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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8.21 초등학교 때 일기
  4. 2008.08.21 일본 음악의 이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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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8.21 지하철에서 생긴 일
  10. 2008.08.21 도토리 연인

자작소설 : 화려한 시절

Posted 2008. 8. 21. 15:58,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이것은 2003년 겨울..'시계밖의 시간'이라는 조금은 황당한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예전에 모모를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정말 말그대로 심/심/해/서 써본 소설입니다....재미도 별로 없고
구성이 약간은 조잡하지만 교훈적인(!)내용입니다. 하하하...

  바쁘게 살았었는데 잠깐 휴식중이군요(2003년 말부터 지금인
04년 1월중순까지...) 나도 멋진 글을 쓰고 싶은데..가장 시급한
문제는 맘에 드는 문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독서와 수양이 필요한듯~

  이상 내공이 부족한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가장 모르는 것에 대한 믿음보다 더 확고한 것은 없다.] - 몽테뉴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이 혹독한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오래 전에도 우리의 조상들 역시 바랐던 것이며, 승리하지 못한 이 싸움으로부터 여러분들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 자유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것을 마음 깊숙하게 느끼며 그로 인해 흥분하기를 바랍니다. 이 메시지는 곧 있을 그리니치 습격에 앞서 우리의 유언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았던 우리의 선조 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실패할 것이지만 그로 인해 지금의 이 사태가 조금이라도 지연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서기 2999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999년, 그리고 1999년처럼 올 한해 동안에도 세상은 온통 종말에 대한 두려움과 3000년부터 시작될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감에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12월이 되자 세계의 각 도시를 중심으로 새해맞이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고 한쪽에서는 신년 기도회와 같은 차분하고 뜨거운 대비가 이루어졌다.
 
 A와 그의 소대원들에게도 이번 12월은 의미가 컸다.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든 곧 있을 그들의 행동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오늘' 역시 '어제'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시간임에도 '특별한 시간'으로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라 불리는 오늘을 위해 오랫동안 연습을 해왔고 그때마다 실전처럼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실제 상황에 한 발씩 다가간다.

 '분명 우리들의 생각, 아니 주장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세계 각국의 방송매체를 통해 인류에게 전달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감동적인 장면을 볼 수 없을 테지만...'


[오직 각 종의 선에 의해서 그리고 선을 위해서  자연의 선택은 작동하기 때문에 모든 신체적, 정신적인 천부적 자질은 완성을 지향하며 진보해 나갈 것이다.] - 찰스 다윈
 
 그들의 목표인 그리니치 사무소는 '시간'을 팔아 그 이윤을 먹고사는 회사이다. 사실 먹고산다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특이하게도 그 회사에는 구성원이란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시간을 지배하고 그렇게 함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오메가'라는 무형의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A에게도 무형의 적이란 어쩌면 애초부터 상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메가로 인하여 나의 가족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당하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간과할 수만은 없었던 시민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A는 남들처럼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그는 TLL(Time Liberty Line, 시간해방전선)에 입단했다.

 사실 오메가의 인류파괴 음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풍요롭고 점점 더 편리해지기만 한 것 같은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진보한다고 말해왔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차이가 있었다. 단지 기술적 발전으로 인한 발달만이 있을 뿐, 인간에게 진정한 진보란 유토피아와 같은 개념이었다. 오메가의 시간지배는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법을 알게 되었고 결국 속도전쟁으로 치달으며 하루하루 그 한계점에 도달해갔다. 심지어는 인간의 언어 역시 정보교환의 수단으로 전락해가면서 차차 단어화/기호화되어갔다. 대뇌의 신경과 직접 연결되어있는 발성장치는 사람이 단어 하나를 떠올리는 순간 스스로 관련된 언어 형식을 확률적으로 창출해 내어 표현했다.(사실 이 메커니즘은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에는 과학의 놀라운 유용성과 인간의 지적 성과의 결과라는 찬사를 받았었다. 말을 줄이는 것과 생각의 단위가 문장에서 단어로 작아진다는 사실은 속도 경쟁의 시대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우월한 입장에 선다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문제가 터졌다. 말의 뉘앙스가 사라지고 대화의 묘미는 사라졌다. 물론 이웃과의 대화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눔을 통한 웃음과 울음의 공유정신은 증발했다. 대신 좀더 자극적이고 빠른, 그래야 만이 불안을 느낄 시간조차 줄일 수 있어서 외롭지 않고 행복(사실은 덜 불행한 것이지만)할 수 있는 정신적으로 황폐한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인류가 살 터전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문제점에 대처해 왔다고는 하나 그것은 마치 최고 높이를 향해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그것이 정점에 다다르기까지는 조금씩 속력이 줄어들지만 결국에는 운명처럼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소모적인 대체 문명의 발달경쟁 속에서 지구는 그 끝을 향해 황폐해져 갔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역시 인간의 탐욕과 그것을 지배하는 '시간의 괴물'인 오메가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1년이 생기고 1달이 생겼다. 그리고 '하루'라는 말로 한 달은 30등분되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점차 세분화되어 인간의 지각능력으로는 그 정도를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고, 그것은 곧 시간이 인간을 지배해 나감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며 살아갔다. 시간은 그들에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뛰어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사람들 역시 언론과 사상, 그리고 관습이란 탈을 쓴 오메가의 유혹과 협박에 길들어져 왔다. 공원에서 맡는 꽃의 향기와 촉감보다는 거기서 찍어온 사진 속의 꽃이 더 꽃답다고 불리는 상황은 분명 정상적이 못했다.

 비밀 조직의 형태로 결성된 단체인 TLL은 그러한 오메가의 음모에 대항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의 목표는 '시계 없는 사회의 도래'에 있었다. 그들은 인류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도 태양과 달은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의 자연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시간이 그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으며 지금은 아예 지구를 파멸의 길로 유도한다고 여겼다. A가 리더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화려한 시절'이란 것이 있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자 TLL이 이루고자하는 최종 목표입니다."

"하지만 저는 집이나 학교에서 그러한 곳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이미 세계의 기득권 층은 오메가에게 물들어버렸습니다. 이제 이
 '과거체험 마스크'를 쓰고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확실히 무엇이 진실
 인지가 밝혀질 것입니다."

 A도 마스크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과거체험마스크란 일종의 개인영상정보 전달장치였다. 마스크를 쓰면 자신의 새로운 아바타가 화면에 등장하여 본인이 원하는 단계로 시공간을 이동하게 해주는 도구였다. TLL에서는 항상 신입 대원들에게 기존의 고정관념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아이모자'라는 아이템을 아바타에 입력한 후에 편견이 사라진 눈으로 인류의 과거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또 왜 그러한 신념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조직원들이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했다.

 오늘 A는 본인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 TLL에 들어왔지만 아직까지도 무엇이 바른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없었다. 그가 자라왔던 모든 환경은 아직까지도 TLL을 위험하고 극단적인 테러단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님세대도, 또 할아버지의 세대도 각 시대마다 정해진 제도와 규범을 잘 지키며 살다간 '모범부류'였었고 적어도 어린 A의 생각에 그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일종의 불안감과 회의감을 뒤로한 채 A는 마스크를 작동시켰다.

 '나의 아바타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은 약간은 투명해 보이는 마네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리더가 말한 아이모자라고 여겨지는 작은 모자를 하나 쓰고 있는 것을 제외하곤 다른 옷이라든가 액세서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무슨 숲 속의 길 같은데 처음 와본 곳이다. 확실한 것은 저 인형 같은 놈이 나의 생각대로 움직인다는 점뿐이다. 나의 뇌가 저 사이보그 같은 놈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아바타는 어디론가 움직였다. 아마 입력된 코스로 가는 것이리라. 반갑게도 얼마 가지 않아 작은 건물이 보였다.'

 {TLL 과거 회복실 - A군을 환영합니다!}

 조그만 문 위에는 다음처럼 쓰여있었다. A는 리더가 일러준 대로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모든 면이 하얀 벽면으로 칠해져있고 방 한가운데에 있는 원형 띠처럼 생긴 캡슐들만 없었더라면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방처럼 느껴졌다. 캡슐로 가까이 가보니 모든 통마다 자신의 이름과 해당 연도가 적혀있었다.

 'A-2987은 2987년도의 내가 있다는 말인가..?'

 그는 자연스레 올해의 연도인 2999년이 쓰여진 캡슐을 열었다. A는 스포츠카의 좌석같이 생긴 구조로 된 의자에 앉아 캡슐의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주위는 어두워졌다. 그리곤 원통형 화면에 영화처럼 들판이 보이는 듯 싶더니 A의 주위가 온통 스크린으로 변해버렸다. 더욱 황당하건 A의 아바타가 그 장면 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맙소사.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건가? 그런데 여긴 어디지?"

 "안녕하십니까."

누군가의 목소리에 A는 뒤를 봤다.

 "저는 여기서 당신을 기다려온 Wait-Er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저는 당신이 안전하게 이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시중을 들것입니다."

 "누구의 부탁이죠?"

 "저 역시 TLL소속의 대원이며 제 역할은 신입대원들에게 우리의 이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이제 당신도 우리의 일원이 되었지만 아직은 지금까지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고 혼란스러워 하기 때문에, 저는 지금부터 당신을 도와 우리가 원하는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현재(2999년)의 캡슐을 탄 A는 자유롭게 원형의 캡슐들을 따라 가고자 하는 연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해를 떠올리기만 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먼저 언제로 가야합니까?"

 "그건 당신의 주관에 달려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보다 나빴던 상황은 과거 어느 시대에도 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18C를 추천해 드립니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조금 있으면 적응이 될 겁니다."
 
'역사시간에 배웠던 18C는 'P(Paradise)'라고 불리는 시기였다. 그림 속에서만 보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이거 위험하지는 않겠지요? 당신도 함께 갑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은 A의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바타의 여행에 불과하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해서 안전하기만 한 것 역시 아닙니다. 단 한가지만 명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아바타는 그 시대를 이동하면서 살수 있지만 당신의 머리 속에 든 생각 그 자체는 2999년의 그것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한 명의 관람객으로서 그 시기를 느껴야지 당신의 관념이 그 시기의 주체가 되려고 한다면 프로그램이 다운될 수 있습니다. 이점만 유의한다면 당신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함께 가지 않습니다. 저의 역할은 단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인도할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나오는 문 옆에 대기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내 생각에 훌륭한 삶이란 것은 행복한 삶이다.] - 버틀란드 러셀

 A가 처음 도착한 곳은 한 인디언들이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어떤 부락이었다. A가 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처음 그의 걱정과는 달리 A의 아바타는 벌써 인디언의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언어와 생활방식도 벌써 아바타에게 입력이 되어있는 듯 했다. 그의 아바타는 마치 인디언들과 오랜 생활을 함께 한 듯 쉽게 사회에 적응했다. 그들에게는 TV나 자동차는 물론 기계적인 시계도 없었다. 그러나 A의 생각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불편해 하지 않았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풍요롭게 생활하는 그네들의 모습을 보자 어느덧 A도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낮과 밤이 확연히 존재했다. A가 살던 때에는 밤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과 그것을 본 따서 만든 발전기로 24시간은 온통 대낮처럼 밝았다. 그들에게 어둠이란 영화관처럼 특수한 상황에 따라 형성되는 임의적인 것일 뿐이었다. 인디언 마을은 달랐다. 장작불을 피우는 마을 입구의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온통 어둠이 깔리고 정적이 맴돌 뿐이다. 물론 그 고요함은 A가 지냈던 곳의 적막과는 거리가 있었다. 기계, 자동차 소리와 네온불빛에 찌들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이 온몸을 감쌌던 것이다.

 해가 뜨는 것이 아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인 A에게, 닭의 울음소리와 새의 지저귐 또한 아침의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시계의 숫자가 가리키는 정도에 따라 하루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눴던 그의 사회였다. 아니 그것은 자연을 효율성이란 명목으로 죽인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A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됐던 경쟁과 분란은 찾아볼 수 없었기 또 한번 놀랐다. 대신 서로에 대한 인정과 공유하는 마음이 일반적인 인디언들의 모습에 배어있었다. 그들에게도 똑같이 열정과 욕망이 있고,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전체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누구하나 제몫 때문에 이기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여러 생활방식이나 음식물 등이 불편했지만 편견을 사라지게 만드는 아이모자 덕분인지 예전의 편안했던 기억은 쉽게 잊혀졌다. 

'그렇군. 내가 편했던 것은 모두 상대적이었어. 이들은 너무나 행복하지 않은가!'

 심지어 인디언들은 A시대의 사람들처럼 영원한 삶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근본부터 다른 믿음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영원이란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고 소멸이란 곧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믿고 있었다. A가 항상 들어왔던 것은 인간의 불멸에 대한 꿈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그 문화적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A는 인디언 마을에서 1년여를 지내며 그가 그토록 찾던 화려한 날들이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즉, 이곳에 온 이래로 처음 A는 TLL의 목표가 '왜' 정당한지에 대해서도 확실히 인정하게 된 것이다. 외부의 빨라짐이 그들 내면의 평화를 파괴했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이제 다시 현재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생각과 함께 배경은 바뀌었다. 

 "잘 확인하셨나요?"

Wait-Er는 A가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서있었다.

 "내가 얼마동안 여행을 한거죠?"
 
 "당신이 그곳에서 있었던 시간의 총량은 2999년 기준으로 3분 23.41초가 흐른 것입니다."

 "그렇군요. 꽤나 많은 일을 하다가 온 줄 알았는데..."
 
 "그 당시는 아날로그 단위였지만 지금은 모두 디지털화 하여 시간의 양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어쨌든 다른 때도 확인을 해보시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라. 그러면 그대의 믿음이 그것이 사실이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 윌리엄 제임스

 A는 그때부터 조직에서 많은 훈련을 받으며 단련했다. 오메가는 세계의 곳곳에 퍼져있었기 때문에 모든 지점을 동시에 공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TLL에서는 분점마다 우선 순위를 매겨 두었고 오늘 바로 A의 팀이 '그리니치 사무소'를 습격하는 날이 온 것이다.

  '그래 이건 상징적인 저항일 뿐이야. 하지만 조금은, 조금은 인류의 파멸이 늦춰지겠지.'

 다짐을 되새기며 A는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경비원들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에 근처 술집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간혹 보이는 경비들도 A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실장님, 메리크리스마습니다! 올해도 잘 보내시고 언제 술이나 한번 하시죠?"

  A는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애써 자신의 속내를 감추려고 했다. 오메가에게 매수된 놈들이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쌍한 친구들이여. 내가 오늘 자네들을, 아니 온 인류의 삶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하겠네'

 제한구역의 CC-TV에 A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경비복 차림의 A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례 있어 왔던 자정순찰을 할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A는 곧 세계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시계가 보관되어 있는 방 앞까지 접근했다. 그곳은 순찰도 허용되지 않는 통제구역이었지만 이미 지문카드와 망막복사렌즈를 준비해 두었기에 순식간에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 저 친구 저기서 모하는 거지?"

동료들과 카드놀이를 하던 경비원 김씨는 무심결에 본 폐쇄회로 화면에서 A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자기 시계 맞추는 거 아냐? 거참 사람하곤 빨리 카드를 내기나 하게."

 "가만있어봐. 뭘 꺼내는데? 모지? 럭비공인가?"
 
 "어? 저 구역 마이크 좀 연결해봐."

꽝...

 A의 기억은 희미해져간다. 모든 것이 한번에 돌아올 수는 없지만 이것으로 화려한 시절이의 도래가 조금은 앞당겨 질 것이다. 부모님의 얼굴, 애인의 얼굴, 그리고 TLL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까지 모든 장면이 한순간에 쏟아져 내렸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뉴스속보를 알려드립니다. 오늘 23시 59분 57.12초에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폭발사고가 있었습니다. 비상 근무 중이던 경비병들에 따르면 그곳에서 10년간 근무해 왔던 경비원 A실장이 접근 금지 지역에 무단으로 들어간 뒤에 가슴에서 폭탄을 꺼내 터뜨리고 자신도 그곳에서 숨졌다고 합니다. 한편 경찰은 입수된 폐쇄회로 화면을 분석하여 내일 09시 00분 00.00초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번 그리니치 천문대의 폭발 사고는 1999년에 한번 있은 후에 1000년만에 다시 발생한 일로 테러의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점으로 보아 수사당국은 우선 개인적인 정신 이상자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TLL본부...

 "또 실패군요."
 
 "역시 한번에 소탕하지 못하면 인간은 계속 당할 겁니다."

 "설사 우리가 그렇게 해준다고 해도 인간들에게 그러한 혼돈을 견딜만한 능력이 있을까요?"

 "그건 그렇지만..."
 
 역시 A의 시도도 실패했고 오늘 TLL의 미팅 역시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멈출 수 없었다. 얼마 후면 그들이 대항조차 못할 정도로 오메가의 세력이 커져버리는 날이 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게 그냥 애초에 준대로 살면 될 것을...쯧쯧"
 
 "그런데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나서야 하는 겁니까?"
 
 "우리가 만들었으니 책임은 져야겠지요."

 그들은 새로운 전사를 찾아 나섰다.


[미래가 어떤 것을 가져다 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데모스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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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e : ,

미미의 기억

Posted 2008. 8. 21. 15:57, Filed under: Ex-Homepage/Essay

2002년 12월 9일..


내가 누구게!?
 
나는 가장 제대한지 쪼금된 관람객 [기다림]이야..
 
진짜진짜 재미없는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관람객
 
예비역 한명만 대봐! 1...2...3! 왜 반응이 없어? 예
 
비역이 몬지 모른다고? 현역이 제대하면 그게 예
 
비역이래..나도 몰랐어! 나와보니 나보고 그러더군!
 
좋아 썰을 풀기 전에 맛보기좀 보여주지,
 
  지금 옆에 개가 있다...아는 사람은 다 알지! 그 개
 
이름은 미미야! 나쁜 쫑이 집나간지 하루만에 맨
 
날 우는 우리 형제가 시끄러웠던지 아랫집에서 바
 
로 줬던 개가 바로 미미야! 벌써 14년 전이야!
 
아버지께서 그러셨지! 개나이는 환산법이 틀리다
 
고! 미미 나이는 75살이야...5배를 곱해야지 진짜
 
나이가 나오지!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미미 야기를
 
해볼께!
 
  군대 있을때 알다시피 집에 몇번 왔다 가끔!..그
 
런데 그당시 미미도 가끔 정신이 왔다갔다 했어! 첨엔
 
놀랐어! 왜냐고? 한번 개를 길러봐 기르던 개가
 
침을 막 흘리면서 몸을 못가눠서 쓰러질때 어떤
 
기분일지! 그럴때마다 난 아니 우리 식군! 열심히
 
간호했다! 왜냐고? 미미도 우리 식구거든! 그럼 금
 
방 돌아왔다~!
 
 머야 벌써 분위기 다운된거야? 좀만 참어 금방 끝난다!
 
 시간이 흘러 벌써 제대했다. 누군 '벌써'지만 누군 '드
 
디어'야! 군대는 관람객이야! 가입하고 생까는 사람도
 
있지만 한달에 31번 오는 사람도 있지. 장단은 생각하기
 
나름이야. 각설하고~
 
  요즘의 미미는 주말이야! 일주일에 두번은 꼭 쓰러져.
 
나도 몰랐는데 최근에 알았지..그런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야! 저녁에 와보니 어머니와 미미가 화장실에 계
 
시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말했지, "왓 해픈드!?"
 
아버지께서 그러시던군.. 또 꼴까닥했다고! 꼴까닥이
 
모냐고? 우리집에선 그렇게 불러!! 그러려니 했어!
 
곧 어머니께서 나오셨지. 그런데 미미는 계속 화장실
 
에 있었다! 정신을 못차렸거든!~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안다! 개 정신나가는건 학창시절에 날라리되는거야!
 
빨리 돌아올수록 더 좋은거지. 아무런 손도 못썼다!
 
그냥 미미는 화장실에 갇혀 있었어.
 
 좀전에 마루에 나갔드랬지. 어머니께서 안방으로 가
 
시면서 소파밑에 있는 미미를 콜하셨다! 그런데 미미
 
가 으르릉 거렸어! 그런 일은 난 첨봤드랬어 15년동
 
안! 상황이 으르릉 거리는 상황이 아니었거든! 불을
 
키고 당신과 난 아래를 살폈어! 무슨 일이 있었게~?
 
놀라지마! 미미가 지가 쏟은 오바이트를 다시 먹고
 
있었어! 더럽다고? 더럽지! 근데 원래 개는 지가 쏟
 
은거 다시는 안먹는데! 지금까지 미미도, 쫑도, 마루
 
도 그래왔어! 왜 그랬을까? 상상가는 이유는 많은데
 
쓰면 길어진다! 어쨌든 그냥 놔뒀더랬어~!
 
  시간이 늦었지! 그래서 잘라고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이었지. 미미가 쫄랑쫄랑 따라왔어! 5분만에 다 먹
 
고 좀 정상이더군. 우리집은 철칙이 있어! 개가 좀 이
 
상하거나 죄를 지으면 절대 혼숙하지 않는다! 사실
 
미미는 내 방에 잘 들어오진 않아! 자다가 침대에서
 
나한테 차여서 몇번 떨어졌거든!! 그런데 이게 오늘
 
은 따라오는데 비틀비틀 거리더군..정상처럼 보이지
 
만! 정상이 아직은 아닌모양이야!
 
  갑자기 옆에 있는 미미를 보니 글이 쓰고 싶어졌어! 작
 
년 7월 8일에 마루가 하늘나라로 갔어! 심장사상충이
 
었는데 링겔맞고 버텼어! 걸리면 죽는 병이었다더군!
 
근데 그놈의 수의사는 피로누적이랬지! 링겔 꽂고 마루
 
가 뭔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열이 받더군. 죽은 담에 보
 
니 다른 병원에선 대자보를 다 붙였더군! "심장 사상충 무
 
료접종" 알어!? 그렇게 죽고나니 그런것만 보이더군~!
 
  에니웨이! 그뒤로 미미 혼자 남았다! 몇번 강아지 한두
 
마리 더 데려왔었지만 그냥 돌려보냈더랬지! 여기도
 
이유 풀면 한보따린 된다!
 
  미미를 보니 서글퍼 졌지!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미미는 타이머야! 시간되면 또 꼴깍하겠지 그리고 다
 
시 리셋하면 다시 첨부터 타이머 시간이 가겠지. 그런
 
데 이제 시계약이 거의 떨어져가는 것 같더군! 그래서
 
열받았다 좀전에..
 
  맛배기가 넘 길어지면서 졸리기 시작했어! 살짝 미미야
 
기 해줄라고 했는데 솔직히 겁난다! 이거 넘 길어서 다
 
읽기는 할까? 사실은 이거 더블스페이스에 세로로도 반쪽
 
이야! 합쳐보면 얼마 안될껄!  좀만 참어 다 끝났어!
 
  개 몇마리 키워봤는데 내가 볼때 죽은 개는 아직 없었지!
 
그런데 아마 미미가 첫번째가 될것 같다! 나도 알고 있어, 우
 
리 작은 고모네 푸들은 20년 살았더랬지..어쨌거나 요즘 미
 
미의 기색이 심상치 않아! 그래서 오늘도 내방에서 재울 생각
 
이지!
 
  마지막으로 이말이 하고 싶어! 개를 키울때 제일 좋은 점이
 
모~!게~!? 좀전에 떠올랐어. 강아지는 하염없이 주기만 해!
 
내가 말하는건 다 들어주지! 한마디도 안하면서 듣기만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내가 편해지거든! 아마 이말에 동감하는
 
사람 많을거야!! 끝이다!~
 
P.S. 오늘 눈이 많이 왔더랬지! 2층에서 봤더니 함박눈이 내
 
리더군! 그런데 밖에 나와보니 어둠속엔 녹아버린 빗방울이
 
더티하게 쌓여있더랬지! 그래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
 
론은 하나였지! 빨랑 집에 가서 발닦고 잠이나 자자..내 글은
 
항상 이런식이야! 주제가 몬지 찾을라면 허무해지지~!! 담엔
 
글쓸때 재미있게 써서 당신을 기쁘게 해줄께! 오늘은 이만 간다!


2003년 11월 12일..

  아침 6시 20분, 어제는 비가 내렸고...오늘 역시 구름이 짙게 깔렸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마당 한 귀퉁이에 구멍을 파고 있었다. 그것은 미미의 공간...하긴 미미는 우리와 10년 넘게 함께해온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 정도의 공간을 차지할 자격은 충분하다.

 오늘 새벽 1시경부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4시 30분쯤 어머니께서 나를 깨우셨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은채 멍한 듯 잠들었던 나는 마치 당연한 일을 확인하듯 부엌으로 갔다. 거의 눈을 감고 있는 미미..요 근래 너무나 고통스러워 했었기에 심지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기에 오늘 저녁 동네 동물병원에서 안락사를 시키려 했었던 미미가...엄마의 원대로 집에서 조용히 수면사한 것이다. 뛰지 않는 심장과 들리지 않는 숨소리, 서서히 굳어가는 앞뒤발과는 달리 체온은 아직 따뜻했다...

 1992년은 의미있는 해였다. 강아지로서 최초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던 쫑이 집을 나간 해가 92년이었고..연달아 쫑의 대타로 미미가 들어온 것 역시 그해의 일로 기억한다. 쫑이 나간후 우리 형제는 동네방네 포스터를 붙였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같다. 그럴수록 더욱 커져가는 쫑에대한 상실감에 미미의 입양은 집안을 밝히는 큰 사건이었던 것이다...

 툭하면 가출을 기도했던 쫑과는 달리 미미는 암캐라 그런지 집안에서 좀체 나갈 생각을 안했다. 물론 우리 가족들이 신경도 많이 썼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마 중학교 2학년때였을 것이다. 미미가 사라진 것이다. 또다시 우리 형제의 '개찾기 포스터'붙임이 있었고 아주아주 다행스럽게도 연락이 왔다. 내 초등학교 동창인 어느 여자아이었는데(그녀의 이름은 원영란이었다..) 개를 좋아하기로 소문이 나있던 아이었다. 그런데 미미가 집밖 구경?나갔다가 근린공원에서 헤매고 있던 것을 데리고 보살펴왔던 것이다. 포스터도 포스터지만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미미를 찾을 수 있었고 너무너무 기뻤다...그친구가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미미와 나의 관계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나는 대학입시에 대한 압박감에 정신이 팔려있었고...또 집에 있는 시간조차 거의 없었기 때문에 미미에게 그다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강아지란 이런 것이어서 주인의 무관심에도 여전한 사랑을 보낸 미미였다. 내가 기쁠때 슬플때 함께 웃고 울었다면 믿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랬었다. 그리고 여전히 미미는 건강히 몇 년을 보냈다..

  고3때 집이 근처로 이사를 했고 곧 도베르만 새끼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놈은 수컷이었는데 처음에는 집안에서 키우다 3개월정도 뒤에 무지 커져서 마당으로 내놓았다. 그 집안에서의 3개월때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미미의 우울증이었다.(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원래 개란 동물이 샘이 많아서 자기보다 더 사랑받는것, 돼지건 개이건 고양이건,...그것이 나타나면 안달이 나서 가만히 못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미미는 별다른 반응없이 조용했다. 마치 '그놈은 곧 마당으로 갈거'란 사실을 알았다는 듯 말이다.

 대학입시가 끝나고 한량이 되었을 때 미미와 무척이나 친하게 지냈다. 집에만 주로 있다보니 역시 제일 만만한 것이 개였기 때문이다. 주로 우리의 관계는 미미가 내가하는 말을 듣는 관계였였고 중간에 졸거나 그러면 내가 흔들어서 깨우는..그런 식이었다. 몇 달간 나의 넋두리를 들어야만 했던 미미의 고통기였다고나 할까? 나에겐 그런 존재가 너무나 필요했었던 시기였다...

 대학에 갔고...미미와는 다시 소원해졌다. 바쁜 탓도 있었지만 마루(도베르만)와 더 친했던 이유도 있다. 그러던 어느날 미미가 발작으로 쓰러졌다. 깜짝놀란 우리 가족은 동물병원으로 미미를 데리고 갔다. 역시 그것은 점차 시작되는 노환의 증세였다. 그후 지속적인 운동(마당달리기)으로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했지만 나이가 있어서인지 가끔씩 벌어지던 발작 현상도 벌어지는 주기가 짧아져 갔다. 내가 부대에 있는 2년동안도 간간히 그 소식이 들려왔지만 용케도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것을 보면 개는 역시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먹고 산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렇게 쭉 이어오던 생활 중에 미미가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움직이기를 싫어하게 되었고 음식도 잘 먹지 못하게 된 것이.. 약 15일 전의 일이다. 미미가 고기밥을 마다한 것이다. 사실 개가 고기반찬을 거부한 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는 개를 길러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엄마의 말씀은 미미가 목욕중에 어금니가 하나 빠졌는데 그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이빨빠진 호랑이는 아니지만...개역시 이빨은 컸나보다. 어쨌든 가지가지의 실험 끝에 고구마와 카스테라를 씹어주면, 그냥도 아니고 잘 으깨서 주면 간신히 먹는다는 것을 파악했지만 그것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모든 음식을 거부하게(사실은 못먹은 것이다..)된 미미는 나날히 야위어 갔고 어느덧 뼈만 보이게 되었다. 심지어는 물조차 먹고 토를 했으니...그래서 결국 4일전에 동네 병원에 갔었다.

  혈액검사 끝에 나온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노환에 의한 합병증이 심했는데 특히 간의 수치가 정상치보다 1500배정도 높다고 했다. 또 의사역시 수술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그날 저녁부터 진지하게 안락사를 시키는 것에 대한 고려를 했고 다음날 저녁에 병원에 전화를 했다. 그것이 어제다. 그러나 다행히 의사가 병원에 없었고 어머니께서 또다시 부엌에서 미미를 데리고 주무셨다.

 그저께 밤부터 미미가 집안의 불을 모두 끄면 안방이든 형방이든 내방이든 어딘가로 가려고 했는데 서있을 힘조차 없어서 지 집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것이 보기 안쓰러워 당신께서 부엌에 간이로 불을 키시고 미미를 데리고 계셨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밤 미미는 죽었다. 오늘 새벽의 일이다...예전에 내가 두려워했던 천덕스런 죽음도 안요...고통속의 죽음도 아닌...그렇게 편하게 조용히 자다가 간 것이다. Peace

 사실 쫑이 나갔을 때와 마루가 병으로 갑작스레 죽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수의사의 말 그대로 미미는 개로치면 무병장수한 것이고 또 어머니의 바람대로 안락사가 아닌 집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은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애완견을 새끼때부터 길러서 나이먹어서 쓰러질때까지 키운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서 역시 미미의 죽음이 시원섭섭한 것 같다. 이제 당분간 집안에서 기르는 개는 안 키울 생각인데 참 신기한 것은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개가 없어도 그다지 아쉽거나 그러지 않다는 것이다. 뜨겁게 생을 살다가도 가끔은 냉정하게 세상에 익숙해지는 법을 조금은 알게해 준것 같아 미미에게 마지막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Good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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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일기

Posted 2008. 8. 21. 15:56, Filed under: Ex-Homepage/Essay

 리포트 디스켓 안에 끼어있네요..무모하게도 수십권의 일기장을
하나하나 다 타이핑 하려고 했었다니..-_-;; 아마도 스캔을 하게될듯
싶군요..얼마전에 스캐너도 샀거든요~! 그렇다고 다는 아니고요..

                                                                           05 Dec 03

 



 이것은 내가 예전부터 썼던 일기를 전산화(?) 하는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라이터를 하나 사서, 씨디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그래서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아니..내가 아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고 싶다. 원본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올린다. 단 띄어쓰기는 되도록 바르게 하려고 했다.

                                           ---1999년 4월 16일 밤 10시 38분...


1988년도의 일기는 매우 많다. 왜냐하면 다 이것은 송파국민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시던

이보경 선생님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거의 매일 일기 검사를 하셨고, 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정말 무서운 일명 쌍따귀를 때리셨다. 나도 겁에 질려 거의 억지로 일기를 쓰게 되었다.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생각을 해보니 그 선생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1988/3/11                   수영


오늘은 수영을 가는 날이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 이빨이 아프셔서 수영을 못가게 되었다.

나는 기분이 나뻤다. 어머니께서는 더욱 화가 나신 것 같았다. 그 이유는 형이 피아노도 않가고 수영도 안 갔기 때문이다. 형은 기뿐 모양인지 웃으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 피아노 소리는 엉망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이 안 게시니 맘이 편한가 보다. 나는 벌써 피아노를 갔다가 왔다. 나도 화가 많이 났다. 또 형은 소나티내를 이렇게 쳤다. 잘 안쳐지면 아무 건반이나 꽝꽝하고 쳤다. 기분이 나쁜 날이다.


1988/3/12  맑음                       왕눈이


  오늘 동네에서 왕눈이 놀이를 하였다. 나는 전보대, d동, a동 등 많이 달려서 숨이 찼다. 상민이 형과 태현이 형이 방해를 놓았다. 상민이 형은 도희누나를 울렸다. 그때 도희누나의 오빠가 왔다. 상민이 형은 많이 혼났다.


1988/3/14  비오다 갬                  조회


  학교에서 조회를 하였다. 방학이 끝나고는 처음으로 조회를 하였다. 반장 부반장에게는 임명장을 주었다. 반장이 먼저 나갔다. 그때마다 박수가 터졌다. 다음은 부반장이 나갔다. 그때도 박수가 터졌다. 나도 박수를 받았다. 이렇게 많이에게 박수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1988/3/15  맑음                       공부


  오늘 공부를 하였다. 재미있게 노는데 형이 나와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도망칠라고 애를 썼지만 그렇게 않되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들어와 공부를 하였다. 공부는 재미가 없다.


1988/3/16                          수영장


  오늘은 수영을 갔다. 너무 늦어서 이모가 차로 태워 주셨다. 그렇지만 이모께서 차를 천천히 몰아 주셨다. 나는 화가 났다. 수영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 수영장에 들어가 보니 모두 수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부대를 잡고 수영을 하였다. 수영을 하고 나오니 몸이 시원하였다. 나는 성질이 너무 급하다.


  선생님: 승민이는 똑똑하구나. 자기의 성질이 급한 걸 아니까 고치도록 노력도 해 보아야 겠지


1988/3/19                     롯데 자이언츠


  학교를 다녀와서 롯데 자이언츠을 회원하려고 그랜드 백화점으로 갔다. 거기에 있는 롯데리아점으로 갔다. 물어보니 다 끝났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화가 나셨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그랜드 백화점에 온 김으로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하셨다. 나는 양식집으로 가서 돈까스를 먹었다. 형은 비후까스를 먹었다. 집에 오다가 문방구에서 만들기도 구경했다.


1988/3/20                     공작


  교회에서 공작을 하였다. 유년1,2반은 준비물이 크레파스고 유년 3반과 초등1,2,3반은 가위, 풀, 그레파스 이다. 오후 예배때 준비물을 가지고 갔다. 나는 너무 바빠서 가위대신 칼을 가지고 갔다. 제일 먼저 와 있었다. 조금 후에 박지훈이 왔다. 예배도 드렸다. 2부 순서에 공작을 하였다. 나는 칼을 가지고 오기를 잘했다. 그 이유는 칼로 잘라야 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작이 끝났다. 전도사님이 낼꺼냐고 물어 보셨다. 잠깐 생각하다가 집으로 가지고 간다고 말했다. 나는 집으로 혼자 돌아왔다. 형이랑 갇이 올 것 그랬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밖에 정재훈이 있었다. 야구공을 가지고 나는 나갔다. 정재훈이 야구 배트를 가지고 왔다. 내가 가위, 바위, 보를 졌다. 정재훈이 먼저 배트를 잡았다. 나는 야구공을 던졌다. 정재훈이 아주 세게 번트를 했다. 그 공이 하필이면 도희누나 오빠가 맞았다. 그 형이 화가 나서 공을 던져버려 잃어 버렸다. 화가 났다. 집에 들어와서 생각해보니 오늘은 공부를 하나도 안했다. 할려고 하니 저녁이라서 못했다. 다음부터는 일찍 공부를 하겠다.


   선생님: 도희한테 사과는 안했니?


1988/3/21 월요일                  이항복


  이항복이 어렸을 때다. 항복이네는 여자 머슴이 한 명 있는데 욕심이 많았다. 어느날 항복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밖에 나가셨다. 인제 집에 남은 것은 항복이와 머슴 밖이 안 남았다. 항복이는 이때 머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밖에 나가는 척 했다가 집안에 숨었다. 머슴은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광쪽으로 가서 쌀 한가마를 가지고 왔다. 이때, 항복이가 와서 왜 쌀을 가지고 오냐고 물으니까 머슴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쌀을 훔쳤습니다."

그러자 항복이는

  "거지에게, 쌀을 주려고?"

머슴은 아니다고 말하며 계속 하던 말을 되풀이 했다. 이때 머슴은 주인이 알고도 그런다는 것을 알자 울음을 터뜨리고 그 못된 욕심도 뉘우쳤다는 이야기다.

  나도 항복이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겠고, 또 머슴처럼 욕심을 안 내며, 설마 욕심이 있어도 뉘우 치겠다.


  선생님: 잘 썼어요


1988/3/24                      카레라이스


  오늘 저녁은 카레라이스로 먹었다. 어머니께서 정성들여 만드신 카레라이스는 정말 맛있었다. 양파, 감자, 홍당무를 겯들어 먹으니 더 맛있었다. 그런데, 엄마께서 안 잡수시기 때문에 조금 쓸쓸하였다.


  선생님: 침이 꼴깍.....


1988/3/26                    콜트25


  아버지를 따라서 차를 탔다. 차는 씽씽 달렸다. 아버지께서 장난감을 사주신다기에 둔촌 종합상가를 가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어머니께서는 수영장에 들어 가셨다.어머니도 사회체육센타 회원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들어가신지 조금 후에 아버지와 함께 상가로 들어 갔다. 먼저 이층으로 올라 갔다. 이층에는 완구가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오천원 한 장을 주시면서 2500원씩 나누어 쓰랬다. 나는 콜트 25를 샀다. 형은 돈이 모자란다면서 아무것도 안 샀다. 나 혼자만 사니 쓸쓸했다.


1988/3/27                  할아버지 추도식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일산 공원묘지에 갔다. 먼저 예배를 보고 준비해간 먹을 것을 먹었다. 은별이네 가족도 왔다. 은별이는 두 살인데 길을 가다가 자주 넘어지면서도 좋아 했다. 집에 돌아올때는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러 가다가 함께 냉면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니까 할머니께서 큰 오렌지 두 개를 주셨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다. 오늘은 참 보람있는 날이었다.


1988/3/29                 생일잔치


  생일잔치에 갔다. 병선이의 생일이다. 우리가 갔을때는 병선이가 없었다. 나는 최관순과 같이 기다리다가 황명호네 집으로 갔다. 명호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페리칸 문구에서 연필 한타스를 샀다. 공짜로 아저씨가 포장을 하여 주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1988/3/30              금도끼은도끼


  옛날에 가난한 나무꾼이 살았는데 깊은 산속에 나무를 하러 들어갔다. 나무를 하는데 잘못해서 도끼가 연못속에 들어가서 울고 있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 외 울고 있냐고 묻자 처음일부터 있었던 일을 말했다. 산신령은 많은 도끼를 가지고 왔다. 정직한 나무꾼이 쇠도끼를 고르자 산신령은 정직하다면서 도끼를 모두 주었다. 나무꾼의 앞집에는 욕심장이 할아범이 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나무를 하러 들어갔다. 나무꾼과 똑같이 울고 있는데 여러도끼를 들고 올라왔다. 어느 도끼가 너것이냐고 묻자 할아범은 금도끼가 자기 것이라고 하였다. 산신령은 연못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정직한 나뭇꾼처럼 되고 싶다.


1988/3/31                풍진


  학교에서 풍진 예방주사를 맞았다. 처음에는 정의정이 맞았다. 정의정은 '아야'하고 소리쳤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아플 것 같았다. 나는 다른데를 보고 있었다. 어느새 주사를 다 맞았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1988/4/2             금으로 만든 손


  다림이는 여름인데도 장갑을 끼고 다녔다. 다림의 친구들은 다림이를 마구 놀렸다. 다림은 친구들과 싸웠다. 어느 친구 한명이 다림의 장갑을 뺐다. 다림의 손은 마구 이그러저 있었다. 다림은 울면서 집으로 갔다. 다림은 어떳게 된 것이냐고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말해 주었다. 다림이는 손이 자랑스럽다고 인제 부터는 장갑을 안끼고 다닌다고 하였다. 나도 다림이처럼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1988/4/4            돈까스


  오늘 저녁은 돈까스로 먹었다. 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돈까스는 맛있었다. 거기다가 A1소오스를 쳐서 먹었다. 스우푸도 먹었다. 케찹도 먹었다. 어머니는 이런 것을 양식이라 말씀하셨다.


1988/4/5          괴산


  오늘 괴산에 가서 쑥을 땄다. 아버지께서는 군용삽으로 풀을 뿌리채 뽑으셨다. 할미꽃도 한송이 뽑았다. 오는 길에는 냇물에서 개구리 한 마리를 잡을라고 했는데 놓쳤다. 갈대도 뽑았다. 차를 타고 오는데 군인의 탱크와 헬리콥터도 봤다. 총도 봤다. 집에 돌아오니 잠이 왔다.


1988/4/7            학교


  학교에서 민석이가 거짓말을 해서 약 17명이 선생님께 혼이 났다. 민석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혼났다. 선생님께서는 직접 듣지 못한 이야기는 퍼뜨리지도 말고 믿지도 말라고 하셨다. 오늘은 도덕을 못했지만 큰 것을 배웠다.


1988/4/9  토요일             생일


  조윤의 생일이라서 조윤네집에 갔다. 음식도 많이 주었다. 비디오로 '이소룡'도 보았다. 딱부리 놀이도 하였다. 사진도 찍었다. 케잌도 먹었다. 재미있게 놀다가 집으로 왔다.


1988/4/10                   만수탕


  오늘은 만수탕에 갔다. 석원이형, 승협이형, 나 이렇게 셋이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들어갔다.그런데 어떤 할아버지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화가 났다. 또, 목욕탕에서는 빨래를 못하게 되어 있는데 그 할아버지는 빨래를 하였다. 나는 오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봤다. 나는 규칙을 어기지 않겠다.


  선생님: 나부터라도 지켜야지요?


1988/4/12                준비물


  오늘은 아침에 준비물을 샀다. 준비물은 모형온도계였다. 여러군데 다녔지만 없었다. 나는 멀리까지 가서 샀다. 50원이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다음부터 많이 오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오니 8시 15분이었다. 나는 이제 미리 준비하겠다.


  선생님: 저녁에....


1988/4/13 수요일                   현장학습준비


  내일은 행주산성으로 현장학습을 간다. 나는 오늘부터 배낭에 먹을 것을 많이 챙겨 넣었다. 어머니께서는 멀미약을 알아보신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 내일 김밥을 싸주신다고 하셨다. 귀미테는 반쪽만 붙여도 부작용이 심하여 먹는 약을 사주신다고 하였다. 내일이 기다려 진다.


1988/4/14 목요일              현장학습


  행주산성에는 대첨기념관이 있었다. 그 곳에는 옛날에 쓰던 무기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권율장군의 동산도 참 멋있었다. 또, 귄율 장군의 초상화도 보았다. 숲풀이 우거진 것을 보고 나는 '이제 나무가 자라나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개나리와 진달래도 피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간식을 먹었다. 집에 돌아올때는 한강물이 참 깨끗하였다. 차 안에서는 마이크를 데고 노래도 불렀다. 학교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더욱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성이 있는 지는 몰랐다.


  선생님: 잘썼어요


1988/4/17                청소


  아침에 우리 앞 마당을 쓸었다. 처음쓰니까 조금 힘이 들었다. 연탄재가 마당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거기부터 쓸었다. 쓸고 보니 연탄재가 없어서 깨끗하였다. 다른데도 쓸었다. 다 쓸고 보니까 상쾌하였다. 또 줄넘기 연습도 하였다.


1988/4/18                      짝바꾼 것


  학교에 한종일이라는 아이가 전학 왔다.그래서 선생님은 자리를 바꾼다고 하셨다. 여자는 여자끼리 앉고 남자는 남자끼리 앉았다. 나는 황명호와 짝이 되었다. 황명호와 앉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유는 2학년때부터 같은 반 이기 때문이다.


1988/4/19                     비온날


  비가 왔다. 소낙비는 아니고 보슬보슬 내렸다. 학교에서 3째 시간이 끝났다. 선생님께서 관순이와 같이 백엽상에 가서 온도를 재어 오라고 하셨다. 나가보니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진흙탕은 그대로 있었다.


  선생님: 일기를 조금 더 많이씩 써보렴...


1988/4/20                  벌받은일


  학교에서 단체 기합을 받았다. 음악시간인데 아이들이 떠들고 음악책도 안 끄냈기 때문에 단체 기합을 받았다. 머리를 뒤로 져치고 팔을 들고 투명의자를 하여서 정말 힘들었다. 코가 막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팠다. 음악책을 안 끄낸 사람은 앞에 나와서 더 심한 벌을 받았다. 그 때 우리는 일어서서 눈만 감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 우리 때문에 벌은 받은다고 하셨다. 다음부터는 빨리빨리 음악준비를 빨리 하겠다.


1988/4/21                   체육시간


  체육이 오늘 들었다. 후프를 가져오라고 선생님께서 미리 알림장에 써 주셨다. 학교에 오니 아이들은 복도에서 후프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다른 과목을 할 때 마다 체육시간이 기다려 졌다. 드디어 체육시간이 되었다. 줄을 스고 간단한 체조를 한다음 후프놀이를 하였다. 줄넘기 굴 지나가기 , 후프돌리기 등 많이 하였다. 후프돌리기는 잘 안되었다. 나는 당번이라서 체육시간이 다 끝나고 들어가 청소를 하였다.


1988/4/22                    나무심기


  오늘은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갔는데 오늘은 체육이 들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나무를 심기 때문에 체육책으로 공부를 하였다. 선생님은 나무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나무 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1988/4/23                       시험공부


  오늘은 시험공부를 하였다. 시험공부라 더 하였다. 시험 공부는 싫었다. 엄마는 틀린 것은 혼을 내주셨다. 부반장이 모범을 보여야지 하면서 더 혼난적이 많다. 나는 부반장이다. 나는 우리반에서 모범을 보이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1988/4/24                  내일을 향해 달려라


  병태라는 축구를 잘 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다리가 다쳤기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소년 체전 대회는 몇 주일 않남았는데 다리는 낫지 않았다. 경기가 있는 날 병원에 쪽지를 남겨놓고 경기장에 갔다. 거기에 가서 축구대회를 이겼다. 나도 어려운 일을 당해도 병호처럼 노력하여서 꼭 성공하겠다.


1988/4/26                    시험공부


  아침에 아버지께서 공부 시간표를 짜라고 하셨다. 오늘은 마침 공휴일이라서 아버지께서 집에 계셨다. 학교에 안 가니 집에서 공부를 하였다. 공부는 8시간동안 계속 되었다. 1시간에 10분씩 쉬기도 하였다.


1988/4/27                    시험(1차)


  오늘은 시험이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 하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연필을 잡았다. 긴장해서 글씨도 잘 못볼 지경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배운 것을 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자꾸 가슴이 두근 거렸다. 나는 문제가 다 맞았는지 틀렸는지 궁금하였다.


1988/4/28                   시험(2차)


  오늘은 시험을 보았다. 2차 시험이었다. 어제보다 더 조마조마하고 긴장되었다. 나는 꼭 다 틀릴것만 같았다. 나는 모르는 문제도 나왔다. 선생님은 산수에서 하나가 틀렸다고 하셨다. 나는 실망이 컸다.


1988/4/29                  시험지 나나준일


  선생님께서 시험지를 나눠 주셨다. 나는 7개나 틀렸다. 다 7개 이상 틀렸다. 선생님은 화가난 목소리로 "7개가 뭐냐!" 하고 화를 내셨다.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 아빠한데서 꾸중을 들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찔끗했다. 다음부터는 잘 보겠다.


1988/4/30                 형과 아우


  돌이와 솔이가 살았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선물을 사오셨다. 돌이는 연필깎기이고 솔이는 로봇였다. 그런데 솔이는 로봇을 안빌려주었다. 돌이와 솔이는 싸움을 했다. 어느날 솔이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돌이는 작은 손가방에 장난감을 넣고 병원에 가 솔이와 재미있게 놀았다. 나는 형과 사이가 나쁘지 않겠다.


1988/5/1                    청소


  오늘 이진황과 함께 근린공원에 가서 줄넘기도 하면서 청소도 했다. 쓰레기통 주위에는 유리조각이 많았다. 다 뾰족하였다. 모래밭에는 종이쪽지가 많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치웠다. 기분이 상쾌하였다.


  선생님: 힘은 들지만.....


1988/5/3                 작은고모댁


  오늘 7시경에 작은 고모낵에 갔다. 할머니께서 외국에 가셔서 거기에 갔다. 레몬쥬스도 먹었다. 거기에 있는 씨도 먹었다. 배가 이상하였다. 할머니께서 외국에 가시니 쓸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


1988/5/5/목요일                 어린이날


  어린이 날이다. 석우와 석원이형이 왔다. 석우와 나는 집에서 있겠데는데 석원이형과 승협이 형이 가재서 63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제목은 나이아가라라이다. 꼭 폭포에서 우리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재미있으면서도 무서웠다. 영화를 다보고 한강시민 공원에 가서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것도 보았다. 점심도 먹었다. 참 재미있었다.


1988/5/6/금요일                 체육


  학교에서 4째시간에 운동을 했다. 원래 도지볼을 해야 되는데 수위아저씨가 운동장에 물을 뿌려서 다른 운동을 하였다. 막상 해보니 재미있었다.


1988/5/8                     이모네 댁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그래서 이모네댁에 갔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외할머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할머니가 계시다. 석우도 있었다. 석우와 형과 나는 피구를 하였다. 그러다가 석우와 내가 싸움을 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


1988/5/10/화요일             야구


  학교에 갔다와서 아랫집 재훈이와 야구를 하였다. 재훈이가 던진 공을 내가 쳤다. 그 공은 높이 떠서 멀리 날아갔다. 나는 1루에 갔다가 다시 홈으로 왔다. 7대 0이 되었을 때 재훈이 팀에서 1점을 얻었다. 그래도 7대 1로 우리팀이 이겼다. 기분이 좋았다.


1988/5/12                     놀이


  오늘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놀았다. 지훈이도 갔치 놀았다. 총싸움도 하였다. 재미있었다. 아버지가 앉은 스케이트 보드를 밀기도 하였다. 기분이 좋았다.


1988/5/15/일요일                청소


  오늘 아침에 어머니 심부름을 하고, 돌아오다가 마당을 조금 쓸었다. 별로 상쾌하지 않았다. 먼지도 많이 남았다. 다음부터는 마당을 많이 쓸겠다.


1988/5/17                        놀이


  오늘은 밖에서 태용이, 배찬희, 재훈이와 같이 놀았다. 제기 차기도 하였다. 총싸움도 하였다. 거이다 재훈이가 졌다.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 부반장답게 좀 더 많이씩 쓰렴....


1988/5/18                      날씨


  오늘은 날씨가 매우 더웠다. 오늘은 체육이 들었는데 매우 더워서 땀도 났다. 오늘은 거의다 신체검사를 했다. 도시락을 먹고 1시 25분 동안 운동장에서 놀았다. 놀기도 힘이 들었다.

'괜히 긴팔을 입고 왔나 보다.' 하고 생각도 했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오니 시원하였다.

 

1988/5/19                     체육시간


  오늘도 체육시간이 들어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줄을 안 서서 다시 들어왔다. 반장 부반장들은 더 혼났다. 다리가 아팠다. 학교에 들어가 복도에도 서 있었다. 힘이 들었다.

    힘이 든

    체육시간


    할려다가 혼나는

    체육시간


1988/5/23                   석가탄신일


  오늘은 석가탄신일이다. 또한 승협이 형 생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형은 5월 14일날 생일을 하였다. 우리 식구는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절 같은데에 가지 않았다. 집에 앉아서 텔레비젼이나 보았다. 특히 손오공이 해서 신이 났다.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었다. 점심은 국수로 먹었다. 맛이 있었다. 텔레비젼을 다 보고 손오공 놀이도 했다.

      석가탄신일


   아침부터 웅성웅성

   텔레비젼 키고

   따르륵, 다르륵

   몇 번을 볼까?


  모두다 아침부터

  절절절 뿐이니

  차라리 안보지.


  "손오공 할려면

   1시간이 남았는데...."


  에라 모르겠다

  1시간동안

  배드민턴이나 치자.


1988/5/24/화요일             수박


  학교에 갔다 오고 한참 후 어머니께서 큼직한 수박을 한덩이 사오셨다. 먹고 싶어 졸르다가 야단을 맞지만 기분이 좋아서 생긋 웃음 꽃이 핀다. 수박을 먹을 때 형은 10분쯤에 맛있는 수박을 5개나 먹었다. 나도 빨리 먹다가 씨를 10개쯤 삼켰다.


   수박


  수박은 장난꾸러기

  자기가 잘 익었나

  못 익었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알지?

  때려볼까?

  들어볼까?

  구별하기

  정말 힘드네


  선생님: 재미있는 시구나. '나의 문집'에 써보렴


1988/5/25/수요일               할머니


  오늘은 20일 전에 유럽에 가셨던 할머니께서 돌아 오시는 날이다. 우리 식구는 공항을 갔다. 사람도 많이 있었다. 입구에서는 자동차 트렁크와 엔진이 들어 있는 곳을 경찰 아저씨가 조사하였다. 안에 들어갈때도 여자 경찰관과 남자 경찰관이 몸을 조사했다. 외국인들도 많이 나왔다. 할머니가 나오셔서 나는 기뻤다.


   공항


공항은

전투모함

비행기는 많다.


공항은

외국인들의

자동차


탑승구에서

할머니들어가면

서운하지만...


탑승구에서

할머니 나오면

너무 기뻐서


할머니~할머니~

부르며 탐승구로

뛰어 갔지


1988/5/26/목요일                     놀이


  오늘 저녁에 저녁밥을 먹고 조금 쉬면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콩미니 탱크로 장애물 경주도 하였다. 형과 나와 아버지는 자주 엔진을 고친다고 돌아이바를 자주 꺼내어 나사를 풀고는 했다. 그러다가 형이 덤블링 오토바이 장난감을 꺼내어 가지고 놀았다. 그것은 5월 23일날 형생일이라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것을 사주신 것이다. 나도 얼른 생일이 됬으면 좋겠다.


     장난감


장난감은 아침에

죽어있고,


점심때는 활기차게

움직이고


밤에는 장난감

바구니에서,

잠을 자지


거기가

집인가봐.


  선생님: 동시가 재미있어요. '나의 문집'에.....


1988/5/28/토요일              까치와 구렁이


 어느 선비가 한양에 가는데 나뭇잎의 새집에는 새끼 까치가 있었다. 선비가 잠깐 보는 사이에 나무 위로 구렁이가 올라가서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선비가 활로 쏴 죽였다. 다시 길을 가는데 밤이 되어서 불빛이 나는데로 가 보았다. 거기서 잠을 자는데 일어나 보니 구렁이가 자기 몸을 감싸고 있어서 살려달라니까 높은 곳에 있는 종을 3번 울리라고 했는데 못 울려서 죽을라고 할 때 종이 울려서 살았다. 그 아래로 가보니 까치 수백마리가 머리가 깨져서 있는 것을 묻어 주었다. 나도 은혜를 받으면 꼭 보답하겠다.


1988/5/29/일요일                         늦잠


  오늘은 늦잠을 잤다. 어제 밤에 동창회에서 12쯤에 와서 오늘은 9시 30분에 일어났다. 그래서 교회를 못갔다. 아버지께서는 "8시 30분에 깨어줄라고 했는데..." 하고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얼른 가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예배는 9시에 시작해서 가지 못하였다. 어쩐지 힘이 빠져서 힘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다.


  늦잠


늦게 잤다가

늦게 일어나는

늦잠


늦잠을 않잘려고

해도 왜 이러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늦잠인 것 같다.


1988/5/31      화요일          분수에 맞는 생활


슬기는 오늘 보람이와 같이 학교를 가는데 또 슬기는 샤프펜슬 하나를 사러 보람이를 끌고 문방구로 들어갔다. 보람이는 "슬기야 고장안나고 튼튼하면 되지 꼭 새것을 또 사야되니?"

하고 핀잔을 주자 슬기는 화를 냈다. 거스른 돈이 남자 보람이를 데리고 오락실을 갔다. 학교 조회시간때, 한샘이와 구슬이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푼돈을 모아 지난 토요일 마을 경로당에 담배, 과자, 과일을 사갔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보람이와 슬기는 교실에서 부끄러워 얼굴도 못 쳐들었다. 나는 슬기처럼 낭비를 하지 않겠다.


쉴틈없이

들리는

호르라기

소리


힘들어 팔을

천천히

돌리면


꼬르륵 꼬르륵

가라앉지요


1988/6/6 월요일          현충일


오늘은 현충일이다. 10시에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간 묵념을 하였다. 10시 30분에는 만화'해돌이의 모험'을보았다. 해돌이의 아버지는 북괴군에게 끌려갔는데, 해돌이와 천사 예삐가 아버지를 구한 이야기다. 웃긴데도 있고 슬픈데도 있으며, 아슬아슬한 곳도 있었다.또 할머니댁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다.


현충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의 넋을

위로 하는 날


죽은 우리

용감한 군인

들의 가족을

위로하는날


10시에 싸이렌

이 울리면,

1분간 묵념하는 날



1988/6/7화요일                    자습


오늘 학교에서 일요일 신문을 점심때쯤에 나누어 주어서 한문을 못썼다.내가 장난을 쳐서 다 못썼다고 생각도 되며 한편은 시간이 너무 조금이어서 못썼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늦게 썼어도 지금까지는 하나도 않밀렸었는데 오늘 하루만 밀렸다. 다음부터는 밀리지 않겠다.


자습


아침부터

조용히

한다.

무슨일 일까?


모두들 신문에서

한문문제를 띠어

자습을 한다.



198/6/8 수요일                '금바위야 미안해'를 읽고


체육시간에 축구 경기를 하였다. 두 팀다 열심히 경기를 했다. 금바위가 공을 몰고 가는데 은바위가 발을 걸어서 싸움이 일어났다.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 싸움을 말렸다. 그래서 선생님은 축구 경기가 중단돼었다.교실에 들어가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은바위는 금바위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은바위처럼 남을 일부로 걸지 않고 규칙을 잘 지키겠다.


동화책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책


재미가 있고

흥미를 느끼는

동화책


우리가

열심히 읽으면,


그 동화책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지


낄낄거리는

만화책보다


심심할 때

읽는

동화책이 훨씬더

재미있지


1988/6/9 목요일             리코더


오늘 학교에서 리코더를 불렀다. 음악시간에는 삐삐소리가 울렸다. 오늘은 도시라솔파미레도까지 다 배웠다. 선생님은 연습을 많이 하라고 하셨다. 나는 도시라솔파미까지는 잘 하는데 레도가 잘 않된다. 선생님은 하루에 10번씩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연습을 하겠다.


리코더


4번째 시간

음악시간


우리는

리코더를

만지작, 만지작


선생님의

눈이 내 리코더

를 가리킬까봐


서랍속에

숨기지


1988/6/11                  마법사


옛날 어느 나라에 가난한 부부 한 명이 임금님이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남편은 마법사로 꾸미고 대궐에 갔다. 그때 마침 임금님이 보석들이 모두 없어졌다. 그래서 임금님은 마법사에게 찾아달라고 했다. 마법사는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진짜 보물을 찾았다. 그래서 왕은 그 부부에게 큰 상을 내렸다. 나는 그 남편처럼 머리를 써가지고 나에게 이로움을 받겠다.


마법사


마법사란

진짜 있는

것 인가?


아니면 가짜

인가?


나는 가짜

로 생각한다


1988/6/12         김만철씨


오늘 만나교회에서 김만철씨의 간증을 들었다. 마이크를 데고 하는데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거이가 북한 동포, 북한의 괴로움 이야기 같았다. 나는 김만철씨가 사투리를 하는 것 같았다. 너무 작아서 잠도 왔다. 그래서 김만철씨를 본지 20분도 않되서 교회에서 나와 집으로 갔다.


김만철씨


불쌍한 우리

이북 사람들


김만철씨는

목숨을 걸고

탈출을 했다.


공산당이 싫어서

탈출한 것 같다.


선생님: 참 좋은 느낌을 적었구나.


1988/6/14                   생일


오늘은 이정만의 생일이다. 나는 학용품을 사가지고 갔는데 집을 몰랐다. 나는 강석민이 근처를 알으켜 주어서 겨우 찾았다. 거기는 '방현종, 이진황, 이상현, 또 1명'이 있었다. 보물찾기를 했는데 이진황이 연필 1자루를 탔다. 아까왔다.먹을 것도 많이 먹었다. 개도 2마리 있는데 자꾸 '멍멍'거렸다. 생일이라도 몇 명 않왔다. 재미있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생일


이정만 생일

즐겁게 놀자


이정말 생일

보물을 찾자


이정만 생일

맛있게 먹자


선생님:나의 문집에...


1988/6/15 수요일                    민방위 훈련


학교에서 끝시간인 도덕시간때 싸이렌이 교실에 '에에엥'하고 울렸다.우리는 얼른 책상밑으로 들어갔다. 스피커에서는 한참 목소리가 울렸다. 공습경보가 경계경보로 바뀌었다. 공습경보는 한 40분 쯤 울렸다. 스피커에서는 말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아이들은 계속 떠들기만 하였다. 선생님은 화가 나셔서 여자만 나가게 하고 우리들은 계속 있으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무서운지 갑자기 조용해 졌다. 공습경보가 끝나자 우리도 나갔다.


민방위 훈련


'에에에에앵'

들리는

스피커 소리


우리들은

책상속에

얼른 숨어서,


끝날때까지

숨어있지


1988/6/16 목요일                     체육시간


오늘 마지막시간은 체육시간이다. 체육시간에는 달리기를 하였다. 나는 일등으로 달리다가 점점 뒤쳐져서 4등을 하였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 힘이 들었다. 우리 학교 운동장을 2바퀴 반을 도니까 걷기도 힘이 들었다. 나는 여자들이 하는 걸 보니까 2바퀴만 돌았다. 남자는 '장남오'가 1등, '최관순'이 2등을 하였다. 나는 '장남오'와 '박지영'이 달리면 누가 이기는지 모르겠다.


체육시간


체육시간이

왔다.


달리기하는

체육시간이

왔다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체육시간이

왔다.


선생님:잘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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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e : ,

일본 음악의 이해

Posted 2008. 8. 21. 15:55, Filed under: Ex-Homepage/Essay

 1999년 글과 삶시간의 리포트입니다..그리고
진짜진짜 궁금하면 읽어보세요...좀 길거든요~^^;;그때는 정말 많
은양의 음악을 듣곤 했었죠. Rock, Pop, Jpop 등등..

 지금은 음악을 거의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점이죠..

그 당시와 지금 많이 달라진 점은! 우선 가요계에 댄스가수가 많이 사
라졌단점...(요즘은 대신에 점차 옷을 벗는 추세죠..) 그리고 일본에
진출하는 가수가 많아 졌다는 점등이 있겠네요~! 보아 화이팅!!

  리포트는 이걸로 끝입니다..다른 것들은 그냥 디스켓에 보관을..^^


  *이 글은 전적으로 저의 주관적인 생각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서론...


  이번 글과 삶의 주제는 대중문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다. 처음에는 그냥 음악, 특히 한국 가요를 좋아하고 옛날부터 많이 들어왔으니까 가지고 있는 앨범들의 자켓에 있는 노랫말을 분석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대중가요의 가사란 거의 다가 사랑에 관한 것뿐이다. 또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어떻게 보면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에(나는 댄스가수는 혐오한다.)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의도하고자 하는 바, 즉 나름대로의 한국가요 노랫말 분석이란 것을 정확히 해낼 수 없을 가능성이 컸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른 주제를 찾기로 했다.

  대중문화에는 영화, 드라마, 연극 등 타분야도 매우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약간은 광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분야는 역시 가요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최근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한 일본음악에 대한 생각과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한국가요의 대응 및 전략에 대해 쓰기로 했다.

  나는 일본음악도 꽤 듣는다. 처음 들었던 것은 X란 그룹의 Endless Rain이란 곡이었다. 아마 내 또래의 대학생은 거의 다 이름이라도 들어봄직한 노래였다. 그 이후에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노래란 것을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전혀 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또 통신을 하게 되면서 일본음악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 가사는 그냥 뭐라고 그러는구나, 아니면 중간 중간에 나오는 짧은 영어소리 몇 소절정도 아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일본음악들의 멜로디가 좋아서 자주 듣는 편이다.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예전에는 나같이 일본음악을 즐기는 사람을 쪽발이로 매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직 일본음악에 대한 개방의 문을 열고 있는 시작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음악을 즐기는 한국인은 매우 많다. 일제 정식 판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밀수, OEM제품(제3국 제작) 등으로 들어오거나 무엇보다 인터넷과 PC통신의 발달은 일본음악 매니아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참고로 1999년 4월 29일 현재 내가 가입한 동호회를 비교해 보면, '일본음악동호회'의 회원수는 1241명임에 비해 '음악마을'이라는 가장 규모가 큰 음악관련 동호회의 회원수는 1170명이었다. 물론 여러개의 음악 동호회가 더 존재하고, 회원가입을 한 인원만을 가지고 따진다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와 같이 일본음악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이 많다는 사실이다.

  단지 일본노래 몇십 곡을 들어본 것 밖에는 일본음악에 대해 무지한 나이지만, 나름대로의 시각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했다.


♥본론...


1. 일본음악에 대한 소개

  일본음악의 대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장르의 다양성

   ㉯. 장르의 계속성

   ㉰. 모방으로부터의 시작


   ㉮. 장르의 다양성

  내가 가입한 일본음악동호회의 장르구분을 보면, J-POP/J-ROCK/비주얼계열/애니음악 이렇게 4가지 종류로 규정했다. 그러나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일본음악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하위 장르가 있다. 계속적으로 새 장르가 탄생하고 있으며, 인기가 없으면 다시 사라지고,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큰 장르를 하나 더 형성하는 식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요즘 일본 역시 댄스뮤직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여타 장르에서 다양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것이 일본 대중음악을 발전시키는 중요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레코드업자, 방송, 뮤지션, 관객 등 모두가 유행보다는 자신의 개성과 색깔을 더 우선시 하는 데서 다양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획일적인 유행에만 치우치다 보니, 지금은 온통 댄스뮤직만이 판을 치고 있다.


   ㉯. 장르의 계속성

  장르의 다양성과 연관된 것으로, 일정한 수준의 팬을 확보한 장르는 계속적으로 발전하며, 쇠퇴도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다르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한 장르만이 거의 모든 분야를 독식하며 그 주기도 상대적으로 매우 짧다.(우리 나라의 90년대는 댄스음악의 시대라고 한다.)


   ㉰. 모방으로부터의 시작

  일본도 사실 전통음악인 엔카를 제외하고는 일본 독자적인 것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밑거름으로 재창조하여 이제 동남아, 중국 등에 수출하고 있으며 이제 한국에 도달한 것이다. 문화가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가장 빠르게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모방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시류를 따라갈 수 있고, 그것에 휩싸일 수 있다면 보다 나은 바탕에서의 창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모방하는데 그친다면 도둑질에 불과할 것이다.


2. 일본음악계의 배경과 현황 및 가수들의 특징

  조사한 것을 요약하면 일본음악계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와 프로정신이 바탕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 일본음악시장

  일본은 연간 매출액이 약 8조4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음반시장이다.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도시바EMI, AVEX DD, 토이즈 팩토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자본이 많은) 음반사들이 밀집해 있다.


   ㉯. 프로덕션의 활성화

  90년대에 일본에서는 음악의 상품화가 더 가속화되었다. 이 점은 최근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획사 붐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레코드 회사의 힘은 약해지고 프로덕션의 힘이 강해졌는데, 프로듀서는 노래, 코디네이션, 개략적인 스케쥴 등의 가수관리를 맡는다. 그래서 가수가 어떠한 프로듀서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관점이 된다.

  일본에는 고무로 데쯔야란 음반 제작자가 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연예인 중 하나인 그는 일본가요계의 프로덕션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조사한 어느 책에도 그에 대해서 하나 이상의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신인 그룹이 소속사에 노리는 것은 그 프로덕션의 프리미엄을 얻어서 처음 음반을 냈을 때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보려는 것이다. 역으로 이 점은 유명한 소속사가 새로운 팀을 만들었을 때도 이용된다.(예: SM기획->신화, TK사단->trf 등)

  반면에 소속사가 인기가수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스카웃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예: 유승준, 김건모, 마쯔다 세이코 등)

  차이돌(child idol의 일본식 합성어)가수의 출연도 프로덕션의 마케팅전략이 주도한 것이다. 음반 구매층이 10대~20대 초반의 청소년층이 대부분인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예: 서지원, 이지훈, 양파, Hot, 젝스키스, ses, 핑클/아무로 나미에, 맥스, 스피드 등) 그러나, 한 대중음악 평론가는 이들의 탄생으로 인해 양국 모두 음악의 질이 크게 저하되었다고 하기도 했다.


3. 일본 가수들의 특징

  주요 그룹의 개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 드림스컴트루

  외모와 연주실력은 다른 그룹에 비해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 그렇지만 서구화된 작곡법과 일본적인 멜로디, 희망적인 가사 등으로 팬들에게 쉽고 편안히 다가갈 수 있는 사운드를 구사한다.


 ㉯. 아무로 나미에

  일본 청소년, 특히 여중/고생들의 우상이다. 아무로의 성공은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에 있다. 심지어 그녀가 임신사실을 발표할 때 입었던 매우 비싼 옷이 매일 매진되는 희한한 일도 일본에서 있었다고 한다.


 ㉰. GLAY

  X-Japan의 리더였던 요시키가 발굴한 그룹으로 멤버 각각의 능력(연주, 보컬, 작곡/작사)이 뛰어나다고 한다. 또, 듣기뿐만이 아니라 따라 부르기에도 좋은 노래를 위주로 활동을 한다.


 ㉱. 라르크-안-시에르

  일본 비주얼락(80년대 영국의 뉴웨이브뮤직에 영향을 받아, 보이는 것,즉 가수의 외모에 많은 치장을 한 음악의 한 장르)의 핵심중의 핵심이라고 한다. 특별히 튀는 것은 장르가 비주얼락인 만큼 역시 외모이다.


 ㉲. 퍼피

  아무로와는 다른 면으로 일본 여성들의 우상이다. 평범한 외모와 행동, 노래 가사가 젊은 여성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 스피츠

  컬리지록(기성음악과 사회에 대한 반발로 대학로 주위를 배경으로 탄생)의 대부격으로 인디밴드 출신이며,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여 텔레비젼에 출연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대다수의 컬리지록 가수들이 그러하듯 이들 또한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 대기만성한 그러한 그룹이다. 특히 수준 높은 가사와 인디밴드 특유의 탄탄한 연주실력 등이 인기비결이라고 한다.


 ㉴. SMAP

  멤버 5명의 특성이 매우 독특한 그룹인 이들은 소속사인 쟈니스프로덕션의 홍보효과 때문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쟈니스는 멤버들이 초등/중학생이던 10년 전부터 팀을 만들어 관리를 했었다고 한다. 이들은 오히려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에 출연을 많이 해서 가수라기 보다는 탈렌트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 X-Japan

  한국에 알려진 가장 유명한 일본그룹. 이들은 해체되었지만 일본음악이 개방되면 가장 먼저 한국시장을 잠식할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음악은 매우 대중적이다. 록을 하기도 하며 발라드를 하기도 한다. 헤비메틀과 엔카풍의 멜로디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또 개개인의 개성이 매우 특이하다. 얼굴분장이나 개인이 악기다루는 솜씨가 특출나며, 요시키의 작곡능력도 탁월하다. 그래서 해체후 토시와 히데, 요시키는 솔로로도 활동을 했었다. 더군다나 요시키는 프로듀서로도 성공을 했다.


  위의 가수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은 멤버의 개성이 각각 특이하다는 것이다. 음악적 기본기(가창력, 연주실력)도 탄탄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룹이 언더에서 활동을 하다가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팀은 각각의 개성적인 색깔을 가진다. 또 훌륭한 세션맨들이 뒤에서 받치고 있으며 스타들과 기획사도 관리에 철저하다.


  일본에서는 일명 '일본음악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노력한다. 일본 노래 중에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곡도 있다.(사카모토 큐가 부른 Sukiyaki) 일본은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일본 노래를 영어로 바꾸어 부르거나 외국가수들에게 일본어노래를 부탁하기도 한다. 또 유명 음반회사나 악기제조업체에서 세계규모의 음악제를 열어 세계 시장에 그들의 이름을 알리기도 한다. 당연히 엄청난 자금이 동원되기는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거의 없는 한국가요계와는 매우 비교가 된다.


  일본은 가수들의 직업정신도 투철한 편이다. 그들은 립씽크는 거의 하지 않고, 팀의 경우 멤버전원이 악기를 다루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별의 별 핑계를 다 대가면서 립씽크만을 하는 가수들이 수도 없이 많고, 아무런 악기하나 만지지 못하는 가수도 적지 않다.(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그룹의 대표주자인 H모그룹이 작년의 모든 가요상을 휩쓸었다는 것이다.)일본도 우리 못지 않게 입시 지옥이지만 뮤지션이 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분야는 약간 다르지만 게임제작자인 이노겐지의 경우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지금은 대중문화계의 거물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공부, 특히 입시공부를 하는 인문계고등학생 외의 청소년들에게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문계 고등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놀면서 젊음을 허비하는 청소년들의 경우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 대한 개척을 일찍 시작하는 경우는 오히려 그 용기와 노력에 상응하는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중/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등외시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말 뜻이 있고, 재능이 있다면 그러한 행동은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현시선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악기를 다루는 문제에 대해 말해 보겠다. 1년 전쯤에 나는 다른 통신(유니텔)을 하고 있었는데 가수에 관련한 토론이 열린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가수란 가창력은 기본이고, 연주 실력 및 작곡/작사 능력도 있어야 진정한 가수(일명 싱어송라이터)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관한 글을 올렸다. 그러자 어느 여자 분이 반박을 했다. 가수의 사전적 정의를 대가며 가창력이 있으면 가수로써의 조건은 다라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도 해서 재반론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 즉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 가요계의 현실과 일본 음악 시장에 대한 개방을 앞둔 시점에서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고 생각한다. 현재 연예인이란 직업, 특히 가수는 중/고등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에서 최상위쪽에 속한다. 그와 비례하여 가수의 사회적 지위도 매우 높아졌다. 그 이유는 사회인식의 전반적인 변화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분야가 전문화된 것이 가장 크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 이제 가수는 프로화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 나라 가수들은 전반적인 프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내 기준에서의 프로뮤지션이란 위에서 언급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JJ가 온다'를 쓰신 이규형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재미난 결론을 내려야 할 때다. 무서운 아이들이 되려면 우선 밴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일본 가요계의 현주소다. 밴드 능력이 없는     가수는 판매고나 인기, 어디에서도 명함을 내밀 구석이 없다. 2인조건     3인조건 5~6인조건 간에 우선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할 수 있     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진정한 프로정신이라고 할 때, 처음부터 음악의 길만을 판 서태지씨는 한국에서 인정을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물론 그전에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언론에 의해 음악적 선구자로 부각된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았나 한다.)또 음악활동을 위해 학교를 그만둔, 전람회의 멤버였던 김동률씨도 조금 시기적으로는 늦은 감이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하는 진정한 프로정신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4. 한국가요와 비교해서


  이 부분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음악이 아주 미세하나마 한국음악에 비해 조금 앞선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통신(네츠고)으로 몇 명에게 물어보니 의견이 많이 다른 경우도 꽤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음악이 약간 앞선다는 생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거의 다였지만, 한국음악이 앞선다는 생각은 없었다는 점이다. 좀 많이 지난 일이지만 룰라라는 그룹이 '천상유애'란 곡으로 순식간에 가요계 정상을 차지했다가 일본노래를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서 결국 팀 해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당시 표절을 한 일본가수는 현지에서는 거의 인기가 없던 B급의 댄스그룹이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때 우연히 텔레비젼 뉴스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약간 보았었는데, 울트라맨처럼 옷을 입고 쇼를 하는 모습을 보고 황당했었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자. 한국에서는 신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하여 내노라 하는 톱가수들이 일본에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몰래 입국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마케팅등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일본 팬들(대부분이 청소년층)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한국의 가요를 비하하자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분명히 있다.


  이러한 표절문제는 무엇보다 개방이 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현재까지 우리 나라는 모든 경로를 공식적으로는 막고 있는 상태이며 그렇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유통이 되고,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표절이 많은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개방은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응방식이 안일할 경우 한국 음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규형씨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라는 K-pop이란 장르가 정착이 되고 있는 과도기적 단계라는 것이며, 일본도 10년전 쯤에 J-pop이란 독자적인 장르를 만들 때 우리처럼 표절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서동욱씨도 이렇게 말했다. 현재 우리 나라의 록과 발라드는 거의 죽어있는 수준이고 댄스가수들만이 활기를 치고 있다고. 내가 댄스가수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춤을 비롯해서 얼굴, 비주얼한 치장, 과장된 행동 등은 가수에게 있어서 부수적인 것이고 가창력, 프로정신이 가장 우선이 되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도 지금우리의 상황이 별로 보기 않좋다.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불법복제문제이다. 서동욱씨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가수들의 음반에 대한 불법복제문제가 가요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한다. 우리 나라는 지적재산권(음반, 컴퓨터소프트웨어 등)에 대해서 불법이 판을 친다. 이번에 새로 나온 이승환씨의 시디 앨범에 들어있는 특이한 장난감, 예전에 서태지씨의 남색 케이스 등은 다 그러한 불법복제를 방지하기 위한(팬들의 협조가 있다는 전제아래) 대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무수한 불법복제물이 나돌았다.

  학교교육이 문화계에 미치는 영향도 가수들의 프로화와 관련해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대중문화/스포츠 등의 예술계에서는 학원system이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끝난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은 준우승을 하였다. 그때 축구 관련 전문가들의 입장은, 축구선수를 조기에 유학을 보내 선진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이 바로 그러한 식의 운영을 했고 지금 결실을 맺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같이 운동을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나라에서는 그런 조기유학이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가요계도 마찬가지다. 인성교육은 중학교, 길어도 고등학교까지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다. 즉 대중문화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이란 곳이 반드시 필요한 곳은 아니란 말이다. 이러한 사회풍토 아래서는 일본문화와 한국문화가 축구가 그러했듯이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 이제 한국 팬들의 인식도 어느 정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매스컴 특히 텔레비젼은 인기가수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코스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특히 심각한 것 같다. 이것은 다른 홍보 경로가 마련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일부 몰상식한 어린 팬들, 그리고 그 팬들을 악용하는 방송사 측에 더 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텔레비젼에 나오지 않아도 성공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우리 나라는 뒷돈까지 주면서 기를 쓰고 텔레비젼에 나오고자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전혀 다른 상황이 일어나고 있나? 내 생각에 한국에서 텔레비젼에 많이 나오는 가수들은 대부분 10대 스타들이며 속된말로는 한 외모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예전에 PC통신의 어느 토론실에도 썼었지만 그 부류의 사람들은 가수가 아니라 다른 연예인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그러한 연예인들이 3대 메이저 방송사가 주최하는 가요 상을 휩쓰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결론적으로 그들은 외모와 썰렁한 말솜씨, 서투른 제스처로 어린 팬을 확보한 뒤 음반을 가끔 제작하는('내는'이 아니라) 소속사의 꼭두각시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기반이 텔레비젼이기 때문에 그토록 거기에 매달린다고 생각한다. 반면 9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방송을 타지 않아도 잘 나가는 가수가 많이 있다. 90년대 싱글판매순위 10위안에 7명이나 그러한 가수들이다. 특히 일본에서 90년대에 가장 많은 앨범(싱글 포함)을 판매한(2238만 8천장) B'z란 그룹은 전혀 방송에 출연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수에게 있어 금전적으로나 자존심에 있어서 음반 홍보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텔레비젼을 통한 홍보는 오히려 가수들의 노래보다는 외모나 행동거지를 부각시키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음악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잘못된 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첫째 열쇠는 팬들이 쥐고 있다.

  한편 댄스음악과 관련해서 일본과 비슷한 경향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일본음악시장에서 댄스부문은 약해지고 있다. 그러자 록음악(J-rock)과 팝음악(J-pop)이 다시 기세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뚜렷하지 않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길어야 3~5년 정도 뒤에는 댄스음악의 기세는 지금에 비하여 매우 약해질 것이라 본다. 우리 나라 가수들이 일본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고 본다. 일본에 진출하는 가수 중에는 상당수가 프로덕션에 소속된 아이돌스타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노래 장르는 댄스일색이기 때문이다. 가창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장르가 시대에 안 맞는 것도 문제이다.


5. 나는 한국가요가 이렇게 나아갔으면 한다.


 ㉮.대학로의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모든 길거리에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 나라 대학로는 너무 술집위주다. 그런 면에서 마로니에 공원에서 춤을 추는 청소년들이 그리 불량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실제로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에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도 한국음악발전에 걸림돌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직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현재로는 대학로가 그러한 문화를 주도할 가장 적합한 장소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밖에서 앰프를 틀고 록공연을 하면, 소음과 풍기 문란의 명목으로 경찰서에 같이 가야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 모방과 재창조 행위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굳이 일본음악만이 아니더라도 우선은 서양/일본 쪽의 음악을 많이 접하고 거기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기발한 재능이 덧붙여져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이미 일본은 J-pop/J-rock이라 하여 이차대전이후 구미음악을 나름대로 소화하여 그들만의 장르를 만들었으며 그것이 비록 아시아권에 머물기는 해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아직 개성적이고 독자적인 틀이 없는 한국 가요계는 이점이 일본음악 개방에 있어서 위험요소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 언더그룹과 라이브무대의 적극적인 보급이 아쉽다.

  공연문화가 거의 없다는 거다. 이것은 대학로의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우리 나라에는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이 없다. 물론 자금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여러 곳의 음반사와 몇몇 대기업의 스폰서하에 그런 전용홀을 여러개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곳은 당연히 수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홍대앞이나 신촌근처처럼 카페나 클럽위주의 인디밴드 공연장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정부에서도 지원은 못해 줄거면 여러 가지 규제나 완화해 주었으면 한다. 일본은 수천 개의 라이브 카페가 있고, 전문화가 된 곳도 많다고 한다.(도쿄에만 천여개) 또 대기업이나 음반사, 악기업체의 주관으로 공연이 매우 활발하다고 한다.


 ㉱. 인터넷등을 통한 홍보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 나라처럼 라이브무대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에 할 수 있는 대책으로는 여러 가지 새로운 미디어를 통한 음악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전자음을 이용한 직접적인 음악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라이브무대의 효과를 간접적으로나마 내자는 것이다. 당연히 느끼는 정도는 다르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라이브장면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을 한다거나, 공연장면이 담긴 시디롬을 발매한다거나(현재 비디오를 통해서 일부 가수들만이 하고 있다.) 해서 관중들이 라이브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상품화이면서 라이브풍토 형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거라 생각한다.


 ㉲. 일본 시장 진출에 대한 희망은 밝다.

  왜냐하면 일본은 우선 시장 자체가 크고, 한국은 시장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불법복제 음반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좋은 질의 음악만 뒷받침이 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일본은 합법적으로 시디 대여점이 있지만(한국에도 몇 군데 있다고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음반판매량은 놀라운 정도다. 우리 나라 같은 경우 100만장을 팔면 거의 최고수준의 가수라 하지만 일본의 경우 싱글이 아닌 앨범 판매를 보았을 때 우리보다 큰 단위로 진행된다.(싱글=1~2곡/앨범=8~14곡 정도 넣은 음반을 의미)

  일본의 인구를 고려해 1/3으로 줄여도 10위가 73만장 가량인 것이다. 우리 나라의 국민가수라 할 수 있는 신승훈의 경우 지금까지 모든 앨범을 통틀어 1000만장이 넘었는데 한국에서는 유일하다고 한다. 반면 일본의 경우 90년대 순위 10위안의 모든 가수들이 1000만장을 넘었다.(통틀어 나온 앨범을 다 합쳐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일본 시장이 한국 가수들에게 좋은 터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뿐이다.


 ㉳. 반드시 팀의 경우, 밴드를 스스로 조직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가수의 자질문제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수의 자질이란 가창력이 첫째이고 연주실력, 작곡/작사 능력이다. 우리 나라에는 가창력만을 가진 가수가 많으며 더 많은 것은 위의 조건을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결론


  드디어 말이 많던 일본문화가 개방되었다. 물론 애니메이션, 가요, 일부 영화 등이 이미 비공식적으로 들어와 있지만, 이제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비교가 안 될 만큼 커다란 문화가 오는 것이다. 가장 타격이 큰 분야는 애니메이션과 가요분야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내가 관심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이번 조사를 하는 동안 언뜻 본 것에 의하면 일본은 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존재라고 한다. 아시아뿐이 아니라 유럽, 구미 쪽도 벌써 장악을 했다. 우리의 애니메이션이 따라가고는 있지만 그 벽의 높이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가요 분야는 약간 다른 것 같다. 수준이 비슷비슷하다. 지금같이 한쪽만 개방이 된 상태(일본에서는 한국가수들의 진출에 제한이 없다.)에서는 개방초기에 일본음악이 큰 선풍을 끌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악이 좋아서 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통신에서 내가 아는 친구들 15명 정도에게 물어본 결과, 일본음악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친구들 9명이 개방 후에 일본음악을 한번 들어볼 의향이 있다고 대답을 했다.)그런 동안 일본음악 매니아도 분명 어느 정도는 생길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한 명의 팬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나의 바램일 뿐이다. 당연히 가수들과 프로듀서 등이 잘 알아서 할 것이다. 즉 우리 나라의 가요계와 관련된 모든 종사자들이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면(아까 전에 언급한 여러 가지 노력들 등으로)그렇게 일본음악의 침투에 대하여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음악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도, 그것에 대한 배척도 무의미한 일이다. 지금은 일본과 한국, 양 나라의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일본음악이 보인다(1999,아름출판사)

일본음악 뮤직비즈니스(1998,새로운 사람들)

J.J가 온다(1998,해냄)

서동욱씨가 학교수업 발표시(현대사회의 과제) 했던 말 인용



                                                                        정리: 04 Dec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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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바이러스를 읽고

Posted 2008. 8. 21. 15:54, Filed under: Ex-Homepage/Essay

1999년 글과 삶시간의 리포트입니다..


< 서론>


  평상시에는 그다지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가끔 하는 독서도 수필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이번 독서분석에서는 어떤 책을 가지고 할지 걱정이 되었다. 무협지는 물론이고 공상과학소설, 추리소설은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있다면 초등학교 시절 때 읽은 '괴도 루팡'정도?

  처음에 생각한 것은 '퇴마록'이었다. 그것을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의 일인데 당시 '퇴마록 국내편 1권'을 읽다가 결국에는 모든 시리즈를 다 읽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중간고사를 망쳤던 기억이 난다.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내용이 희미하게 기억이 날뿐 나름대로의 분석을 하기에는 나의 능력이 부족할 것 같았다.

  다음에 떠오른 것은 읽은 지 몇 개월 밖에 안된 '드래곤 라자'였다. 이 책은 정말 긴 이야기였는데 다 읽기는 했으나 퇴마록에 비해 감동도 덜했고 그 결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역시 포기했다.

  결국 새로운 책을 선정하기 위해 서점에 갔다. 많은 책이 있었고, 난 뭐가 재미있을지 혼란스러워서 그냥 서성거리다가 나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실역에서 어떤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 어느 살벌하게 생긴 여자가 노려보는 포스터였는데 알고 보니 '링 바이러스'란 영화의 포스터였다. 그래서 도서 대여점에 가서 '링 바이러스'를 빌렸다. 재미있다는 말을 주위에서 들었었기 때문이다.


<본론>

 ㉮ 내용소개

 

   어느 기자가 동시에 발생한 어느 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다가 기자가 발견한 비디오 테이프, 그리고 그것을 본 뒤에 기자에게는 죽음의 날짜가 선고된다. 더군다나 가족들마저 그것을 보게되고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사건을 파헤쳐서 위기를 모면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친구의 도움도 받게 되지만 그 친구는 죽고 만다. 이것이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 감상1


   이 책을 다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용이 가벼우면서도 구성이 치밀하다는 것이다. 통속적인 소설을 써도 그것이 그냥 평범한 것으로 남느냐 아니면 없어서 못 파는 책이 되느냐의 차이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구성이 치밀하다는 것, 그것은 곧 작품에서 등장했던 복잡한 것들과 (독자의 머리 속에서)해결의 실마리를 엮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링'에는 그러한 장면이 꽤 있었다. 류지(사건을 같이 풀어낸 주인공의 친구)가 죽어가며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장면이나, 류지의 여제자가 아사카와에게 선생님은 양면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나의 눈이 자칫 소설의 그 페이지만에 속박되려는 순간들을 잘 막아주었다.

  '링'의 치밀한 구성이 가지는 특성중의 또다른 하나는, 감동을 주어도 오싹한 느낌을 전해준다는 점이다. 사건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은 아사카와가 낡은 우물 속에서 유골을 꺼내는 부분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배경설정(통나무집의 바닥 아래 숨겨진 폐쇄된 옛날 우물, 그리고 그 안에 있을 원한을 품고 죽은 여자의 유골)과 인물의 심리 묘사(아사카와는 류지에 비하여 겁이 많다-'하긴 그러한 상황에서는 나라도 그렇게 겁을 먹을 것이다. 읽기만 해도 오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달려서 반드시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아사카와의 마음)를 기가 막히게 해냈다.

  이 장면에서는 '혹시 이 작가 자신이 어렸을 때 혼자 우물에 들어가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두운 곳에 혼자 갇혀있을 때의 공포, 어쩌면 대도시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작가는 신선한 충격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책이라 글씨만 있다. 쉽게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여기서 쓰인 방법이 독자를 장면 자체에 '몰입'하게 한 것이다. 즉, 치밀하게 쓴 것은 소설을 전체적으로 균형있게 만들기도 했으며 클라이맥스 장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도 하는 양면의 효과를 보았다.

  퇴마록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며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즉 치밀한 구성도 돋보였지만 그것보다는 내용전개의 탄탄함과 액션 장면의 적절한 묘사, 등장인물의 개성 등이 재미의 주원인이었다. 반면 링은 내용이 탄탄하기  보다는 소재가 참신한 점을 들 수 있고, 액션 장면보다는 순차적인 과정을 통한 긴박감 있는 전개가 돋보였다.

  한편 이 소설에는 다른 소설들과도 형식상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인용부호가 거의 없었다. 생각을 하는 부분은 거의 다 그냥 '한 줄띄우고 쓰는 식'이었다. 또 말 줄임표가 자주 등장했다. 그것도 문장의 끝이 아닌 중간에(즉 화자가 생각 중이란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은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독자가 마치 자신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쉽게 내용에 빠지게 되는 주 요인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서술 방식의 장점이 아닐까?(그렇게 쓰여진 많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링을 읽고서 그렇게 직접 느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글을 쓰는 능력뿐이 아니라 읽는 사람에 대한 이와 같은 배려가 '링'을 베스트셀러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설사 그것이 한국 측에서 있었던 번역상의 오류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이다)


 ㉰ 감상2


 작가는(주로 류지의 발언을 통하여)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잊고 있거나, 선입관에 빠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한 장면들이 곳곳에 있기에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 소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그러한 말들 중에 주관적으로 10군데를 골라 보았다.


   ㉠ "나는 인류가 멸망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

(아쉽게도 류지는 평상시에 이렇게 말을 하지만 자신이 먼저 죽고 만다.)


   ㉡ "너 무섭지 않냐?"

      "무서워? 그 반대다. 기한이 정해지다니 재미있잖아? 벌은 죽음.....좋았어. 목숨걸기가 아니면 놀이가 재미없어지지."

      (기한이 정해지면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나에게도 이제 80년 정도가 남았다.)

   ㉢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승객들은 모두 자신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는 법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급한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대응하는 것, 이것이 현대와 같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사회-특히 우리 나라 같은 곳에서 끝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 "알잖아. 하늘을 나는 꿈이야. 난 하늘을 나는 꿈을 제일 좋아한단 말야."

      (나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방종이 아닌 자유...그것을 이루는 지의 여부는 나 자신이 얼마나 세상과 타협하지 않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 "근원적인 공포심, 그건 인간의 본능 가운데 이미 짜 넣어져 있는 거야."

      (공포심이 없다면 이미 세상에 없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공포심이 없는 세상? 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스크림'같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삶 자체가 많이 시들해질 것이다. 나는 가끔 느끼는 오싹함 속에서 생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 "상반되는 것들 모두가 그 근원에 있어서는 동일했을지도 몰라."

      (진정 다른 것은 무엇이 있을 수 있지?)


   ㉦ "악마는 말야, 늘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구. (중략) 하지마 말야, 악마는 결코 인간을 사멸로 몰아넣는 일은 없어. 어째서냐...인간이 없으면 놈들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인간과 악마의 싸움...언뜻 보면 악마가 훨씬 우세해 보인다. 그러나 언뜻 보지 않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신이 개입을 했다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그것에는 신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라는 강력한 방어체를 설정한 인간들 자신에게 더 힘이 있다고 보는 것이 지금은 교회를 나가고 있지 않은 나의 심정이다. 인간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지만, 그래도 역시 인간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나의 최후의 목표이다.)


  ㉧ "야, 잘 생각해봐. 우리의 장래에는 말야, 확실한 것 따윈 아무 것도 없어. 늘 애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래도 넌 살아가겠지. 애매하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생명활동을 정리시킬 수는 없어. 가능성의 문제다."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몇 개 안돼는 절대적인 사실이면서, 우리에게 삶의 순간 순간을 치열하게 살도록 해주는 각성제일 거다. 내일도 해는 뜨겠지? 그러나 그 해의 아래에 있는 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그 날만의 나일 것이다. 가능성의 문제에 점령당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지배하느냐는 개인에게 달렸다고 본다.)


   ㉨ "싸우지 않고 인생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구."

      (무서운 개를 만나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下책으로 대응을 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인생이란 것이 가장 그렇지 않나 한다. 언제나 안전한 길을 가는 것. 편한 것이고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번뿐인 삶의 시간에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며 후회하지 않을 삶일 것이다. 아쉽게도 영원히 안전한 길은 없다.)

 

   ㉩ "괜찮아. 이 안에는 아무 것도 없어. 네게 있어 최대의 적은 그 빈약한 상상력이야."

       (상상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이성을 자신의 이성친구로 만들 수도 있으며 그 작은 머리 속에서 세상은 멸망시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지 생각이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상상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상상력과 의지가 만나서 이루는 것, 그것이 한 개인의 인생이 아닐까?)


<결론>


  물론 이 책도 나에게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내용의 전개에 있어서 작가가 의도한 구성대로만 읽어준다면 척척 들어맞지만, 한두 마디씩 토를 달면 걸리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류지가 눈을 깜빡이는 속도를 연관시켜 비디오 테이프의 의미를 눈치채는 장면은(그 전까지 류지의 비범함을 아무리 강조하고, 직관에 의한 것임을 명시했다고 해도) 도무지 개연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또 비디오 테이프를 본 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그대로 남겨 둔 아이들이 테이프의 마지막 부분에 녹화를 한 장면도 약간 의문이 갔다. 녹화를 했다면 마지막 이후거나 맨 처음부터 해야 상식적이지 않을까? 왜 하필 딱 그 부분만 지워졌을까?(이 부분이 없다면 소설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재미가 떨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퇴마록은 그렇지 않았는데, 링은 나에게 '글을 쓰고 싶다'는 웃긴 충동까지 일으켰다. 참신한 소재와 획기적인 구성에 어느 정도의 필력만 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오만함이 생길 정도로 이 글은 가볍다. 그리고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가벼움 뒤의 오싹함을 즐겼다.

  책에는 사람을 흡수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그리고 깊게 빨아 들이냐는 것이다. 내가 많은 독서를 하지 않아서인지 지금껏 이러한 (가벼운)감동으로 나를 몰입시켰던 책은 퇴마록과 '하늘이여 땅이여' 이후 세 번째이다. 가끔씩은 이렇게 책에 갇혀 지내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배두나(링 포스터의 노려보는 배우 이름)의 눈빛이 아무리 귀신같아도 지그시 다가오는 글자들이 창출해 내는 스릴에는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리: 04 Dec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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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유럽여행 가기 직전에

Posted 2008. 8. 21. 15:53, Filed under: Ex-Homepage/Essay

2000년 7월 4일 오후 11시 11분

 사실 여행을 가기로 완벽하게(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손 치더라도) 마음먹은 날은 오늘이 아니다. 이미 난 병무청에도 다녀왔고, 삼성역의 공항버스터미널에도 갔다왔고 결국 그러한 결과로 여권도 만들었다. 단수여권! 이제 9월 15일에 군대에 가는 나로써는 이 여권이 가지는 의미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 여권은 명칭 그대로 한번의 여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여행을 허가해주는 기간 또한 발행일로부터 1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행은 그 여권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정말 단순한 논리뿐만이 아니라 태어나서 외국에는 가본적은 있지만 여행을 한적은 없는 한국토박이의 결정적인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 수월하게 여권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약 2주전에 난 집에서 무척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병무청에 드나들었다.(엄마손백화점에서 출발하여 바로 병무청 앞까지 가는 33-1번 버스는 한번에 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잠을 계속 자도, 결코 쉽게 갈 수 없을만큼의 거리에 있다는 단점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수속방법을 잘 몰랐던 내 잘못이긴 하지만, 확실히 군미필의 한국의 남아가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그리 '절차상'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보증을 흔쾌히 승낙해 주신 작은고모/고모부께 감사드린다.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될 비행기표 예매! 나와 함께 할 일행 둘은 지금 몇 가지 경우에 대비하여 예약/대기 중이다. 결국에 하나는 걸리겠지만, 우리가 의도한 것에 가깝게 걸릴수록 우리는 더 싸게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간절히 'Cathy Pacific'을 바라고 있다.(그래야 경유지인 홍콩에서 약간의 휴식을..^^)

  지금은 약간, 아주 약간 경사스런 시간이다. 왜냐하면 일주일전부터 해왔던 배낭여행 사이트검색의 반이 완성되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난 처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검색엔진인 심마니(http://www.simmani.com)에 가서 검색어로 '배낭여행'을 입력했다. 그 결과 나온 사이트의 수는 총 563개. 그렇다 그 중에는 분명히 허접한 것들도 아주 많을 것이며, 이미 폐쇄된 사이트도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마우스클릭과 나의 감(feeling)을 믿을 수밖에..그 후로 오늘까지 내가 '즐겨찾기'에 지정해 둔 사이트는 56개이다. 필터링의 기준은 우선 사이트의 주소와 안내 그리고 타이틀란에 여행사의 조짐이 보이는 곳은 무조건 제외시켰다. 그리고 핵심단어군에서 유럽이 나타나있지 않으면 제외시켰다. 그래서 아마 그 많은 수를 이런 단기간에 1차정리 할 수 있었나 보다.

  이제는 2차검색이다. 즉, 내가 즐겨찾기를 해놓은 곳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아서 걸러 내어서 나의 지식으로 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아마도 더 힘든 작업이겠지만 그래도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한 사전준비를 철저히 한 만큼 내가 느낄 수 있는 꺼리가 더 많다는 많은 경험자들의 조언을 토대로 용기를 가지려고 한다. 주로 보아야 할 것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사이트의 특성이 '느낌'위주인가 아니면 '정보'위주인가 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민박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의 경우 그것은 느낌은 거의 없고 오직 하우스에 대한 가격과 지리정보, 그리고 예약시스템의 홍보에 열을 올릴 뿐이다. 정반대로 'XX의 홈페이지', 'YY의 유럽여행' 등과 같은 사이트는 멋진 곳들(가끔은 유명하지 않으면서도 멋진 곳을 알려주기도 하는 샘터같은 존재이다.)을 알려주기도 하고, 여행팁에 관해서 주로 알려준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일행과 같은 초보여행자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낯선 땅, 그곳은 무서운 곳이다. 하지만 두가지 방면의 준비! 즉 앞서 언급했던 '느낌'과 '정보'에 대한 깊은 대비가 있다면 우리의 여행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기에 난 조사에 있어서 더욱 흥분되는 것이다.

2000년 7월 7일

 

  오늘밤도 여전히 나는 내가 즐겨찾기에 추가해 놓은 배낭여행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다. 훗, 그러고 보니 오늘이 7월7일이군...칠월칠석날! 맞나?

  지금은 내 방의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서(더 정확히는 믿었던 모뎀에 배신당하여) 형의 방에 아주 길게 모뎀선을 연결하여 인터넷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너무나 불안한 관계로 할 수 없이 나는 프로그램을 아주 조심조심 열고 있으며, 사이트도 5개 이상은 무리가 있다. 쩝..ADSL을 까는데 한달이나 걸리다니..

  하루 종일 너무나 더웠는데 어제는 더군다나 우리 집의 배란다를 고치는 마지막날이어서 정말 어머니와 함께 힘들게 보냈다. 그것도 주로 식사를 과일로 간단하게 때웠기 때문에 오후에는 기진맥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더웠으나 피곤했고 그러한 나머지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걷기가 힘들었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을까? 어쨌거나 어머니와 난 해냈고, 그 결과 저녁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

  주로 야심한 시각의 생각이 극단적일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주로 낮에 돌이켜 보건데 나 스스로가 자신의 경솔했던 생각의 치우침을 재미있게 느끼곤 하는 것 같다. 어제 새벽에도 그랬는데 이상하게 그것은 오늘 낮에도 그리고 오후에도 항상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생각해보지만 아마도 그건 단순한 순간의 느낌이 아닌, 내가 오래도록 간직해 왔지만 꺼내는 것이 매우 힘겨웠던 슬픔의 결정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슬픔에 대한 강력한 회피가 있었던 지난 몇 년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느꼈던 괴로움이란 지금의 내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후후..그것조차 추억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내 멋대로 상황설정하고 상상하고 단정짓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러한 경솔함의 결과는 참담할 수도 있기에 이번에는 담담하게 상황을 바라보려 한다.(어떠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 순간의 결정만은 나 조차 어찌할 수 없겠지만 뭐..)

  기다림에서 그리움으로 전개되는 순간! 누군가 그러더군...기다림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리움은 영원하다고..그 말을 어디서 꺼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어란 것이 정말 오묘한게 생각을 끄집어 내면 다 그게 맞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내가 결코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니다. 사랑을 직접 하고 있는 사람이 항상 사랑을 아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의 내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에 대한 나의 알게 모르게 쌓여있는 기대감이 언젠가 나타날 현실적인 결과물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외국 배낭여행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홀로 다니는 여행에 대하여 극찬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연히 홀로여행의 장점을 쫙 나열했구 말이다. 난 현재 나 이외에 2명과 함께 할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단점이 있을 것이구(홀로여행의 단점과 같이..) 난 그것을 최대한 막으면서 장점을 살리려고 한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텐데...하긴 나 역시 홀로 여행에 대한 두려움 못지 않게 동경도 강하다.

  현재의 상황은 별 기대도 되지 않는다. 그냥 담담하다. 아직 비행기표가 확정되지 않아서 그런가? 느낌이 없는 것이다. 내가 나간다 그것도 유럽으로~ 말로만 듣던 배낭여행을 군대에 가기 전에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바로 이렇게 그저께 한말이 지금은 그저 담담할 뿐이다. 더위와 습한 기운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일 서점에 갈 수 있다면 그러한 막연함을 조금은 치료할 수 있겠지? 오태호의 노래가 듣고 싶다...

2000년 7월 7일

 

  왠지 모르게 7/7이 좋다는 어제의 느낌을 되살리며 지금 현재 8일임에도 7일자 일기를 써본다. 점차 시간이 흘러 갈수록 나의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어간다. 내가 잘못한 수많은 일들을 알고 있어서 일까? 난 지금의 상황에 만족없는 흡족함을 느끼면서 어느 정도는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불쌍한 신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나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기를 쓴다. 그렇지만 당연히 지금까지 웹서핑을 하고 왔다. 겨우겨우 초창기에 찾아놓은 북마크를 정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한 사이트를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좀 힘들었던 것은 그냥 페이지가 아닌 링크사이트를 찾았을 경우이다. 그럴 경우는 참 난감하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랴? 하나하나 찾아가봐야지...

  마지막 부분의 링크에는 외국사이트들이 많이 나왔다. 그것도 여행포탈사이트나 검색사이트가 말이다. 영어는 된다손 치더라도 그 많은 나라(약 4~5개국)의 많은 도시들을 어떻게 다 검색한단 말인가!(시간을 주면 가능하겠지..) 그렇게 일?을 보던 도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는 일행은 3명인데 지금의 정보검색을 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가기도 전에 우리 사이에 금이 간 것은 아니고, 그냥 왠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주 조금 억울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럴 정도로 꽤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메모를 보냈다. 현재 하고 있는 과정을 알려달라고 말이다. 내일쯤이면 답변이 오겠지? 내방의 사정상 형방에서 어렵게 어렵게 통신을 하는 나도 이렇게 하는데...

  오늘 약간 충동구매격을오 몇가지 문화용품?을 샀다. 우선 롯데월드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했다. 원래 서점의 책이란 찾기 힘들기 마련인 것 같다. 학교 서점에서도 그랬고 세종문고, 교보문고(여긴 조금 낫다)에서도 그랬다. 개인적인 일이라 하기엔 서점의 분류체계가 문제가 많다. 특히 지리상 가장 효율적인 세종문고의 경우 단말기의 정보만을 가지고 책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교내서점도 매한가지임!)

  모든 경우를 망라한다 해도 한가지 딱! 그날의 책을 고를 수 있는 경우가 아주 가끔은 있다.(이런 말을 하니 내가 서점-다니기-매니아처럼 느껴진다. 하긴..나 정도면 매니아는 매니아지!) 오늘도 신간서적부분을 배회하다 책을 발견했다. 그런데 아마도 서점의 무리들은 그 책이 인기가 없을 줄 알았나보다. 흔히 신간은 제목이 잘 보이도록 딱하니 눕혀 두는데 그 책은 옆으로 세워놓았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가? 책을 꺼내서 검색했다. 여기서 잠깐! 예전에는 책을 볼땐 머리말을 먼저 보곤했으나 이젠 책의 가격을 먼저 보곤한다. 훗..조금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긴 그랬으니 망정이지 자칫 별 쓸데없는 책을 마구 사들일 수도 있을테니..

  결국 한권 샀다. 소크라테스와 헤르만헤세의 점심..이란 책이다. 제목이 재미있다고? 훗훗 그런데 내용은 그다지 만만하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충동구매한 것은 아니다. 얼마전에 중앙일보의 서평에 나왔던 책이다. 그 글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헤르만헤세를 철학과 문학에서의 최고의 지성이라고 판단했었다.(내 개인적으로 아는 선배의 말에 의하면 그건 지극히 주관적이라나 모라나~^^)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소크라테스는 잘 모르고, 헤세는 아예 모르기 때문에....

  집에 오는 길에 음반가게에 들렀다. 형식적인 인사처럼 물어보았던 말 '장미정원 나왔어요?' 그렇다. 드디어 나왔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답변이었지만 너무나 기뻤다. 그리곤 하나 더 찾았다.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란 곡이 들어있는 음반을 찾고 있어다. 내가 그 팝송(재즈..)을 불러보려고 말이다~^^ 그래서 그 음반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평범해 보이는 누나(나보고 오빠란다! 다음에 꼭 물어봐야지..)가 옴니버스 앨범을 추천해 주었다. 난 옴니버스는 안사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샀다. 그런데 알고보니 오늘은 그 두앨범을 삼으로인해 15개의 쿠폰이 찍히는 날이다. 그래서 하나를 더 얻어야 했다. 그 누나는 많은 앨범을 추천해주셨지만, 난 쉽사리 고를 수 없었다. 훗훗..이런 경우는 참..기쁘면서..

  결국 류이치사카모토의 신보를 샀다. 약 15분 정도의 포만감을 그렇게 마감하면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아~그러고 보니 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아직 다 읽으려면 3일은 걸릴텐데..그리고 음반을 3개나 샀으니 이제 그걸 언제 다 음미해야 하나..(언젠가 다 이루어지겠지만..이것 역시 배부른 소리인가?^^)

  아직은 분주함을 느끼지 못하는 여행준비이다. 그래서 일기가 여행에 관한 것보다는 일상적인 것이 많다. 그래,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2000년 7월 27일 새벽..

 

  정말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어제 드디어 항공권유레일패스를 완결지었다. 항공권은 케세이 퍼시픽이고 유레일패스는 21일것으로 했다. 사실 케세이 퍼시픽보다는 15만원이 싸다고 생각했었던 싱가포르항공을 원했으나 다시 들어보니 90만원, 즉 5만원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았고 또 확실히 된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홍콩의 비행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유레일패스도 정말 15일것으로 끊어서 약100불정도를 아껴보려 했지만 꽤 고심한 끝에 21일것으로 끊었다. 여행에 대한 주관적인 책임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부모님께 미안함과 함께 그 이상의 고마움을 느꼈다.

  어제 비행기표를 확인하러 강남역근처의 여행사에 가기 전에 정욱형, 태현이와 함께 동대문에서 배낭도 사고 모자와 선글라스도 샀다. 충동구매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해도 사실 필요한 것을 산 것이다. 하지만 모자를 쓰고 다닐 수 있을지는 참 의문이 든다. 내가 산 모자중에 아마 가장 멋진 모자가 아닐까 싶다. 배낭은 내가 선호하는 상표를 샀다. 하지만 조금 작은 느낌이 든다. 후후 그래도 짐을 조금 넣으면 될테지..그리고 내가 그 가방을 나중에도 쓸 생각을 한다면~^^

  오늘은 마그넷에 큰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사실 별 볼일없었다. 어떻게 손전등하나 없을 수가 있을까? 결국 마그넷에서는 껌5통만 달랑 샀다. 헤헤..그리고 정작 필요한 것은 동네에서 샀다. 다이어리 속지, 자물쇠, 손전등(손전등이 자물쇠와 함께 가장 마음에 든다)

  이제 내일 모레면 출발이다. 금요일날 출발하는 것이다. 정욱이 형은 목요일날 가셔서 우리와 하루 늦게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약간 걱정이다. 왜냐하면 정욱형과의 접선장소인 샤를 드골 에뜨와르?라는 역이 매우 큰(우리나라의 서울역과 같은) 광장이라 하기때문에..물론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기로 했지만 과연 이메일을 내가 확인을 하고 갈 수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쩝...

  지금의 심정은 잘 모르겠다. 우선적으로 서울은 덥다. 그리고 내방도 덥다. 더울때는 흔히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던데..맞나?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의 심정은 엠티가기전과 비슷한 마음이다. 내가 이렇게 여유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나? 참 기쁘다. 왜냐하면 일주일 정도 전에만 해도 많이 불안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나가보는 유럽, 그리고 외국인들! 하지만 지금은 편하다. 그래 그곳도 사람사는 곳이다.

  이제는 몸관리를 잘 해야겠다. 최근에 아침을 먹고 배가 아픈적이 꽤 있어서 약간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나아지는 기분이다. 내일도 바쁜 하루가 되겠지? 여권에 대한 여러 가지 대비도 하고 복사본도 만들고 하면서 하루가 가겠지 후후..하지만 이제 시작이니 난 절대 굳히지 않으리..

2000년7월28일새벽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드디어 오늘 떠나는 것이다. 준비는 거의 끝났다. 준비의 완료란 있을 수 없기에...

이제 자야한다..후후..

 

글이 짧다고 아쉬워마라..난 더 이상 할말이 없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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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2

Posted 2008. 8. 21. 15:52, Filed under: Ex-Homepage/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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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Posted 2008. 8. 21. 15:52,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오늘은 A표 안경을 꺼내세요..난 그것을 통해 당신을

보겠어요..매우 흐릿하게 보이지만 난 아무 상관없답

니다. 내가 단지 A로 볼 뿐이지 오늘 역시 단정스런 보

라색 상하의를 입고 있는 당신이 달라지지는 않을 테

니까요...

  그러다가 언젠가 난 B의 안경을 꺼내 쓸 것입니다. 그

리곤 다시 당신을 찾을 겁니다. 그때는 당신 역시 A를 통

했던 그 느낌 그대로일 수는 없을지 몰라도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그 눈빛 하나만은 영원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기쁘답니다...

  마지막에 나의 시력이 소멸하는 그 날이 온다해도 난, 차

분히 실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때라 할지라도 나의 온 마음

의 눈까지 뭉쳐뭉쳐 오로지 당신 가운데 한 빛을 보겠습니

다...그것이 당신에 대한 배려일 테니까요...

  그렇게 당신을...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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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생긴 일

Posted 2008. 8. 21. 15:51,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오늘의 일기..


1999년 10월 25일..

제목: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P.M. 4시 40분 무렵, 나는 두가지 가능성 때문에 꽤 고심했다.

이 수업이 끝날 예정인 4시 50분에.. 집으로 갈건지 학교 도서관

으로 갈건지. 물론 오늘 오전과 오후에 걸쳐본 마지막 시험을 기

하여 99년 가을의 중간고사는 일단락 되었지만, 오늘의 것을 포

함해서 그 동안의 것들 또한 결과에 썩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서관

을 갈까 했던 것이다.

  내 머리에선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지금 집에 가면 맛없는

저녁식사와 내 나약한 의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간다면 이따가 (아마도) 밤에 집에 돌아갈 때 아파트 입구에서

파는 닭꼬치와 오뎅, 특히 오뎅국물을 먹을 수 있다. 이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최근 2번이나 이러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물론

먹는 것만!) 이 생각은 나에게 도서관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오전에 버거킹에서 먹었던 블랙커피 한잔이 방어에 나섰다.

왠지 모르게 커피는 효과적이다. 그것이 설사 플라시보효과라 할지

라도 말이다. 연속된 두 수업때 상당히 머리가 아팠다. 커피만 아니었

어도 졸았을 것이다. 고마우건지 안 고마운 건지 결국엔 계속 깨어

있었고 동시에 머리가 아팠다...

  지하철에서의 잠은 달콤하다. (물론 그 잠에서 깨면 80% 정도는 몸

이 뻑적지근~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선 가끔 나의 학교가 잠실이

아닌 신촌에 있단 점에 고맙다. 신촌과 홍대입구 사이에 지진이라도

나서 철로가 끊긴다면 '지하철에 앉으려는 나'에겐 금상첨화겠지만

그래도 좀 덜 늦은 오후시간대엔 신촌에서 줄만 잘 서면 대게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러했다. 마침 지하철 표를 체크했을 때 열차가 떠난 것이다.

환상의 타이밍 중 한 경우다. 지금 내려가면 아마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역시 그랬다..

  우선 지하철 타는 곳으로 내려오면 나는 더 분주해진다. 왜냐하면 아직

각 라인의 선두가 없는 곳에 줄을 서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경우는

라인이 빈 곳이 많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되도록 이면 계단 근처에선

멀어져야 한다. 사람이 행여나 내리면 자리를 놓칠 수 있다. 설사 신촌이라

해도 말이다.(아줌마 정신!)

  어쨌든 오늘도 난 자리에 앉았다. 제일 좋다는 끝자리로 말이다. 이제 달

콤하게 잠만 자면 되는 것이다. 와~

  이미 내가 이 글을 쓸 때부터 짐작을 했겠지만, 단 3정거장을 스치는 동안

눈만 감고 있었다. 흠..정말이다.(이글은 지하철 안에서 쓰는 중이다..)

  신촌에서 이대까지 가는 동안 잠이 못 든 것은 내 잘못이다. 커피효과와 자리

를 잡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조금전까지 움직였기 때문인지 잠이

안왔다. 그래서 책을 보았다. 약 2정거장을 지나자 조금씩 눈꺼풀에 반응이

왔다. 그래서 책을 집어넣고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붙였다. 이제 입만 벌어지

지 않게 조심한다면 그리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잠실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을지로 입구부터였다. 문이 열리고 몇몇 승객이 올라탔다. 그런데 갑자

기 안내방송에서 신호정지로 인해 잠시 멈춘다고 했고, 그 잠시동안 꽤 많은

(아마도 '잠시가 아닌 때보다도 더 많은')수의 승객이 지하철에 올랐다. 안전

운행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고 난 투덜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 앞과 옆에 서신 아주머니 두분! 아주머니라기 보

다는 할머니에 더 가까운 듯 했다. 난 망설였다. 평상시 같았으면 곧바로 자리를

양보했겠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했다. 또 망설였다. 그리곤 결심했다. 한양대 입

구에서 난 이 자리를 뜨리라...

  그런데 돌발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내 조금전의 결심을 비웃듯 내 바로 앞에

서계신 아주머니는 나를 원망스런 눈빛 또는 ' 젊은 것이 자리에 앉아있냐!'란

듯한 얼굴로 나를 보고 계신 것이다. (여기까지 나의 생각) 일련의 보고 느

낀 바에 의하여 난 동대문 운동장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아주머니의

붉은 립스틱까지 눈에 거슬렸다..

  또 다른 일도 있었다. 검은색 핸드백을 가지고 계셨던 아주머니, 난 당신께 자

리를 양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터치(두 번 손으로 쳐서 불렀건만)에도 불구

하고 그 아주머니는 내 왼쪽에 서계셨다. 그리곤 동시에 핸드백을 내 어깨와

머리에 올려놓듯 기대었다. 곧 눈치를 채면 치우리라 했건만 그 아주머니께서는

오히려 당신의 엉덩이까지 내쪽으로 더 밀어넣으셨다. 난 몸을 옆으로 최대한 비

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순간 내가 자리를 양보했으면 좀 나아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엔 내가 당한 일이 너무 불쾌했다. 때마침 안내방송으로 '승객에게 불편한

행위를 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나왔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립스틱 아주머니와 핸드백 아주머니와의 밀고 밀리는 신경전 끝에 결국 립스틱

아주머니는 내 맞은편 좌석에 앉고 핸드백 아주머니는 성내역에서 내리셨다. 결국

잠실에 왔지만 난 머리가 더 아파온다. 그냥 아파트 입구에서 꼬치하고 오뎅이나

먹어야겠다.

오늘의 느낀점: 1. 난 너무 사소한 것을 확대해석한다.

                      2. 난 양보심이 별로다.

                      3. 난 너무 자주 머리가 아프고, 그러나 그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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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연인

Posted 2008. 8. 21. 15:50, Filed under: Ex-Homepage/Essay

몰랐으면 하는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의 기분이 드는군요...

사람의 상상력은 매우 위험한 것 같군요...

특히 집요한 사람의 것은 더욱더...

지금은 박스가 되어...창고에 차곡 차곡 쌓여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아주 조용히 말입니다...

마음의 상처는...치유될 수는 있지만 완쾌는 될 수 없다고 하더

군요...그런 격이네요...아직까지 입원중인 거라고 봅니다...

언제 밝게 퇴원을 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학교에 있는 동산에 가면...기다란 의자가 몇 개...둥그런 의자가

두개...그리고 돌로된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어제는 긴 의자, 오늘

은 돌로된 의자에 앉았습니다...

툭...툭...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인가 봅니다...

하나 줏어보니...참 단단하게 생겼더군요...그리고 그 안도...

도토리가 떨어진다는 것은...나무로부터 독립을 하는겁니다...

우선 떨어지는 것은, 도토리가 아닌...정확히는 도토리를 감싸고 있는

뚜껑부분입니다...그 뚜껑이 덮어진 채 도토리는 낙하하는 것입니다...

때맞춰 아래에 있는 많은 자갈들에 의해서...그 뚜껑은 분리가 됩니다..

제가 본 8개의 '추락도토리'에 의하면...대부분이 뚜껑과 도토리는 정 반

대 방향으로 튀더군요...일년여 동안 꼭 붙어서 지내온 그 둘이 왜 정반

대로 가야하는지...알 수는 없지만 알고 싶지 않습니다...

하필 제 앞에 하나가 굴러왔습니다...이미 3~4명의 자갈과 인사를 나누었는

지...깨끗한 겉이 많이 다쳐있더군요...

혹시 그것 아시나요? 도토리 머리는 대머리인거...

하얀 대머리이죠...하얀...

볼펜을 꺼내서 그 위에 숫자를 적었습니다...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더불어 날짜도 적었습니다...

"너에게 이 선물을 주기로 마음먹은 날이 바로 오늘 이란다..."

...운이 좋게도...한번에 쓰여지더군요...

오로지 하나만 생각했다가...다른 것도 주웠습니다...마구..순차적으로...

줍는 즉시 번호를 매겼습니다...옆에서 비닐봉

지를 들고 도토리를 주으시던...파마머리 아주머니께서 인상을 쓰셨습니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다 이겁니다...무서웠습니다...그래서 안경을 썼습니

다...바로 아주머니 옆에 있던 한놈을 잽싸게 집었습니다...승리의 미소...

"넌 다행인줄 알아라...묵대신 선물이 될 것이야..."

...그 날 저녁...어머니께 들은 바에 의하면...저의 의도와 달리 도토리는

경제적인 가치는 없다고 하더군요...거의 대부분...믹서기로 갈아서...묵을

만드다고 하셨습니다...

7까지 쓰자...번호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8이란 숫자가 있다는

사실은 물론 압니다...하지만 8번째 도토리는 싫었습니다...이유는 없습니다

...7이 행운의 숫자라고 믿었었던 무의식이 작용을 했는지도 모르지만요...

그 날의 하이라이트는...

머리가 있는 도토리였습니다...추락의 아픔에도 꿋꿋하게 헤어지지 않았던

그 하나의 도토리...처음 본 순간 생각나는 것은 제가 과외를 하는 학생의

머리였습니다...물론 그 학생이 그러한 머리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했다간...

정학감이지만요...사실 그 학생의 머리가 도토리 비슷하거든요...

앞으로 한번 만날 것이라 예상되는 그 학생에게 마지막으로 별명을...

맨발대신 도토리도 붙여주고 싶습니다...

"여기에 눈을 그리면...선물로 제격이겠어..."

잠시 눈이 확 뜨이더군요...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이 둘..이 천생연분인

이 둘을 어떻게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갈 것인지가요...

최종 도토리가드는 주머니를 제치고...필통이 되었습니다...그 날밤...

저는 도토리가 들어있는 필통을 잠시 잊고...도토리 연인을 빼주지 않았습니

다...다음날 아침...무지 흔들리는 필통속에서...그 연인은 눈물의 이별을

했습니다...저의 잘못입니다...제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그래서 차마

뚜껑...아니 머리카락 부분을 버리지 못했습니다...헤어지자 전혀 다른 뚜껑

과 다른 바 없던 그것을...저는 주머니에 계속 가지고 다녔습니다..오늘 하

루 종일 말입니다...계속 울더군요...가루가 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한번 정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어느 뚜껑을 찾더라도...그리고 어떠한

도토리에 그것을 끼워 맞추더라도...잘 맞습니다...아니...그 둘은 서로 관

심조차 없을지도..혹은 서로 예전에 원수 지간이었다 해도..우리의 인식으론

알 수가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천생연분이었다고 믿어지는 그 하나가 있을 수 있습니다...겉으론

다른 것들과 다를 바 없지만...겉이 아닌 것으로 느끼는 그 뭔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마치 인간처럼...

가방 앞의 작은 보조 주머니..속에는 이름 없는 도토리가 몇개 있습니다...

그리고 1부터 7까지 숫자가 적힌 도토리가 있습니다...그리고 주머니엔...

헤어진 연인이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얼마 정도까진 그 싱그러움을 그대로 간직할 것만 같은 도토

리 가족들...(나의 마음이 들어간 그 순간부터 제 가족입니다...)

저는 이것을 누군가에게 선물할 예정입니다...갯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

에...조금씩 조금씩 해야겠지요...이미 번호없던 하나는...선물이 되었습니

다...그 도토리 소년에게 주었지요...다음주 월요일부터 중간고사를 본다고

그래서요...제가 물었습니다...

"부적을 믿니?"

"네"

...이거 부적이야...

제가 머리 부분에 도토리 군의 이름을 썼습니다...그리곤 지우개로 지웠습니

다...물론 도토리 신이 도토리 군을 도와주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그러

기엔 도토리 신의 파워가 너무 약하거든요...

도토리의 신선함도 한계가 있습니다...회귀...

언젠가 헤어질때를 알아야 하는거...할 수 없지만 해야하는거...그것이 이별

이라고 봅니다...마치 사람처럼...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

착하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아름다운 어리석음이라 생각합니다...

도토리의 차가운 매력 또한...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도토리를 다음에 받을 주자는 강아지입니다...대가 없는 사랑...그리고 바보

사랑을 주는 나의 강아지...나도 한마리 강아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도 오

늘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잠시 생각했습니다...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나 보네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난 할꺼야라고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잠시 그 말을

잊고 살지만...다시 생각이 나면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일은 진행중이라고 생각합니다...왜햐나면...습작이란 것

이 있기때문이지요...

혹시 도토리 나무 아래에 있는...여러 가지 잡다한 것을 보셨는지...

제가 오늘 본 바에 의하면...고운 모래에 약간은 거칠은 황토흙...거기에

더해져 있는 인위적으로 떨어졌을 것만 같은 변색된 나뭇잎 몇개...또 그 위

를 힘차게 걸어가는 개미들...아...나뭇가지 몇조각을 빼먹을 뻔 했군요...

그러한 것들을 보자 갑자기 보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디지털 카

메라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하지만 지금 몇줄의 글로

인해 다시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군요...그렇군요..오히려 이것이 더 나을런

지도 모르겠네요...다시는 볼 수 없는 그 모습을 영원히 그 한순간의 기억필

름으로 새겨두는 것이...그것을 잊기 바로 직전까지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거리란 반드시 필요한...슬프게도 필요한...아쉽게도 필요한 것이겠지요...

아직 그 거리를 만들기엔 제가 너무나 연약하다고 느껴집니다...그래서 강아

지가 부럽고...도토리 연인이 부러웠던 겁니다...

                                                            ..........1999/10/01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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