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 나비소녀

Posted 2008. 8. 22. 02:26, Filed under: Ex-Homepage/Essay

지하철을 타면 즐겁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 달라는 간단한 멘트 뒤에 나는 그저 전동차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된다. 타는 방향만 제대로라면 이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된다. 조금 운이 좋다면 자리에 앉아 주위의 풍경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운이 좋은가보다. 지하철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내 앞의 아주머니가 약속한 듯 일어서신다. 어차피 잠실에서 신촌까지라면 새우잠을 3번은 잘 수 있는 거리기에 잽싸게 엉덩이를 틈새로 비집어 넣고 자연스레 눈을 감는다. 이제 눈감은 나를 싸구려 도시락처럼 지하철은 배달해 주겠지?



 "이번 역은 신천, 신천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아뿔싸. 그러고 보니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탔다. 최악의 경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어차피 신촌까지 가긴 간다고 위로한다. 뭐 한 번 더 비몽사몽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말이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릴 제품은……."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서일까? 이상하게 잠들만하면 잡상인의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이럴 때는 급하게 나오느라 MP3 플레이어를 빠뜨리고 온 것이 정말 후회된다. 광고에선 가끔 이럴 때 옆 좌석의 미녀와 함께 음악을 듣곤 하지만 냉엄한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그냥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땀에 반쯤 와이셔츠가 젖은 아저씨가 어서 내려주기를 속으로 바랄 뿐이다. 어느새 그의 호흡에 맞춰 조금이라도 덜 부대끼려 노력하는 내 숨소리가 처량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시간도 많았는데 차라리 막노동판에서 한건 하고 올라올 껄 그랬나보다. 피로에 절어 지하철에 탔다면 적어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도 잠을 잘 수 있었을 텐데.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뭐지 이건?'



 이번에 객실로 들어온 잡상인은 조금 전의 싸구려 반창고를 파는 사람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아 보였다. 그렇다면 예순을 넘었을 나이인데, 지금까지 이렇게 처절하게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단 말인가?



 '말세로군.'



 "저에겐 금지옥엽 같은 손녀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의사선생님들도 원인을 잘 몰라 고치기가 불가능한 불치병에 걸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신촌이면 내가 가는 곳하고 비슷하네?'



 "그런데 그 아이가“


 흔히 그렇듯 이런 레퍼토리에는 인터벌이 있기 마련이다.



 “건강했으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을 그 아이가 얼마 전에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세상이 다 그렇지 뭐. 어릴 때 알면 차라리 낫지 않나? 죽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를 때 죽는다면 적어도 아픔 겪을 일도 별로 없지 않나? 세상의 단맛, 쓴맛도 모르는 편이 나을 수도.'



 남의 이야기라 그랬는지 나의 머릿속에서 회의적인 반응만이 튀어 나왔다.



 "제가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심상치는 않은 잡상인에 속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수의 승객들은 그들의 음악과 전화기상의 친구, 그리고 '잠'에 몰두해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심상치 않음의 분위기 속에서 ‘잡상인’의 다음 멘트에 대한 독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 나눠드리는 병원주소로 간단한 엽서 하나만 보내주시면 끝나는 일입니다. 우리 지현이 에게 정말…….어서 빨리 회복하라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세상이 모두 싫다는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가 나눠주는 카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카드였다. 관심이 있든 없든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의 무릎에 한 장의 카드를 얹혀놓은 그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꼭 누군가는 자기 손녀에게 카드를 보내주시길 바란다며 차분한 인사를 하고 다음 객차로 넘어갔다. 비로소 끝까지 ‘잔돈’의 털림을 회피했던 사람들과 우연하게도 전화가 동시에 끝난 몇몇 관람객들, 그리고 지독하게 냉소적인 나 역시 무릎의 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뜻밖에 카드 안에는 우표 한 장과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의 사진이 흑백으로 프린트되어 들어있었다. 그리고 소녀가 있는 병원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본관 803호 오지현”



 당산철교를 건너 합정을 지난 지하철은 이제 홍대입구를 거치면 신촌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재회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조금씩 내 마음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홍익문고 쪽으로 가려면, 흠 서강대 쪽 입구로 가다 좌회전하고 오른쪽에 맥도널드, 아니지? 그냥 현대 백화점 쪽으로 가야겠다.’



 갑자기 붐비는 사람들 틈에 정신이 산만하다 못해 몽롱해지려는 순간 앞에 걸어가는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30분정도 전에 내 앞에서 사람들에게 카드를 나눠주던 바로 그 할아버지였다.



 ‘저렇게 체구가 작았었나? 얼핏 봤을 땐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무덤덤하게 그의 옆을 지나가고 아케이드의 끝에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점차 지상이 가까워 왔지만 왠지 마음에 편치만은 않았다. 카드를 고의적으로 지하철 한 구석에 버려두고 내렸기 때문이다. 정황을 대충 보아하니 그 할아버지의 말이 거짓말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내가 간단하게 카드 하나 못 써줄 것도 없지 않은가? 분명 삶에 지친 많은 사람들은 절대 카드를 쓰지 않을 것인데, 솔직히 시간 많은 대학생인 내가 안 쓰면 누가 쓰지? 그래 그냥 카드하나 더 받아서 깔끔하게 적어 보내자. 약속시간도 20분정도 여유가 있으니.’



 멋지게 자기 합리화를 끝내고 에스컬레이터의 끄트머리에서 그 할아버지가 오길 기다렸다. 그에게 날릴 멋진 멘트를 준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 코스의 끝은 여기 뿐 인데 어찌된 일인지 할아버지는 그곳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하의 패스트 푸드점 옆으로 계단 출입구가 하나 더 있긴 하다. 결국 난 결심했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을 되살려 그 병실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세브란스 본관 8층이었나? 이름이…….지현, 아! 오지현이었지!’



 난 아이의 이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무작정 병원으로 향했다.



 흔한 이름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병원에 가보니 동일한 이름을 가진 꼬마는 두 명  뿐이었다. 그나마 한명은 남자 아이였기 때문에 쉽게 그 아이의 병실로 찾아갈 수 있었다.  아이가 있는 병실은 2인 1실이었는데 한쪽 침상은 비어있었고, 방안에는 사진 속 그 아이 혼자만이 있었다. 모랄까? 첫 인상은 환자 같지 않은 외모였고 오직 퀭한 두 눈만이 아이가 이 병원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듯 했다.

 “할아버지는 어디 가셨니?”



 “아저씬 누구세요?”



 어른이 묻는 말에 물음으로 답하다니 무척이나 당돌한 아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 어린 나이의 얼굴에 비해 너무나 어색했다. 거기다 평소에 잘 웃지 않던 내가 의도적으로 웃으며 이야기 하려니 첩첩산중이다.



 “아, 아저씬 할아버지하고 아는 사람이란다.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지.”



 하긴 지하철에서 카드를 받은 사이니까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더구나 우표는 220원이나 하니까 난 적어도 오늘 하루만은 그에게 고용된 친구라고 볼 수도 있었다.



 “난 할아버지 없어요.”


 “혹시 밤색구두에 머리는 희끗하고 키는 170Cm정도…….”



 인상착의를 말했지만 아이는 줄 곳 자기는 할아버지가 원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 할아버지가 없다니까요!”


 “그래? 내가 잘못 찾아왔나보다. 그럼 몸조리 잘하고 빨리 건강회복하길 바란다. 안녕!”



 분명 흑백사진 속의 꼬마가 맞는데도, 아이는 고집스레 그 할아버지를 모른다고 잡아뗐다. 할 수 없이 난 원래 신촌에 온 목적을 달성하려고 병실 밖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근데 아저씨가 말한 사람이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그건 ‘나비’지 ‘할아버지’가 아니에요.”



 나비라고? 뜻밖의 말에 당황한 나는 고양이를 생각했다. 나비라는 이름의 고양이. 그러자 아이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 나비는 고양이가 아니라 진짜 나비, 영어로 butterfly라고요.”



 이번에는 황당했다. 그렇지만 너무도 진지했던 지하철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며 난 어느새 그 아이의 말에 수긍해 주고 있었다.



 “그럼 그렇다 치고, 지금 나비는 어디 있니? 아마 그 나비가 내가 찾는 사람 같은데?”


 “아마 지금쯤 저기 바깥 어딘가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걸요? 여기는 밤 8시는 돼야 날아와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네요.”



 소녀는 내게 암호 같은 말을 하더니 뜬금없이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아저씨도 보아하니 나랑 비슷한 개구리 같은데, 우리 같이 나비를 기다릴래요? 만날 나만 혼자 있어서 심심하거든요.”



 어린 소녀의 뜻밖의 데이트 신청에 혼자 들뜬 나는 재빨리 휴대폰 배터리를 뺐다. 이미 약속시간은 20분을 넘어갔고, 친구들도 진탕 맥주를 마시기 시작할 타이밍이다. 그러나 내 전화기가 꺼져 있다면 그들이 그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나의 존재에 관심을 투자할 시간도 딱 20초면 족할 것이다.



 “개구리는 또 모니? 왜 너는 개구리라고 생각하지?”


 “난 원래 개구리였어요. 아니 지금도 사실은 개구리에요. 옛날에는 아빠개구리, 엄마개구리, 나 이렇게 셋이 물이 흐르는 고요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스토리가 대충 개구리 왕눈이처럼 되어가는 듯싶었다. 흔히 아이들이란 의례 그러듯 이 열 살배기 소녀도 자신의 삶을 만화에 대입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내 말을 만화에 나오는 개구리 공주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말아요. 난 미치지 않았으니까요. 의사선생님이 지겹도록 그 이야기는 했거든요.”



 “그런데 왜 하필 하고 많은 동물 중에 개구리냐? 토끼도 있고, 닭도 있고 예쁘장한 것들도 많지 않니?”


 마음을 들켜버린 듯 흠짓한 나는 재빨리 다른 질문을 했다.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밤이 되면 알 수 있어요. 난 어두워지면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거든요. 난 어둠이 밀려오면 잘 울었어요. 다른 개구리들 처럼요.”



 “하지만 난 너처럼 귀여운 개구리는 본적이 없는 걸?”



 “거참, 아저씨 정말 뭘 모르네요. 우는 내 모습을 내 스스로도 볼 수 없으니 남들도 당연히 못 보는 거죠! 그나저나 아저씨도 개구리면서 왜 날 못 알아봐요? 난 아저씨가 개구리로 보인단 말이에요.”



 그때 방문이 열리고 소녀의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이제 이 낯선 개구리 타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비다!”



 소녀는 조금 전의 진지했던 모습을 흐트러트리며 다시 명랑한 그 나이대의 소녀로 돌아왔다. 



 “아이쿠. 우리 개구리 공주님 잘 있었나요? 오늘도 또 간호사 언니들 괴롭힌 건 아니겠지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일반적인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를 떠올리려는 순간 나의 존재도 대화창 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저 누구시죠?”



 “저는 A라고 합니다. 사실 아까 할아버지하고 같은 지하철에 타고 있었어요.”



 내가 이 병원의 구체적인 병실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설명하고 나자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사실 내가 봐도 뜬금없는 방문이기는 했다.



 아이가 가진 병은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이란 것으로 희귀병이었다. 현대의학으론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치명적인 질환이기에 그냥 이 병원에서 머물며 증상을 완화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했다. 소녀의 부모는 몇 년 전 이미 이혼을 했고 그나마 함께 살던 아이의 아빠도 얼마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단순히 독감과 소화불량인 줄 알았던 소녀의 병이 잘 낫지 않아 찾았던 동네 의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여기 신촌의 대형 병원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까 지하철에서의 이야기처럼, 의사와 간호사의 부주의로 꼬마는 자신의 병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금방 죽을 것이라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의 개구리 타령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단지 ‘카드 한 장 적선’해 주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나였지만 이제는 왠지 그 둘의 삶에 관여하고 싶어졌다. 괜한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 역시 소녀의 말대로 개구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드를 부탁했던 할아버지의 의도는 손녀가 죽는 날까지 좀 더 행복하게 지내며, 그리고 세상에 대한 한을 풀고 가기를 바라는 것 뿐 이었다. 낯선 사람들로부터 오는 격려의 카드도 역시 그가 생각해본 하나의 방법이었다.



 “뭐라도 제가 도울 만한 일은 없을까요?”



 끈덕진 나의 요구에 할아버지는 그냥 시간 날 때 종종 병실에 들려 손녀, 아니 개구리소녀의 말동무가 되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겠노라며 연락처를 드리고 휴대폰 메모장에 병실 호수를 적은 뒤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술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밤을 샜다. 그리고 개구리소녀와 나비할아버지도 함께 내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갔다.



 다시 그 병실에 찾아온 것은 첫 만남이 있은 후 3개월만이었다. 그동안 딱히 바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천안에서 자취를 하다 보니 서울에 올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촌 쪽은 더욱 갈일이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소녀의 할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꼬마의 증세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소녀가 나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역시 할아버지는 너무 고마워하셨다. 카드도 그렇고 엄밀하게 말하면 제 3자인 내가 이렇게까지 자기 손녀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소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역시 아저씨는 개구리에요. 그런데 나도 개구리지만 바깥세상에 있을 때도 아저씨처럼 심하게 굴진 않았어요.”


 대충 들어보니 약속했던 시간을 너무 초과해서 등장한 내 잘못이 컸다.



 “난 내 병이 뭔지 잘 몰라요. 하지만 내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날 보고 싶다면 얼른 보세요. 다음 주부터는 예약해야지만 날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첫 만남 보다 눈에 띄게 앙상해진 소녀는 그래도 그때와 같은 당당함을 잃지는 않은 모양이다. 예약의 개념을 벌써부터 알다니…….가끔 이 소녀가 정말 이제 막 초등학교 3학년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난 어느새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가 말이야, 우리 지현이를 얼른 보고 싶었는데…….사실 시간이 없었단다. 중간고사라고, 아저씨가 다니는 학교에서 시험을 봤거든? 시험 알지? 그거 때문에 서울에 올 시간이 거의 없었어. 내가 전화라도 했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하게 됐구나.”



 “아저씨한테 시간이 뭔데요. 아저씨한테는 시간이 나보다 더 중요하군요.”



 “저기 그게 시험은 날짜가 정해진 거였고, 서울에서 친구들 만나면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거든. 그래서 아예 안 올라온 거야.”



 “그 시간은 아저씨한테만 중요한 거죠!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요. 난 그냥 해가 뜨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잠들어요. 아! 가끔 밤늦게 아무도 보지 않으면 많은 친구들과 함께 울기도 하죠. 시간은 단지 하루가 간다는 의미 밖에 없어요. 난 시간보단 친구를 택할래요.”



 꼬마에게 로우킥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궤변이라 하기엔 초등학생의 말치곤 틀린 부분이 별로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00여 일 동안 5번의 전공시험과 2번의 면접고사, 매주 걸쳐있던 수요일의 쪽지시험, 치여 살았던 리포트 더미와 과외 등 이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심에 뿌듯해 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휴,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평소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만 했어도 지현이을 만날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아저씬 만날 10분, 20분씩 알람시간보다 더 자는 늦잠꾸러기거든.”



“그런 말이 아니에요. 아저씬 그냥 잠을 자고 싶은 만큼 자면 되잖아요. 잠을 자야만 다음날 개운할 수 없다면 푹 자는 게 낫죠.”



“…….”



 할 말이 없었다. 아이에게 시간이란 관념은 ‘시간’이 아니라 일종의 ‘흐름’일 뿐인가? 어찌 보면 자신에게 살아갈 날이 제한적이라는 그리고 그것이 언제쯤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라면 오히려 1분, 1초가 아쉬울 만도 하건만 오히려 소녀는 그런 모든 것을 초월한 듯이 보였다.



 “아저씨 너무 바쁘게 살지 마요. 저기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에요? 자신을 스스로가 사랑해야죠!”



 꼬마가 사랑이란 말을 했다.



 “사랑이란 단어를 아니?”


 “왜요? 사랑은 어릴 때 성경학교에서 배웠어요. 믿음, 소망, 사랑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나 역시 초등학교 때 외웠던 성경의 경구가 떠올랐다.



 “이야 우리 지현이가 오히려 이 아저씨보다 낫구나. 아저씬 중학교 이후로 교회엔 가본 적이 없거든.”



 “뭐 꼭 교회에 다녀야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 아닐꺼에요. 사랑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요. 근데 아저씨는 안 되겠네.”



 “왜? 아저씨는 너무 바빠서 사랑을 못할 것 같니?”



 첫 만남에서 나를 개구리로 생각했다며 마음을 열었던 꼬마가 두 번째로 나와 관련된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내가 사랑을 못할 것이라니? 기쁘면서도 불쾌했지만, 무엇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니요. 아저씨는 사랑이 몬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랑이 뭔지 알면 이렇게 약속 시간을 늦춰서 오진 않을 거란 말이에요.”



 잊을만하면 꺼내는 소녀의 핀잔에 속마음이 찔렸다. 내가 아이에게 무관심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럼 어디 지현이가 이 바보아저씨한테 그 ‘사랑’이란 거창한 것에 대해 좀 설명해 주렴!”



 “거창이 뭐에요?”


 “아! 거창이란 뭐랄까? 흠 휘황찬란한 것? 아니다, 그것도 어렵겠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엄청나게 큰 것을 말하는 거란다.”



 “아 그러면 사랑은 결코 거창하지 않아요.”



 이제 이 소녀의 머리에서 무슨 내용이 나올까? 이제 소녀는 겨우 10살이다. 난 어느새 내 나이보다 절반도 안 되는 나이를 가진 한 꼬마와의 대화에 점점 몰입해간다.

 “먼저 아저씨가 거울을 보면서 웃어야 해요. 거울 속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면 누구를 보고도 웃지 못하거든요.”



 “웃을 자격이 생기지 않는 거구나!?”



 “비슷해요.”



 “그럼 지현이는 매일 거울을 보면서 웃니?”



 “네 물론이죠. 그런데 밤이 되면 조금 달라져요.”



 “왜 그렇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난 웃는 대신에 울어요.”



 “아저씬 이해가 잘 안 되는걸? 왜 웃지 못한다고 우는 거지? 우는 건 슬퍼서 그런 것 아니니?”



 “난 슬프다는 말을 사실 잘 몰라요. 또 왜 우는 지도요. 그냥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거든요. 아저씬 밤에 울어본 적 없나보네요?”



 ‘글쎄? 나도 예전엔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뭐 어른이 되면 잘 울지 않게 된단다. 지금 여기서 뭐라고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난 울면서도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어요.”



 어려운 내용이었다. 울면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너무 아팠을 때도 난 마구 울었어요. 나비도 그때만큼은 어쩔 줄 모르죠. 다행히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까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왔어요.”



 눈물이 메말랐다는 것이 소녀가 자신을, 더 구체적으로는 자신을 이 지경으로까지 몰아간 병마를 인정했다는 것일까?



 “그런데 울음 멈춘 것이 왜 자신을 사랑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건데?”



 “울음이 멈추니까 내 모습이 내 자신의 것이 아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꿈에서 본 내 모습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나비한테 물어봤죠. 나비는 내 자신이 한 꺼풀 껍질을 벗는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난 나비가 아니라고 우겼죠.”



 오히려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태과정을 거치며 탄생된다는 비유가 더 적절하단 생각을 했다. 어차피 소녀는 자신이 개구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충분히 지금의 지현이는 올챙이수준은 벗어난 듯 보였다.



 “그래서 내가 난 나비가 아니라 개구리라고 하니까, 개구리는 나비처럼 날수 없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조금만 있으면 나도 날 수 있을 거래요.”



 그럼 소녀는 사실은 나비?



 “지현이 말은 아저씨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네. 어쨌든 울음과 사랑에 관계가 궁금하구나?”



 “거참 지금 다 말했잖아요. 나비가 그러는데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껍질을 벗지 못했을 거래요. 울음이 없었다면 당연히 처음부터 껍질을 벗을 생각도 못하는 거구요!”



 소녀의 할아버지가 해준 추상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과연 이 아이는 이 말의 의미를 다 알고나 있는 걸까?



 “그렇구나. 그럼 내 스스로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도 반드시 언젠가는 울어야만 하겠네?”



 “그런 셈이죠. 어쨌든 그러니까 아저씨가 오늘에서야 나타난 것은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에요. 아저씬 내 생각하면서 운적도 없죠?”



 순간 찔린 구석이 있었다. 그동안 우선순위를 둔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있어 이 소녀는 연민의 대상이었을 뿐 그 이상의 감정은 아니었다. 더구나 소녀의 말에 따르면, 난 아직 내 자신을 위해서 운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찌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소녀는 연달아 나에게 직설적인 말로 하이킥을 날렸다.



 “그동안 난 아저씨 생각도 종종했는데 아저씬 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을 것 같았어요.”



 사실 꼭 그렇지도 않았다. 카드를 보내거나 전화통화를 하지 않았을 뿐, 학교병원의 로비에서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환우를 보면 가끔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었다. 그때 소녀에게 전화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내 게으름 때문이다. 난 소녀의 사랑과는 무관한 일이었다고 속으로 강하게 외쳤다.



 “그래서 처음엔 화도 났어요. 엄마, 아빠한테 그랬던 것 처럼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 가진 않더라고요.”



 “지현이가 이 아저씨가 곧 올 껄 알았나 보네.”



 겸연쩍게 웃으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아니요. 오히려 정 반대에요. 아저씨가 오지 않더라도 그냥 기다리기로 맘먹었죠. 이것 좀 볼래요? 보내준 사람을 모두 외우진 못해도 저는 제 보물 상자에 이 카드들을 잘 보관해 뒀어요.”



 소녀는 침대 밑의 커다란 상자를 가리켰다.



 “가끔 ‘다음에 또 카드 보낼게’라는 말이 있는 카드는 따로 보관을 했죠. 다시 카드를 보내면 이제 정말 나랑 친구가 된 거니까요.”



 그러며 소녀는 커다란 상자 안에서 또 다른 작은 박스를 꺼내 보였다. 그 안의 많은 카드뭉치를 보며 난 어느새 소녀의 삼촌뻘임에도 그의 새로운 친구로 등록된다.



 “그런데 결과가 어떤 줄 알아요?”



 “글쎄다. 두 번 씩 카드를 보낸 사람이 별로 없었구나?”



 “맞아요. 한명도 두 번의 카드를 보낸 준 적이 없어요.”



 문득 카드에 들어있던 한 장의 우표가 떠올랐다.



 “그래서 지현이가 그 거짓말한 사람에게 화가 났었던 모양이네?”


 “처음엔 조금 그랬어요. 그래도 곧 미워하길 관뒀죠. 난 여전히 그 사람들의 카드를 가지고 있고 그들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카드를 다시 보내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니? 지현이를 잊어버린 사람들이잖아?”



 “그게 뭐 중요한가? 내가 사랑하면 되는 거죠.”



 별거 아니란 듯 말하는 소녀에게 작은 반감이 생겼다. 나만 사랑하고 있으면 된다고? 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일방적이고 희생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소녀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저씨가 오지 않는 것도 봐주기로 했어요. 사실 오늘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저씨 역시 그냥 저 상자 속에 넣어둘라고 했지만요.”



 마음속이 울렁거렸다. 강아지는 주인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퍼붓는다. 무조건적인 사랑, 나 역시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나도 모르게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면서 사람을 대하고 되었다. 무엇이 나와 내 주변을 그렇게 삭막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병실 침대위의 어린 꼬마 앞에서 난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어디론가 숨고 싶다.



 “뭐 이제라도 와줬으니 아저씬 합격이에요. 나도 더 기뻐요. 병문안 와준다고 하고 다시 와준 사람은 아저씨가 처음이니까요!”



 어느덧 병실 밖은 어두워졌다. 핸드폰으로 현재 시각을 확인하려다 머뭇거린다. 단지 지금은 어둠이 깔리는 저녁일 뿐이지 않은가?



 잠시 뒤 소녀의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있던 지현이는 지난번 첫 만남에서의 모습처럼 할아버지를 맞았다.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 진 것만 빼면 그때 그 모습과 동일하다.



 “나비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오늘 너무 심심했어.”



 할아버지는 연신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 아이가 사람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았는데 크게 도움이 된 것 같다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소녀와의 두 번째 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역시 친구들과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상하게 신촌에 오면 과음을 하게 된다.



 난 다시 사람들이 ‘일상’이라고 부르는 시계더미 속으로 복귀했다. 지속적으로 핸드폰 폴더를 열며 몇 시쯤 되었는지를 확인한다. 점심밥은 구내식당에서 여전히 평균 12분 정도의 페이스로 먹고, 자취방에서 3층 의대 강의실까지 11분 정도가 걸리는 위치에 살고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은 최적의 자취방이다. 그럼에도 가끔 안타까운 점은 이런 속도의 세상 속에 치여 살다 보니, 내 모습이 종종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 보인다는 점이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남을 배려하는 맘은 내게 있기나 할까? 소녀가 말한 ‘사랑할 자격이 없어 보이는 아저씨’로 남을 것만 같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유기화학 시험이 끝난 화창한 5월의 오후다. 친구들과 난 다음 주에 있을 의대 농구시합과 축제 때문에 들떠있었다. 작은 여유 속에서 문뜩 개구리 소녀가 떠올랐다. 5월은 사랑의 계절이라고 하던데.



 ‘그래 이번 주말에는 신촌에 한번 가야겠다. 이번엔 그 조숙한 숙녀가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까?’



 무의식적으로 지현이를 내 멘터로 떠올리며 그 날 저녁 강남역에서 신촌방향의 지하철에 오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 봤지만 금요일 저녁의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게다가 잡상인 한명 보이지 않게 말끔한 지하철이었기에 난 그저 광고판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목적지로 향한다. 사람을 질식시키는 지하철에서 병원 복도 냄새를 그리워 할 줄이야.

 ‘뭐 이왕 그쪽으로 갈 거면, 늦게 친구들이나 불러 간만에 맥주나 한잔 해야겠다.’



 단체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액정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창이 떴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놨기 때문에 10분 전에 온 문자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현이 할아버지입니다. 오늘 저녁에 지현이가 큰 수술을 받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현대의학의 완전 무결성을 막연히 믿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불치병으로만 알고 있던 소녀의 희귀병에 대하여, 마지막 도전이 행해진다는 소식을 듣자 난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왠지 당장 내일부터 지현이도 그 답답한 병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모임을 갖는 것을 보류하고 우선 세브란스로 향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수술실 앞에서 지현이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들뜬 마음의 나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초조하신 모습이었다. 할어버지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꺼냈다. 카드를 보내준 많은 익명의 대중들, 그리고 직접 찾아와준 몇몇 사람들 덕분에 소녀가 처음보다 많이 밝아졌다며 고마워했다. 그리고 소녀가 나를 만나면 전해주라고 했다며 카드 한 장을 내게 전해 주었다. 우리의 첫 만남의 매개체가 되었던 바로 그 빨간색 카드였다.



 “아저씨는 아무래도 나비였었나 봐요.”



 무심코 열어본 카드의 첫마디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순간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내 자신에게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내가 나비일 수 있단 말인가? 소녀에게 난 개구리라고 얼른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있을 법한 결과가 현실이 되었다. 수술 도중 지현이가 죽은 것이다. 소녀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고 영영 잠들었다. 그녀가 내게 권하던 피곤하지 않도록 ‘푹 자는 것’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그 순간을 자위해 본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이제 막 친해지려 했던 친구들을 놔두고 소녀는 전학을 갔다.



 그날 밤 난 신촌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긴급 소집했다. 도저히 울렁거리는 속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내게 이런 멀미를 남겨두고 떠나가다니, 당분간은 그 아이를 떠올리며 술을 마셔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아직도 소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아있었다.



 ‘난 아직 개구리라고! 나비처럼 울지 않고 날아다니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제 누구에게 이 하소연을 해야 할까?


+add-on: 2014.12.31

그녀는 지금 나의 아내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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