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네이트 관람객의 글
Posted 2010. 8. 17. 03:03, Filed under: Ex-Homepage/Diary2014정말 오랜만에 간 그 동호회...
네이트란 포탈사이트의 정책에 따라
클럽을 이동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찾아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처럼 어지간히 오랜만에 찾아가는 사람은 예전 클럽에 접근조차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그 클럽은, 아니 동회회는
여러 사정을 통해 아마도 '폐쇄'할 것 같다.
내가 쓴 글을 검색해 봤다.
그러고 보니 대학에 새로 들어오기 전에
썼던 글이니 벌써 몇년이 지난 글이구나...
영원히 사라질 것 같기에, 여기에 간단히 글을 옳겨본다.
1.
이번 학기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열렬히 수업을 들은지도 어언 3개월째이다. 중간고사를 보았던 몇몇 과목들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솔직히 이번 학기에는 몇과목 듣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험도 다 보는게 아니라서 중간 고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과목은 3개 뿐이다. 그 중에 전공이 두개, 교양이 하나이다.
아는 사람(이 이제 관람객에는 별로 없겠지만...)은 다 알듯이 학점보다는 수업 자체에 흥미가 가는 수업만 골라서듣는 관계로 무진장 열심히 하고 있다. 마치 고등학교때의 모습처럼 수업 후 그날 복습에 요약정리, 암기, 관련서적 3~4권 탐독 및 답도 없는 연습문제 풀기 등등....
그렇다면 혹자는 그런다.
"니 전체가 다 A+이가~?"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물론 나의 머리의 한계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의 치명적인 약점은 실제로 시험이 다가와도평소처럼 공부를 한다는 것과 정보에 약하여 시험에 나오는 족보따위를 입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는 뭐...그렇구나 하면 넘어갈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까닥하면 대략 낭패인 경우이다. 특히나 중간고사의 경우에 시험의 스타일을 잘못 파악한다면 더더욱 그렇고....
전공중에 하나가 경영과 관련된 것이 있다. 난 공대이지만 산업정보관련이기에 전공에 그런 과목이 있고 수업중에는 정말 품질, 원가, 입지, JIT 등등의 경영학과에서 배울만한 것들을 두루 배운다. 워낙에 전공수업에다가 또 평소에도 관심을 쪼..금 가지고 있는 경영학인지라 열심히 했다. 나름대로는 관리과목이었고~ 또 전공중에 컴퓨터과학에 관련된 과목이 있다. 이 수업은 외국인 교수인데 뭐 그 사람의 실력의 여하를 떠나 프랑스식 발음에 애를 먹는 그런 과목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이 과목역시 열심히 공부했다. 또 시험을 본 마지막 교양과목은 '인간행동의 심리'라는 심리학 과목이다. 심리학에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었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도 컸고 참고서적도 가장 많이 본 과목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를 중간고사를 보았다. 물론 고학번 복학생 공대생 치고는 저렴한 노력이 들었다고 볼 수 도 있겠지만 나름대로는 대학공부를 취미공부하듯 했기 때문에 시간적, 정신적 노력은 충분히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경영공학의 점수가 가장 신속하게 나왔다. 시험을 볼때부터 대강 예상은 했지만 쩝...200명 중에 중간정도의 점수를 기록했다. 뭐 경영학에 관심이 그리 컸던 것이 아니었다고 자위를 했지만 좀 실망스러웠다. 시험의 스타일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는데 문제당 20점짜리에서 각각 3점, 5점을 얻은 것이 데미지가 컸다. 한마디로 남들이 틀리는 고난이도에서 점수를 얻고 쉬운 문제에서 점수가 나갔지만어쨌거나 점수는 총점계산이니.....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A와 B가계에서 좀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방식을 논의하시오'
..란 문제에서 난 '논의'를 하라고 해서 구구절절히 서술을 했다. 그런데 답은 그래프 그리고 정답을 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서술한 내용은 그 정답을 다 커버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2점에서 그 문제를 사수했지만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결과는 결과고 나온 결과에 어떡하면 1~2점 더 올릴까 찌질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인정했다. 사실 따지면 한 5점정도는 올릴 수도 있겠지만, 중후한 복학생의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관뒀다. 하지만 그 과목을 위해 따땃한 3월부터 꾸준히 중도 6층에서 구석에 쳐박혀 책을 봤었다고 생각하니..
이 시험에서 난 처음으로 대학 시험에 '족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의대와 달리 당시 연대공대의 족보는 주로 아는 조교 형, 동아리 형 등을 통해서 내려오는 것이었고 당시 난 열심히 옵세하게 필기한 것을 별 친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잔을 얻어먹으며 복사하게 빌려주던 순진한 학생이었다. 뭐 그래서 기말고사 때도 역시 족보를 보지 않았고 적당히 A선에서 과목을 마무리 했던 것 같다.
좀전에 컴퓨터과학전공의 점수를 사이트에서 확인했다. 그 시험은 100% 서술식 시험이었고 또 영어로 쓰는 것이었으며...간단한 수리계산 문제에서 실수 하나, 뒤에 응용문제에서 실수 하나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심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왠일? 점수는 전체에서 한 4등정도 한 것 같았다. 이럴땐 매우 기뻐야 하는데 담담했다. 은연중 가지고 있었던...왕자병인가? 누가 나한테 이럴 땐 기뻐서 날뛰어도 좋다고 했으면 좋겠는데..어쨌거나 그 시험은 알고 있는 개념에서 최대한 응용적인 내용을 첨가한 것이었고, 또 수업 자체에서 포기한 애들이 많이 있는(영어 수업에 프랑스식 발음이라 누구에게나 애로사항이 있는..) 그런것이었기에 '혹시...'했었는데 하하! 이제 기쁘네..
남아있는 것은 심리학 수업의 결과인데 그건 예상컨대 거의 다 맞았다고 생각한다. 심리학 수업은 교수님이 항상 '심리학=과학' 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그런지 시험도 칼같다. 단답식/단문서술식/서술식...문제에 33문제/1시간 50분! 딱이다~!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방식의 수업이나 시험방식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을 수용하는 한도내에서 나름대로의 창조적인 수업으로 만들어 듣고 있다. 어쨌거나 시험에서 완전 단순 암기 ' 심리학의 발달 순서' 따위의 배점낮은 문제 한두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맞았다고 알고 있다.시험은 제일 먼저 본 것인데 교수님이 조금 바쁘셔서 아직도 채점이 되지 않았다고 하신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시험과목의 점수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아마 B+인가 B인가 그랬을 것이다.
중간고사 성적이 나온 후 교수님을 찾아갔고 나보다 먼저 와있던 또 다른 제3의 '억울한 학생'과
교수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교수님은 아주 irritable한 표정으로 시험지 뭉치를 주시며
자신은 채점 기준을 명확히 가지고 채점을 한 것인데 너희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여기까지
왔느냐는 듯한 표정과 행동을 하시며 나를 불쾌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런 기억때문에 내가
더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리고 내가 지적한 '오답'이라 표기되어있던 내 시험지의 문구에 대해, 교수님은 자신이 채점하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키워드)에 맞지 않으면 자동으로 감점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난 분명 키워드에 대한 해설(그렇다고 너무 막연한 해설도 아니었다)을 하고 중심적인 내용들을
엮어 놓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답이 될 수 없는, 아니 점수를 아예 줄 수 없는
그런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러나 난 지금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적어도 그 시험에서 내가 쓴
답은 그 정도 점수 '취급'을 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썼던 과목이었고
지금은 그 이상의 관련 지식을 가진 상태지만 아직도 그 기억이 난다.
난 그 방을 나오며 개탄 했었다.
'문과생의 마인드란 이런 것이구나...'
제목이 딜레마인데 그럼 모가 딜레마냐하믄....
관심과목이 3가지 였고, 그 우선순위는 인행심>경영공학>컴퓨터과학 이었는데 시험을 인행심>>> 컴과&경공...으로 예상을 해서 기말에 어떻게 대처할런지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었다. 그냥 경영공학하고 컴퓨터과학은 대강대강해서 B정도로 유지, 심리학만 A+로 해야지 했건만 컴퓨터과학역시 A이상으로 수정을 했던 것이다.
아니 그럼 좋은거지 그게 모 대수냐! 하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겠지만 일종의 고시생으로 '대단한 시험'을 준비할까 생각하는 나에게 그건 조금 빡세지는 일정계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간고사를 보지 않았던 2개의 과목 역시 기말은 시험을 본다! 또한...경영공학을 같이 듣는 친구 왈!.."중간고사 잘 못봐도 기말고사 엄청 잘 보면 A다!"라는 위로아닌 위로를 듣고 아직도 '경영공학=A'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2.
과외를 구했다. 예~전..그러니까 대학교 1/2학년때는 주위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과외를 구할 수 있었다. 선생의 인지도 때문이였는지 꾸준히 과외알선이 어머니를 통해 들어왔고 그래서 그냥 '하나보다...'하고 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니 왠걸? 주위에 아는 분들의 자제들은 다들 대학 1~2학년이 되어있었고 있어봐야 초등학생들 뿐이었다. 내 소신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과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기에 D카페의 모임을 이용하여 스스로 과외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카페의 특성상 수요보다는 공급이 엄청 많았기에, 또 온라인이라는 특성상 쉽게 과외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야! 구구절절한 학습방법과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템으로A4용지 4장분량의 계획서를 만들어 내서 송파지역에 산다는 수요자 5명정도에게 단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2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실제로 페이를 받기 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온라인이란게 원래 그런건지 별의 별 인간이 다 있었고 예전에는 건대까지 가서 시범과외만 해주고 이상한 문자만 받고 온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것이 어언 일주일정도 전! 한명은 재수생여자이고 한명은 재수생남자이며 여자애는 집에서 5분거리, 남자애는 집에서 15분거리에 있었다. 이건 딜레마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둘다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진도를 나갈 것을 쫙 찾아본다음에 애들하고 합의를 봤는데 텍스트로 쓰는 것이 2권, 보충문제집이 3권이었다.(요즘은 공통수학을 보지 않는다고 하던데 애들은 공통수학도 좀 하자고 그래서 문제집이 세권이나 되는 것이다!) 총 5권의 문제집만 풀면 너희도 수학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다독여 준다음에 집으로 돌아오다 서점에서 책을 몽땅 구입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이걸 나도 다 풀어야 하는건가...?'
애들하고 덜컥 약속을 해버렸던 것이다. 내가 풀어서 봐주겠다고...니들이 푼거하고 비교할 수 있게 깔끔하게 풀어 오겠다고..하하하하하하..뭐 고등학교 수학 별거 있겠어~? 하고 도전 했는데 문제의 수준은 뭐 그렇다 쳐도 몬 문제가 이렇게 많은건지? 지금 내일 진도나갈 문제집 두권째 풀고 있는데...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_-; 하지만 첫달이니까해보는데 까지 해봐야지~!!!!!
3.
응룡이 아저씨가 했던 멋진 말중에...
"에..~ 동렬이도 가고!..에..!~ 종범이도 가고~!"
관람객의 많은 건아들이 군대에 갔고 좀 전에 간 애들도 아직 제대를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관람객 주력파중에서는 그나마 군대를 마친 사람이 영균, 규범, 나 정도 되는 것 같은데...다들 관람객에는 잘 오지 않는다. 또 모르지 영균은 그의 사랑하는 보람의 아이디로 종종 올지도! 어쨌거나 그나마 자주 보이던 몇몇이 군대에 가니까 확실히 관람객도 더는 유지가 잘 안되는 것 같다. 내가 군대에 있을때는 관람객 사람들이 정말 그리웠었고(닭살이 돋는표현이나 그냥 썼다!) 아마 지금 군대의 군바리 동생들 역시 매우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아마 그것이 관람객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막상 휴가를 나오면 딱히 만날 친구들 만나도 이틀정도면 되는데 시간은 남고....군바리 정신이 남아있다보니 몬가 친구들을 보고 싶은데 이미 볼만한 친구들은 다 본 후에는 관람객의 사람들을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친목적인 모습들.... (하긴 나부터 그렇지만 제대를 한 후에는 주도적으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건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신규가입자도 별로 없으니 너무 눈에 보이는 결과인가?)
지금 대삽이 창완이라고 창완이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닌것 같다. 글을 많이 쓰자고 홍보를 해도~ 불후의 명작 회탐을 해도~ 시들시들...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신입회원도 잘 안들어오고 활동자체가 팬클럽이란 타이틀과도 잘 안맞으며, 친목모임이니까 친목적인 몬가 온/오프에서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되고 그런 것이 이유인것 같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원래 있던 사람들의 이탈이겠지.
아마 있다면 다들 이유가 있고 이유가 없다면 그냥 아무런 이유가 없거나 단지 바빠서일,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그들의 이탈은...말 그대로 "동렬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 처럼 시대의 대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들에게 더 좋은 아니면! 없던 꺼리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관람객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린다면 200% 오바인건가?) 인간은 천차만별이니까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나역시 관람객에다 글한번 잘 쓰지 않는 불량회원으로 접속은 거의 매일 한다. 그런데 나만 눈팅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글도 거의 없으니까 뭐 그냥 그렇군 하고 새글이 없으면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나도 매우 많이 변한 것이다. 창완대삽이 회탐을 부활시킨 의도 또한 그런 것이겠지만 정말 예전의 관람객의 열기는 관람객의 사람들에게는 불과 같았다. 네츠고 시절의 번개팅, 정팅, 정모, 번개, 엠티,연주회 등등 온/오프라인은 거의 밤낮을 가릴 수 없었다. 낮에는 번개하고 밤에는 채팅하는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던시절이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개인적으로는 당시의 나에게 관람객의 여러 사람들은 참 고마운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 대학의 문화란 것도 그렇고 서서히 사회에 발을 내딪는 우리나이대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흥'이란 것이 점점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한 수업에서 1학년때 잠깐 몸담았던 동아리의 친구, 충호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말하길 우리때 애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모이지 그 다음부터는, 특히 요즘에는 애들도 동아리활동 잘 안할뿐더러 오는 애들도 잘 모이지는 않는다고 그런다. 하긴 심지어는 그 끈끈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K대에도 어느덧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하니 어련하겠는가? 뭐 누가 어떻다고 모라 그러는 것이 아니라 복학생의 입장에서본 파릇파릇한 1~4학년 애들은 꽤나 개인적인것 같다. 나도 내 또래에서는 아웃사이더격에 속하지만 이건 뭐 새발의 피도 안된다. 나어릴때 복학한 형들보고 '구리다~!'고 하면서도 함께 즐기고 느끼던 분위기도 별로 없어 보인다. 내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 말이다. 관람객도 비슷한 선상에 있는 것도 몇몇 있다. 하긴 지금 '이나이에~' 먹고 살 걱정이나 결혼등의 문제를 생각해야지 무슨 인터넷질이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들 어떻게 사는가? 여기가 관람객 게시판이니까 관람객을 자꾸 꺼내지만 이건 요즘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이다. 새로운 문화가 형성이 되어 있어서 나도 그것을 즐기면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게 몬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그런 이도저도 아닌 불투명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친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객에서 떠나갔지만 정말 궁금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그들이 떠난 이유였지가 맞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 우울모드인데...그런데 그런 이유 말고는 이유가 나올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조피디가 '친구여'를 불러서 인순이가 오랜만에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마당에 더욱 고무적인 것은 떠났던 동렬이 아저씨도 삼성으로, 종범이형도 기아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람객은 힘들것 같다. 그렇다고 난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로그아웃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아마 전람회의 해체와 김동률의 홈페이지운영 및 카페의 운영 등도 큰 변수였을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통신동호회 관람객의 폐쇄를 가져온 것이기도 하고....그러나, 맥도날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상의 세상에서 효율적인 고객관리식의 홈페이지 운영도 깔끔은 하지만 몬자 채워주지 못하는 2%가 있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E마트가 구멍가게를 죽이는 모습처럼 자발적으로 형성된 팬클럽 또한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건만 그 흔한 멘트한번 날려주지 않은 해당가수에게 성을 낸다면 팬클럽회원으로 너무 아이러니한 것인가?
규범이와 지윤이가 올해 1월에 결혼을 했다. 관람객 1호커플...그리고 마지막 커플이 되겠지?
세영이도 결혼했고, 연락 잘 안되는 그 누군가도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많이 바뀌었다. 실제로 말이다.
그렇지만 트워터를 포함해 또 다른 '소통'의 장이 생겼고, 비록 내가 이용하지는 못하고 있어도
또 다른 커뮤니티 수단을 통한 모임이 형성이 되어 있다. 비록 몇달만에 문자메시지 하나라도 주고 받는 경주나 봉규, 다른 관람객 동생들도 여전히 있고 말이다.
상실이 아닌 흐름이다.
4.
어딜가나 선택의 연속이다. 에릭슨이란 사람이 구분한 생의 시기에서 22~28세정도는 그 이후의 삶을 결정할 직업이나 결혼등의 중대한 일이 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다고 한다. 또 그때의 결정은 그 이후에 고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그 시기의 결정에 불안해 하기도 하고...듣고보니 딱 맞는 말이다. 나에게도 또 나의 친구들, 그리고 내가 아는 동생들에게도 말이다........특히 머리가 커질수록 더더욱 그런 경향이 심해지는데 예전에 네츠고 관람객에서 썼었던 구절이 떠 오른다. 과연 우리는 5년이 지나면...1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관람객에 남아있기는 할까? 아니 관람객 자체가 남아 있을까?...그래서 그토록 가수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었나보다.
10년의 약속
- 전람회
생각나니 졸업식이 끝난후 텅빈 교실에서 우리둘 맹세한 약속
10년이 지난 이날 이곳에 다시 찾아와
멋진 모습 보여주자 했지
그저 젊은만으로 쉽지 않은 세상에
때론 부끄럽고 약한 내 모습에 화가 나도
언제 어디서라도 든든한 울타리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준
너 있기에 난 웃을 수 있어
이제 서로 다른 세상의 길을 걸어도
잊을수 있겠니 꿈을 꾸며 살아가자던 그 부푼 약속을
이제 머지 않은 어릴적 다짐속에 그날엔
그 누구보다 자랑스런 너의 친구로 멋진 내모습 보여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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