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일기] 14 Feb 01 ...첫 CPX 후!

Posted 2008. 8. 21. 16:27, Filed under: Ex-Homepage/Diary

# 이 내용은 일기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2001년 2월 14일

오늘 첫 CPX에서 돌아왔다. 오늘 새벽부터 구토가 심해서 Sickcall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잘 맞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전에는 '가시고기'를 다 읽었다. 뭐 피곤해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은..흠...
'국화꽃향기'와 '가시고기'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었나?

P.S. 발렌타인데이인 오늘 내가 2박스의 선물을 받았음을 알았다.


☞CPX란 야외에서 훈련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우리는 SWB란 곳을 갔었다. SWB란 South Waegwan Bridge로 '남왜관다리'이다. 옆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옆에 있는 모래사장에 텐트치고 위장막치고 했었다. 우리 부대에서 시간상 10분정도밖에는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처음가는 야외필드였고 또 MRE라고 하는 정말 정말 이상한 전투식량을 먹어서 그런지 결국 마지막날 구토를 좀 심하게 해서 당시 일일보고 하러 부대에 잠시 가는 중대장하고 함께 돌아와서 Sickcall(의무실)에 갔었다. 가서 받은 것은 무슨 분홍색 액체로 먹으면 자동으로 식도와 위가 보호되는 특이?한 약이었다. 한번먹고 그 느끼함에 더욱 구토할 염두가 생기지 않았다는 말이..--;
어쨌거나 이때 느낀 점은 국민학교 시절 보이스카웃의 뒷뜰 야영같았다는 것이다. 물론 어리버리한 신병때였기는 하지만 좀 즐거웠다.(물론 지금도 야외훈련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발렌타인때 받은 선물은 정말 고마운 충격이었다. 준 사람들에게 그다지 내색은 않했지만-아마 이 이유로 나에게 욕좀 했으리..^^;;;- 진짜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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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초창기 일기 단편모음

Posted 2008. 8. 21. 16:26, Filed under: Ex-Homepage/Diary

# 이 글은 일기장에서 옮겨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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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1일 금요일

일과가 끝나고 왜관 구경을 했다. 생각보다는 컸다. 역 근처 시장에서 필기도구와 스피커를 샀다. 대구 말투를 들으니 신기했다. 그리고 부대로 돌아오는 길에 오뎅을 먹었는데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Oh my God!

처음으로 부대에서 맞는 주말이다. 비디오도 빌려오고( 도서관 대여카드 만들려고 ) 그랬다. 부대는 매우 한산하다. 이런 것이 Katusa Life 인가 보다.

스피커를 산것은 너무 좋은데...냉장고 코드 때문에 스피커와 스텐드, 둘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고 결국 지금은 음악을 듣고 있다. Monkey Business~


☞금요일의 일과가 끝나면 카투사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집에 가는 사람들..그리고 남는 사람들..이때 나는 후자에 속했고 그래서 앞으로 내가 2년간 생활할 이 '왜관'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구경을 하러 밖으로 나간 것이다. 왜관은 어떤 곳인지...구체적으로 묘사하기엔 글재주가 너무 없다. 또 잘 모르기도 하고..그런데 느낌은 참 좋다. 복잡하지 않다는 것!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다는 것! 그리고 오뎅먹고 두드러기 난 것은 일명 '임채빈요법'인 물을 무작정 마시고 자기 덕택인지 다음날 낫다. 솔직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에 두드러기 나는 것이어서 좀 놀랐었는데-그때는 Emergency 갈 생각도 못할때였다- 다행히도 하루만에 나았다. (물론..그날 밤 새벽2시,3시, 4시에 정확하게 화장실 한번씩 가서..잠을 설쳤다.) 또..그때 산 스피커...지금은 집에 있다. 내가 얼마 후에 집에 있던 스피커를 떼어 왔기 때문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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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3일 일요일

하루종일 여유가 있었다. 오전중에 채빈이와 함께 교회에 가보았다. Gate 4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왜관제일교회라는 곳이었는데 동네규모에 비해 꽤나 컸다. 뭐 예배의 내용은 서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오후 2시경에 농구를 하러 갔다. 가서 좀 하고 있으니 같이 하자고 하는 무리가 있어서 함께 했다. 키가 큰 흑인, 백인, 스페니쉬 들이었는데 4대4로 게임을 했다. 우리팀이 1번 빼고 다 이겼다. 뭐 예상과는 달리 그렇게 잘 하지는 못했다. 단지 패스가 좀 빠르다는 것 뿐? 역시 군대농구는 미군에서도 마찬가지인듯... 우리 팀에는 꽤나 다혈질적인 흑인 가드가 있었는데 쩝...시합중에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러더니만 제 풀에 지쳐서인지 도중에 교체하더니 가버렸다. 어쨌든 그 이후 시합이 잘 풀린 것을 보면~

농구'전쟁'을 마치고 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그래서 빵을 사먹었다. 그리고 일찍 잠을 잤다!


 

☞이때 간곳은 왜관제일교회란 곳이었는데..그때 한번 빼고는 줄곧 시내에 있는 '왜관교회' 청년부에 나가고 있다.( 일요일 오후1시~3시30분 ) 아마도 준회형이나 범진이형이-그땐 병장들이었음- 함께 가자고 한 것이 컸었던 것 같고, 교회에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난 것 보면 정말 그때 바꾼 선택이 바른 것 같다. 또 농구는 정말 할말 많은 꺼리중 하나인데..우선~ 군대농구를 떠나서 미군들의 농구실력은 극과 극이라는 점..또 흑인들은 말이 정말 많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농구를 하든 일을 하든..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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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3일

<모모를 읽고>

우리가 시간이 없다고 느낌은 회색신사들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시간을 여유있게 그러나 알차게 사용해야 한다. Momo가 도와주지 않아도 말이다.


 

☞초창기에 마음먹었던 것이 '군대있을때 책 많이 읽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일기장 마지막장에 리스트를 만들었었다. 물론 중간에 리스트 쓰는 것은 끝이 나긴 했지만 지금까지 정말 나름대로는 꽤나 책을 읽었다. 초반에 읽은 책은..모모(미하엘엔데)/ 아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문열)/ 추억의 아주먼곳(윤대녕)/ 국화꽃향기(김하인)/ 가시고기(조창인)/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향수(파트리크 쥐스킨드) 등이다. 위 글은 일기라기 보다는 짧은 감상문이 더 적당한 표현같은데..모모를 읽고 쓴 것이다. 윗글 내용이 너무 이상하다면 '모모'란 책 한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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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5일

이곳에도 눈이 쌓였다. 아주 조금...그래서인지 몰라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가 가곤 한다. 그래야 눈이 더 오래있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 하..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난 부대에 있었고..그때 왜관에 눈이 왔는데 대구란 곳(사실 왜관도 나에겐 대구의 지역동네란 인식이 그때는 강했었다)에도 겨울에 눈이 오긴 오는구나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작년-2001년-겨울에는 눈이 거의 안왔다. 아! 그리고 이때 눈이 쌓인 것을 군인이 아닌 제설차가 치웠고..이 사실을 안 나의 친구들은 경악을 금지못했다. 군대에서 군인이 아니라 제설차가 눈을 치워~?!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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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5일 두번째 일기

[아가를 읽고]

달이여, 너는 내 사랑을 알고 있는가.
무덤도 없이 떠난 그녀를
어느 하늘가를 떠도는지
부서진 가슴으로 내 사랑을 찾아 한없이 헤매었네
만일 그녀를 만나거든 내가 울고 있다고 전해다오.

달무리 슬픈 그 밤 이별의 눈물
안녕히, 안녕, 내 사랑아
다시 만날 날을 믿으며
헤어져 멀리 있더라도 언제까지나 잊지 않으리라
달빛속에 사위어가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아가中 -

사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부제에 이 책을 골랐다. 물론 다 읽은 지금은 내가 의도했던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만족한다. 그가 느낀 생각과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 속에 공통점도 있었다. 나도 두번의 기사였다. 아니 세번! 처음은 외로웠지만 두번째는 뜨거웠고 마지막 세번째는 너무나 가벼웠다. 그러나 그 세 과정 모두에 그 무언가, 내가 소중히 느끼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경험은 나에게 무척이나 소중하다. 물론 뜨거웠던 것은 나에게 화상을 남겼다. 그리곤 2년이 지났다. 그렇다. 회상은 회상꺼리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참 뿌듯한 일 같다. 이 연습장처럼...그리고 위의 시처럼...


 

☞이것도 '아가'를 읽고 쓴 감상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골랐을때의 의도했던 바와 책의 내용이 좀 많이 달랐었다. 어쨌든 그때를 '회상'해 보니..좋았다..그리고...참고로 현재는 그 외로웠던 첫사랑과 다시 접촉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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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6일

간단하지만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노는? 쉬는? 방식은 몇몇 내 친구들과 너무 다르다. 후..당구? 피씨방? 난 그런건 딱 질색이다. 그렇다면 나의 타입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제기를 해보면...난 그러한 방식이 없다..크...

실종은 기억을 동반한다..

유리얼음성- 얼음은 녹는다. 성모양의 얼음이 녹으면 다시 성이 될 수 없다. 유리? 깨지면 그 성은 다시 예전의 성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유리얼음성은?


 

☞사실..많이 다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그것을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고.. 물론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렇게 쉽사리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경우에 오는..언젠가의 '바램'은 좀 외롭다..^^;
뭐 그래도 아직까진 당구나 컴퓨터 오락이나..담배같은 것에 대한 생각은 없다...13 APR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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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일기] 28 Nov 00...물갈이..

Posted 2008. 8. 21. 16:26, Filed under: Ex-Homepage/Diary

# 이 글은 일기장에서 옮겨 쓴 것입니다.

2000년 11월 28일 화요일

오늘은 매우 아프다. 갑자기 일을 시작했고 (물론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일과 후 캠프구경을 하다보니 몸이 이상이 생겼다. 다행히도 TA-50 정리를 다했고 구두도 닦고 '마음의 편지'도 제출했다. 크~ 그리고 채빈이가 준 아스피린도 먹었다.

오늘 처음으로 Rec Center에 가보고 Learning Center에도 가봤다. 여기 선임병들은 날 잘 대해줘서 참 감사하다. 하지만 '감사'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 열심히 할 생각이다. 으...감기몸살 기운~ 열이 난다.



내 기억으론 이때 아팠던 것은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가 날도 겨울이었기 때문에 추운 것도 있었지만 아마 내가 약간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군대 용어로는 이런 것을 '빠졌다'라고 한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7월에서 8월중순인가 까지 약 한달간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때 썼던 일지와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기는 한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홈페이지에 넣을 생각이다. ) 그때 처음으로 간 곳이 프랑스였는데 한 이틀동안 물때문에 고생을 했다. 음식이야 워낙에 잡다한 체질이라 괜찮았는데 물이 바뀌니 적응이 좀 힘들었다. 배도 많이 아프고..그래서 그 이틀동안은 그냥 숙소근처에서 멀리까지 가지 않았었던 기억이..

그런데 군대란 곳은 어떤 곳인가? 논산 입소대대에서의 일이다.(훈련소=입소대대+교육대대) 이제 막 들어온 나에게 식사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짬밥(군대용어로 '밥'을 일컫는 말)을 이때 안먹으면 언제 먹느냐는 듯 아주 잘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물...한 이틀 정도가 지나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사회에 있었다면 당연히 약을 복용했겠지만 이곳에선 분위기상 약달라고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매일 밤 점호(일종의 '일과 끝내기'라고 보면 된다. 인원점검..)시간때 형식적이긴 해도 교관들이 아픈데 없는지 물어보기는 하지만 복통같은 것은 그 대상이 아니었던 것처럼 보여졌다.

그렇게 이틀을 잘 참았지만, 그리고 화장실도 가봤지만 배아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무슨 배탈이 난 것도 아니고... 참 표현하기 힘들게 아팠다. 그래서 결국 용감하게-정말로 용감한 것이다- 교관들의 막사로 찾아가서 배가 아프다고 했다.

"000번 훈련병 오승민! 아파서 왔습니다."
"어디가 아픈데?"
"배가 좀.."
"그래? 그런데 의무실 가려면 차가 와야 하는데...왠만하면 좀 참아
보지?"
"그게..좀 많이 참았는데 계속 아파서요"
"흠..여기 있는 약은 아스피린하고 타이레놀 밖에 없는데..그거라도
줄까? "
"네? ..."

결국 이틀정도 더 참으니...다 나았다. 물론 약도 안먹고, 의무실도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에는 어딜 가나 처음에는 환경이 바뀐 탓에-난 그것을 '물'로 부르지만- 속이 좀 아팠던 것 같다. 한편, 그때 내가 약을 먹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스럽다. 약을 먹어서 배나 좀 일찍 나았다면 과연 더 좋았을까?^^ (진짜 사회인들이 생각하면 유치하게 보일지는 몰라도..난 그렇게 참았다는 것이 좀 흐뭇하다..)

이런 생활에서 KTA란 곳에 갔을때도 조금 물갈이를 했다. 좀 얼빠진 카투사들은 KTA를 논산 육군훈련소에 비교해서 '천국'이라고 부른다. 특히 식당문제에 관해서는 말이다. (난 그것이 천국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국민의 피땀흘린 세금이니까...단지 누군가는 누리게될 우연한 행운에 나의 의지가 좀 곁들여져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이고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모범을 보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어쨌든 그 식당의 메뉴란 것들은 모조리 기름기 투성이었다. 그러니 2번정도 먹기까지는 꽤나 좋았는데 그 후부터는 밋밋했고 역시나 배가 좀 아팠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숙소의 방마다 화장실이 있고 야외에도 화장실이 있었기에 일과시간만 아니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없었다. 자대란 곳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의 내 입장은 한명의 군인이지 훈련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가 아프면 약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물갈이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아마 논산 입소대대에서의 물갈이와 같은 때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대한민국 남아들에게 '군대'란 곳을 제외하면 어느 곳이 그들을 제약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난 지금 편하게 자대생활을 하면서 가끔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물론 한국군 현역병으로 간 친구들은 자대생활이 그때하고 별반 다를 것은 없을 것 같다.) 과연 난 그때로 돌아가라면 돌아가고 싶어 할까? 쉽게 '당연히'라고 말하지는 못할만큼 난 군대적으로 세속화되어있지만 그래서 더욱 그때가 그리운건지도 모르겠다.

쓰다보니 횡설수설이 되어버렸군..-_-; 13 APR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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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일기장에서 옮겨 쓴 것입니다.

2000년 11월 26일 일요일...

지금 시각은 오후 10시 20분이다. 시간에 따라 이 시간에 하고 있을 일이 다 달랐던 예전이 생각난다. 바로 어제만 해도 이 시간에 짐을 챙기며 통신을 하고 있었고 2개월 전에는 논산에서 있었으며 아마도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는 유리상자 4집 앨범을 들으면서 일기를 쓰고 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여유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대하여 참 고맙게 생각한다.

육군 훈련소에서 지급받은 수양록이 끝난 날을 기준으로 다시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지난 주 수요일, 드디어 수료식을 마쳤다. 그 때 참 신기하게도 나와 부모님은 한번에 서로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대열에서 가장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하긴 세상의 어느 부모자식간에 이러지 않으리..

수료증을 SGT Habson에게서 받고 부모님과 만나서 한번도 안들어가 봤던 Club에 가서 당신들께서 장만해 오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 사이 꽤 전화를 했었기 때문인지 의외로 서로 담담했었다. 그 후 간단히 부대 구경을 시켜드리고 대구에 가기위해 선발대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까지 가서 대구행 기차를 탄 후 늦은 시각 대구에 왔다.(동대구역) 그리론 버스로 Camp Henry행! 바로 셔틀버스로 종착지인 Camp Carroll에 왔다. 그날 밤에는 선임병장님과 동기들과 함께 라면을 끓여먹고 지원대장님과 간단한 면담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방은 2인 1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울에 왔다. Thanksgiving Day여서 위에서 Pass란 것이 나왔다고 했다. 뛸듯이 기쁘지는 않아도 서울을 돌아다닐 수 있단 마음에 설레였었다. 서울에 와서 목욕탕에 갔다가 집에 갔다. 어머니께서 매우 반가워 하셨다. 미미도 마루도 날뛰었다! 또 운이 좋게도 다음날이 연동 정모였다. 그래서 거기도 갔었다. 즐거운 첫 휴가였다. 그리고 어제는 그냥 집에서 쉬었고 오늘 TMO를 타고 내려온 것이다. 처음 나간 것 치고는 은근히 조용한 휴가였던 것 같다.

일요일 저녁이 되니 고참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내일부터 일이 시작이다. 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최선을 다할 것이고! 우선은 어서 부대에 적응을 해야 하겠다.

P.S. 짐을 한 뭉탱이를 가지고 왔는데 쩝...다 열어보니 별로 가지고 온 것이 없는듯 하다~


☞제가 훈련소에 입대한 날은 2000년 9년 15일 입니다. 그리고 논산훈련소에서 2개월정도 훈련을 받고 의정부에 있는 후반기교육장소(저희는 군특기가 '어학'이기 때문에 '영어'를 교육받습니다.)인 KTA란 곳에서 약 한달간 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배정을 받는 것이 '자대'란 곳입니다. 그곳에서 약 2년간의 군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죠.(이 KTA에서의 자대배치와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 등도 꽤나 할 말이 많은데 언젠가 나오겠죠?^^;) 바로 제가 그 자대-이곳 왜관지역-에 온 날이 2000년 11월 23일 목요일 저녁입니다.

저희 자대동기들(임채빈/최승호/이인준/나)은 운이 좋게도 온날 바로 다음날이 금요일 아침 집에 갈수 있었습니다. Thanksgiving Day라고 미국휴일 중에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날이 있는데 저희가 온 바로 그주의 주말이 그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기는 집에서 쉬다가 돌아온 일요일에 쓴 것입니다. 지금보면 몇몇 틀린 것도, 그리고 달라진 것들도 있네요.

우선 제가 갈수 있었던 것은 '휴가'가 아니고 '외박'이라는 점( 휴가는 Leave라고 해서 한국군 육군과 똑같습니다. 외박은 Pass라고 해서 휴가보단 짧은 것이더군요. 이건 길어야 4박 5일입니다. ) 또, 그 때 반겨주던 마루군-저희 집에서 기르던 도베르만종 개- 이 그만 작년 여름에 죽었다는 점 등이 일기를 읽어보면 드는 생각이네요.

그때 논산에서도, 그리고 KTA에서도 다 함께 살고 함께 죽을 것 같았던
군대 동기들, 교관들, 하사관들이 지금 자대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그나마 동기들은 몇몇 연락이 닿기 망정이지 위에 나온 SGT Habson같은 경우에는 얼굴이 생각이 안납니다. 나이가 좀 흑인이었고 노력파였다는 점 이외에는요.

사실 위의 일기는 첫 일기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네요. 제가 다시 봐도 너무나 많은 일들을 아주 짧게 압축해서 불만이구요. 지금도 생각 하나 떠오르면 꼬리를 물고 연속해서 장면이 상상이 될 정도로, 군생활에서의 이동은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건 아마도 대부분의 군인들에게 적용이 될듯~)

그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차마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못하겠네요...^^; 13 APR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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