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 나비소녀

Posted 2008. 8. 22. 02:26,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지하철을 타면 즐겁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 달라는 간단한 멘트 뒤에 나는 그저 전동차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된다. 타는 방향만 제대로라면 이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된다. 조금 운이 좋다면 자리에 앉아 주위의 풍경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운이 좋은가보다. 지하철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내 앞의 아주머니가 약속한 듯 일어서신다. 어차피 잠실에서 신촌까지라면 새우잠을 3번은 잘 수 있는 거리기에 잽싸게 엉덩이를 틈새로 비집어 넣고 자연스레 눈을 감는다. 이제 눈감은 나를 싸구려 도시락처럼 지하철은 배달해 주겠지?



 "이번 역은 신천, 신천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아뿔싸. 그러고 보니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탔다. 최악의 경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어차피 신촌까지 가긴 간다고 위로한다. 뭐 한 번 더 비몽사몽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말이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릴 제품은……."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서일까? 이상하게 잠들만하면 잡상인의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이럴 때는 급하게 나오느라 MP3 플레이어를 빠뜨리고 온 것이 정말 후회된다. 광고에선 가끔 이럴 때 옆 좌석의 미녀와 함께 음악을 듣곤 하지만 냉엄한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그냥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땀에 반쯤 와이셔츠가 젖은 아저씨가 어서 내려주기를 속으로 바랄 뿐이다. 어느새 그의 호흡에 맞춰 조금이라도 덜 부대끼려 노력하는 내 숨소리가 처량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시간도 많았는데 차라리 막노동판에서 한건 하고 올라올 껄 그랬나보다. 피로에 절어 지하철에 탔다면 적어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도 잠을 잘 수 있었을 텐데.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뭐지 이건?'



 이번에 객실로 들어온 잡상인은 조금 전의 싸구려 반창고를 파는 사람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아 보였다. 그렇다면 예순을 넘었을 나이인데, 지금까지 이렇게 처절하게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단 말인가?



 '말세로군.'



 "저에겐 금지옥엽 같은 손녀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의사선생님들도 원인을 잘 몰라 고치기가 불가능한 불치병에 걸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신촌이면 내가 가는 곳하고 비슷하네?'



 "그런데 그 아이가“


 흔히 그렇듯 이런 레퍼토리에는 인터벌이 있기 마련이다.



 “건강했으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을 그 아이가 얼마 전에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세상이 다 그렇지 뭐. 어릴 때 알면 차라리 낫지 않나? 죽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를 때 죽는다면 적어도 아픔 겪을 일도 별로 없지 않나? 세상의 단맛, 쓴맛도 모르는 편이 나을 수도.'



 남의 이야기라 그랬는지 나의 머릿속에서 회의적인 반응만이 튀어 나왔다.



 "제가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심상치는 않은 잡상인에 속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수의 승객들은 그들의 음악과 전화기상의 친구, 그리고 '잠'에 몰두해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심상치 않음의 분위기 속에서 ‘잡상인’의 다음 멘트에 대한 독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 나눠드리는 병원주소로 간단한 엽서 하나만 보내주시면 끝나는 일입니다. 우리 지현이 에게 정말…….어서 빨리 회복하라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세상이 모두 싫다는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가 나눠주는 카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카드였다. 관심이 있든 없든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의 무릎에 한 장의 카드를 얹혀놓은 그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꼭 누군가는 자기 손녀에게 카드를 보내주시길 바란다며 차분한 인사를 하고 다음 객차로 넘어갔다. 비로소 끝까지 ‘잔돈’의 털림을 회피했던 사람들과 우연하게도 전화가 동시에 끝난 몇몇 관람객들, 그리고 지독하게 냉소적인 나 역시 무릎의 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뜻밖에 카드 안에는 우표 한 장과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의 사진이 흑백으로 프린트되어 들어있었다. 그리고 소녀가 있는 병원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본관 803호 오지현”



 당산철교를 건너 합정을 지난 지하철은 이제 홍대입구를 거치면 신촌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재회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조금씩 내 마음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홍익문고 쪽으로 가려면, 흠 서강대 쪽 입구로 가다 좌회전하고 오른쪽에 맥도널드, 아니지? 그냥 현대 백화점 쪽으로 가야겠다.’



 갑자기 붐비는 사람들 틈에 정신이 산만하다 못해 몽롱해지려는 순간 앞에 걸어가는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30분정도 전에 내 앞에서 사람들에게 카드를 나눠주던 바로 그 할아버지였다.



 ‘저렇게 체구가 작았었나? 얼핏 봤을 땐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무덤덤하게 그의 옆을 지나가고 아케이드의 끝에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점차 지상이 가까워 왔지만 왠지 마음에 편치만은 않았다. 카드를 고의적으로 지하철 한 구석에 버려두고 내렸기 때문이다. 정황을 대충 보아하니 그 할아버지의 말이 거짓말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내가 간단하게 카드 하나 못 써줄 것도 없지 않은가? 분명 삶에 지친 많은 사람들은 절대 카드를 쓰지 않을 것인데, 솔직히 시간 많은 대학생인 내가 안 쓰면 누가 쓰지? 그래 그냥 카드하나 더 받아서 깔끔하게 적어 보내자. 약속시간도 20분정도 여유가 있으니.’



 멋지게 자기 합리화를 끝내고 에스컬레이터의 끄트머리에서 그 할아버지가 오길 기다렸다. 그에게 날릴 멋진 멘트를 준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 코스의 끝은 여기 뿐 인데 어찌된 일인지 할아버지는 그곳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하의 패스트 푸드점 옆으로 계단 출입구가 하나 더 있긴 하다. 결국 난 결심했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을 되살려 그 병실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세브란스 본관 8층이었나? 이름이…….지현, 아! 오지현이었지!’



 난 아이의 이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무작정 병원으로 향했다.



 흔한 이름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병원에 가보니 동일한 이름을 가진 꼬마는 두 명  뿐이었다. 그나마 한명은 남자 아이였기 때문에 쉽게 그 아이의 병실로 찾아갈 수 있었다.  아이가 있는 병실은 2인 1실이었는데 한쪽 침상은 비어있었고, 방안에는 사진 속 그 아이 혼자만이 있었다. 모랄까? 첫 인상은 환자 같지 않은 외모였고 오직 퀭한 두 눈만이 아이가 이 병원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듯 했다.

 “할아버지는 어디 가셨니?”



 “아저씬 누구세요?”



 어른이 묻는 말에 물음으로 답하다니 무척이나 당돌한 아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 어린 나이의 얼굴에 비해 너무나 어색했다. 거기다 평소에 잘 웃지 않던 내가 의도적으로 웃으며 이야기 하려니 첩첩산중이다.



 “아, 아저씬 할아버지하고 아는 사람이란다.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지.”



 하긴 지하철에서 카드를 받은 사이니까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더구나 우표는 220원이나 하니까 난 적어도 오늘 하루만은 그에게 고용된 친구라고 볼 수도 있었다.



 “난 할아버지 없어요.”


 “혹시 밤색구두에 머리는 희끗하고 키는 170Cm정도…….”



 인상착의를 말했지만 아이는 줄 곳 자기는 할아버지가 원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 할아버지가 없다니까요!”


 “그래? 내가 잘못 찾아왔나보다. 그럼 몸조리 잘하고 빨리 건강회복하길 바란다. 안녕!”



 분명 흑백사진 속의 꼬마가 맞는데도, 아이는 고집스레 그 할아버지를 모른다고 잡아뗐다. 할 수 없이 난 원래 신촌에 온 목적을 달성하려고 병실 밖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근데 아저씨가 말한 사람이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그건 ‘나비’지 ‘할아버지’가 아니에요.”



 나비라고? 뜻밖의 말에 당황한 나는 고양이를 생각했다. 나비라는 이름의 고양이. 그러자 아이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 나비는 고양이가 아니라 진짜 나비, 영어로 butterfly라고요.”



 이번에는 황당했다. 그렇지만 너무도 진지했던 지하철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며 난 어느새 그 아이의 말에 수긍해 주고 있었다.



 “그럼 그렇다 치고, 지금 나비는 어디 있니? 아마 그 나비가 내가 찾는 사람 같은데?”


 “아마 지금쯤 저기 바깥 어딘가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걸요? 여기는 밤 8시는 돼야 날아와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네요.”



 소녀는 내게 암호 같은 말을 하더니 뜬금없이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아저씨도 보아하니 나랑 비슷한 개구리 같은데, 우리 같이 나비를 기다릴래요? 만날 나만 혼자 있어서 심심하거든요.”



 어린 소녀의 뜻밖의 데이트 신청에 혼자 들뜬 나는 재빨리 휴대폰 배터리를 뺐다. 이미 약속시간은 20분을 넘어갔고, 친구들도 진탕 맥주를 마시기 시작할 타이밍이다. 그러나 내 전화기가 꺼져 있다면 그들이 그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나의 존재에 관심을 투자할 시간도 딱 20초면 족할 것이다.



 “개구리는 또 모니? 왜 너는 개구리라고 생각하지?”


 “난 원래 개구리였어요. 아니 지금도 사실은 개구리에요. 옛날에는 아빠개구리, 엄마개구리, 나 이렇게 셋이 물이 흐르는 고요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스토리가 대충 개구리 왕눈이처럼 되어가는 듯싶었다. 흔히 아이들이란 의례 그러듯 이 열 살배기 소녀도 자신의 삶을 만화에 대입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내 말을 만화에 나오는 개구리 공주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말아요. 난 미치지 않았으니까요. 의사선생님이 지겹도록 그 이야기는 했거든요.”



 “그런데 왜 하필 하고 많은 동물 중에 개구리냐? 토끼도 있고, 닭도 있고 예쁘장한 것들도 많지 않니?”


 마음을 들켜버린 듯 흠짓한 나는 재빨리 다른 질문을 했다.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밤이 되면 알 수 있어요. 난 어두워지면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거든요. 난 어둠이 밀려오면 잘 울었어요. 다른 개구리들 처럼요.”



 “하지만 난 너처럼 귀여운 개구리는 본적이 없는 걸?”



 “거참, 아저씨 정말 뭘 모르네요. 우는 내 모습을 내 스스로도 볼 수 없으니 남들도 당연히 못 보는 거죠! 그나저나 아저씨도 개구리면서 왜 날 못 알아봐요? 난 아저씨가 개구리로 보인단 말이에요.”



 그때 방문이 열리고 소녀의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이제 이 낯선 개구리 타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비다!”



 소녀는 조금 전의 진지했던 모습을 흐트러트리며 다시 명랑한 그 나이대의 소녀로 돌아왔다. 



 “아이쿠. 우리 개구리 공주님 잘 있었나요? 오늘도 또 간호사 언니들 괴롭힌 건 아니겠지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일반적인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를 떠올리려는 순간 나의 존재도 대화창 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저 누구시죠?”



 “저는 A라고 합니다. 사실 아까 할아버지하고 같은 지하철에 타고 있었어요.”



 내가 이 병원의 구체적인 병실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설명하고 나자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사실 내가 봐도 뜬금없는 방문이기는 했다.



 아이가 가진 병은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이란 것으로 희귀병이었다. 현대의학으론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치명적인 질환이기에 그냥 이 병원에서 머물며 증상을 완화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했다. 소녀의 부모는 몇 년 전 이미 이혼을 했고 그나마 함께 살던 아이의 아빠도 얼마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단순히 독감과 소화불량인 줄 알았던 소녀의 병이 잘 낫지 않아 찾았던 동네 의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여기 신촌의 대형 병원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까 지하철에서의 이야기처럼, 의사와 간호사의 부주의로 꼬마는 자신의 병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금방 죽을 것이라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의 개구리 타령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단지 ‘카드 한 장 적선’해 주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나였지만 이제는 왠지 그 둘의 삶에 관여하고 싶어졌다. 괜한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 역시 소녀의 말대로 개구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드를 부탁했던 할아버지의 의도는 손녀가 죽는 날까지 좀 더 행복하게 지내며, 그리고 세상에 대한 한을 풀고 가기를 바라는 것 뿐 이었다. 낯선 사람들로부터 오는 격려의 카드도 역시 그가 생각해본 하나의 방법이었다.



 “뭐라도 제가 도울 만한 일은 없을까요?”



 끈덕진 나의 요구에 할아버지는 그냥 시간 날 때 종종 병실에 들려 손녀, 아니 개구리소녀의 말동무가 되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겠노라며 연락처를 드리고 휴대폰 메모장에 병실 호수를 적은 뒤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술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밤을 샜다. 그리고 개구리소녀와 나비할아버지도 함께 내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갔다.



 다시 그 병실에 찾아온 것은 첫 만남이 있은 후 3개월만이었다. 그동안 딱히 바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천안에서 자취를 하다 보니 서울에 올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촌 쪽은 더욱 갈일이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소녀의 할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꼬마의 증세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소녀가 나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역시 할아버지는 너무 고마워하셨다. 카드도 그렇고 엄밀하게 말하면 제 3자인 내가 이렇게까지 자기 손녀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소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역시 아저씨는 개구리에요. 그런데 나도 개구리지만 바깥세상에 있을 때도 아저씨처럼 심하게 굴진 않았어요.”


 대충 들어보니 약속했던 시간을 너무 초과해서 등장한 내 잘못이 컸다.



 “난 내 병이 뭔지 잘 몰라요. 하지만 내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날 보고 싶다면 얼른 보세요. 다음 주부터는 예약해야지만 날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첫 만남 보다 눈에 띄게 앙상해진 소녀는 그래도 그때와 같은 당당함을 잃지는 않은 모양이다. 예약의 개념을 벌써부터 알다니…….가끔 이 소녀가 정말 이제 막 초등학교 3학년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난 어느새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가 말이야, 우리 지현이를 얼른 보고 싶었는데…….사실 시간이 없었단다. 중간고사라고, 아저씨가 다니는 학교에서 시험을 봤거든? 시험 알지? 그거 때문에 서울에 올 시간이 거의 없었어. 내가 전화라도 했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하게 됐구나.”



 “아저씨한테 시간이 뭔데요. 아저씨한테는 시간이 나보다 더 중요하군요.”



 “저기 그게 시험은 날짜가 정해진 거였고, 서울에서 친구들 만나면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거든. 그래서 아예 안 올라온 거야.”



 “그 시간은 아저씨한테만 중요한 거죠!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요. 난 그냥 해가 뜨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잠들어요. 아! 가끔 밤늦게 아무도 보지 않으면 많은 친구들과 함께 울기도 하죠. 시간은 단지 하루가 간다는 의미 밖에 없어요. 난 시간보단 친구를 택할래요.”



 꼬마에게 로우킥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궤변이라 하기엔 초등학생의 말치곤 틀린 부분이 별로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00여 일 동안 5번의 전공시험과 2번의 면접고사, 매주 걸쳐있던 수요일의 쪽지시험, 치여 살았던 리포트 더미와 과외 등 이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심에 뿌듯해 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휴,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평소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만 했어도 지현이을 만날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아저씬 만날 10분, 20분씩 알람시간보다 더 자는 늦잠꾸러기거든.”



“그런 말이 아니에요. 아저씬 그냥 잠을 자고 싶은 만큼 자면 되잖아요. 잠을 자야만 다음날 개운할 수 없다면 푹 자는 게 낫죠.”



“…….”



 할 말이 없었다. 아이에게 시간이란 관념은 ‘시간’이 아니라 일종의 ‘흐름’일 뿐인가? 어찌 보면 자신에게 살아갈 날이 제한적이라는 그리고 그것이 언제쯤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라면 오히려 1분, 1초가 아쉬울 만도 하건만 오히려 소녀는 그런 모든 것을 초월한 듯이 보였다.



 “아저씨 너무 바쁘게 살지 마요. 저기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에요? 자신을 스스로가 사랑해야죠!”



 꼬마가 사랑이란 말을 했다.



 “사랑이란 단어를 아니?”


 “왜요? 사랑은 어릴 때 성경학교에서 배웠어요. 믿음, 소망, 사랑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나 역시 초등학교 때 외웠던 성경의 경구가 떠올랐다.



 “이야 우리 지현이가 오히려 이 아저씨보다 낫구나. 아저씬 중학교 이후로 교회엔 가본 적이 없거든.”



 “뭐 꼭 교회에 다녀야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 아닐꺼에요. 사랑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요. 근데 아저씨는 안 되겠네.”



 “왜? 아저씨는 너무 바빠서 사랑을 못할 것 같니?”



 첫 만남에서 나를 개구리로 생각했다며 마음을 열었던 꼬마가 두 번째로 나와 관련된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내가 사랑을 못할 것이라니? 기쁘면서도 불쾌했지만, 무엇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니요. 아저씨는 사랑이 몬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랑이 뭔지 알면 이렇게 약속 시간을 늦춰서 오진 않을 거란 말이에요.”



 잊을만하면 꺼내는 소녀의 핀잔에 속마음이 찔렸다. 내가 아이에게 무관심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럼 어디 지현이가 이 바보아저씨한테 그 ‘사랑’이란 거창한 것에 대해 좀 설명해 주렴!”



 “거창이 뭐에요?”


 “아! 거창이란 뭐랄까? 흠 휘황찬란한 것? 아니다, 그것도 어렵겠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엄청나게 큰 것을 말하는 거란다.”



 “아 그러면 사랑은 결코 거창하지 않아요.”



 이제 이 소녀의 머리에서 무슨 내용이 나올까? 이제 소녀는 겨우 10살이다. 난 어느새 내 나이보다 절반도 안 되는 나이를 가진 한 꼬마와의 대화에 점점 몰입해간다.

 “먼저 아저씨가 거울을 보면서 웃어야 해요. 거울 속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면 누구를 보고도 웃지 못하거든요.”



 “웃을 자격이 생기지 않는 거구나!?”



 “비슷해요.”



 “그럼 지현이는 매일 거울을 보면서 웃니?”



 “네 물론이죠. 그런데 밤이 되면 조금 달라져요.”



 “왜 그렇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난 웃는 대신에 울어요.”



 “아저씬 이해가 잘 안 되는걸? 왜 웃지 못한다고 우는 거지? 우는 건 슬퍼서 그런 것 아니니?”



 “난 슬프다는 말을 사실 잘 몰라요. 또 왜 우는 지도요. 그냥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거든요. 아저씬 밤에 울어본 적 없나보네요?”



 ‘글쎄? 나도 예전엔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뭐 어른이 되면 잘 울지 않게 된단다. 지금 여기서 뭐라고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난 울면서도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어요.”



 어려운 내용이었다. 울면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너무 아팠을 때도 난 마구 울었어요. 나비도 그때만큼은 어쩔 줄 모르죠. 다행히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까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왔어요.”



 눈물이 메말랐다는 것이 소녀가 자신을, 더 구체적으로는 자신을 이 지경으로까지 몰아간 병마를 인정했다는 것일까?



 “그런데 울음 멈춘 것이 왜 자신을 사랑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건데?”



 “울음이 멈추니까 내 모습이 내 자신의 것이 아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꿈에서 본 내 모습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나비한테 물어봤죠. 나비는 내 자신이 한 꺼풀 껍질을 벗는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난 나비가 아니라고 우겼죠.”



 오히려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태과정을 거치며 탄생된다는 비유가 더 적절하단 생각을 했다. 어차피 소녀는 자신이 개구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충분히 지금의 지현이는 올챙이수준은 벗어난 듯 보였다.



 “그래서 내가 난 나비가 아니라 개구리라고 하니까, 개구리는 나비처럼 날수 없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조금만 있으면 나도 날 수 있을 거래요.”



 그럼 소녀는 사실은 나비?



 “지현이 말은 아저씨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네. 어쨌든 울음과 사랑에 관계가 궁금하구나?”



 “거참 지금 다 말했잖아요. 나비가 그러는데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껍질을 벗지 못했을 거래요. 울음이 없었다면 당연히 처음부터 껍질을 벗을 생각도 못하는 거구요!”



 소녀의 할아버지가 해준 추상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과연 이 아이는 이 말의 의미를 다 알고나 있는 걸까?



 “그렇구나. 그럼 내 스스로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도 반드시 언젠가는 울어야만 하겠네?”



 “그런 셈이죠. 어쨌든 그러니까 아저씨가 오늘에서야 나타난 것은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에요. 아저씬 내 생각하면서 운적도 없죠?”



 순간 찔린 구석이 있었다. 그동안 우선순위를 둔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있어 이 소녀는 연민의 대상이었을 뿐 그 이상의 감정은 아니었다. 더구나 소녀의 말에 따르면, 난 아직 내 자신을 위해서 운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찌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소녀는 연달아 나에게 직설적인 말로 하이킥을 날렸다.



 “그동안 난 아저씨 생각도 종종했는데 아저씬 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을 것 같았어요.”



 사실 꼭 그렇지도 않았다. 카드를 보내거나 전화통화를 하지 않았을 뿐, 학교병원의 로비에서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환우를 보면 가끔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었다. 그때 소녀에게 전화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내 게으름 때문이다. 난 소녀의 사랑과는 무관한 일이었다고 속으로 강하게 외쳤다.



 “그래서 처음엔 화도 났어요. 엄마, 아빠한테 그랬던 것 처럼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 가진 않더라고요.”



 “지현이가 이 아저씨가 곧 올 껄 알았나 보네.”



 겸연쩍게 웃으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아니요. 오히려 정 반대에요. 아저씨가 오지 않더라도 그냥 기다리기로 맘먹었죠. 이것 좀 볼래요? 보내준 사람을 모두 외우진 못해도 저는 제 보물 상자에 이 카드들을 잘 보관해 뒀어요.”



 소녀는 침대 밑의 커다란 상자를 가리켰다.



 “가끔 ‘다음에 또 카드 보낼게’라는 말이 있는 카드는 따로 보관을 했죠. 다시 카드를 보내면 이제 정말 나랑 친구가 된 거니까요.”



 그러며 소녀는 커다란 상자 안에서 또 다른 작은 박스를 꺼내 보였다. 그 안의 많은 카드뭉치를 보며 난 어느새 소녀의 삼촌뻘임에도 그의 새로운 친구로 등록된다.



 “그런데 결과가 어떤 줄 알아요?”



 “글쎄다. 두 번 씩 카드를 보낸 사람이 별로 없었구나?”



 “맞아요. 한명도 두 번의 카드를 보낸 준 적이 없어요.”



 문득 카드에 들어있던 한 장의 우표가 떠올랐다.



 “그래서 지현이가 그 거짓말한 사람에게 화가 났었던 모양이네?”


 “처음엔 조금 그랬어요. 그래도 곧 미워하길 관뒀죠. 난 여전히 그 사람들의 카드를 가지고 있고 그들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카드를 다시 보내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니? 지현이를 잊어버린 사람들이잖아?”



 “그게 뭐 중요한가? 내가 사랑하면 되는 거죠.”



 별거 아니란 듯 말하는 소녀에게 작은 반감이 생겼다. 나만 사랑하고 있으면 된다고? 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일방적이고 희생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소녀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저씨가 오지 않는 것도 봐주기로 했어요. 사실 오늘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저씨 역시 그냥 저 상자 속에 넣어둘라고 했지만요.”



 마음속이 울렁거렸다. 강아지는 주인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퍼붓는다. 무조건적인 사랑, 나 역시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나도 모르게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면서 사람을 대하고 되었다. 무엇이 나와 내 주변을 그렇게 삭막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병실 침대위의 어린 꼬마 앞에서 난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어디론가 숨고 싶다.



 “뭐 이제라도 와줬으니 아저씬 합격이에요. 나도 더 기뻐요. 병문안 와준다고 하고 다시 와준 사람은 아저씨가 처음이니까요!”



 어느덧 병실 밖은 어두워졌다. 핸드폰으로 현재 시각을 확인하려다 머뭇거린다. 단지 지금은 어둠이 깔리는 저녁일 뿐이지 않은가?



 잠시 뒤 소녀의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있던 지현이는 지난번 첫 만남에서의 모습처럼 할아버지를 맞았다.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 진 것만 빼면 그때 그 모습과 동일하다.



 “나비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오늘 너무 심심했어.”



 할아버지는 연신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 아이가 사람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았는데 크게 도움이 된 것 같다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소녀와의 두 번째 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역시 친구들과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상하게 신촌에 오면 과음을 하게 된다.



 난 다시 사람들이 ‘일상’이라고 부르는 시계더미 속으로 복귀했다. 지속적으로 핸드폰 폴더를 열며 몇 시쯤 되었는지를 확인한다. 점심밥은 구내식당에서 여전히 평균 12분 정도의 페이스로 먹고, 자취방에서 3층 의대 강의실까지 11분 정도가 걸리는 위치에 살고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은 최적의 자취방이다. 그럼에도 가끔 안타까운 점은 이런 속도의 세상 속에 치여 살다 보니, 내 모습이 종종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 보인다는 점이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남을 배려하는 맘은 내게 있기나 할까? 소녀가 말한 ‘사랑할 자격이 없어 보이는 아저씨’로 남을 것만 같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유기화학 시험이 끝난 화창한 5월의 오후다. 친구들과 난 다음 주에 있을 의대 농구시합과 축제 때문에 들떠있었다. 작은 여유 속에서 문뜩 개구리 소녀가 떠올랐다. 5월은 사랑의 계절이라고 하던데.



 ‘그래 이번 주말에는 신촌에 한번 가야겠다. 이번엔 그 조숙한 숙녀가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까?’



 무의식적으로 지현이를 내 멘터로 떠올리며 그 날 저녁 강남역에서 신촌방향의 지하철에 오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 봤지만 금요일 저녁의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게다가 잡상인 한명 보이지 않게 말끔한 지하철이었기에 난 그저 광고판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목적지로 향한다. 사람을 질식시키는 지하철에서 병원 복도 냄새를 그리워 할 줄이야.

 ‘뭐 이왕 그쪽으로 갈 거면, 늦게 친구들이나 불러 간만에 맥주나 한잔 해야겠다.’



 단체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액정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창이 떴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놨기 때문에 10분 전에 온 문자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현이 할아버지입니다. 오늘 저녁에 지현이가 큰 수술을 받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현대의학의 완전 무결성을 막연히 믿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불치병으로만 알고 있던 소녀의 희귀병에 대하여, 마지막 도전이 행해진다는 소식을 듣자 난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왠지 당장 내일부터 지현이도 그 답답한 병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모임을 갖는 것을 보류하고 우선 세브란스로 향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수술실 앞에서 지현이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들뜬 마음의 나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초조하신 모습이었다. 할어버지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꺼냈다. 카드를 보내준 많은 익명의 대중들, 그리고 직접 찾아와준 몇몇 사람들 덕분에 소녀가 처음보다 많이 밝아졌다며 고마워했다. 그리고 소녀가 나를 만나면 전해주라고 했다며 카드 한 장을 내게 전해 주었다. 우리의 첫 만남의 매개체가 되었던 바로 그 빨간색 카드였다.



 “아저씨는 아무래도 나비였었나 봐요.”



 무심코 열어본 카드의 첫마디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순간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내 자신에게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내가 나비일 수 있단 말인가? 소녀에게 난 개구리라고 얼른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있을 법한 결과가 현실이 되었다. 수술 도중 지현이가 죽은 것이다. 소녀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고 영영 잠들었다. 그녀가 내게 권하던 피곤하지 않도록 ‘푹 자는 것’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그 순간을 자위해 본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이제 막 친해지려 했던 친구들을 놔두고 소녀는 전학을 갔다.



 그날 밤 난 신촌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긴급 소집했다. 도저히 울렁거리는 속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내게 이런 멀미를 남겨두고 떠나가다니, 당분간은 그 아이를 떠올리며 술을 마셔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아직도 소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아있었다.



 ‘난 아직 개구리라고! 나비처럼 울지 않고 날아다니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제 누구에게 이 하소연을 해야 할까?


+add-on: 2014.12.31

그녀는 지금 나의 아내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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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방학 때 ‘헬로우 블랙잭’이란 만화를 보았다. 일본의 의과대학과 병원실습을 도는 인턴의 생활을 그린 이 만화를 보며 흥미위주이긴 해도 일본 의료시장의 시스템, 의사의 자존심과 일본식 문화의 조합된 모습 등 일본 의료계 특유의 장면을 보기도 했다. 연간 몇 차례씩 열리는 같은 대학 동문끼리의 온천파티나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사무라이들처럼 선후배간의 사적인 관계에서까지도 위계질서를 지키는 모습 등은 내가 ‘먼나라 이웃나라’ 등에서 봐왔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였다.

 올해 초 외국계 병원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Spa(스파)라는 온천을 뜻하는 단어가 병원 이름에 들어간 경우가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흔히 메디컬 스파는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 대체의학의 개념이지만 최근 선보이고 있는 전문 메디컬 스파는 질병의 주원인인 스트레스와 과로를 치료하고 노화를 방지하도록 하는 치료의 한 방법을 의미한다고 한다. 단순한 휴식이나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스파의 차원을 넘어 보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관리를 통해 건강한 신체를 가꾸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 이곳에서의 의사의 역할은 메디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뿐 아니라, 고객의 건강에 대한 전문가적 조언을 줄 수 있는 헬스 플래너의 역할도 함으로써 보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한다. 예를 들어 그랜드 힐튼호텔에 개장한 라끄리닉 드 파리 그랜드 힐튼 센터는 유명한 노화센터 라끄리닉 드 파리의 분점이다. 그곳은 다양한 노화 측정검사 결과를 토대로 데이터에 의한 처방을 시행하며 더불어 물리적인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스파와 함께 건강 치료를 도모한다고 광고한다. 당시에는 그냥 병원에 흔히 있는 물리치료실처럼 스파 역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린 페이어가 쓴 '의학 과학인가 문화인가'를 보니 이미 서유럽과 북유럽쪽을 중심으로 온천요법이 의료 행위의 하나로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침구술이라 하여 아직 주류에 끼지 못하고 대체의학이라 불리는 한의를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의료행위의 한 측면으로 인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재 침술의 과학적인 측면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여러 나라를 볼 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도 '참살이'란 시조에 부합한 새로운 방식의 의료 체계가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런 새로운 방식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거기에는 매우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문화'라는 한 코드가 그러한 곳에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전 TV광고 중에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란 것을 광고하는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배워온 당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서양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도 정당하게 이용요금을 지불했으며 좌석에 대한 권리가 있는데 왜 그것을 굳이 나이가 더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내드려야‘ 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효(孝)의 개념을 설명을 해도 수긍을 잘 못하는 그 미국인을 보며 우리와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결국 그는 그러한 상황을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렇듯 한 개인이 속한 집단의 문화규범은 그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는 최첨단 과학의 선봉에 선 의학 분야에서조차 그것은 명확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1. 프랑스 - 생각하는 의학



 저자는 프랑스의 경우 데카르트식 접근법에 의거한'결과‘보다는'방법'에 더 비중을 둔 의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항생제를 줄 때 유산균을 함께 주는 등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아도 아이디어가 좋고 임상결과만 괜찮으면 처방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p.76 전염병과 교수인 자크 아카르박사는 그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프랑스 의사는 처방을 내릴 때 환자의 사기를 어떻게 하면 북돋울 수 있을지를 항상 고려한다.'(항생제 복용 시 과학적으로 그 효능이 입증된 바 없는 유산균을 같이 처방하는 프랑스의 관례가 예기치 않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1984년 여름, 미국 연구원들은 유산균이 콜레스테롤의 신진대사율을 높여주기 때문에 다량의 요구르트와 치즈를 먹는 프랑스의 식생활이 심장발작률을 낮추는데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메치니코프의 생각이 옳았던 것이다.)



 또 환자들과 관련된 현상으로는 생식력과 아름다움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으로 암으로 인한 자궁절제술이나 불임치료 등의 경우처럼 여성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경우의 사례에서는 최대한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인 것들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배려한다고 한다.(사실 이러한 경향은 이제 전 세계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다원화 사회와 세계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환자들 역시 이제는 다른 나라의 경우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환자들의 욕구 또한 다양해지고 또 높아졌기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병원 24시에 소개된 적이 있는 유방암에 걸려 가슴을 도려내야만 하는 젊은 여성의 경우가 있다. 그녀는 당시 자신의 가슴을 절개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그런 것에 대해 당시에 난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러한 치료 행위가 병의 호전에 도움이 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시술을 해야 정상이라고 느꼈었다. 그러나 '삶의 질'이란 측면, 위험성의 경중이라는 확률의 문제, 그리고 문화적인 틀에서 겪는 환자들의 느낌 등을 종합해 볼 때 이제는 어느 정도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영국과 미국에서는 병에 걸리는 원인으로 외부의 침입에 초점을 두는 반면, 프랑스와 독일 의사들은 신체 내부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즉 무언가 나쁜 요소를 제거하는 것보다는 기질과 면역력을 중시해 병의 치료 개념을'원상태로의 회복'으로 본다는 것이다. 온천욕 같은 수단 역시 건강할 때 그것을 지키는 일종의 의학적 요법으로 인정이 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p.125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기질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동종요법을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다량이 더 낫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소량이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정말로 필요한 때가 아니면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는다. 나는 질병에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부드러운 방법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공격적인 병에는 공격적인 요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공격적인 요법과 부드러운 요법 가운데 어느 편이 환자에게 더 나은 지를 따져본다. 아울러 우리들 대부분에게 기질은 그 자체로도 제 기능을 다하고 있고 이러한 기질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 미국의 의료관행도 개설할 수 있다고 믿는다.




2. 독일 - 조화로운 의학



 독일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의 서유럽의 다른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심장약을 복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필자는 가장 먼저 독일인은 감정이 풍부하며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어떻게 보면 뜬금없는 답변을 한다. 



 p.133 보건의료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이러한 독일인의 경향은 신체를 기계로 보는 미국인의 관점과는 반대로, 신체가 가이스트나 자연에 가까이 근접할 때 건강할 수 있다는 관점을 발전시켜 왔다. 독일 사회에서는 조화를 아주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독일인들이 효과적인 면과 낭만적인 면을 조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독일인은 심장에도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간에 유난히 신경 쓰듯, 그들은 심장에 ‘다걸기’를 하는데 실제 처방과 사용되는 약에서도 그 통계가 잘 드러난다. 독일인들은 심장을 단지 펌프와 같은 기계로 이해하기보다 그것을 감정 등의 여러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맥박이 뛰고, 그 자체로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신체기관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혈액순환 역시 독일에서는 주된 테마의 하나이다. 냉온수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크나이프 요법은 이미 그곳에선 대중화되어 있으며 의사들 역시 많은 경우에 있어 환자들에게 그것을 추천해준다고 한다. (프랑스의 온천요법이나 독일의 크나이프 요법은 모두 우리나라 사우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그것을 그냥 일종의 목욕탕 내 습관으로만 여겨왔었다. 그러나 신체의 자생력과 면역 체계를 신뢰하는 바탕에서부터 유래된 그런 방식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동네 목욕탕뿐만 아니라 병원과 관련된 곳에서도 그러한 장치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p.167 우리가 조화를 중시하는 독일의 관행을 조금만 배운다면 신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치료법을 덜 쓰게 될 것이다. 또한 어떤 식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약효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래서 그 식물을 이용할 수 있다면 유사한 효과를 내는 처방이 더욱 다양해 질 것이다. 항생제를 사용할 때 독일만큼 절제할 수 있다면 우리 몸이 정말 항생제를 필요로 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항생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3. 영국 - 경제적인 의학



 필자는 환자를 더 본다고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기에 '고객유치'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래서 영국에서는 경제적인 진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p.179 대부분의 나라에서 '과다진료'가 문제지만, 보건의료체계에서 주요한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경제성 때문에 영국에서는 '과소진료'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경향이, 의료 관련 종사자들이 적정진료를 원했는데도 국립보건서비스가 과소진료를 강요했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닌 듯하다. 경제성을 중시하는 전통은 이전부터 있었던 제도에서 형성된 것이다.



 또 경험을 이론보다 중시하는 철학적 전통이 있어 임상의 횟수를 실제적으로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논문을 작성할 때도 반드시 이런 임상통계는 중요한 요소를 이루며 실제 인턴으로 들어가는 의사들도 우선적으로 더 많은 케이스를 접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했다. 한편 신경안정제의 경우처럼 어떤 경우에는 특히 많이 처방되는 약이 있는데 이것 역시 엄숙함과 신사도를 신성시하는 영국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p.193 '특히 이 환자들은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행동양태나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상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어서, 약을 끊으면 그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어요. 만약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여러 특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이러한 특성으로는 정상, 자제, 평정, 자기통제, 인내, 관대함, 잘 견딤, 양육, 사교성, 친근함, 불평 없음, 자신감, 대중성, 개인적/사회적 책임에 대처할 수 있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병의 원인을 내적인 것보다는 신체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프랑스의 온천이나 독일의 크나이프 요법 같은 것을 영국에서 보기는 어렵다. 반면 항생제 처방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다.



 p.199 프랑스 인이나 독일인에 비해 영국인은 병의 원인을 기질보다는 신체 외부에서 찾는 것을 더 선호하고, 그렇게 하는데 실패했을 때는 내부와 외부의 타협점으로 장을 거론하는 것 같다. 영국 의사는 프랑스 의사와는 달리 저항력을 길러준다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비타민, 강장제, 온천치료 등의 처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항생제는 영국에서는 아주 중대한 역할을 한다. 독일에서는 가장 많이 이용하는 약 20종 가운데 항생제가 하나도 포함되지 않는 반면, 영국에서는 세 종류나 포함되었다.



 또 영국은 노인성 질환과 관련된 분야가 발달해 있고 최초로 호스피스제도가 시작되었을 만큼'실버의료'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 역시 병원의 개념을 무언가를 치료하는 역할과 더불어 삶의 질적 수준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에도 비중을 두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그것 역시 저자는 영국인의 전통과 연관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4. 미국 - 공격적인 의학



 미국의 경우는 '공격적'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그들이 말하는 개척자 정신은 의료분야에서 역시 유효한데 질병을'정복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 미국 의료의 발전은 상당부분이 전 세계에 주둔하는 미군 내의 군병원 및 군 연구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또 미국의 응급실을 다룬 드라마 ER에서 나오는 모습처럼 미국의사들은 겉으로 보기에도 매우 열정적이고 무언가 많은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그냥 좀 쉬라고 할 정도의 피로감에도 정맥주사를 처방하고 또 알약제재를 주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는 흔한 일이었다.(물론 그것은 의사만의 일이 아니라 환자와 병원시스템 모두에 관련된 사항이긴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모습에서 나타나는 미국의료체계의 장단점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 환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느낌과 많은 노력을 한 연구와 그로 인해 이미 몇몇 불치병을 몰아냈다는 점, 또 새로운 의학기기를 발명하는 등 의료 분야를 개선하는 일 등은 미국인의 특성과 조화를 이뤄 좋은 성과를 일구어 냈다. 그러나 실제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과정에서 소외되어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공격적 치료로 인한 부작용은 실제 걸렸던 병보다도 치명적일 수 있으며 환자에게 과도한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223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는 물론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 미국은 많은 선진국에서 실패한 홍역을 미국 땅에서 완전히 퇴치했다. 의학연구에 큰 비중을 두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발견을 끊임없이 해낸 결과 노벨상 수상자도 여러 명 배출했다.



 p.224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미국의학의 관행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할 의사도 없는 환자들이다



 한편 병의 원인을 보는 입장에서도 미국은 주로 바이러스 같은 외부물질을 지목한다고 한다. 이것은 병의 치료 과정에 있어 의사 등 치료자 측에 편의를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자칫 환자를 치료대상으로'만' 전락시킬 위험성도 내포한다. 사람이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자동차처럼 일관적인 특성을 지니지도 않으며 또 그렇게 정확한 과정을 통해 유지되는 객체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대우는 매우 비인간적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미국의 의료 관행을 따르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잦은 항생제 처방 같은 것의 경우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악명 높은'항생제 내성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2005년 9월 28일 KBS 뉴스: 항생제는 감기치료엔 직접적인 효과가 없습니다. 감기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바이러스가 원인이기 때문에 인후두염 등 이차적 감염이 생겼을 때만 항생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병의원들이 감기환자에 대해 여전히 많은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항생제를 많이 쓰는 동네 의원의 경우 항생제 처방률이 무려 97%나 됐고 종합병원도 7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항생제 남용의 피해는 단순한 약물 부작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은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병원 내 항생제 내성균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항생제 내성은 세계 OECD 국가에서 거의 1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균에서 항생제 내성률이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거의 모든 항생제에 듣지 않는 수퍼 박테리아의 출현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마련이 더욱 시급합니다.






5. 대한민국?



 글을 읽으면서 계속'왜 나라마다 의학 처방이 조금씩 다를까?'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의 의료체계가 거의 같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서유럽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Are you an American?"이라는 문화적 편견을 담은 말이란 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실제 유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근사한 네 나라의 문화적 단면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도 '의학'이라는 자연과학 중에서도 가장 객관성이 보장되는 학문인데 말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 역시 우리 나름의 문화라는 큰 틀에 얽매여 살고 있다. 좁게는 한의사, 약사, 정부와의 관계에서부터 크게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의료계의 변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특히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의 흐름에 동참했고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과학, 의학 분야에 있어서도 그들의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역시 그들 나름의 가치와 철학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그 단점보다는 장점에 더 큰 점수를 준다. 그러나 항생제 남용에 따른 내성의 증가,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인간소외현상 및 각종 의료사고 문제 발생 등 만만치 않은 부작용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또 유사의료행위라 불리는 침, 뜸, 물리요법 등의 경우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그러한 것을 의료행위로 영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처럼 그것을 치료과정의 일부로 보는 것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시술자의 역량이나 자격 문제 등도 고려해 봐야 하겠지만, 현재 소단위 규모로 운영되는 그러한 시스템을 좀더 적극적으로 주류의학에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점차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앞으로 필요한 의료체계는 '삶의 질'을 더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이 주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읽으며 어느 한 나라의 모습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잡지는 못했다. 각 체계가 나름의 장단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과 우리가 살아온 것이 다르듯 그러한 문화적 경계를 한꺼번에 허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그들을 쫓아가는 우리의 입장을 고려해 본다면, 그런 장점을 통합하여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단점을 최소화하면 우리 의료사회의 미래 역시 밝을 것이란 사실이다. 의료 관행은 흔히 바꾸기 힘들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을 다루는 학문의 특성상 오류의 최소화를 위해 어떤 정해진 규율을 획기적인 전환점 없이는 바꾸기 힘들다란 점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 수용과 창조의 과정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서구 선진 의료 사회가 먼저 밟은 시행착오를 타산지석 삼아 우리 문화와 접목시킨 최적화된 의료시스템을 구성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를 굳건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환자란 의사에게 어떤 존재일까?



 사람은 문화적 인간이며 의사와 환자 역시 그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병을 알아간다는 것에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그리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최첨단을 가는 현대의학이라지만 아직도 미지의 분야가 많다는 점은 앞으로 의사가 될 예비 의료인인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 우리가 맞이할 환자가 아프다면 무작정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처방을 할지 교과서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과 사고 방식, 병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및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접근을 통해 그 환자의 '모든 것'을 고려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 환자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환자에게 ‘최대 선’이 되어줄 수 있는 치료 그것이 바로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의료체계 형성의 필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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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대생들의 이야기

Posted 2008. 8. 22. 02:13,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의대에 들어온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나에게는 여느 해와 다름없는 그냥 현실을 즐기고 또 주어진 역할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새로운 날들이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나를 인식하는 모습에 있어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의 진로에 관한 이야기가 구체화되어 무슨 과를 전공하고 싶으냐는 앞서 나가는 질문에서부터 시체를 진짜 보았느냐는 사촌 꼬마동생들의 말까지 다양한 질문이 단지 내가 ‘의과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추가되었다. 그 중 최근 결혼을 한 친척 형에게서 들은 농담이 가장 기억이 난다.



“우리 부장님께서 그러시는데 나중에 큰 문제가 있거나 그러면 꼭 의사랑 상담하란다. 의사들은 똑똑하고 판단이 정확해서 그러면 적어도 손해볼일은 없다고..”



 새롭게 맺은 인간관계 역시 낯설지만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치대와 함께 하는 고등학교 동문회나, 다른 의대 농구동아리와의 정기시합 등 의대 내의 활동에는 어떤 특정한 선이 그어져 있고 그 위에서 제반 행동이 이뤄지고 있다. 단지 의대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수능시험에서 악착같이 그 선을 넘어섰다는 결과만으로 많은 보상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많은 고민들과 콤플렉스 등은 오히려 이 사회에 소속된 순간부터 더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예과생이라 학업적인 면에서의 부담은 없지만, 그 외에 인간관계나 주위 환경에 대한 고민들이 있다. 내가 의대생이기 더욱 명확해지는 그런 몇몇 사항들과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 이번에 읽은 책에 소개되어 있었다.



1. 의대생이라는 사회적 인식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모두 미국의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우리처럼 의대란 특별한 곳임에는 다름이 없었다.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의대란 곳은 주위 사람들의 인식을 180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대생이 되는 순간부터 주위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입학승인이 떨어졌다. 그리고 막상 메디컬스쿨에 들어가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 같은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적어도 서로에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외부에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만이 메디컬스쿨의 학생이 되고 미래의 의사자격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비범한 과학적 자질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 고향 사람들은 어떻게 메디컬스쿨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매우 궁금해 했다.” p.105



 한 ‘가문의 영광’이란 법조계와 의료계에 한명정도씩 친척을 두는 것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사회 지도층의 핵심부에 위치하기 때문일까 의사란 직업은 추앙받는 전문직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 의사가 되기까지 섭렵하는 전문 지식의 양과 사회와 소통하는 병원이라는 창구가 일반인들에게 ‘의사’에 대한 존경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렇지만 마냥 만족해 할 수 만은 없다. 그만큼 대중이 바라는 의사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언행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의사 역시 준 공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의대생의 입장에서 이런 견지를 갖기란 쉽지 않다. 의대생이란 의사와 의사 아닌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의대생은 일반인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와 같다. 본문에는 학부과정에서 배웠던 사회적 가치와 너무 상이한 ‘의학’이란 학문과 ‘의대에서의 삶’에서 그 안에 파묻히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 고민하는 학생들도 등장한다.



 “의학계에 투신하는 사람들은 뭔가 이산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나는 여기에 쉽게 소속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 것을 사회적 소외감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의학이 제공하는 것에 내가 충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현재 의학도의 길을 걷고 있다. 검은 반점, 구불구불한 핵, 기타 빌어먹을 해부학 지식을 주입하는 것 이외에 나를 애초에 메디컬스쿨에 지원하게 만든 읽고, 쓰고, 토론하는 학구적인 동기들은 과연 충족될 수 없는 것일까?” p. 125



 하물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의대에 온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주입식 교육에서 국영수 위주의 공부를 해온 학생들에게 대학 신입생의 1~2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사회가 바라는 의사상과 내가 가진 모습에 아직 큰 차이가 있음을 느끼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학문의 양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에 내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의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어떤 의사가 될 것이냐에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들처럼 점차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 봐야만 할 것이다.



2. 문화적 다양성과 대체의학



 예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인도의 한 사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인도 외곽의 유명한 사원은 ‘치유사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그 안에서는 명상과 식이요법을 통해서 병을 고친다고 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부제는 ‘대체의학’이었었다. 대체(alternative)란 중심에 비해 부수적이고 부속적인 것을 의미한다. 서양의학이 의료의 주류인 상황에서 기타 ‘비서구’적인 것들은 대체의학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한의학이나 침구술, 카이로프락틱, 선, 향기요법 등이 있으며 그들 중 몇몇은 어떤 경우에 실제 효능이 있다고 여겨진다. 인도 출신의 한 저자 역시 고국의 전통요법을 매우 신뢰하며 그가 배우고 있는 서양의학과의 조화를 꾀한다.



 “나는 대증요법 중심의 서양의학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으며, 서양의학으로 모든 환자를 다 치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나는 대체의학, 특히 아유르베다에 흥미를 느껴왔다. 관련서적과 워크샵을 통해 지식을 쌓아 갈수록 대증요법인 서양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서 아유르베다가 많은 효용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p.183



 나는 대체 의학이 서양의학보다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꼭 효과가 없다고 보지도 않는다. 특히 내가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대체의학은 침구술인데, 나 역시 발목이나 손목을 삐면 종종 침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그것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서양의학 쪽에서 그 작용 기전을 밝혀 의료 기술의 한 부분으로 체계화 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몇 년 전부터 미국 의료계를 중심으로 서구사회에서도 침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란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치료 과정이 어떤 문화에 속한 것이라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과정이 모두 치유의 과정에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 의료 방식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서구 의학이 가진 한계나 잘못된 대응 방식이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더 크게는 그런 전통적인 방식과의 조화에서 환자에게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차 나는 아유르베다와 서양의학을 통합해서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아유르베다와 서양의학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인간의 건강 증진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가지 의학 시스템으로 쉽게 치료되지 않는 병이 놀랍게도 다른 의학치료로는 쉽게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보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접근법은 강력한 조합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 두 의학 시스템에서 좋은 요소를 골라내 잘 조합시킨다면 치료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통합적인 접근은 인도계 미국인이란 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서로 다르지만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 두 가지 측면을 잘 조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p.193



3. 의대 내에서의 개인적인 삶



 의대란 곳에 와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은 참 다양했다. 출신지, 가족사항, 취미, 외모, 집안내력 등 그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양했지만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친해질수록 그 안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과의 특성상 오랜 기간 동안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본문에서는 개인적 콤플렉스(알콜 중독, 게이, 레즈비언, 비만, 강박장애 등)나 사회적 차별(인종, 여성, 종교 등)이란 부제로 차별당하는 많은 의대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수업 중에 교수님이 미국 인구의 약 2%가 강박장애OCD를 겪고 있다고 말씀하시자 교실은 금세 술렁거렸다. 학생들은 저마다 그러한 통계치의 의미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학생이 나에게 몸을 기울이며 이렇게 속삭였다. ”2%나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돼! 2%라면 우리 학급에서만도 4명이 그렇다는 뜻이잖아? 분명 잘못된 수치일 거야.“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4명 중 하나라는 사실을 그 친구가 알고 있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p.85



 “지금껏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 나를 따라다니는 난민이란 이미지와 낙인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난민이란 말은 내가 동료들과 다르다는 점을 각인시켰고 내가 진짜 ‘미국인’이 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는 듯했다. 미국의 주류 문화에서 배척당하고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을 들게 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결점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굵은 매직으로 사진 설명 중의 ‘난민’이란 단어를 덧칠해서 지워버렸다. 나는 겹겹이 잉크 칠이라도 해서 비미국인이란 나의 정체성을 숨기고 싶었다.” p.39



 "하지만 영어를 읽고 배운다고 해서 내 자신이 완전하게 백인들과 동화될 수는 없었다. 나는 미국 사회에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스페인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미국 사회 주류의 일원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이민자들을 놀리는 백인 아이들과 같은 편에 서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어떻게 발음 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마샤’라고 대답했고 내 형제들도 모두 비슷하게 행동했다. 우리들은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항상 영어로만 이야기했고 모두 백인 아이들처럼 옷을 입었으며 라틴계 출신임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p.72



 사실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우리나라의 의대에서는 흔하지 않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인종차별 등)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어떤 의대생도 자기가 속한 이곳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 가진 정체성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 개인이 살아온 환경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든 것이며, 의대란 사회는 그러한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그냥 포기하거나 바꾸는 것이 아닌 조화롭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자기의 주체성과 개성을 상실한 오직 ‘병’에만 유능한 기술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긴 학업의 과정 중에서 비교적 시간에 여유가 있는 예과생 때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바로 이점이라 생각한다. 의사가 가진 이상적인 위상에 부합하려면 실력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의 인격 수양 및 가치관 확립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기본 테마는 미국 사회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후기에 나온 미국 의과대학의 커리큘럼 변화에 대한 조언처럼 이 책은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말은 곧 현실적으로 상황이 많이 다른 우리나라 의대생이 읽기에는 쉽사리 공감이 안가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의 저자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의대 입학의 기회조차 차단해 버리는 모습이 많다. 아마 수험생이던 작년에 이 책을 읽었었다면 더욱 공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의대에 다니고 있다. 그랬더니 이 책의 내용은 그 동안 내가 회피하고 있었던 고민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고민들을 여과 없이 보여 주었다.



 “..나는 메디컬스쿨에 와서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변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디컬스쿨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하고 생각의 차이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메디컬스쿨에 다니면서 그토록 외롭고 고독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진정 내가 좋아하는 길일까? 나는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가? 과연 내가 원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애초에 의학계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이러한 질문들은 더욱더 다원화되어 있으며 주변의 권위주의적인 환경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 신세대 의학도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p.102



 그러한 많은 내용을 통해 내가 받을 차별과 내가 가진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환자를 대할 때는 의사로서의 실력 못지않게 인간적인 배려와 뜨거운 가슴 또한 가져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떳떳하게 밝히며 의대생으로서 그들이 겪은 애로사항과 대처 방안을 담담히 서술한 저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번 독서는 의대생이자 예비 의료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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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작

Posted 2008. 8. 22. 01:56, Filed under: Ex-Homepage/Essay
많은 아이들은 호기심에 종종 부모에게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묻곤 한다. 주변에 모르는 것이 많은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우선순위가 높은 편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존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구의 역사를 30일인 한  로 표시한다면, 기록된 인류의 역사는 달력 맨 끝의 30초 정도에 해당하며 최초의 육상동물이 나타난 것도 이틀 전에 불과할 정도로 지구는 오랜 세월동안 존재해 왔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 첫째날이 시작할 때 과연 무슨일이 있었는지 연구해 왔으며 현재는 ‘빅뱅이론’에 의한 지구의 탄생설이 가장 근거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빅뱅이란 우주가 어떤 한 점에서부터 탄생하여 팽창하고 그래서 지금의 우주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누가 어떠한 이유에서 그런 일을 벌인걸까?


 전통적인 방식으로 빅뱅이론을 설명한다면 누구나 ‘신’의 존재를 언급할 것이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원인이 있다는 원인논증을 전제로 한다면, 지구라는 거대한 존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절대자를 설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신뿐만 아니라 어느 종교에나 절대자는 있으며, 세계의 여러 신화 속에서도 다양한 신이 드러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신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계속 소급해 가다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신의 위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론 혹자는 ‘신’이란 존재의 속성을 근거로 거기서 순환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왜 하필 그곳이여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물론 빅뱅이론은 현재의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뒷받침이 되고 있는 가설이다. 즉 앞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다면 뒤바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그것이 정설로 받아진다면 그것을 굳이 누구의 의도라고 여길 필요가 없이 현실로 인정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면 빅뱅 이후의 이 세계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설을 통한 진화적 발전을 주장했다. 자연선택설은 변이에 의해 생긴 개체 중 우수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진화되어 가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생물체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왔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이 이론도 처음 세상에 알려 졌을때는 많은 난항을 겪었다. 왜냐하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종교적인 관점의 창조론이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로 그의 뜻에 따라 예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기독교적 창조론은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전인 19세기정도까지는 지배적인 가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이론이 많아지면서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지적 설계론, 또는 창조적 진화론이란 최근 독실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부터 대두되고 있는 새로운 이론이다. 이것은 진화론의 한 분야이지만, 신이 진화 과정에서 생물들을 하나씩 창조하면서 진화해 왔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빅뱅시기와 성경의 창세기 구절을 비슷한 맥락에서 연결시키는 것이다. 또 DNA나 화석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진화 자체에 대해서는 ‘신’을 근거로 부정한다. 미국의 기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공교육의 과정에 이런 이론들을 삽입하려는 시도가 있을 정도로 창조론과 진화론을 혼합한 내용의 주장들이 세계의 시초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빅뱅은 과학적 사실이며 어떤 현상에 대한 그 무엇의 의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 세상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에게 미친 신의 존재에 대한 영향력은 매우 컸던 것이 사실이다. 행복한 일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또 슬픈 일이 있으면 그에게 의지할 절대자를 설정하는 것이 종교의 이유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이 세계의 시작에 대한 답은 객관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해도 신에게 달렸다고 봐야한다. 오히려 그런 과학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기에 자신 있게 ‘신’을 이 세상의 제1원인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존재 및 더 나아가 이 세상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없으면 복잡하고 혼란한 이 세상을 쉽게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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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가능한가?

Posted 2008. 8. 22. 01:56,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작년 말에 개봉한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있다. 나비효과란 중국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론인데 주인공은 자신이 쓴 일기를 보며 과거로 돌아가 앞으로의 미래를 바꾸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반면 또 다른 영화 ‘데스티네이션’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볼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렇듯 시간에 대한 자유로운 이동은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으며 앞에서 언급한 작품뿐이 아니라 수많은 영화와 책들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과거나 미래의 여행에 대해 이렇게 궁금해 하는 것일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본다는 것은 그것을 대비한다는 의미가 클 것이며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회한이 남는 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면 이렇듯 삶을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처럼 질서정연하게 만들고자 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광속의 속도로 나는 우주선 안에서 시간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른다. 그러므로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늦게 적용이 되므로 우주선 밖의 사람들보다 더 젊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시간의 상대성을 이용한 시간여행이 과학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과 그 반대작용을 하는 화이트홀,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해주는 벌레모양의 웜홀에 관련한 이론으로도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 시간 역시 블랙홀과 화이트홀 현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만일 그 통로인 웜홀이 휘어져 있다면 지름길을 통해 시간 이동이 가능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렇게 많은 물리학적 가설들이 시간여행의 가능성에 대해 사람들의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지만 실제 이것들은 가설로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광속의 우주선을 만든다고 해도 사람의 몸을 입자수준으로 보았을 경우 그 안에서 버틸 수는 없다. 그리고 또 이에 대한 많은 반론도 있다.



 만일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영화 ‘맨인 블랙’에서처럼 우리는 현재 미래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간혹 있었지만 그것을 증명해 보인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과거 시대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 자신이 과거로 돌아간다는 전제를 인정한다 해도 많은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나와 그때로 돌아간 ‘현재의 나’의 만남이다.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로 가 그때의 모습을 회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그때 자신의 존재는 어머니나 또는 할머니의 뱃속의 한 세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과거’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되어버린다. 혹자는 개인적 시간과 외적시간이란 개념으로 이 모순을 극복하려 한다. 그렇지만 개인적 시간들이 모여 그러한 관계를 통해 외적시간을 형성해 간다고 본다면, 그렇게 개인적 시간을 따로 분리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2의 공간을 설정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런 세상이 이곳 말고 다른 곳에도 여러 군데 존재한다는 ‘평행우주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즉 그곳에 또 다른 내가 있고 그들만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같은 설정이 있다. 장자의 꿈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자각몽이라 하는데, 프로이트는 그의 저서 ‘꿈의 해석’에서 꿈이란 자신의 내적인 욕구의 발현이라 주장했다. 즉 어떤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사람의 머리 속에서의 시간 여행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직까지의 과학 연구로는 인간의 뇌에 대해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은 그러한 현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시간일나 사람들이 정해놓은 틀에 불과하다. 우리 선조들은 시계가 없어도 닭의 울음소리나 별이 뜨는 것 등을 확인하며 생활을 해왔다. 다시말해 현대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우리는 어떤 면에서 우리를 구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과 우리 주변환경이 오래될수록 노화가 일어나고 소모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엎지러진 물처럼 과거란 이미 지나간 일이며, 미래란 아직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에 희노애락이 없다면 그만큼 이 사회는 밋밋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후회와 기대가 있기에 우리는 더 다채로운 삶을 도모할 수 있다. ‘나비효과’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과거로 자꾸 돌아가서 미래의 무언가를 더 완벽하게만 바꾸려 한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시간여행이 아직까지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당분간 성사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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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Posted 2008. 8. 22. 01:55, Filed under: Ex-Homepage/Essay

2005년 여름에 개봉한 한 영화가 많은 관중수로 인해 매스컴 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웰컴투 동막골’은 한국전쟁 당시에 전쟁과는 약간 동떨어진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로 ‘쉬리’이후 영화계에 정설이 된 ‘분단과 관련된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속설을 또다시 입증해 줄만큼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실미도’,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르는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 규모의 대형성에 못지않게 내용의 참신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각각의 영화의 동기가 된 것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특히 한국전쟁이라는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투 동막골‘은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많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작년 초에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많은 이목을 끌었다. 장동건과 원빈이라는 흥행스타의 출연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 강제규 감독의 인지도와 영화제작 비용, 그리고 실미도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한다는 특이점 등이 그 이유였다. 영화 속 주인공인 진태와 진석은 해방이후 극심한 가난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시민 가정의 형제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갑작스레 발발한 전쟁은 피난 중이던 두 형제를 전쟁터라는 잔혹한 곳으로 보냈으며 우여곡절 끝에 형인 진태는 북측에서, 그리고 동생인 진석은 남측에서 대치하게 되는 형국이 되고 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진태가 북측 편이 된 연유에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이란 이념과는 무관하게 일반인이나 그들 가정사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비극일 뿐이란 점이다. 영화는 동생의 안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과 개인적 감상에 머물러있던 동생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와중에 진태의 약혼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므로 전쟁의 비참함은 극에 달한다.



 반면 ‘웰컴투 동막골’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은 관점이 조금 다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전쟁이나 이념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전쟁이란 시대적인 배경일 뿐 영화 속 공간은 강원도의 깊은 산골이며 주인공들 역시 순진한 주민들과 몇몇 ‘군인같지 않은’ 군인들  뿐이다. 여러 이유로 인해 북한군과 한국군, 연합군이 두메산골인 동막골에서 만나게 된다. 처음에 그들은 ‘군인답게’ 서로를 경계하고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동화되어 친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동막골이란 마을 자체와 거기서 살고 있던 여일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깊은 산속이란 배경에는 실제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주요 도시들, 예를 들면 ‘태극기 휘날리며’에 주로 등장하는 곳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전쟁이란 강하게 대립되는 이념에 치우친 극단적인 표출의 형태라는 고정관념을 넘어서, 그것 역시 일반사람들에겐 어쩌면 유치하기까지 한 행위라고 역설한다.



 이렇듯 ‘태극기’가 전쟁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동막골’은 전쟁을 외부의 침입으로 묘사하며 그것의 심각성을 희화화 시킨다. 즉 전자가 한 가족사가 전쟁으로 파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한민족끼리는 전쟁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전쟁은 무의미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태극기’는 전쟁의 내부적 관점에서 전쟁상황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만 ‘동막골’은 외부적인 관점에서 전쟁과는 동떨어진 곳의 사람들에 주목한다. 이것은 곧 당시 북한을 우리의 적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달린 중요한 문제인데, 아마 ‘동막골’이란 영화가 나중에 제작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동막골에서 나타난 북한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우리의 적이기 보다는 우리의 동포로서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흥행 면이나 아니면 소재면 등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두 작품은 모두 비극으로 끝을 맺으며 그것은 전쟁이란 절대 ’헤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명확한 진리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실제 영화 내부를 들여다 보면 그에 못지 않게 다양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미국이나 일본에 수출할 당시 ‘brotherhood'란 부제를 달고 출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원제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주는 감흥이 남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그 영화에서는 분단의 원인과 우리 민족의 아픔의 원흉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본 것이다. 반면 ’웰컴투 동막골‘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은 결과적으로는 비극이지만 그 과정에서 전쟁의 원인과 같은 민족끼리 싸워야만 하는 이유 등을 다시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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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생각할 수 있나?

Posted 2008. 8. 22. 01:55, Filed under: Ex-Homepage/Essay

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가 만든 메신저서비스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프로그램 상에서 가상의 인물을 친구로 등록하면 그 사람(!)과 채팅을 할 때 특정한 단어를 입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답변을 하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예를 들어 ‘나 오늘 너무 힘들다.’라고 글을 쓰면 컴퓨터 서버의 그 친구가 ‘저런, 무슨 일 있었나요? 힘내세요!’라고 답하는 식이다. 이것은 사전에 많은 경우를 조사해서 컴퓨터상의 가상의 응답기를 만든 것으로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모방한 간단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오랜 숙원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아이로봇’, ‘A. I.' 등의 영화에서 그렸던 사이보그의 모습은 과연 미래에는 정말 저런 일들이 현실화 될까라는 기대와 우려를 잘 보여준다. 실제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자동화에서부터 인간의 감정표현 단어나 물리적인 터치에 반응하는 애완용 로봇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점차 구체화 되어간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그러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대처할 수 있을까?



 21세기 들어 과학 기술의 주축을 이루는 IT, BT, NT 산업의 발달은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 같다. IT 기술의 발달은 뉴로 컴퓨팅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뇌나 신경망과 유사한 시스템의 개발을 가능케 하였다. 그리고 그에 적합한 프로그래밍의 개발로 마치 컴퓨터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BT를 통한 생체 유사조직의 개발 및 NT를 통한 기계의 소형화, 정밀화는 마치 인간의 외형을 지닌 ‘로보캅’이나 ‘터미네이터’같은 사이보그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로보캅의 뇌는 원래 사고를 당한 경찰관의 뇌인 것처럼 대부분 사이보그의 머리는 실제 인간의 뇌이다. 즉 대중에게는 사람과 유사한 모형을 만들 수는 있다 해도 최후의 보루인 뇌만은 그럴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개발은 대용량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특정 상황에 대한 'case-by-case' 체계를 완성한 정도이다. 이런 복잡한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인공신경망의 개발로 가능해졌다. 그러면 그것이 과연 생각하는 기계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의 정의에 꼭 필요한 단어가 ‘자율’이라면 인공지능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극에 스스로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인공 접촉기 역시 아직 많은 난관 때문에 개발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생각의 기계’는 요원한 것이다.



 점차 자동화, 기계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일자리는 줄어간다는 우려가 많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으며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동은행기계’는 창구의 직원을 내쫓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직업군이 있다. 우선 전문적인 일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기계는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불량률이 미세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의료산업의 특정부분 등에서는 기계보다는 아직 인간을 선호하는 분야가 존재한다. 한편 돌발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쓴다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일에는 인간의 창조성이  필수적이며, 동일한 패턴만 반복하는 기계의 두뇌로는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 즉 수열처럼 정해진 일이 아닌, 급박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판단을 결정하는 통합적인 사고는 인간에게 유일하며 아직 기계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일 그러한 수준의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계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면 그 다음단계인 ‘감정’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기계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또 감정을 가진다면 인간과의 차이는 거의 없을 것이며 영화에서처럼 인류의 편의를 위해 제작되어졌던 초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인간은 기계를 창조한 신의 역할이 되어 기계를 지배하고 부리길 원했지만 역으로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인간 소외 현상이 발생한 일은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 중에 하나이다. 즉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은 얼핏 보면 유토피아처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내표된 문제의 가능성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 과학 기술의 능력으로 아직까지 생각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없다. 화룡정점의 마지막 붓질이라 할 수 있는 ‘사고와 감정의 자율성’을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그러한 기술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점들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개발 단계에서부터 사회 각층의 심도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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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Posted 2008. 8. 22. 01:54,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예술이란 그림, 소설, 시, 연극, 영화, 음악 등 많은 하위 장르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며 예술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니고 심지어 상반된 모습을 지니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구지가에서 보이는 군무처럼 고대의 예술이란 주술적 의미가 강했으며 폐쇄적 공동체 내에서만 통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조직이 생겨나면서 예술은 개인화되어 자신의 욕망표출의 도구로서 이용된다. 특히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가는 상위계급층의 간접적인 대리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편 현대의 예술가란 개성표출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때론 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능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이렇듯 다양한 예술의 산물들에는 과연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가족유사성이란 개념을 통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뚜렷한 특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중첩된 비슷함만이 있을 뿐이라며 예술의 많은 장르들 역시 그러하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이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선 먼저 ‘예술’이란 정의될 수 있는지 여부부터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비평가 클라이브 벨은 모든 진정한 예술작품은 ‘의미있는 형식’이라고 알려진 어떤 성질을 공유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선이나 색채의 결합에 의한 독특한 특징을 지니는 것은 거기에서 특별한 종류의 미적 정서를 환기시키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내가 그린 수채화의 색의 조화보단 피카소 작품의 그것이 독특한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의미있는 형식이라 칭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을 따르려면 먼저 모든 감상자는 일관된 정서를 가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일반 대중이 느끼는 감정을 비평가들이 못 느낄 수도 있으며 반대로 비평가들이 호평하는 작품을 보고 대중은 시큰둥 할 수도 있다.

 한편 콜링우드는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마음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이 겉으로 표현된 것에 불과하며, 그러므로 예술 작품이 다양하게 표현될 지라도 그 자체는 예술가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과 다를 것이 없다는 ‘예술관념론’을 펼친다. 예술은 기술과 달리 목적성‘만’을 지니지는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머그잔은 물을 따라 마시기 위한 목적성을 지니지만 조선시대 청자를 예술품으로 보는 사람들 중에 그것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예술도 디자인을 중시한 실용품들처럼 목적성을 띌 수는 있지만 그것이 목적성만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고전예술품이라 부르는 많은 것들이 콜링우드의 주장과는 상반된 과정을 거쳐 창조되었다. 당시 상위계급의 요구에 의해 그려진 그들의 많은 초상화들이 외국 유수의 박물관에 예술품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역시 수에즈운하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의 예술작품을 논한다면 많은 현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예술제도론’을 들 수 있다. 그 이론의 핵심은 고전과 현대예술이 공유하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전제에 있다. 첫째는 그것들이 모두 사람의 손길이 가해진 인공물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대천해수욕장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역시 그것을 전시한다면 예술품이라 칭할 수 있다. 또 그것이 전시하는 측과 관람자, 그리고 외부의 매스미디어 등에 의해 예술이라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작품들 역시 위에서 언급한 조건만 충족한다면 또 다른 예술품일 수 있다는 것이 위 논의의 핵심이다. 그러면 정말 가능한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는 것일까? 예술과 非예술을 단지 구분 짓는 것을 넘어서 예술은 보통 가치있는 것을 의미하기에 제도론자들의 시각은 어떤 면에서는 틀렸다. 그들이 소위 현대 예술이라 칭하는 ‘거리위의 변기’나 ‘대형 담배꽁초’, ‘흐트러진 거리의 침실’ 등을 예술이라 여기지 않을 사람도 매우 많다.    
 
 이렇듯 예술을 정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정 시대의 특정한 시각, 지역에 따른 예술의 시류차이 등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다양하고 또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분야들 중 꼭 한가지에만 속하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음악은 음악이란 하위 장르에 속하지만 영화라는 또 다른 예술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영화음악이란 새로운 개념이 파생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것을 ‘음악’이란 것에만 종속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을 판단하는 것은 예술가의 몫과 관람객의 몫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의 독창성이 들어간 역작이라면 그것이 새롭게 창조한 것이든 아니면 기존의 것에서 아이디어를 뽑아낸 것이든 그것은 기본적으로 예술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은 ‘시대와 사람들의 인정’ 역시 받아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의 관람객이라도 예술가의 의도를 수용하여 그것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예술가에게는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예술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은 여타 관람객들과 그 공동체의 권한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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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주의자의 거짓말

Posted 2008. 8. 22. 01:54,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현상이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이란 도시에서 은행 인질 강도 사건이 발생했는데 경찰과 대치중인 범인에게 동화된 인질들이 오히려 범인들을 옹호하고 그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인질들은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강도의 말에 ㄱ마화되어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과연 그들이 어떤 말을 했기에 그렇게 위험한 상황의 사람들조차도 ‘세뇌’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자신들이 그런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당위성 등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많은 경우에 있어서 흔히 말하는 ‘둘러대기’를 경험하는데 거의가 듣고 보면 맞는 말인 듯 싶기도 하며 그것이 타당하지 않아도 따르게 되는 등 경우에 따라서는 뭐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것에서부터 상대주의를 ‘경우에 따라 융통성 있게 그리고 구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 한정시킨다면 나 역시 어느 정도는 상대주의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이 시기에 적절한 대처 능력이야말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그것에 치중하면 많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신뢰를 얻기 힘들 수 있다. 이현령비현령 식의 처세술은 만약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기에, 그 사람은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절대’진리란 있을 수 없기에 그들의 행동은 타당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 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선과 악의 구체적인 모습은 자칫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식 사업을 하는 사람의 경우 자기 자신에게는 얼마든지 떳떳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업 지침서에 있는 논리대로라면 모두가 부자가 되고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실제 사건을 보면 많은 경우에 있어 그것은 사기이며 그래서 접적인 제한을 받는 것이다. 상대론자의 궤변은 어느 누군가의 정신적 물질적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또 상대주의자의 논리는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정 분야의 예를 들자면 안락사 논쟁에 있어서의 ‘매끄러운 경사길’ 이론이 있다. 그것은 안락사 찬성자들의 견해를 작은 것, 예를 들면 소극적 안락사의 제한적 허용, 엄격한 법적 제한아래 허용 등을 통과시켜 시행하면 차츰 그들이 원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향한 목소리가 커질 것을 우려하는 이론이다. 마치 절벽 끝에 있는 사람을 조금씩 민다면 결국 어느 지점에서 그 뒤로 넘어지듯 작은 것이 모여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물론 가치관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원화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명이나 인간의 존엄 등 천부인권과 관련된 사항에서는 어느 정도 제한이 필요하다. 상대주의를 표방한 단체행동은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독일 나치 정권 당시 그들에게 광분하며 협조한 독일 사회 지식인층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불거진 배우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란도 우리 사회가 지켜야할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상대주의자는 자신에게 조차도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더 나음을 위한 상대적인 접근도 결국은 새로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역시 ‘절대주의’적인 속성을 가진다. 자신이 부정하는 절대주의를 긍정하는 결과를 인정하고 그것을 따라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상대주의자들의 신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상대주의자들은 주장의 논리적 일관성을 잃기 쉬우며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속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조금씩 따져보면 결국 그들의 주장은 공허하기까지 하다.


 이렇듯 극단적인 상대주의는 개인 간의 관계나 사회 전반적인 사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상대주의는 장점도 많이 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으며 그 안에서 그러한 흐름을 따라가려면 상대적으로 최적의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나 또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때 등 모든 상황에 있어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개인에게 달린 문제이다. 그러나 ‘가치’에는 그러한 개인적 잣대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윤리, 관습, 그리고 법이 존재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상대주의자가 좋다. 그러나 나의 가치관의 어떤 면들, 신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할 때는 ‘절대적’인 기준을 견지하고 반영할 것이다. 양보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마지막 보루로서의 절대주의와 변화의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완충제 역할을 하는 상대주의 화해야 말로 앞으로의 사회와 개인의 발전에 필수 요소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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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데올로기란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뒷받침하는 관념체계”이다. 우리 일반 사람들은 그것에 파묻혀 살아가며 평소에는 그것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며 지낸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가치관처럼 어려서부터 형성되다가 궁극적으로는 공기와 같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나 민족처럼 대규모 집단에서의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90년대 초에 종식된 냉전시대 때처럼 국가들 간에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에 저항했던 윤동주 시인과 군부 독재시절 울분을 토해냈던 박정만 시인 역시 당시 암울했던 분위기 속에서도 의연하게 민족의 자유와 권리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있어 시란 자신의 주장을 강렬히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대한민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다. 개인적으로 그의 시에 드러나는 자신의 심리묘사가 너무 사실적이란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가 집필을 하던 시대상황에서의 ‘시’란 지금의 감상의 초점과는 약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서시’나 ‘참회록’,‘쉽게 씌어진 시’ 등 그의 대표작에는 내적으로 침잠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부끄럽게 했던 것일까? 윤동주 시인이 살던 세계는 일제 강점기로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아래 고통을 받던 불행한 시대였다. 그런 모습아래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시인이자 지식인으로서 윤동주 시인은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함에 슬퍼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진 확고한 의지와 신념의 표상을 시라는 무기로 적어 내려갔다. 물론 그의 시들은 일본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상반된 아주 무서운 것이었기에 윤동주 시인은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된다.



 그와 비교하여 박정만 시인은 80년대 국내의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하였다. 사실 본문에서는 박정만 시인의 전반적인 시 경향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의 사회저항 이데올로기가 무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고 그 이후 전두환 정권의 문화적 탄압에 대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 점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행보였다.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덕목인 자유와 평등, 민권에 대한 열망은 군부독재 시절 그림의 떡에 불과했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반독재 민주 항쟁조차도 어용 언론매체에 의하여 호도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노해 시인이나 가수 안치환처럼 물밑에서부터 자유를 갈망하는 대중의 지도자들이 있었으며 박정만 시인 역시 그들 중 한명이었다.



 두 시인 모두 개인적인 면에서는 비참한 말로를 보였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의 차가운 감옥에서 또 박정만 시인은 간경화로 화장실에서 죽고 만다. 그러나 시대의 잘못된 강요와 억압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들의 주장을 펼쳤던 많은 시들은 멕시코 저항운동가 마르코스의 말처럼 ‘무기’였던 것이며 당시 많은 민중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즉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들의 죽음은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는 운동을 가속시키는데 있어 기름의 역할을 했으며, 두 시인이 남기고자 했던 많은 가르침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들의 가슴속에 깊게 새겨놓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사회의 패러다임인 이데올로기를 한 개인이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힘이 약한 대중을 지배하며 억압한다. 그러나 많은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발전시키려는 운동이 있는 한 결국 이데올로기는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시’역시 그런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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