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V_큰의사 노먼 베쑨(이룸)

Posted 2008. 8. 21. 02:09, Filed under: Hobbies/Books



“위대한 의사는 수술대에 누워있는 한 사람을 위해 메스를 드는 사람이 아니다. 가난 때문에 혹은 무지해서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들의 애절한 마음까지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를 가리켜 우리는 비로소 위대한 의사라고 할 수 있다.” p.12~13

방학 독서리스트에서 가장 관심이 갔었던 책이었다. 딱히 한책을 골랐던 것은 아니고 그냥 노먼 베쑨이라는 의사가 있는데 대단한 위인이라고 해서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고른 책 제목처럼 ‘큰’ 의사였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큰 의사였는지 궁금했다.

이 책의 평전시리즈의 일부로 그의 일대기를 서술하고 있다. 나름대로 책 뒤의 저자의 말처럼 예전 평전이 한 위인을 지나치게 수식하거나 하는 등의 겉치레가 많았었다면, 이 책은 최대한 사실을 전달해 주는데 신경을 쓴 것 같았다. 한편 가장 중요한 의문으로 ‘왜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베쑨의 이름을 보지 못했나?’ 싶어던 의문도 책을 읽고 나니 풀렸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그는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공산당’이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책이나 기사는 일절 우리나라에 소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1890년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헨리 베쑨이었다. 그러다 어릴 적 그는 외과의사였던 할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며 이름을 ‘노먼’ 베쑨으로 개명한다. 의협심이 강하고 모험, 도전정신이 강했던 그는 캐나다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바로 육군에 입대한다. 그러나 부상을 당한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그는 의대를 졸업한 후 다시 영국 해군에 입대한다. 젊은 시절부터 불의를 보고는 참을 수 없는 청년으로 베쑨은 그려지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런던에서 개원을 하고 다시 디트로이트로 이동해 병원을 열며 살아가던 베쑨은 빈민층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현실과 사회적 시스템의 미비함을 보며 사회에 염증을 느꼈던 것 같다. 의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다고 느낀 그는 의사로 그리고 발명가로 돈을 많이 벌자 무료진료와 같이 봉사활동에도 힘을 쏟는다.(사실 그가 당시 일반적인 의사들처럼 부유하게 병원도 열고 마케팅도 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기본조건인 재력을 갖출 수 있던 것은 12살 연하의 부인인 프란시스의 공이 컸었던 것 같다. 그녀가 부자였다. 물론 베쑨은 여느 부자들과 달리 천진난만하고 순수해 보여서 프란시스에게 프로포즈했다고 나와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폐렴과 결핵에 걸린 베쑨은 프란시스와의 이혼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짐이 되기 싫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혼하기 원치 않던 프란시스에게 이혼을 종용한다.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되고 베쑨은 얼마간의 투병 생활 끝에 완치된후 1929년 다시 캐나다의 왕립 빅토리아 병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베쑨의 간곡한 청으로 프란시스와 결합한다.(프란시스와의 일에 관해선 베쑨은 매우 이기적으로 보인다.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해도 다른 위인들의 지극히 평범한 가정생활에 비교해 본다면 말이다.)

그후 베쑨은 자신을 괴롭혔던 결핵 치료에 집중하며 보낸다. 그런데 이번엔 프란시스가 이혼을 하자고 나선다. 일에만 몰두하는 베쑨에게 실망한 것이다. 어쨌든 다시 이혼 뒤에 베쑨은 디트로이트에 간다. 거기서 의사로 활동하던 그는 또다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고민과 사회 제도에 대한 고민을 하다 러시아의 사회주의에서 이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공산당에 입당한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전쟁터에 뛰어든 것은 스페인내전이었다. 베쑨의 사상과 철학을 잘 알고 있던 지인의 소개로 스페인 원조 의료대의 대장으로 그곳에 간 그는 전쟁 현장 근처에서 직접 수혈하는 시스템을 최초로 마련하는 등의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그리고 다음 장소는 바로 중국이었다.

1931년 일본의 만주침략을 기점으로 중국본토는 아수라장이었다. 베쑨은 1938년 중국원호위원회의 일행으로 중국으로 가 모택동을 만난다. 백구은이란 중국식 이름으로 불린 그는 팔로군과 함께 행동하며 일본과의 전쟁으로 부상당한 많은 중국인들을 도와준다. 그는 나아가 당시 낙후되었던 중국에 서양의료 기술을 도입하는 시초를 마련했으며 기동의무대를 창설하여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직접 발로 뛰는 의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 속에서도 그는 환자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으며 결국 모든 사람의 행복(애매한 정의이긴 해도)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 그렇지만 결국 수술 중 벤 손가락이 감염되면서 합병증이 생긴 그는 1939년 49세의 나이로 먼 중국 땅에서 숨을 거둔다.

발명가이면서 모험가, 그림그리기를 즐겼던 천재이자 괴짜인 노먼 베쑨은 실제로 중국인들에게 ‘대부’라 불린다고 한다. 애초에 슈바이처 같은 의사를 기대했던 나는 체 게바라가 떠올랐다. 체 게바라 역시 의사출신으로 다수의 인민을 위해 희생하고 앞으로 나섰던 영웅이 아니었던가? 물론 베쑨이나 체 게바라의 사상이 현실과는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너무 다르니까. 그렇지만 최근 몇 년간 빨간 표지의 체 게바라 평전이 유행하고 또 이렇게 베쑨이 작은(?) 바람을 일으킬 정도인 것을 보니 그들의 생각이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것 같지는 않나보다. 대한민국도 80년대 후반까지 급격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발전된 나라에서 지내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베쑨의 모습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그런 독서였지만 나름대로 그의 투쟁과 마음가짐이 와 닿는 면도 있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노먼 베쑨은 단순한 휴머니테리언이 아닌 투쟁가였다.



“...베쑨은 전쟁에서 경험한 죽음을 통해 한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바로 살아있는 동안 모든 것을 경험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은 전쟁이 그에게 가르쳐준 교훈이었다. 죽음이란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어서 인생의 다양한 맛을 경험하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p.23~24  

“의사들은 공부와 실습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야 직접 환자를 다룰 수 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그토록 신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환자를 맡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환자를 소홀하게 대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누군가는 다리를 잃어야 하고 또 누군가는 목숨을 잃어야 합니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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