 올라갔다. 잡념을 버리고 발 아래의 스텝에 집중하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slope 정상에 올랐고 난 거기서 hero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이렇게 이야기 해도 정작 별거 아니란 것을, 아마 가본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함).

 이제 내려와 본격적으로 만리장성을 구경하려 했는데, 보니까 저 멀리 산등으로 장성이 길게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냥 다 똑같아 보였다. 그렇다..뭐 다를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냥 한 500m 정도를 걸으면서 사진 찍고 그랬다. 여전히 팬던트에 이름새겨주는 잡상인들도 간혹 보이고, 심지어 슬라이딩카를 지어놓고 장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화장실도 하나 지어놓고 조잡하게 장성모양 치장을 해놨는데 동환이 말로는 '유료'라고 해서 가보지는 않았다. 역시 만리장성이 중국을 대표하는지라 많은 외국인과 중국인들로 가득했고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있었지만 난 사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올 때는 우린 장성 밖의 벽쪽 길을 따라 올라왔다. 장성 위로 지나오지 않으니 마치 한국의 동네 산을 걷는 듯한 느낌이 났다. 소문과 달리 소변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는데, 겨울이라 그런건지 아님 추위에 내 코가 살짝 마비되어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던 정말 운동을 많이 한, 그런 날이었다.

 만리장성 아래 주차장에서 간단히 요기거리를 채우려 했으나, 겉으로 봐도 별로인 허접한 식당들 몇개만 보일 뿐 그닥 없어서 그냥 난 굶었고, 아침을 먹지 않은 동환이는 배가 고프다고 '대만 소세지'를 5원을 주고 사먹었다. 대만소세지라고 해도 그냥 한국에서 파는 프랭크소세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잠시 뒤에 기사아저씨가 와서 우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팔당령 야생동물원

 2007년에 세윤이가 왔다가 완전 반했다는 야생동물원이 만리장성 옆에 붙어있었다. 그러나 겨울이라 손님도 거의 없고 뭔가 겉보기에도 매우 한산해 보였다. 더 문제는 동물도 별로 없다는 것! 그래서일까? 비용은 넘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셋+안에 들어가는 우리 차량 이렇게 해서 305원이었다. 개인적으로 동물원을 그닥 좋아하진 않았지만 동환이가 뭔가 강추를 해서 왔지만...역시 겨울에는 동물도 추운가 보다. 
 
 여기는 개인차량을 가져오면 그 안에서 창문을 다 올리고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사파리 형태의 동물원이다. 상당히 신기한 컨셉이긴 하지만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아쉬웠다. 인상적인 동물도 거의 없었고 ㅠ
사자, 호랑이(한 4종류? 종류별로 우리가 다름), 곰, 이리, 여우, 여러종류의 새, 원숭이 등을 봤지만 정작 동물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고 구석에서 쉬는 형태를 취했기에 안습ㅜ 게다가 기사아저씨는 사자나 호랑이 우리를 지날 때는 차가 손상될까봐 빠르게 빠져나갔기에 사진도 잘 못찍었다. 역시 동물원은 여름에 와야 제맛!

 + @양꼬치구이점에서 점심식사
 
 북경시내로 돌아와 동환이와 테이블컴퓨터로 주문하는 왕진에 있는 양꼬치점에 갔다. 동방승 꼬치전문점이란 곳인데, 5개에 10원에서~25원하는 꼬치를 먹었다. 항상 놀라는 것은 식당내 흡연가들이었다. 오늘도 역시 주변에 담배연기가 뿌옇게 끼었는데 신기하게도 현지인으로 보이는 애기 엄마 2명이 컴플레인 거는 것을 보고 '아 역시 세계의 어머니는 같구나'란 생각을 했다. 뭐 그 내용이 자리를 옮겨달라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동환이 말로는 이 근방에서 제일 괜찮은 양꼬치집이라 하였지만 나름 맛있긴 한데 좀 비싼 감이 있었다. 어쨌든 먹고 나서 바로 택시를 타고 동환이 와이프 회사 근처로 가서 대기하였다.

 + @수수시장

 천쉐이의 회사 옆건물 아래 커피샵인 코스타커피에서 맛없는 커피와 더 맛없는 핫초코를 시키고 죽치고 있었다. 끝나기로 예상한 시간이 밀려서 1시간 가량 있었는데 역시 여기도 젊은사람 위주로 커피샵을 오는 듯 보였다. 옆에 앉은 중국인 커플이 종종 눈치보며 키스를 하는데-_-; 이 근처의 건물 풍경은 건물크기나 그런 것이 테헤란로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LG, SK, 삼성 등의 로고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드이어 천쉐이를 만나 수수시장을 가기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한정거장 거리에 있는 수수시장은 북경의 유명한 4대 '짝퉁시장' 중 가장 큰 곳이라 하였다. 지하철역과 연결된 입구에서 부터 'silk street and pearl market'이라고 쓰여져 있는 복도를 지나면 나가는 입구 자체가 수수시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이 지하 2층잉었고 이미 인터넷으로 확인한 층별 정보에 의하면 본격적인 시장은 지하 1층부터 시작되었다(그런데 전자제품 파는 곳은 없어진 듯 함. 그 층 자체가 보석상가로 바뀐듯).

 지하부터 돌아다니며 여러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중국상인들이 워낙 유명하기에 이런 흥정하는 모습들, 즉 나가는 사람을 잡는 모습이나 가격을 내려부르며 제스쳐를 취하는 모습 등이 궁금해서 이 시장에 와보고 싶었다. 서양인들도 나름 재미있게 흥정을 했는데 특이한 점은 그들은 대부분 나가면 뒤에서 가격 낮춰서 상인들이 붙잡을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가더라는 것이다. 원래 가격을 낮춰부르면 다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흥정의 정석' 같은데 그들은 자신들이 정한 금액을 종이에 써서 거기 맞추지 않으면 바로 돌아나갔다. 뭐 많은 케이스를 본것은 아니지만 대충 서양사람들은 그러했다.

 반면 우리 팀이나 다른 한국관광객들은 자신이 물건을 사기로 결정한 마켓에서는 느근하게 흥정을 벌였다. 우리는 다행히 동환이 부인이 한족이여서 바로바로 흥정을 했고 사실 흥정이라기 볻다는 '나 중국인인데..'라는 민족성에의 호소(!)로 접근을 했다. 그렇지만 냉정한 중국상인들은 첫 가격을 터무니 없이 부르지는 않는 반면 처음 제시한 금액에서 더 싸게 해주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보통 이럴 때 우리가 자리를 뜨면 그 상인이 뒤에서 우리에게 조금씩 가격을 낮추는 것이 교과서에서 본 것인데...그러지 않더라는. 알고보니 이미 가격을 낮출만큼 낮춘 가격에 부른 것이였다(뭐 이것도 '이득이 없는 장사는 없다'는 규칙에 비추어 그들이 뭔가 남기는 것이지만). 솔직한 심정에 나도 뭔가 하나 아이템이 있으면 거기서 열심히 흥정도 해보고 하려 했지만 천쉐이가 오늘 연장근무도 했고 내일도 7시에 출근이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돌아다니다가 눈여겨 본 '컬럼비아'라고 찍힌 고어텍스 짝퉁옷을 하나 사기로 마음먹었다.

 나름 흥정을 해보려 했지만 2가지 디자인에서 하나는 150원, 그리고 하나는 180원을 불렀다. 물론 처음에는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천쉐이 덕분에 내린 가격이었다. 어쨌든 180원에 하나 구매하기로 했는데 이왕 사는 것 또 다른 짝퉁시장의 원칙! 품질 체크를 시작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봤던대로 잠바를 살 때는 자크도 한 7~8번정도 올렸다 내렸다 했고, 박음질 상태도 꼼꼼하게 보고 버튼도 불량여부를 확인했다. 이렇게 해서 검은색 자켓을 3번 되돌려 보낸 후에야 나름 A급양품을 구매하였고 중국말을 못하는 난 가격흥정 대신에 재미난 경험을 대신한 값으로 '쎄쎄'를 외치며 나왔다. 난 이것을 고래택스(Goretex)라 이름붙여줬다. 

 시장을 돌아다닌 시간은 1시간을 조금 넘겼지만 눈이 벌써 충혈된 천쉐이 걱정에 그만 나와서 저녁을 먹으러 택시를 탔다.

 + @구운물고기 음식점

 이번에 간 곳은 동환내외가 예전 북경에 처음왔을 때 살던 곳 근처로 유명한 구운물고기음식점이었다. 올리브 기름같은 느낌의 국물(생선기름?)에 큰 물고기를 가로로 반토막내서 안에 연근, 야채 등 듬뿍 넣고 끓인 음식인데 고기도 약간 질겨서 약간 부드러운 돼지고기 맛이 났다. 원래 물고기를 그닥 좋아하진 않았지만 나름 중국 특유의 음식이란 생각을 하고 먹으니 맛있었다. 거기에 칭다오맥주+옌지맥주를 시켜서 마셨다(옌지=북경의 옛이름). 식사가 좀 늦게 나와 천쉐이가 피곤해 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고 택시 타고 다시 왕징으로 컴백하였고 집에서 동환이와 간단히 땅콩과 캔맥주를 마셨다.

 오늘은 나름 비용도 최고로 많이 들고(1000원 넘게 사용), 만리장성과 짝퉁시장인 수수시장을 포함해 유익한 경험을 많이 했다. 

 2011. 2. 1

내일 오후 비행기이긴 하지만,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나 다름이 없었다. 특히 이따 오후에는 천쉐이의 친구들과 함께 만나기로 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 @따산즈

 따산즈는 디자인거리, 예술거리라고 불리는 곳으로 여러 무료 갤러리들이 많은 곳이다. 그러나 오늘이 연휴와 겹쳐있는 날이라 그런지 문을 연 곳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한국관광객을 본 것은 만리장성 외에는 처음이었다. 아마 패키지여행 코스에 이 거리가 포함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번주 내내 쉬는 직업군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역시 예술인들은 그냥 쭉 쉬는듯 별로 연 갤러리가 없었지만 원래 예술에 별 관심이 없어서인지 실망스런 감흥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거리에 있는 재미난 구조물들이나 사진을 찍고 할 수 있어서 빠르게 지나갈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는 기념품가게가 많이 있는데 직접 만든 수공품 등을 팔고 있었다. 옷, 가죽, 악세사리 류 등을 주로 판매하는데 막상 돈을 지불하고 사기는 좀 꺼려졌다. 결정적으로 한국 다이소에서 2000원 주고 산 내 약통! 그것과 똑같은 약통을 파는 상점을 본 후 악세사리류는 사지 않기로 굳혔다. 왠지 동대문시장에 동일한 물건을 더 싼가격에 팔듯한 느낌이 들어서랄까?

 석탄으로 가는 기차나 발전소 모양의 공장도 있었는데, 그건 예술 작품이 아니라 그냥 그 거리에 있는 실제 기차와 발전소 인듯했다. 한편 한국어로 된 따산즈 거리지도는 매우 허접했는데 이건 전혀 알아볼 수가 없는 그런 구조로 설명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무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결론적으로 하고 있는 갤러리 자체가 별로 없어서 정확한 지도도 의미가 없었을 거란 생각에 위안을 삼았다. 차라리 스마트폰을 미리 구해왔다면 '구글지도'로 더 자세하게 볼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생각도 좀 있었다. 그 후 택시를 타고 일단 왕진으로 컴백한 뒤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 @일식 라면집

 동환이가 좋아하는 일식 라면집을 갔다. 왕진의 백화점 지하에 위치한 그곳은 일본식 라면전문점인데 정작 우리는 밥을 시켰따. 내가 중국에서 왠 일식라면이냐라는 말을 흘리듯 했는데 그걸 듣고 밥을 시켰다고 했다. 나름 맛있었지만 확실히 중국 소스는 '화끈'거리는 뭔가가 있었다. 생강과 비슷한 느낌의 '그것'은 맵지는 않았지만 치아의 구석까지 들어가 '징징~'거리게 만드는 참 신기한 재료였다. 마침 옆자리에 중국 NHN 법인 사람 2명이 와서 라면 먹었는데 네이버 중국지사란 생각이 들자 신기했다(p.s. 한국에서 형에게 물어보니 그네들 월급주는 것에 비하면 한국 NHN에서 사람 한명 데려다 놓기가 부담된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의 인력이 고급인력이란!). 이렇게 간단히 먹고 백화점 구경을 간단히 했다. 목적은 crocs를 혹시 파나 해서였다. 운이 좋겠도 2층에 Crocs 매장이 있었는데 oh my god, 여름 신상가격이 399원(=6만 8000원)이라해서 깜짝놀랐다. 디자인도 그냥 별로 였는데 한국보다 더 비싼듯; 

 + @지압 마사지

 택시를 타고 지압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전신마사지가 150원정도 하는데, 이상하게 아파트같은 건물에 영업소가 있었다(그렇다고 불법, 퇴폐는 아니고). 허가된 마사지사가 해주는 프랜차이즈 마사지점 중에 가장 잘한다는 '이륜당'을 갔다. 동환이 말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했는데 실제 검색을 해보니 지난 여름에 비해서도 훨씬 비용이 올랐다. 대부분 고객이 한국사람들이라 카운터에는 조선족 여자가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있으니 우락부락 근육맨 2명이 들어와서 마사지 해줬다. 1시간 30분 정도 어깨 및 등, 다리, 머리를 주물러 줬는데 시원하긴 했지만 아직 젊어서일까 그닥 추천할만 하지는 않았다. 내가 구두쇠인지는 몰라도 이정도 안마로 1인당 150원(=23000원)을 쓰면 너무 돈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3일정도 같이 고생한 동환이에게도 이번 안마는 좋은 보상이 되었기에 만족했다.

+ @동네 시장에서 슬리퍼사기

 지압을 다 받고 나서 근처의 시장에 갔다. 말 그대로 '백화점'이 아닌 '시장'이었다. 어제 수수시장에서 크록스를 못샀기에, 오늘은 근처 시장에 간 것이다. 천쉐이 없이 동환이와 나만 가기에 흥정에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제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번 시도해보려 했다. 예전 엄마손 백화점이라는 백화점식 상가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이 건물 2층이 모두 신발가게인데, 크록스를 파는 곳이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 보여 바로 흥정을 시도했다. 내가 중국말을 못하니 궁금한 내용을 '단어'위주로 아주머니께 물어봤다. 확실이 이곳은 수수시장과 달리 현지인들이 찾는 동네시장이라 그런지 뭐 비싸게 부르거나 그런 것도 별로 없었다.

 몇가지 물어보고 고르다 보니 맘에 드는 커플신발이 보였는데 하나에 45원을 부르셨다. 이미 입구에서 내가 동환이에게 하나당 Maximum 50으로 한다고 이야기 해서 비용적으로는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허무하게 구매가 끝나는 것 같아 강하게 나가려고 '그럼 좀 둘러보고 올께요' 하고 근처 가게를 둘러봤다. 그런데 아뿔싸! 슬리퍼 자체를 파는 곳이 그곳 한군데 뿐이였다. 아! 여기는 수수시장이 아니라 그냥 일반 내국인용 신발가게지! 그래서 다시 가서 사이즈를 잘 맞춰본 후에 2개를 구매했다. 못내 아쉬움에 '동환 번역기'를 이용해 '2개사는데 어째 좀 싸게해줘라' 말하니, 아주머니 왈 '설날도 되곤 하니까 2개에 80원에 가져가'라 하셨다. 나이스, 우리는 순식간에 흥정의 달인이 된듯 기쁜 마음에 슬리퍼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찬찬히 살펴보니 몇군데 지저분한 부위가 있었지만 손으로 잘 커버하니 깔끔한 커플 슬리퍼가 되었다!

 + @호하이 of 스치하이

 집에서 잠깐 쉬다가 저녁에 천쉐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듣기로는 여자 2명 뿐이라 total 5명이라고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부부(or 남친)동반 모임이었다. 즉 전체인원이 9명인 대규모 모임이었는데 나이대가 여자 중 한명이 나보다 9살 많고, 그 다음이 나와 동환이, 나머지 여자 2명은 천쉐이와 동갑 친구들이였으며 남자들은 나보다 2~3살 어린 친구들이었다(사실 중국에선 나이란 것이 교우관계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미국식으로 '친구=친구'인듯).

 스치하이는 천안문 위쪽에 있는 작은 호수근처의 지역으로 북경의 '홍대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호하이는 스치하이의 일부를 그렇게 부른다고 하였으며 우리는 그곳에 있는 꼬치집을 갔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집인듯 보였지만 확실히 '현지인들의 단골가게'답게 살짝 후미진 곳에 있었다. 음식점 2층에 방을 잡고 차츰 늦는 사람들도 도착해서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 모임은 게스트인 내가 온 것을 환영하는 의미도 있지만, 신년맞이 겸 그냥 저냥 신나는 식사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꼬치구이를 종류별로 다양하게 엄청나게 시켰다! 일단 종류별로 15개씩 시키니 마구마구 먹어도 먹어도 끊나지 않는 꼬치 공세가 이어졌다. 양꼬치, 버섯꼬치, 고구마꼬치, 닭날개 꼬치 등 종류도 많은데 오늘 온 특별한 게스트인 나를 위해 '닭목뼈 꼬치'를 하나 시켜줬다. 씹어보니 정말 닭목의 뼈가 느껴졌다. 그래서 한입 먹는 척만 하고 내려놨다는... 술도 첫잔을 고량주로 시작한 뒤에 칭다오 맥주를 계속 마시며 다들 재미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무슨 말인지는 전혀 모르겠으나 간혹 동환이와 천쉐이가 해석해줘서 알아들을 수 있었고, 종종 들리는 몇몇 단어+나의 눈치밥으로 대화의 흐름에 맞춰 적당히 웃고 그랬다. 확실히 중국은 여성의 지위가 한국보다는 상위에 있는듯 했는데 그냥 분위기도 그렇고 말을 주도하는 것도 주로 여성위주였다. 뭐 그들의 관계도 자체도 그랬는데 이건 off the record니까...

 약 2시간에 걸쳐 배불리 먹고 2차로 택시를 타고 근처의 술집으로 이동했다. 역시 이네들이 자주가는 술집인듯 어두컴컴한 곳이었는데 발렌타인과 맥주를 마시며 게임을 했다. 역시 벌칙은 한국처럼 술마시기! 다행히 게임이 단순한 것이라(주사위 던져서 호명한 숫자의 주사위가 나오면 그것을 빼면서 진행하는 방식) 나도 참여할 수 있었다. 술을 이처럼 계속 마시니 아니나 다를까 한 남자친구가 맛이 갔다. 알고보니 원래 술이 약한 친구라 그랬다. 꼬장은 부리지 않았지만 몇번 구토를 하고 그랬다. 이렇게 새벽 2시정도까지 재미나게 보내며 happy new year를 연발하다 술집을 나섰다.

 끝인줄 알았더니 택시를 타고 KTV라는 노래방을 갔다. 아까 술에 잔뜩 취한 친구는 그 여자친구가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가거 남은 7명이 새벽3시를 조금 넘어서까지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나와 동환이는 주로 한국노래 불렀는데 노래가 최신곡이 많아서 조금 부르기 힘든 감이 있었다. 나름 세계공통어(or 여기서 중국친구들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인 팝송을 부르기 위해 곡을 찾아봤지만 아는 노래가 거의 없었따. 그래서 결국 린킨파크의 In the end를 불렀는데 가사가 잘 안나와서 살짝 에러였다. 다행히 대부분 취해있어서인지 한국의 손님에게 박수로 호응해 줬다는;

 KTV에서도 병맥주를 마셨는데, 이번 여행에서 느낀거지만 맥주가 거의 독일처럼 일상화된듯 했다. 거의 모든 식당에서 맥주가 반주로 나왔다(물론 시킨 것!). 그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보니 동환이도 이렇게 논 것은 중국와서 거의 처음인듯 싶었다. 원래 동환이가 불만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중국 젊은애들은 밤 늦게까지 술마시는 것 별로 안좋아해서 술을 오래도록 못마신다는 것이었는데 오늘 본 천쉐이의 친구들은 마치 한국의 대학생들처럼 끝까지 노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참 재미난 마지막 밤이었다. 아쉬운 점은 호하이를 갈 때 카메라를 놓고 나와서 사진이 하나도 없다라는 것! 그래도 다음번에 또 다시 만난다면 분명 기쁠 것이다.


2011. 2. 2

 집에 가는 날이다. 어제 그렇게 늦게까지 놀았음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인턴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 여기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역시 헤이쳐를 불러 11시 30분에 공항으로 갔다. 역시 아저씨의 빠른 운전 솜씨를 즐겼다. 긴 연휴라 이미 텅빈 북경시내를 지나 12시 전에 북경 공항에 도착했다. 총알 헤이쳐 아저씨...

 + @북경 공항

 출국수속을 마친 뒤 들어가 짐을 붙였다. 이 모든 것을 마쳤는데도 면세점 입구에서 시계를 보니 12시 20분밖에 안되었다. 탑승은 1시 30분부터라 길게 늘어선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Duty free라 쓰여진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지만 살짝 구분이 잘 안가는 모습으로 상점이 배열되어 있었다. Sunrise duty free라고 쓰여진 곳이 면세점이고 그 말이 없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실제 간단한 용품을 두군데서 모두 사봤는데 영수증에 sunrise duty free라고 쓰여진 상점에선 보딩패스를 요구했고, 안쓰여진 상점에선 그냥 비용만 지불을 했다).

 어쨌든 살 물건이 정말 없더라는... 술이나 담배는 질적으로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의사인데 이런 harmful한 것을 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구매가 망설여졌다. 기념으로 담배 한보루를 사긴 했지만 말이다. 한편 중국전통 봉제 인형이나 지갑 등도 퀄리티가 많이 떨어졌고 느낌이 made in china인데 분명 어딘가에서 본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 살 수 없었다. 따산즈의 다이소약통이 오버랩 되며 동대문에 더 좋은 재질로 다 있을 법했기에 말이다. 과자류도 겉보기는 번지르르하고 어설픈 한국어로  포장지에 광고되어 있었지만 이미 블로그 등의 후기에서 그 맛과 모양새가 악명높다는 것을 봤던지라 선뜻 구매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북경까지 와서 absolute vodka를 여행선물로 사가기엔 모해서 고민하다 그냥 담배 한보루와 간단한 식료품, 호랑이 기름을 구매했다. 면세점이든 아니든 담아주는 bag은 동일하게 면세점이라고 쓰여있더라는(p.s. 사실 중국전통상품을 면세점용으로 들여놓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몇몇 제한된 품목만 면세가 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탑승을 한 뒤에 중국에 올때 못봤던 '타운'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오후 2시비행기라 그런지 개인별 overhead vision이 없었고 당연히 채널도 KBS 뉴스 뿐이 나오지 않았다. 그마저도 스포츠뉴스 부분에서 시간관계상 짤렸다. 결국 한겨레 신문과 스포츠 신문을 정독하며 잠을 좀 청한 뒤 일어나 기내식을 먹자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달했다.

 일찍 나오려고 일부러 자리를 앞쪽, 복도쪽을 잡았는데 luggage를 찾다보니 전체적인 시간은 크게 단축되지 않았다. 앞으로 짐이 별로 없으면 그냥 기내 들고 타는 것이 시간을 줄이는데는 요령인듯 했다. 아니면 그냥 느긋느긋하게 여행을 즐겨도 되고 말이다.

 첫 방문한 베이징, 동환이 내외가 있어서 참 즐겁고도 감사한 여행이었다. 내가 그만큼 또 보답하고 그럴테지만 그래도 참 짧은 기간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여정이었다. 뭔가 예정된 행위를 하는 여행도 의미있지만, 이런 자유여행도 가끔 가볼만하다란 생각이 들었다. 뭐 역사공부 등을 자세히 하고 가지 않아서 유적지의 감흥이 조금 떨어졌다는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라고나 할까? 

 
P.S.

 - 중국 교통문화는 그닥 좋지 않다.
 녹색불인데도 차들이 막 지나다니며 절대 중간에 속도를 줄여주거나 그러지 않으니 보행자는 주변을 꼭 살피고 길을 건너야 한다. 더 대박은 빨간불인데도 사람들이 막 길을 건넌다. 심지어 8차선 대로 중간에 한명이 서있고 양옆으로 차들 꽉 차서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을 종종 봤다. 갑자기 유턴하는 차 때문에 자동차 경적소리 종종 들리기도...
 
 하지만, 놀라운 점은 어느 택시기사나 헤이쳐기사도 그런 모습에 짜증내거나 모라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일상화되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나름 대국의 면모라 생각을 한다.

 - 담배에 관대한 사회다.
 음식점 안에서 담배 피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한번은 택시 기사가 추운지 창문을 다 닫더니만 갑자기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만 흠짓하고 앞에 탄 천쉐이와 옆자리의 동환이는 그냥 이런 장면이 익숙한 듯 했다. 농담으로 할아버지와 손자가 맞담배피기도 한다니 뭐...

 이 모든 것들이 한국에 돌아와 부모님께 말씀 드리니, 한국 70~80년대와 비슷하다고 하셨다. 중국도 뭐 변하겠지만 일단 2011년 정초에 본 모습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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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싸이월드 사진첩에 있습니다.

 


 우선 LAX에 도착해서 외삼촌과 외숙모, 이모를 만나 순두부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사실 어머니와 인천공항 출발할 당시에도 공항안에서 순두부를 먹었었는데;;)

역시 한국인이 주인이고 서빙역시 한국말을 잘 하시는 분이 하시더군요.

맛은 한국과 비슷했는데, 값은 조금 더 비싸고 양은 게장세트를 시켰는데

게장이 많아서 포장해 갈 정도 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코스트코에 들러 과일 등을 사서 외삼촌 집으로 갔는데,

미국 코스트코는 사이즈는 한국의 양재점과 비슷했지만 한층만으로 되어있었고

비타민류를 훨씬 다양하게 판매해서 어머니와 형은 한국에

선물로 줄꺼라며 많이 사시더라구요.

  


  

그후 다음날 아침에 한인타운 중심에서 출발하는  

2박3일로 라스베가스 - 그랜드캐년 - 라플린 - 칼리코 등을 거치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연휴가 길어서인지 한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이 왔다고, 중간에 미국 TV뉴스에서

그러더군요...그리고 그날 출발한 3대 버스의 사람들을 중간중간에 종종 마주치게 되더라는..

 

여행 내용은 뭐 그럭저럭했구요, 일단 2박 3일에 이 일정을 관광버스로

소화하려니 매우 타이트했다는! 그리고 라스베가스에서나 중간에

점심을 먹는 곳이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시즐러였는데...좀 많이 붐비고

개인적으로 별로더라구요.

 

어쨌든 패키지 여행 중 라스베가스에서는 야경보는 옵션을 빼고 가족들과

거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상점이나 거리 풍경, 호텔 모습등을 봤습니다.

라스베가스 거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

보다는 콜걸 불러주는 수많은 삐끼들이었습니다. 정말 많더군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명함나눠주고, 티셔츠 앞뒤로 프린팅 된 전화번호;;

뉴욕뉴욕에서 숙박을 했는데 방에 냉장고가 없더라구요;;가이드말로는

방에 있지 말고 아래 가서 카지노하라는 신호로 그런다 하더군요.

4불정도 땄지만 거기서 바로 환전해서 피자 한조각사먹고 올라가서 취침을~

  


 

 그랜드캐년에서는 사진 좀찍고 아이맥스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20년전에 초등학생 때 63빌딩 아이맥스에서 봤던 바로 그! 영화였습니다.

뭐...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랜드캐년에서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옆에 팬스가 없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도 여전히

사진을 찍는 많은 나라의 관광객들에 놀랐습니다. 특히 중간 중간에

튀어나온 부분에 나가서 찍는 사람부터 거기서 점프하는 순간을 찍던

프랑스어를 사용하던 모녀는 정말....;;아! 한국인 수녀님들도 거기서

찍으시더군요 사진.

 

콜로라도 리버 옆에 있는 라플린은 그냥 둘째날 숙박을 하는 경유지

같은 곳이어서, 카지노에서 3불 잃은 것  이외에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

아! 식당은 괜찮았습니다. 음식의 질이나 양, 서비스 모두요.

 

 


 

 칼리코는 은광촌이라던데, 마치 '에버랜드 은광축제'같이 한 라인따라

쭉 기념품상점 등이 있는, 5일정도 지나서 생각해보면 정말 별거 아닌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LA에서 저녁에 친척동생과 누나가 외삼촌댁에

와서 같이 바베큐파티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형수님께서 강력히 유니버셜스튜디오를 가자고 하셔서

외숙모, 어머니, 형 내외와 함께 거기를 갔습니다. 고맙게도 친척동생이

표를 미리 사왔더라구요ㅠ

 

그런데 이날부터 캘리포니아 날씨가 매우매우 더웠습니다.

TV에서도 올 여름에 가장 더운 날씨가 금토일월화까지 이어질꺼라고

하더군요. 기온은 대충 33도정도? 되는데 매우 건조해서, 살이 따갑더라구요.

물론 선블락 바르고서 정말 발빠르게 돌아다녔습니다.

킹콩360-3D, 심슨라이드, 터미네이터, 귀신의집, 3D이펙트쇼, 워터월드 등을

봤는데, 초등학교 때 형과 손잡고 롯데월드가서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듯

엄청 돌아다녔습니다.

 

킹콩360은 40분정도 소요되는 투어트레일을 타는 도중에 본 것인데

꽤 괜찮았습니다. 스포일은 생략하고, 여러모로 첫 코스는 투어트레일이 좋을

것 같더라구요. 심슨라이드와 워터월드도 재미있구요.

 

터미네이터는 오래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정말 별로였습니다. 귀신의 집은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귀신의 집과 거의 동일 하더라는;

 

그리고 그날 저녁에 돌아와서는 형 친구분이 LA에 사셔서 밤 9시부터

LA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베버리힐즈, 헐리우드, 로데오거리, 그루부몰, 다운타운, 쇼핑센터 등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면서 형 친구분의 가이드를 들으니 참 재미나더군요!! 페리스힐튼 자주 오는 곳,

브리트니 지난 번에 파파라치사건 때 이야기, 인셉션 찍은 장소 등등..

헐리우드에서는 선셋이란 곳에 갔는데, 서빙하는 여인네들이 정말 이쁘더라구요.

너무 늦어서 쇼핑을 하지는 못했지만 거기 H&M이나 자라같은 옷부터 여러

샵들이 많았습니다(제가 쇼핑엔 별 관심이 없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군요).

 

그러다 다운타운의 야경이 보이는 어떤 술집에 갔는데 이름이 잘 기억이 안나는군요.

(여권으로 나이확인하고 들어간 다음 엘리베이터 2층에서 타고 옥상에 가면

라운지 형식으로 쇼파도 있고 한켠에서는 춤추고, 그 옆에 작은 풀에서는 수영하고..)

개인적으로 그런 곳에는 처음 가봤는데(한국에 있을 때도 클럽이나 나이트를 안가봐서요)

그냥 재미있더라구요. 지긋한 중년의 사람들도 간혹 보이고, 신선했습니다.

 (이름은 the Standard 였습니다)

그리고 컴백을 하다가 형 친구분의 배려로 스테이플스 센터 앞을 지났습니다.

어두웠지만 매직존슨의 모습이 보였다는..그렇지만 내리지는 않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형 친구분 왈, 거기 샾 가도 별거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시간도 이미 새벽1시에 다가가고

있었구요. 또 알아보니 센터 내에서도 어제와 오늘(토/일) muse 콘서트를 하는 등

비농구적인 행사 뿐이더군요. muse도 많이 좋아하지만, 농구없는 스테이플스 센터를

보니 약간 낯설었다는...

 

어쨌든 이날이 가장 익사이팅한 날이 아니었나 하네요.

  


 

 다음날은 뭐 친척동생이 결혼을 해서 산타모니카 해변가에 사는데 거기에 갔습니다.

해운대길이 2~3배정도 되는 하얀 백사장이 정말 멋지게 펼쳐져 있더군요.

사진도 찍고 바닷가에도 들어갔다가 친척동생 내외를 만나서 옆에 있는 '더랍스터'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랍스터 정말 컸습니다. 특히 전 그릴로 구운 것을시키고

어머니와 외숙모는 스팀한 것을 시키셨는데 둘다 엄청 컸습니다. 한국에서 먹어본  것이나

미군부대있을 때 먹어본 것보다 훨씬 컸다는!(아마 그만큼 비쌌을 것 같지만, 20년만에 본

동생하고 동생 남편이 고맙게도 사줬네요) 나중에 산타모니카 가시는 분들은 꼭 가보세요~

 

산타모니카 피어의 비치는 확실히 정돈되고 깨끗하더군요. 해변이라 그런지 확실히

시원했습니다. 많이 다르더라구요. 집 스타일이나 여러가지가요. 

 


 

 그리고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서 여러 시장에 가서 쇼핑을 했습니다.

마샬, 라스, CVS(?), 스포츠샬레...를 들렀는데 싼 물건들이 많더라구요.

 

마샬과 라스에는...

폴로, 게스, 리바이스 등 한국에 잘 알려진 브랜드도 싼 물건이 많았습니다.

외숙모 말로는 마샬, 라스 등은 백화점 등에 납품하는 중간 단계로 옷이 들어온다

하시더라구요. 제가 쇼핑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그렇게 옷을 많이 사지는

않았습니다만 게스진이 35불정도 하고, 리바이스가 20불 정도 하는 옷이 많았습니다.

다른 브랜드도 많고 게스나 리바이스도 더 비싼거나 싼 것이 있구요.

또 잡다하게나마 한국에서는 잘 구할 수 없는 제 핸드폰의 액세서리도 운좋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베리 skin이 세일해서 3불, 여행용충전기가 왕창세일해서 1불에

판매를 하더군요. 15불짜리 로지텍 무선마우스도 같이 구해는데 20달러도 안된다는 생각에

감동을 ㅠ그렇지만 주 목적이던 레이커스나 nba에 관련된 물품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나 건진 것이 nba 공식 슬리퍼(그냥 nba store에서 파는)를 10달러에 산 것 말고는

전혀~없더라구요(나름 아디다스가 셔츠나 팬츠가 있는데 nba나 농구와 약간 무관해보이는

것이 많았고, and1과 언더아머는.....매우 많아보이고 쌌습니다).

 

그렇지만 대박은...스포츠샬레였습니다.

형 친구분의 추천으로 오늘 갔는데, 신발매장에서 대박이더군요.

원래 판매가격의 50%할인을 하는 품목이 있었는데....

 

거기서 줌코비5를 50달러에 샀습니다.

줌코비같은 스타일의 신발도 거의 없을 뿐더러, 제 발사이즈가 275인데....

떡하니 딱하나가 제 눈 앞에 있었다는ㅠ

이걸로 정말 이번 여행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도 역시 nba관련 상품은 별로 없고

점원에게 물어보니 저지 역시 lakers와 clippers 두개정도 뿐이라더군요.

그밖에 농구공과 맥데이비드 등 기어등은 좀 있었습니다.

작년 우승관련 상품도 티셔츠와 모자, 타월 정도 남아있는데,

고민끝에 셔츠 하나와 모자를 구매했습니다. 이쪽 물품은 25퍼센트 할인 중

이더군요. 그리고 뉴발란스 러닝쇼츠를 50퍼센트 할인해서 구매하구요.

확실히 NBA 물품은 온라인스토어에서 사는 것이 나을 것 같더라구요.

 

그랬더니 어느덧 저녁이 되어서 다시 외삼촌 댁으로 컴백을 했습니다.

정말 미국 쇼핑할 것 많더라구요. 네이버 등에서 검색했을 때 봤던 여러

외곽의 대형 아웃렛은 안갔지만, 일반 미국인들이 자주 가는 몰에서 나름

싸게싸게 많이 살 수 있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러고보니 공부를 하나도 못해서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공부의 늪에 빠져야

겠지만...그래도 오늘 줌코비 겟한 것으로 위안을 삼네요.

 

 


 

 요약;

 

1. LA 관광을 가려면 현지에 아는 친구/친척이 있으면 좋다.

2. LA는 쇼핑 천국! 이번 여행의 수확은 스포츠샬레에서의 줌코비5 획득!

3. 비시즌에는 스테이플스 센터에 별로 볼것/살것이 없다. NBA 관련물품은 온라인 스토어에서!

 

 


 

혹시나 lakers 관련해서 LA여행 가실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P.S.

인앤아웃 버거를 2번 먹어봤는데, 여러 인터넷에서 본것에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그렇게 대단하게 맛있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외삼촌이나 외숙모도

자주 즐겨드시는 것을 봐서 인기가 많기는 많은듯 했습니다.


Response : ,

2004년 네이트 관람객의 글

Posted 2010. 8. 17. 03:03, Filed under: Ex-Homepage/Diary2014
2004년 네이트의 한 동호회에서 쓴 글이다.
정말 오랜만에 간 그 동호회...
네이트란 포탈사이트의 정책에 따라
클럽을 이동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찾아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처럼 어지간히 오랜만에 찾아가는 사람은 예전 클럽에 접근조차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그 클럽은, 아니 동회회는
여러 사정을 통해 아마도 '폐쇄'할 것 같다.

내가 쓴 글을 검색해 봤다.
그러고 보니 대학에 새로 들어오기 전에
썼던 글이니 벌써 몇년이 지난 글이구나...

영원히 사라질 것 같기에, 여기에 간단히 글을 옳겨본다.



1.

 이번 학기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열렬히 수업을 들은지도 어언 3개월째이다. 중간고사를 보았던 몇몇 과목들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솔직히 이번 학기에는 몇과목 듣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험도 다 보는게 아니라서 중간 고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과목은 3개 뿐이다. 그 중에 전공이 두개, 교양이 하나이다.

 아는 사람(이 이제 관람객에는 별로 없겠지만...)은 다 알듯이 학점보다는 수업 자체에 흥미가 가는 수업만 골라서듣는 관계로 무진장 열심히 하고 있다. 마치 고등학교때의 모습처럼 수업 후 그날 복습에 요약정리, 암기, 관련서적 3~4권 탐독 및 답도 없는 연습문제 풀기 등등....

  그렇다면 혹자는 그런다.

 "니 전체가 다 A+이가~?"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물론 나의 머리의 한계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의 치명적인 약점은 실제로 시험이 다가와도평소처럼 공부를 한다는 것과 정보에 약하여 시험에 나오는 족보따위를 입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는 뭐...그렇구나 하면 넘어갈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까닥하면 대략 낭패인 경우이다. 특히나 중간고사의 경우에 시험의 스타일을 잘못 파악한다면 더더욱 그렇고....

  전공중에 하나가 경영과 관련된 것이 있다. 난 공대이지만 산업정보관련이기에 전공에 그런 과목이 있고 수업중에는 정말 품질, 원가, 입지, JIT 등등의 경영학과에서 배울만한 것들을 두루 배운다. 워낙에 전공수업에다가 또 평소에도 관심을 쪼..금 가지고 있는 경영학인지라 열심히 했다. 나름대로는 관리과목이었고~ 또 전공중에 컴퓨터과학에 관련된 과목이 있다. 이 수업은 외국인 교수인데 뭐 그 사람의 실력의 여하를 떠나 프랑스식 발음에 애를 먹는 그런 과목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이 과목역시 열심히 공부했다. 또 시험을 본 마지막 교양과목은 '인간행동의 심리'라는 심리학 과목이다. 심리학에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었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도 컸고 참고서적도 가장 많이 본 과목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를 중간고사를 보았다. 물론 고학번 복학생 공대생 치고는 저렴한 노력이 들었다고 볼 수 도 있겠지만 나름대로는 대학공부를 취미공부하듯 했기 때문에 시간적, 정신적 노력은 충분히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경영공학의 점수가 가장 신속하게 나왔다. 시험을 볼때부터 대강 예상은 했지만 쩝...200명 중에 중간정도의 점수를 기록했다. 뭐 경영학에 관심이 그리 컸던 것이 아니었다고 자위를 했지만 좀 실망스러웠다. 시험의 스타일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는데 문제당 20점짜리에서 각각 3점, 5점을 얻은 것이 데미지가 컸다. 한마디로 남들이 틀리는 고난이도에서 점수를 얻고 쉬운 문제에서 점수가 나갔지만어쨌거나 점수는 총점계산이니.....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A와 B가계에서 좀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방식을 논의하시오'

 ..란 문제에서 난 '논의'를 하라고 해서 구구절절히 서술을 했다. 그런데 답은 그래프 그리고 정답을 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서술한 내용은 그 정답을 다 커버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2점에서 그 문제를 사수했지만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결과는 결과고 나온 결과에 어떡하면 1~2점 더 올릴까 찌질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인정했다. 사실 따지면 한 5점정도는 올릴 수도 있겠지만, 중후한 복학생의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관뒀다. 하지만 그 과목을 위해 따땃한 3월부터 꾸준히 중도 6층에서 구석에 쳐박혀 책을 봤었다고 생각하니.. 

 이 시험에서 난 처음으로 대학 시험에 '족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의대와 달리 당시 연대공대의 족보는 주로 아는 조교 형, 동아리 형 등을 통해서 내려오는 것이었고 당시 난 열심히 옵세하게 필기한 것을 별 친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잔을 얻어먹으며 복사하게 빌려주던 순진한 학생이었다. 뭐 그래서 기말고사 때도 역시 족보를 보지 않았고 적당히 A선에서 과목을 마무리 했던 것 같다.

 좀전에 컴퓨터과학전공의 점수를 사이트에서 확인했다. 그 시험은 100% 서술식 시험이었고 또 영어로 쓰는 것이었으며...간단한 수리계산 문제에서 실수 하나, 뒤에 응용문제에서 실수 하나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심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왠일? 점수는 전체에서 한 4등정도 한 것 같았다. 이럴땐 매우 기뻐야 하는데 담담했다. 은연중 가지고 있었던...왕자병인가? 누가 나한테 이럴 땐 기뻐서 날뛰어도 좋다고 했으면 좋겠는데..어쨌거나 그 시험은 알고 있는 개념에서 최대한 응용적인 내용을 첨가한 것이었고, 또 수업 자체에서 포기한 애들이 많이 있는(영어 수업에 프랑스식 발음이라 누구에게나 애로사항이 있는..) 그런것이었기에 '혹시...'했었는데 하하! 이제 기쁘네..

 남아있는 것은 심리학 수업의 결과인데 그건 예상컨대 거의 다 맞았다고 생각한다. 심리학 수업은 교수님이 항상 '심리학=과학' 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그런지 시험도 칼같다. 단답식/단문서술식/서술식...문제에 33문제/1시간 50분! 딱이다~!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방식의 수업이나 시험방식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을 수용하는 한도내에서 나름대로의 창조적인 수업으로 만들어 듣고 있다. 어쨌거나 시험에서 완전 단순 암기 ' 심리학의 발달 순서' 따위의 배점낮은 문제 한두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맞았다고 알고 있다.시험은 제일 먼저 본 것인데 교수님이 조금 바쁘셔서 아직도 채점이 되지 않았다고 하신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시험과목의 점수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아마 B+인가 B인가 그랬을 것이다.
중간고사 성적이 나온 후 교수님을 찾아갔고 나보다 먼저 와있던 또 다른 제3의 '억울한 학생'과
교수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교수님은 아주 irritable한 표정으로 시험지 뭉치를 주시며
자신은 채점 기준을 명확히 가지고 채점을 한 것인데 너희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여기까지
왔느냐는 듯한 표정과 행동을 하시며 나를 불쾌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런 기억때문에 내가
더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리고 내가 지적한 '오답'이라 표기되어있던 내 시험지의 문구에 대해, 교수님은 자신이 채점하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키워드)에 맞지 않으면 자동으로 감점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난 분명 키워드에 대한 해설(그렇다고 너무 막연한 해설도 아니었다)을 하고 중심적인 내용들을
엮어 놓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답이 될 수 없는, 아니 점수를 아예 줄 수 없는
그런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러나 난 지금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적어도 그 시험에서 내가 쓴
답은 그 정도 점수 '취급'을 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썼던 과목이었고
지금은 그 이상의 관련 지식을 가진 상태지만 아직도 그 기억이 난다.

난 그 방을 나오며 개탄 했었다.

'문과생의 마인드란 이런 것이구나...'

 제목이 딜레마인데 그럼 모가 딜레마냐하믄.... 

 관심과목이 3가지 였고, 그 우선순위는 인행심>경영공학>컴퓨터과학 이었는데 시험을 인행심>>> 컴과&경공...으로 예상을 해서 기말에 어떻게 대처할런지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었다. 그냥 경영공학하고 컴퓨터과학은 대강대강해서 B정도로 유지, 심리학만 A+로 해야지 했건만 컴퓨터과학역시 A이상으로 수정을 했던 것이다.  

 아니 그럼 좋은거지 그게 모 대수냐! 하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겠지만 일종의 고시생으로 '대단한 시험'을 준비할까 생각하는 나에게 그건 조금 빡세지는 일정계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간고사를 보지 않았던 2개의 과목 역시 기말은 시험을 본다! 또한...경영공학을 같이 듣는 친구 왈!.."중간고사 잘 못봐도 기말고사 엄청 잘 보면 A다!"라는 위로아닌 위로를 듣고 아직도 '경영공학=A'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2.

  과외를 구했다. 예~전..그러니까 대학교 1/2학년때는 주위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과외를 구할 수 있었다. 선생의 인지도 때문이였는지 꾸준히 과외알선이 어머니를 통해 들어왔고 그래서 그냥 '하나보다...'하고 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니 왠걸? 주위에 아는 분들의 자제들은 다들 대학 1~2학년이 되어있었고 있어봐야 초등학생들 뿐이었다. 내 소신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과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기에 D카페의 모임을 이용하여 스스로 과외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카페의 특성상 수요보다는 공급이 엄청 많았기에, 또 온라인이라는 특성상 쉽게 과외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야! 구구절절한 학습방법과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템으로A4용지 4장분량의 계획서를 만들어 내서 송파지역에 산다는 수요자 5명정도에게 단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2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실제로 페이를 받기 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온라인이란게 원래 그런건지 별의 별 인간이 다 있었고 예전에는 건대까지 가서 시범과외만 해주고 이상한 문자만 받고 온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것이 어언 일주일정도 전! 한명은 재수생여자이고 한명은 재수생남자이며 여자애는 집에서 5분거리, 남자애는 집에서 15분거리에 있었다. 이건 딜레마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둘다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진도를 나갈 것을 쫙 찾아본다음에 애들하고 합의를 봤는데 텍스트로 쓰는 것이 2권, 보충문제집이 3권이었다.(요즘은 공통수학을 보지 않는다고 하던데 애들은 공통수학도 좀 하자고 그래서 문제집이 세권이나 되는 것이다!) 총 5권의 문제집만 풀면 너희도 수학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다독여 준다음에 집으로 돌아오다 서점에서 책을 몽땅 구입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이걸 나도 다 풀어야 하는건가...?'

 애들하고 덜컥 약속을 해버렸던 것이다. 내가 풀어서 봐주겠다고...니들이 푼거하고 비교할 수 있게 깔끔하게 풀어 오겠다고..하하하하하하..뭐 고등학교 수학 별거 있겠어~? 하고 도전 했는데 문제의 수준은 뭐 그렇다 쳐도 몬 문제가 이렇게 많은건지? 지금 내일 진도나갈 문제집 두권째 풀고 있는데...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_-; 하지만 첫달이니까해보는데 까지 해봐야지~!!!!!

 3.

 응룡이 아저씨가 했던 멋진 말중에... 

"에..~ 동렬이도 가고!..에..!~ 종범이도 가고~!"

 관람객의 많은 건아들이 군대에 갔고 좀 전에 간 애들도 아직 제대를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관람객 주력파중에서는 그나마 군대를 마친 사람이 영균, 규범, 나 정도 되는 것 같은데...다들 관람객에는 잘 오지 않는다. 또 모르지 영균은 그의 사랑하는 보람의 아이디로 종종 올지도! 어쨌거나 그나마 자주 보이던 몇몇이 군대에 가니까 확실히 관람객도 더는 유지가 잘 안되는 것 같다. 내가 군대에 있을때는 관람객 사람들이 정말 그리웠었고(닭살이 돋는표현이나 그냥 썼다!) 아마 지금 군대의 군바리 동생들 역시 매우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아마 그것이 관람객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막상 휴가를 나오면 딱히 만날 친구들 만나도 이틀정도면 되는데 시간은 남고....군바리 정신이 남아있다보니 몬가 친구들을 보고 싶은데 이미 볼만한 친구들은 다 본 후에는 관람객의 사람들을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친목적인 모습들.... (하긴 나부터 그렇지만 제대를 한 후에는 주도적으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건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신규가입자도 별로 없으니 너무 눈에 보이는 결과인가?)

  지금 대삽이 창완이라고 창완이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닌것 같다. 글을 많이 쓰자고 홍보를 해도~ 불후의 명작 회탐을 해도~ 시들시들...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신입회원도 잘 안들어오고 활동자체가 팬클럽이란 타이틀과도 잘 안맞으며, 친목모임이니까 친목적인 몬가 온/오프에서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되고 그런 것이 이유인것 같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원래 있던 사람들의 이탈이겠지.

  아마 있다면 다들 이유가 있고 이유가 없다면 그냥 아무런 이유가 없거나 단지 바빠서일,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그들의 이탈은...말 그대로 "동렬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 처럼 시대의 대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들에게 더 좋은 아니면! 없던 꺼리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관람객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린다면 200% 오바인건가?) 인간은 천차만별이니까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나역시 관람객에다 글한번 잘 쓰지 않는 불량회원으로 접속은 거의 매일 한다. 그런데 나만 눈팅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글도 거의 없으니까 뭐 그냥 그렇군 하고 새글이 없으면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나도 매우 많이 변한 것이다. 창완대삽이 회탐을 부활시킨 의도 또한 그런 것이겠지만 정말 예전의 관람객의 열기는 관람객의 사람들에게는 불과 같았다. 네츠고 시절의 번개팅, 정팅, 정모, 번개, 엠티,연주회 등등 온/오프라인은 거의 밤낮을 가릴 수 없었다. 낮에는 번개하고 밤에는 채팅하는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던시절이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개인적으로는 당시의 나에게 관람객의 여러 사람들은 참 고마운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 대학의 문화란 것도 그렇고 서서히 사회에 발을 내딪는 우리나이대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흥'이란 것이 점점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한 수업에서 1학년때 잠깐 몸담았던 동아리의 친구, 충호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말하길 우리때 애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모이지 그 다음부터는, 특히 요즘에는 애들도 동아리활동 잘 안할뿐더러 오는 애들도 잘 모이지는 않는다고 그런다. 하긴 심지어는 그 끈끈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K대에도 어느덧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하니 어련하겠는가? 뭐 누가 어떻다고 모라 그러는 것이 아니라 복학생의 입장에서본 파릇파릇한 1~4학년 애들은 꽤나 개인적인것 같다. 나도 내 또래에서는 아웃사이더격에 속하지만 이건 뭐 새발의 피도 안된다. 나어릴때 복학한 형들보고 '구리다~!'고 하면서도 함께 즐기고 느끼던 분위기도 별로 없어 보인다. 내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 말이다. 관람객도 비슷한 선상에 있는 것도 몇몇 있다. 하긴 지금 '이나이에~' 먹고 살 걱정이나 결혼등의 문제를 생각해야지 무슨 인터넷질이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들 어떻게 사는가? 여기가 관람객 게시판이니까 관람객을 자꾸 꺼내지만 이건 요즘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이다. 새로운 문화가 형성이 되어 있어서 나도 그것을 즐기면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게 몬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그런 이도저도 아닌 불투명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친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객에서 떠나갔지만 정말 궁금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그들이 떠난 이유였지가 맞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 우울모드인데...그런데 그런 이유 말고는 이유가 나올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조피디가 '친구여'를 불러서 인순이가 오랜만에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마당에 더욱 고무적인 것은 떠났던 동렬이 아저씨도 삼성으로, 종범이형도 기아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람객은 힘들것 같다. 그렇다고 난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로그아웃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아마 전람회의 해체와 김동률의 홈페이지운영 및 카페의 운영 등도 큰 변수였을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통신동호회 관람객의 폐쇄를 가져온 것이기도 하고....그러나, 맥도날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상의 세상에서 효율적인 고객관리식의 홈페이지 운영도 깔끔은 하지만 몬자 채워주지 못하는 2%가 있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E마트가 구멍가게를 죽이는 모습처럼 자발적으로 형성된 팬클럽 또한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건만 그 흔한 멘트한번 날려주지 않은 해당가수에게 성을 낸다면 팬클럽회원으로 너무 아이러니한 것인가?

 규범이와 지윤이가 올해 1월에 결혼을 했다. 관람객 1호커플...그리고 마지막 커플이 되겠지?
세영이도 결혼했고, 연락 잘 안되는 그 누군가도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많이 바뀌었다. 실제로 말이다.
그렇지만 트워터를 포함해 또 다른 '소통'의 장이 생겼고, 비록 내가 이용하지는 못하고 있어도
또 다른 커뮤니티 수단을 통한 모임이 형성이 되어 있다. 비록 몇달만에 문자메시지 하나라도 주고 받는 경주나 봉규, 다른 관람객 동생들도 여전히 있고 말이다.

상실이 아닌 흐름이다.

 4.

  어딜가나 선택의 연속이다. 에릭슨이란 사람이 구분한 생의 시기에서 22~28세정도는 그 이후의 삶을 결정할 직업이나 결혼등의 중대한 일이 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다고 한다. 또 그때의 결정은 그 이후에 고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그 시기의 결정에 불안해 하기도 하고...듣고보니 딱 맞는 말이다. 나에게도 또 나의 친구들, 그리고 내가 아는 동생들에게도 말이다........특히 머리가 커질수록 더더욱 그런 경향이 심해지는데 예전에 네츠고 관람객에서 썼었던 구절이 떠 오른다. 과연 우리는 5년이 지나면...1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관람객에 남아있기는 할까? 아니 관람객 자체가 남아 있을까?...그래서 그토록 가수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었나보다.

 




10년의 약속
- 전람회

 생각나니 졸업식이 끝난후 텅빈 교실에서 우리둘 맹세한 약속
10년이 지난 이날 이곳에 다시 찾아와
멋진 모습 보여주자 했지
그저 젊은만으로 쉽지 않은 세상에
때론 부끄럽고 약한 내 모습에 화가 나도
언제 어디서라도 든든한 울타리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준
너 있기에 난 웃을 수 있어
이제 서로 다른 세상의 길을 걸어도
잊을수 있겠니 꿈을 꾸며 살아가자던 그 부푼 약속을
이제 머지 않은 어릴적 다짐속에 그날엔
그 누구보다 자랑스런 너의 친구로 멋진 내모습 보여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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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과 4학년 외부실습을 마치며

Posted 2010. 7. 1. 23:59, Filed under: Ex-Homepage/Diary2014

 본과 4학년 1학기 마이너실습을 마치고, '이제 PK도 끝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무렵 학교에서 내려온 방침은 '추가실습 2주'였다. 어찌됐든 이번에 처음 시행하는 제도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실습을 2주동안 하는 것이었기에 무한한 자유와 은연의 방치를 동시에 겸비한 시스템이었다.

 부모님 병원이나 아는 사람을 통한 클리닉에 등록해서 2주간 쉬는 동기부터, 이미 돌았던 모교 병원내 과 별로 '널널'했던 과 위주로 선택을 한 친구, 약리나 병리 등 기초의학 분야 선택 실습을 도는 아이들 등 여러 방향의 실습이 진행되었다. 

 사실 이런 실습에는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방향에 대해 생각을 해보라거나 또는 미처 돌지 못했던 실습 과를 경험해 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지만, 첫 시행된 이번 제도에는 학점이나 그런 여타 부가적인 강제성이 전혀 없었기에 말 그대로 '방임'의 형태로 결론지어진 경우가 많았다. 아! 그리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1년 뒤 인턴을 마치고 선택하게 될 특정 과에 미리 얼굴을 비치자는 식으로 접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크게 선호하지는 않는데, 뭐랄까 너무 학생일 때부터 외골수적인 접근을 한다고 할까? 나중에 어떤 길이 있을지 잘 모르는데 너무 한정적인 길을 가는 것 같아서 부담이 되었다. 

 처음 추가실습 공지가 내려왔을 때 내가 선택했던 과는, 모교 병원의 성형외과 1주, 정형외과 1주였다. 성형외과는 실습을 돌아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선택을 할 가능성이 없는 과였기에 그랬던 것이었고 정형외과는 이번 학기에 실습을 돌며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어서 선택했던 것이었다. 정형외과 실습 때 조장을 맡아 열심히 했는데 이상하게 금요일에 졸업앨범 촬영이 겹치는 바람에 케이스 발표가 목요일로 당겨졌고 원래 화요일에 했어야 할 또 다른 케이스발표 역시 수요일로 미뤄지는 바람에 수/목 이틀 연속 발표라는 난관에 부딪쳤던 것이다. 특히 수요일 케이스는 S교수님의 케이스로 조장에게만 가혹한 비판이 무수히 떨어진다는 전 조들의(특히 전 조 조장들의) 인계장 내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월요일부터 무진장(!) 신경을 썼었다. P/E를 중시하시며 실제 demonstration을 할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도서관의 관련 서적을 공부하고 스캔해서 자료 만들고, 실제 환자도 꼼꼼히 체크하다보니 어느새 옵새하게 발표를 해버렸다. 그렇지만 실제 수요일 발표 때는 또 다른 조원인 지성이가 자진해서 먼저 매를 맞아주는 덕(!)에 난 별 탈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다음날 목요일 발표에서의 Y교수님 케이스였다. 이것도 나름 중간중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너무 리뷰에만 옵새하다보니 정작 발표 PPT에 post-OP 사진을 빼버리는 대형 실수를 해버렸던 것이다. 고관절치환술을 받은 환자 케이스였는데 단순한 pelvis AP 한장을 빼먹었고 역시 교수님께서는 그 점을 많이 야단치셨다. 어찌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데, 그리고 리뷰에 대해서는 칭찬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2개의 케이스 발표를 준비하다보니 정형외과의 일반적인 삶이 어떤지 잘 알수가 없었고 특히 내가 관심있던 '스포츠 재활과 관련된 정형외과'의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기에 아쉬웠던 순간이 기억이 나서 추가로 정형외과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각자 적어냈던 병원 및 과가, 위에서 말했던 여러 쉬거나 아님 널널히 도는 경우가 아니었던 경우에는 알게 모르게 '누가 ...과 지원자다!'라는 소문이 나고는 했는데, 나 역시도 순식간에 정형외과 어플라이라고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어차피 PS는 실습을 돌지 않았던 동기가 많았고 그런 사람들만이 지원을 했기에 별 소문은 없었다). 우리 동기가 43명이고, 의대 정원이 적은 편에 속하기에 이런 소문은 금새 나에게도 들렸고 뭐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너무 이른 '외골수'의 길이었기에 난 그런 소문이 맘에 내키지 않았다.

 내가 정작 궁금했던 것은 스포츠와 의료였기에...

그래서 그냥 외부 local의 정형외과 1주 및 스포츠재활과 관련된 곳 1주를 돌기로 하고 기말고사 기간을 앞두고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일단 local은 동문회 형들이 많이 계시는 근처의 'ㅎ'병원으로 했다.



 
 어찌하다보니 이 병원에 실습을 자원한 동기는 2명이 더 있어서(그 둘은 GS) 총 세명이었는데, 내가 두번째 주에 서울 쪽 병원에 신청을 해서 첫주에는 나만 이 병원에 갔다. 초기에는 어색한 점도 있었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local OS에서는 어떤 수술을 하는지, 환자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 등이었는데 두분의 OS 선생님 수술에 참관을 하면서 대충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취통증의학과 선생님들의 외래 및 시술에 참관을 하여 평소 관심이 있었던 근골격계 Pain control에 대한 현실적인 모습 및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여러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이곳 병원에서는 심/신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아마 동문회 형님들께서 '편히 쉬다가라'고 편의를 봐주셔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그것이 '무관심'이 아닌 실제적인 인생사 및 local tips를 주신 것이었기에 정말 귀중한 실습 시간이었다.


 2주차 실습을 한 곳은 '서울 아산병원 스포츠건강의학센터'였다. 이곳도 실습을 올 수 있게되기까지 사연이 많은데, 원래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은 '김연아 주치의'로 더 유명한 ㅈ선생님의 클리닉이었다. 그렇지만 contact을 하기가 무지 어려웠고(인터넷, 블로그, 전화 모두!) 또 보다보니 내가 원하는 모습의 그런 클리닉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결국 rule out 시켰다. 그후 도곡동에 있는 ㅇ병원에 연락을 취했다. 여기는 축구관련 수술 및 재활로 유명한 곳인데, 굳이 붙이자면 '박지성 주치의?' 정도로 홍보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따로 의대생들에게 2시간정도 시간을 줘서 간단한 병원 소개 및 스포츠 정형/재활에 관한 간담회를 열어주는 일종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그냥 인터넷 기사 등을 종합해 보면 금방 접할 수 있는 '내가 정말 원하는 정보'가 아니었기에 rule out  시켰다.

 그래서 결국 떠오른 것이 메이져병원급이나 국립병원 선에서의 선택이었고 일단 동기 중에 혜승이가 '국립재활원'에 선택실습을 나간다고 해서 같이 가자고 발을 집어넣고 다른 곳을 물색했다(왜냐하면 국립재활원은 말 그대로 재활 전반에 대한 것을 다루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스포츠 재활은 1/8정도의 비중만 차지하고 나머지는 뇌졸중 후 or 소아재활 등 내가 크게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산병원에 관련된 센터가 있는 것을 보고 컨택을 했는데 여차저차 연락이 되어서 각 의대의 승인을 받고 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실습을 나올 수 있었다(이것이 6월 초의 일이었고, 실습 나가기 전주에 또 약간의 절차상의 문제가 발생했었는데...그것도 잘 해결되었다).

 실습 첫날! 설레는 마음에 가운을 챙겨서 아산병원에 갔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실제 안으로 와본 적이 없었기에 길을 잘 못찾을까봐 약간 일찍 나왔다. 그러나 결론은 생각보다 아산병원이 더 가까웠고 나도 생각보다 덜 길치여서 약속시간보다 30분정도 먼저와버렸다. 월요일 아침은 컨퍼런스가 있다고 했는데 난 그 이후에 가는 것이었기에 그냥 센터 안쪽 의자에 앉아있었다. 핸드폰에 센터 입구를 찍은 사진이 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동관4층에 있는 여느 과의 외래처럼 이곳도 데스크와 대기벤치, 진료실 2개와 탈의실, 사무실, 상담실, 그리고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운동처방실(거실?)로 나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첫 이메일을 보냈었던 L 운동처방사 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친절한 형같은 K 운동처방사 선생님과 간단한 미팅을 가진 후 또 다른 K 운동처방사 선생님과 오전 일정을 같이 보냈다. 월요일은 외래가 소장님만 있었는데, 그것 보다는 오히려 정형외과에서 바로 post-OP 환자들을 올려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바로바로 개별 상담 및 지도가 행해졌고 나는 그것을 참관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병원답게 이런 운동처방이나 그런 것들도 온라인 상에 format이 잘 되어있어서 각 질환 및 수상부위 별 운동지시가 의사로부터 내려오면 전담 운동처방사선생님들이 그것을 클릭하여 개별화된 운동모식도를 프린트해서 시범을 보여주고 환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이런 운동처방 뿐 아니라 초진환자들이 바로 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럴 때는 간단한 체력테스트 및 유연성, 밸런스 등을 검사하고 현재 어떤 수준인지를 측정하여 참고자료로 삼기도 했다.

 점심 시간에는 K선생님과 다른 운동처방사 선생님, 사무장선생님 이렇게 넷이 아산병원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예전에 간혹 들었던 아산에서 서브인턴 돌았던 선후배 동기들의 '아산병원 병식은 정말 맛있다'라는 환상이 깨진 순간이었다. 뭐 나름 맛은 있었지만, 모교 병원의 병식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었다는.

 그리고 오후에는 의대건물(신관?) 지하에 위치한 스포츠센터에 가서 참관을 했다. 거기는 헬스클럽과 재활센터의 혼합된 형태로 팀도 2개로 나뉘어서, 재활센터소속의 물리치료사 및 운동처방사 선생님들은 따로 있고, 또 외부용역으로 일반인(아산병원 직원 및 직원 가족들 대상)을 위한 운동트레이너 팀이 있었다. 물론 그 두팀은 전혀 별개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었고. 어쨌든 월요일에는 선수재활이었는데 마침 울산모비스 소속 선수들이 단체로 와서 개인능력측정 및 재활, 부상방지 근력연습 등을 시행하였다. 아는 사람은 김동우선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엘리트체육선수들 대상의 시스템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차마 싸인해달라는 말은 못했지만. 그렇지만 발목의 힘을 측정하거나 허리의 힘을 측정하는 기계로 개인별 상태를 기록하고, 아니면 단순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도와주는 정도의 수준에서 진행되는 일종의 '시즌을 대비하기 위한 몸풀기'정도의 행위였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여담으로, 이쪽 분야에서는 프로선수들이나 엘리트체육선수들을 그닥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별거 아니지만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었다. 사실 '김연아 주치의'가 얼마나 '主'가 되는지는 아는 사람은 알테니 말이다. 실제 그 병원이 수익을 내는 것도 당연히 아는 사람은 아는 것일테니까. 어쨌든 첫날 오후에 봤던 선수재활은 모비스농구단 뿐 아니라 성남일화의 한 축구선수, 고등학교 핸드볼 선수, 여자 유도선수 등 희귀(?)한 케이스를 많이 볼수 있었다.

 둘째날은 오전부터 스포츠센터에서 참관을 시작했다. 오늘은 일반인 재활이 있는 날이여서 그것을 주로 참관하기로 했다. 사실 일반인들은 post-OP도 있었지만 그냥 obesity의 진단을 받고 온 경우도 있었고 그냥 말그대로 노인분들이 참여해서 하는 스트레칭체조가 전부였다. 그것을 한쪽 끝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같이 해봤는데, 양복을 입어서 그런지 아님 나이탓인지 뻣뻣한 내 자세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운동처방사 선생님들이 직접 제작한 DVD를 보며, 앞에서 한 선생님이 구호를 붙여가며 약 20분정도의 체조를 한 뒤에 다시 개별적으로 더 하고 싶은 사람은 물어가면서 진행되는 식의 일과였다. 나와서 다시 어제 오후처럼 개별적인 운동처방을 보다가 점심에는 학교 동아리 선배였던 L선생님을 만났다.

 현재 1년차인 L선생님과의 만남은 맛나고 비싼 아산 지하의 일식당 점심특선세트요리...에서 부터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에 대한 것들, 그리고 막판 전공의 숙소 공개 및 간단한 병동구경까지 정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내게는 good chance였다. 무엇보다 과 특성상 급여가 제일 부러웠다는!^^ 그리고 오후에는 별다른 스케쥴이 없어서 4층 센터에서 첫날 오전일과처럼 몇개의 케이스를 본 뒤에 퇴근?을 했다.

 이제 가는 길이 익숙해져서 약속시간 30분전에 나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수요일에는 그래서 오후에 재활의학과 선생님 외래가 있었는데 그 시간에 맞춰서 병원에 갔다. 




 재활의학과에서 파견나온 K선생님은 현재 fellow 1년차셨는데, 그날 외래가 3껀 밖에 없어서인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개인적인 이야기 및 내가 궁금했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아주 많은 정보 및 현실을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꼭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료를 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불현듯 들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OS까 RM보다는 더 포괄적일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날 개인적인 대화에서 가장 큰 수확은 목요일 일정에 대한 것이었다.

 월/화 이렇게 이틀에 걸쳐 4층 센터 및 지하 스포츠센터의 대부분의 코스를 견학했기에 사실 여기 사람들에게도 딱히 의사선생님들 외래 말고는 추천할 코스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계속 운동처방하는 것만 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수요일 외래 때 재활의학과 선생님께서 본인이 목요일 오전에 태릉선수촌에 '참관'을 하러 가는데 일정이 되면 같이 가는 것이 어떠냐고 먼저 제안을 하셨다. 이런 것이 티핑포인트일까? 나는 먼저 K 운동처방사 선생님에게 일정을 물어보고 또 재활선생님도 태릉쪽에 연락을 취해 양해를 구해서 결국 같이 가보기로 했던 것이다. 태릉선수촌은 어찌보면 이런 스포츠재활에 대한 시스템이 우리 나라에서는 가장 잘 발달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매우 컸기에, 이런 기회는 내게 무척이나 소중했다. 

 목요일 아침 6시 50분에 집에서 나왔다. 지하철로만 1시간 15분이라는 계산을 인터넷에서 했기에 8시 30분까지 도착을 하려면 넉넉하게  나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버스를 다시 탄 후에 태릉선수촌 입구에 도착했다. 내가 너무 일찍왔나 싶었는데 선생님께서도 한 10분정도 뒤에 도착을 하셨다. 문제는 우리 둘다 30분정도 일찍 왔는데, 태릉선수촌 의무실 전담주치의 선생님께서 전날 미리 경비실에 이야기를 해놓지 않으셔서 입장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우리 둘은 경비실 옆 벤치에 앉아서 다시 간단한 인생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종종 지나가는 운동선수들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선수촌주치의 선생님이 오시고 우리는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태릉선수촌에는 전담주치의가 한분만 있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FM 선생님이 한분 더 계셨다. 어쨌든 우리는 RM쪽으로 관심이 있었기에 사진의 주치의 선생님과 오전 외래에 같이 있었다. 선수촌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데, 요즘처럼 아시안게임이 100여일 남은 시점은 성수기로 하루 평균 80명 정도의 선수들(국가대표 및 상비군)이 의무실을 방문한다고 하셨다. 육상선수, 핸드볼 선수, 수영선수, 유도선수, 하키선수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을 봤는데 이름이 많이 알려진 구기종목 선수는 별로 없었다. 남자 허들 국가대표인 박태경-이정준 선수, 이렇게 둘이 그나마 좀 알려진 선수들인데 실제 보니 확실히 체격이 남달랐다. 특히 이정준 선수는 딱 봐도 운동선수임을 느낄 수 있었다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2283865

 선수들은 약간 재활윤리적 측면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데, 시합을 얼마 남기지 않고서의 수술 여부에 대한 것이 최근 스포츠의학의 화두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치료는 US를 통한 검사 및 인대, 근육손상 여부 판단과 약처방, 그리고 핵심적인 물리치료였다. 중간에 진료실 밖의 넓은 재활공간(마사지 및 여러 기구들을 이용한 재활 및 테스트 등)에 나와 대표 트레이너분께 소개를 들었는데, 확실히 아산병원 같은 '병원'보다는 이런 곳이 기계의 종류나 규모가 훨씬 대형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Xray나 C-arm 등을 통한 intervention도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압권은 지하에 있는 4X3m짜리 수중재활기구였는데, 물속에서 뭔가 트레드밀을 걷는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장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서 몇가지 더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선수촌에 들어오신 것인지? 왜 선택을 하셨는지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아산 재활선생님이 1시에 외래가 있으셔서 우리는 11시쯤 태릉에서 다시 아산으로 향했다. 선생님 차를 타고 왔는데 구리쪽에서 외곽고속도로를 타고 오니 아산까지 30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쨌든 두분의 K선생님 덕분에 나에게는 난생 처음 육사쪽 동네를 가볼 수 있었던, 아니 그것 보다는 '스포츠 의학'에 대한 국내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태릉선수촌과 아산! 이 두개 조합이면 감히 국내의 '전반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목요일 오후 3시부터는 정형외과  L교수님의 외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외래야 말로 내가 제일 관심이 있던 부분이었고,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했다. 이것은 센터의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들은 L교수님의 인품에 대한 호감도 크게 작용을 했겠지만, 일단 정형외과 외래가 아닌 스포츠재활센터에서의 OS진료 외래는 '정형외과+재활훈련', 이 이상의 뭔가를 더 충족시켜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3시부터 5시 30분까지 진료실 2개를 왕복하며 계속 진료를 하셨는데(이건 전국 모든 대형병원 정형외과의 트렌드인듯~!) 그때마다 환자에게 매우 쉽게 설명을 해주시며 또 처음본 참관인인 나에게도 직접 피지컬을 간단히 할수 있게 해주시는 등 마치 모교 제자들을 가르쳐 주시는 듯 해주셨다. 그리고 중간중간 짜투리 시간에 이런저런 스포츠의학 및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해서도 친절히 답변해 주셨다. 또 외래가 끝나고 약 20분정도 한 환자분이 가져온 롤케익과 녹차를 마시며 1대1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정도 quality의 참관을 원한 것은, 아니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정말 태릉선수촌도 그렇고 오늘은 운수가 대박!인 날이었다. 

 현재 국내의 스포츠 재활과 관련된 수익성 문제 등 제도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미진할 수 밖에 이유와 아산병원 스포츠재활센터의 목적 및 현재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들, local에서 유명한 클리닉들의 현실과 한계, 정형외과적 측면에서의 스포츠의학의 치료적 활용방안 등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는데(물론 이런 토픽을 내가 꺼낸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교수님의 story에서 내가 catch한 것들임;;) 바로 그런 것들이 내가 이번 선택실습 때 꼭 경험해보고자 했던 궁금증이었다. 외래에서 환자를 보는 그런 장면이야 PK실습 때도 수없이 봤던 것이지만,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진해서 참여했던 것이라 그런지 더 뜻깊었던 참관실습이었다. 

 P.S.

 이제 남은 것은 금요일의 오전 RM 외래 및 토요일의 소아청소년 스포츠의학 심포지엄이다. 두개 모두 기대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344243


 딱히 어떤 결론을 내리고자 시작한 실습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아산병원에 참관실습을 해보고 느낀 점은,

 - 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는 점이다. OS든 RM이든 아니면 AN이든, 일단 내과+외과에 대한 지식이 기반이 되야 환자에 더 최적화된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4때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

- 그러므로, 이 블로그에 다짐한다. 이제 국시도 190일 정도 남았다. 열심히 공부하자!
- 기회는 노력하는 자에게만 열려있다. 그 노력은 가끔 생각보다 쉬운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노력하자!
- 나름 관련된 여러가지 project들을 어렴풋하게나마 구상해 볼 수 있었다.  

- 이번 2주동안의 실습기간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도 나중에 그런 위치에서 누군가에 mentor가 될 수 있도록 더 정진하겠다.


+addition

올 한해는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Do whatever you want.

일단 나의 지식과 신체가 나의 무기이다.

그리고 나의 관심사는 스포츠이다. 이런 것들을 연관시켜서 일을 하고 싶다.

물론 더 노력하고 더 창의적이게 '가치'를 만들어내거나 발견해서 잘 닦아야겠지.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항상 그래왔다.

그러고보면 시초는 초등학교 회장선거를 위한 연설문 작성이었던듯.

2년전 아산병원으로 추가실습을 나갈때도 나혼자 다 개척했고, 그 전후로도 많은 것을 스스로 했다.

실패한 적도 있고 성공한 적도 있지만 그런 모든 경험은 하나의 '과정'이겠지?

모 스포츠드링크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미국스포츠센터 견학이벤트도 신청했고

국내 최고의 병원에서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에 대한 세미나도 돌아오는 금요일에 가서 참석한다.

마음같아서는 뉴욕의 닥터 멧젤이 하는 프로그램에 잠깐 참석해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직은 '절제력'을 가지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우선순위를 정해서 해야한다.

 

플랭크plank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2분 30초간의 플랭크를 하면서 다른 어떤 운동보다 잡념이 많아진다. 특히 2분을 넘어가면서부터.

인생도 그와 같겠지?

초등학교 중거리 달리기시합에 나가 느꼈던 '하니의 마인드'를 34살에 플랭크에서 다시 느낀다.

나의 심장은 준비가 되었고...거기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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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몇가지 Big event

Posted 2010. 1. 20. 17:42, Filed under: Ex-Homepage/Diary2014

 매년 중요하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올해도 역시 월초에 여러가지 일들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중요하지 않은 '해'가 없는 것은 곧 매년 초는 중요한 '달'이란 것 같다.

1. 국시까지 1년도 남지 않았다.

 내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시험에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감히 자신한다. 그렇지만 어떤 의사가 될지를 생각해보면 결코 녹녹치 않다. 본과 2학년때 정형외과 교수님 중 한분이 하신 말씀이 있다. 2학년때는 무조건 지식을 집어 넣고,
3학년때 실습으로 익히며, 4학년때 비로소 정리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 4학년이다.

 열심히 공부하겠다. 그리고 심적으로도 단련할 것이다. 교감신경이 잘 발달한 나이기에 mind control이 매우 중요하다. 나이를 먹어가고, 시험이 다가오지만 내 나이에 맞지 않게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날들 역시 점차 없어진다는 마음으로 더 정진하자.

2. 친형의 결혼식

 이제 한살터울의 형이 결혼한다. 5월 중순이니 4달도 남지 않았다. 30년 넘게 형제로 살아오며 희노애락을 같이한 형이다. 사실 내가 뭐 해주거나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인다. 더불어 이제 집안일도 좀더 신경을 써야한다. 형이 출가하면 어머니 혼자 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4월에 들어오시면 당신들의 거취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상의해 봐야 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더 나서서 보살펴 드려야 한다.

3. 봉사활동

 처음 2가지 이벤트는 어차피 오는 일이었다면 이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일이다. 열린창문 클리닉을 만들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현재 내 상황에 과연 이것을 할 수 있을지, 나에게 투자할 시간도 촉박한데 봉사모임을 참여할 수 있을지, 공부할 것이 무한정 많은데 시간이 날지 등등 갈등이 많았다. 

 선택에 힘을 실어준 것은 여자친구의 응원과 목사님의 말씀이었다. 사회복지단체에 적은 비용이나마 매달 기부를 3년째 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여자친구가 유일한데 봉사모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는 내 평소 신조("아직 의사가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금전적 봉사지만, 나중에 의사가 되면 물적봉사도 하고 싶다")를 알고 있었기에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격려해줬다. 특히 맨땅에다 뭔가 조직하는 일을 내가 잘한다고 하며 나에게 적합한 일이라고까지 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도 들고. 지난 주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도 내 선택에 힘을 실어줬다. 누군가 나에게 '넌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이 경우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과연 내 삶의 결정권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내 삶에서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이냐는 거다. 더 멀리 보는 자아실현의 기초단계로 이 봉사모임을 생각하고 있다.

 시간의 문제는, 하루에 1시간 덜 자고 또 동아리활동을 줄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쉬는 것을 봉사활동에 투자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사야서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4. 체력관리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간다. 많은 친구들이 보여줬던 것처럼 배도 나올 수 있고 또 흰머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 체력은 국력, 이 말이 심플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다. 내가 계획한 일들을 다 이루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다. 잘 먹고 또 잘 움직이며 관리를 해야겠다. 날이 풀리면 학기 중에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는 걸어서 통학할 생각이다.

5. 언제나 기도하자. 마음의 소리를 듣자.

 말 그대로다. 인간은 너무 약한 존재이며, 생각의 끝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 왔다. 지금도 고민 중이며.
그렇지만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그 분의 존재를 믿고 따라야 한다. 나약한 나를 강하게 하시며 생사의 근본적인 혼란에서 인도하실 분이시니 말이다. 

 올해도 열심히 살자 승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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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U를 도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NICU를 돌았다. Neonate를 intensive하게 care 하는 곳인만큼 들어가기 전에 경건한 마음도 들었지만 사실 약간은 흥분되고 기대되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만족'. PK로서 책임과 권한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일까? 행하고 느끼는 것은 전적으로 PK에게 달린 것이었고 그런 면에서 나의 약간은 강박적인 성격이 NICU와 잘 맞는 것 같다.

 우리 병원에서는 NICU에서 환자를 배정받는데(w/o 권리) 매일 아침마다 대장님(장교수님)께 보고를 해야 한다. 전공의 수준의 보고를 해야하기 때문에 버벅거리지 않기 위해선 간단한 '대본'을 준비해야 하고 매일 아침 일찍 그것을 update해야 한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워드로 간단한 format을 만들어서 준비했는데 나름 좋았다. 아! 연필은 필수이고 더불어 NICU에 대한 경건함의 표시로 출입 전 반드시 손을 씻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운 좋게(?) 난 3명의 아이들을 맡았고 중간에 discharge한 경우가 있어서 total 일주일간 5명의 환아를 보았다.

유OXB

상기 여 신생아 37 para 2-0-1/1-2 산모로부터 26+1 930그램으로 C/sec 분만 하였으며 A/S 5/7점으로 출생 시 전신 청색증 심하고, Chest retraction 심해 심폐소생술 시행하였으며 prematurity, RDS care 위해 NICU 입원하였습니다. <어제 한 결과> 현재 incubator care 2, assist vol. control 모드로 ventilator care 7일째이며, Ballard catheter 1일 째 꽂고 있으며, aminophylline, mexolone 투여 중입니다. 오후에 시행한 Chest PA 상 양 폐의 collapse 소견은 약간 호전 되었으며 현재 체중은 940으로 어제에 비해 40 증가하였고, Input 120, output 84로 현재 Breast milk feeding 15cc q3hr feeding 하고 있습니다. <오늘 계획> 새벽에 chest retraction 보여 suction 시행하였으며, 아침 Chest PA 시행하였습니다. 오늘 full lab 예정입니다.

 

 

12/12

12/13()

12/14

12/15

12/16

12/17

12/18

Wt change

910/ 10up

900/ 10dw

900/ 동일

 900/ 동일

 

 

 

I/O

 

102.2/ 62.2

F/G 54.2/48

91.2/ 76

96/ 61

 

 

 

 

Feeding

 

BMF 6cc q3hr

BMF 6cc q3hr

BMF 6cc q3hr

BMF 6cc q3hr

 

 

 

Special Tx

 

EKG, Sp02, HR, RR

 

 

 

 

 

계속 걸고 있는 것

 

 

 

 

 

 

 

Order(결과)

 -지시/Med/기타

- Chest AP

- ABGA(GEM)

- Chest AP

- ABGA(GEM)

- IBP q8hr

 

 

 

 

 

Lab 결과

 

 

 

 

 

 

 

 

MISC2

 

- incubator #5

- ventilator #3

- Ballard cath #3

- G-tube #1

- EKG #1

- IV filter #2

- Heparin cap #2

 

 

 

 

 


구OX

상기 여 신생아 30 para 0-0-0-0 산모로부터 twin 2nd, 38 1804그램으로 분만하였으며 A/S 6/8점으로 출생시 전신 청색증 심하고 initial crying약하며 tone 저하되며, 몸무게 10%미만이어서 신생아 중환자실로 입원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photo Tx & eye shield 6일째 시행 중 입니다. PCVC 기능 양호하며 오늘 3 BST 62로 측정되었습니다. 어제 Total bilirubin 10.0 이며 <어제 한 결과> 현재 체중은 1845로 어제에 비해 37 증가하였고, Input 334, output 195으로 어제 Whole milk formula 30cc q3hr feeding 하고 있습니다. <오늘 계획> 오늘 full lab 예정입니다.

 

 

12/12

12/13()

12/14

12/15

12/16

12/17

12/18

Wt change

1728/ 49up

1779/ 51up

1776/ 3dw

1804/32up

 

 

 

I/O

 

297.74/ 200

F/O 59.74/238

 

356.66/235

339.5/149

 

 

 

Feeding

 

WMF

WM 30cc q4hr

WM 30cc q3hr

WM 30cc q3hr

 

 

 

Special Tx

EKG, SpO2, HR, RR Photo Tx&Eyeshield

EKG, SpO2, HR, RR Photo Tx&Eyeshield

 

 

 

 

 

계속 걸고 있는 것

 

 

 

 

 

 

 

Order(결과)

 -지시/Med/기타

- Oint 도포

- Oint 도포

 

 

 

 

 

Lab 결과

 

OT/PT/T-bil

     /13.3 mg/dl

OT/PT/T-bil

     /12    

T-bil: 11.1

T-bil: 10.2

BST: 44

 

 

 

MISC

 

12/9-Hydrocortisone valerate cream 0.2% 20g

Isoconazole Cream 10g

12/6

Zinc oxide oint 20g

 

 

 

 

 

 


이OX

상기 남 신생아 32 para 1-0-0-1 산모로부터, 38+13220 그램으로 분만하였으며 A/S 7/9 점으로 출생시 분만 후 1시간 무호흡 보여 o2 흡인하였고, chest retraction 보여 신생아 중환자실로 입원하였습니다. 응급 시행한 Chest PA 상 양 폐야에 mild white out 소견으로 term RDS 소견 보여 surfactant 투여 하였습니다. <어제 한 결과> 현재 retraction은 많이 감소하였고, SpO2 95% 이상 유지중이며, Time cycled Pressure limited, assist volume control mode ventilator 시행 중이며, FiO2 0.21 입니다. G-tube, Ballard cath, IV filter, UVC, UAC 하고 있으며, gentamicin, ampicillin 투여 중입니다. 현재 체중은 3165g 으로 어제에 비해 25g 감소하였고, Input 147, output 106으로 어제 half Whole milk formula 5cc q3hr 4, sterile water 5cc q3hr 4회로 feeding 하고 있습니다. <오늘 계획> 아침 chest AP 찍고, ABGA 시행 예정입니다.

 

12/12

12/13()

12/14

12/15

12/16

12/17

12/18

Wt change

 

 

 

 

 

 

 

I/O

 

 

 

 

 

 

 

 

Feeding

 

 

 

 

 

 

 

 

Special Tx

 

 

 

 

 

 

 

Lab

 

 

 

 

 

 

 

Order(결과)

 -지시/Med/기타

 

 

 

 

 

 

 

MISC

 

 

 

 

 

 

 

 


 이렇게 차트로 뽑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체크하면, 한눈에 환아의 상태를 볼수 있어서 좋다. 더 구체적으로는 선생님들의 질문에 바로 답변을 할 수 있어서 좋다.  

Response : ,


 어느덧 실습을 돌기 시작한지 2달이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소화기내과1, 혈액종양내과, 류마티스내과, 내분비내과를 돌았으며
현재는 심장혈관내과를 돌고 있다. 

 각 파트별로 실습을 돌면서 실제 테스트를 해보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자면
내분비 내과에서는 혈당을 체크해 보았다. 간단히 전극을 이용해서 혈당을
무작위로 측정하는 것인데 나이에 따라 혈당은 정상적으로 조금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 조에는 나를 포함해 나이가 좀 있는 PK들이 많은데, 신기하게도(?) 나이에
따라 혈당이 좀더 높게 나왔다 - 나는 140mg/dL가 나옴)

 또 지난 주에는 심전도를 측정했는데, 약간 이상한 심전도가 나왔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조사도 해보고 여러가지 알아봤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실제 크게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치료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도
그냥 EKG 상에 'abnormal'이란 글이 뜨니 덜컥 겁도 나고 그랬다.

 지금까지 맡았던 환자분들이 lymphoma로 수술치료 받으셨던 분, 당뇨로 neck
mass 수술을 연기했던 분, pneumonia로 ER에 입원하신 분 등 심각한 상태의
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모든 것보다도 내 자신의 간단한 EKG 해석 하나가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난 내 심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교회의 목사님이 손목의 맥을 짚으시며 '심장이 약한 것 같은데...'라는
단순한 말로부터 시작된 이 의구심은 그동안 20여년을 살아오며 운동을 할때마다
또는 가끔씩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뭔가 이상한거 아닌가라 생각했었는데 별 이상없이
시간이 흘렀었다. 한번인가 동네 내과에 갔었지만 청진상으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또 그냥 별 생각없이 지내왔었다. 지난 PBL 수업 때도 Chest pain의 가장 흔한 원인이
심장쪽 문제가 아닌 소화기 쪽의 GERD라는 것을 보고 안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나의 교감신경계가 너무 sensitive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여기기도 했었다.

 그런데 EKG를 찍었고, 그 다음날 한번 더 찍어봤는데 똑같은 결과가 나왔고
그걸로 그냥 지난 20년 동안의 가슴관련 증상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EKG를 찍은 이틀동안은 상당히 depressed 된 상태로 지냈다.

 내일은 심에코를 찍는 테스트를 자원했다. 그리고 아마 목요일에는 TMT를 할 것이다
그런데 EKG를 찍고 나니까 원래 하기로 했었던 그런 Test들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건 뭐 이상이 없다고 나오면 안심을 해야하는 상황이 된건가?!

 이번 사태로 크게 느낀 점은, 간단하다.

 1. 살아있을 때 열심히 살고,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서 나의 환자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자는 것과...

 2. 나의 몸을 먼저 아끼자는 것!

 EKG 사건의 교훈은 그것이다. 그래도 미리 안 것 아닌가? 이에 대한 대비 및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 나이도 이제 서른에 접어들었고 건강을 챙기는 그런 시기가
온 것이다.
 
 사람은 한번의 인생을 살고,
어떤 경우든 Risk factor를 가지고 산다.
그것은 당뇨일수도 있고, 암일 수도 있으며 심장쪽 문제나 뇌혈관쪽 문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죽을 때 단지 '무슨 위험'이 '먼저' 다가왔냐가 다를 뿐이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고 조금은 멍한 상태로 지난 심장 1주차의 첫부분을 보냈다.
나의 가족들과 사랑...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으나 나의 상태를 인정한 그 순간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열심히 사는 것 말고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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